찬송가 290장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딤후 4:6-8, 히 11:13-16)
서론 : 장례식에 많이 불리는 이 찬송은 영국의 테일러 목사가 지었다. 그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성장 과정에서 육체가 너무 쇠약하여 하루하루를 위태하게 보내었으며, 대학을 마치고 목사가 된 후 세필드의 하워드 교회를 담임하였으나, 건국 때문에 6월에 만에 사면을 하였다. 그후, 그는 아버지 교구에 돌아와 그 목회를 도우며 하나님 사랑에 힘썼으나, 27세에 세상을 떠났다. 이 찬송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에 지은 것인데, 이는 세상을 떠날 것과 그가 가서 살아야 할 하늘나라를 확신하고 지은 노래이다. 그는 죽기 전날 밤에도 "그리스도의 군병으로서 선한 싸움을 싸울 검을 손에 들고 죽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말하였는데, 몽고메리 목사는 이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가장 큰 일이라고 말하지만, 실인즉 "괴로운 인생길이다". 괴로운 인생길이기 때문에 평안히 쉴 곳을 찾게 마련이다. 과연 인생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1. 인간은 본향을 사모하는 습성이 있다.
(1)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경우를 보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고향은 동방 나라 갈대아 우르였다. 이는 옛날의 바사국이요, 현대는 석유가 많이 생산되는 이란국 서남부 지방(이라크와의 국경지대)이다. 그곳은 기후가 따스하고 풍토가 비옥한 유브라데스 하류 지방이요, 고대의 문명이 발달된 지역이므로 대단히 살기 좋은 나라였다. 그러나, 월신 우상을 섬기고, 음란·광분한 풍습이 자행하여 웬만한 자는 다 이에 감염된 상태였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고향을 버리고 하란 가나안 등지로 표랑 하는 나그네 신세였다. 괴로운 타향살이로 고향이 그리웠을 것이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나안을 떠날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갈대아 우르도 그립지만,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는 땅을 사모하며 신앙생활에 만전을 기하였다.
(2)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의 향수심은 대단하였다.
영국의 청교도 '퓨-리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기 위하여 대대로 살던 정든 고국을 떠나 천신만고하여 아메리카 신대륙에 건너가서 살기 좋은 이상국인 미국을 창건하였다. 그들은 유구한 문화의 역사와 찬란한 전통의 나라 영국보다도 자유의 나라 미국을 택해 먼 항해를 감행했다. 이는 진정한 자유의 나라 천국이 더 좋은 고향임을 믿고 신앙에 기인한다.
(3) 우리들도 모두 망향심에 젖어 있다.
우리는 고향을 사모하는 타향살이 나그네 신세이다. 고향은 조상들의 뼈가 묻힌 곳이요, 내 잔뼈가 굵게 자라난 곳이요, 부모들의 땀방울이 옥토를 이룩한 기름진 곳이다. 그러므로, 산고 수련한 옛 고향을 찾고 그리는 이역의 나그네 신세는 처량하기만 하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그리운 것이 내 고향이요, 괴로울 때나 평안할 때마다 생각나는 곳이 곧 고향이다. 어릴 때 다니던 언덕 위의 예배당, 흙냄새 풍겨들던 초가집인 정든 내 집, 울 밑에 핀 봉선화, 감나무에 앉아 울던 매미 소리 들려오는 듯한 향수의 뜨거움이여! 그런, 우리에게는 더 좋은 고향이 있으니, 이는 곧 우리의 사모하는 하나님 나라이다. 그 곳은 우리 주님께서 먼저 가셔서 예비해 놓으신 아버지의 집이다. 요단 강 건너오는 성도들을 영접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자.
아름다운 내 본향을 바라보며
주여 찬송 부릅니다 주여 찬송 부릅니다.
거기 영원한 평화가 넘치리니
고난 풍파가 사라지고 참된 사랑이 빛나오리
2. 고향을 찾으려는 것은 인간의 최대 노력이다.
(1) 믿음의 조상 야곱의 경우를 살펴보자.
우리는 성경에서 믿음의 조상 야곱의 역사와 축복받은 환향자를 살펴보자. 야곱은 축복에 대한 욕심이 자심하여 늙으신 아버지 이삭과 미련한 형 에서를 속여 장자의 축복을 가로채 받았다. 그는 하란으로 피난 가서 외삼촌 라반의 사위가 되었고, 20년 간의 나그네 생활에 청춘이 늙었다.
들에 나가 뜨거운 햇빛 아래서 양무리를 돌봐야 하였고, 눈보라 치는 겨울밤에도 목장에서 제대로 잠잘 수가 없었다. 각박한 노인이 된 라반의 성화는 해마다 더했고, 좋지 못한 처남들은 노골적인 시기와 질투로 매부 야곱을 못살게 굴었다.
그는, 꽃피는 양춘가절 봄날에도, 녹음방초 우거지고 매미 소리와 쓰르라미 소리 울려 퍼지는 무더운 여름철에도, 추야장 기나긴 밤 귀뚜라미 슬피 울며 기러기 떼 날아가는 처량한 가울철에도, 그리고 눈보라 치는 엄동설한 겨울철에도 한결같이 고향에 가고자 발버둥을 쳤다.
춘풍추우 20년 성상을 고향에 돌아가려고 애쓰지 않은 날이 과연 있었을까?
(2) 고향에 돌아가려면 마땅히 신앙의 결단이 필요하다.
어린 아들들이 자라나는 것을 보아도 고향에 계신 인자한 어머니 리브가를 생각하였었고, 어려운 난관에서 좌절될 때라도 인자하신 아버지 이삭의 생각뿐이다. 고향에 편에 있으면서 그 젊은 시절에 어머니 말씀을 불순종하던 일이나, 아버지의 뜻을 순종치 않고 종종 속이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기를 얼마나 하였겠는가?
떠나자니 라반이 가로막고, 돌아가자니 형님 에서가 무서웠다. 그러나, 일구월심 고향에 가고 싶은 생각에 젖어 그는 일사각오로 떠났다. 떠난 지 3일 만에 라반의 추격을 받았다. 그는 길르앗까지 따라와 위협하였으나, 하나님께서 보호하사 첫째 난관을 돌파하였다.
한 고개를 넘어 얍복 강변까지 간신히 돌아오매 이번에는 형 에서가 400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마주 오고 있었다. 화평인가? 대결인가? 야곱은 얍복 강변에서 밤새워 천사와 씨름하는 기도를 드렸다. 드디어 성령의 감동을 받은 에서는 진노가 풀어졌으며, 기쁨이 넘쳐 아우를 영접 하였다. 제2 난관을 돌파하여 마르레에 가서 부친 이삭을 뵈오니 그 나이 180세라. 백발이 휘날리는 모습을 볼 때 감격도 새롭거니와 기쁨도 무량하였다.
(3) 나오미는 눈물의 환향을 하였으나 축복을 받았다.
야곱을 승리의 환향자라고 하면, 나오미는 눈물의 환향자이다.
나오미 부부는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을 데리고 낯선 모압 땅으로 갔다. 그러나, 하늘같이 믿었던 남편 엘리멜렉이 죽었고, 장성같이 버티던 두 아들 말론과 기룐까지 연이어 죽으니, 사고무친 한 천리타향에서 호천통곡할 뿐이다.
천상천하에서 유아 독고다. 즉, 외롭기 한이 없는 신세이다. 그리하여 맏며느리 오르바와 눈물의 작별을 하고, 떼려야 뗄 수 없는 둘째 며느리 룻과 함께 두 과부가 고향산천을 찾았다. 금의환향은 못되지만, 감격스러운 환고향이다. 그러나, 자비하신 하나님께서는 불쌍한 과부에게 복을 내리사 마른나무에 새싹이 나게 하셨다. 룻이 재가하여 보아스에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나았으니, 이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이다(마 1:1). 나오미는 비록 눈물의 환고향이었으나, 왕자의 어머니가 되고 그리스도의 조상 할머니가 되시니 감개무량할 것뿐이다.
3. 더욱 아름다운 본향을 찾아가자.
(1) 믿음의 조상 요셉의 경우를 생각하자.
믿음의 조상 요셉은 형들에 의해 애굽 나라에 팔려 종살이로 끌려갔으며,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 신세까지 되었다.
슬픔도 많고 억울한 사연도 많았겠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애굽의 총리대신 자리에 오르게 되었고, 12형제 전 가족과 부친 야곱까지 거느리게 되었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그는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 복지에 돌아가지 못하고 110세에 백발노인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임종 시에 유언하기를,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라고 신신부탁하였다(창 50:24-25). 그는 살아생전에 복지에 못 들어가면 해골이라도 환향할 것을 믿은 것이다. 그래서, 출애굽 당시의 모세가 요셉의 유언대로 그 해골을 가지고 나감은 (출 13:19), 요셉의 유언을 실행함이었다. 그 해골은 세겜에 매장하였으니 신앙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었다(수 24:32).
이 역사적 사실은 후일에 부활을 믿는 진실한 믿음의 결과이다(히 11:22).
(2) 무너진 예루살렘 성이라도 그리운 법이다.
민족의 죄악으로 인하여 느부갓네살의 손에 다윗 왕국은 깨어지고, 성전은 불타 없어짐으로써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었다. 장정은 칼에 죽고, 노약자들은 말발굽에 밟히었으며, 살아남은 자는 쇠사슬에 묶이어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부모처자나 형제자매가, 혹은 애굽에, 혹은 바벨론에, 혹은 고토에 살아 남아 생이별이다.
이 역사적인 사실은 비단 그 옛날 유대 사람에게만 있었겠는가? 오늘날 우리들의 처지도 더한층 처량하지 않은가?
신흥 바벨론의 찬란한 문화는 인류의 자랑거리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그 민족의 상고 문화와 앗수르 제국의 700년 문화를 계승하여 셈 족속의 종합 문화로 단장한 새 문화이다.
1억만 인구의 식량을 생산하는 바벨론 평야의 반만리 긴 강인 유브라데 강변에서 빨래하는 시온의 딸들은, 오히려 산골짜기로 흐르는 고국의 요단 강 물이 그리워 눈물을 흘렸다. 그들이 거문고를 버들가지에 걸고 놓고 시온의 노래를 부르지 못하여 목메어 울던 포로시대의 정경을 시편 137편은 그려 놓았다.
신흥 국가 메대·바사가 일어나 우상 국가 바벨론은 하룻밤 사이에 무너지고, 바사 왕 고레스의 칙령 하에 70년 포로생활의 멍에는 부서져 자유해방의 날이 이루어졌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시를 행하셨다 하였도다"(시 126:1-2).
결론 : 신천신지 새 예루살렘은 더 좋은 곳이다.
그러나, 보다 더 좋은 곳은 계시록 18장에 나타난 바벨론이 무너져 이 세상은 끝나고, 어린양 예수님의 신부들이 20장의 천년 세계, 21장의 신천신지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것을 생각하니 그야말로 이는 성도의 완전한 환고향이요, 더 아름다운 영원한 본향을 찾아가는 것이다.
[장례 예배 설교말씀] 장례식 발인 예배 설교말씀 및 대표 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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