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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6장 히브리어 성경 말씀] 엘리바스를 질책하는 욥(욥 6:14-23)

복음의 능력 2021. 11. 17.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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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6장은 엘리바스의 말에 욥이 대답하는 이야기입니다. 엘리바스는 욥에게 권면했습니다. 이런 엘리바스의 권면에 욥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면서 엘리바스의 말에 잘못이 있다고 꾸짖고 있습니다. 욥이 환난을 당하는데 친구들이 와서 욥을 정죄하니 욥도 화가 났습니다. 욥은 열심히 하나님 앞에서 번제를 드리면서 거룩하게 살았는데 죄인이라고 하니 욥이 화가 나서 엘리바스를 질책합니다.

 

엘리바스를 질책하는 욥(욥 6:14-23)

 

14절 라마스 메레에후 하세드 비이리아트 샤다이 야아조브

성 경: [욥6:14]

주제1: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1)]

주제2: [친구를 질책하는 욥]

본문 전체는 다음과 같이 해석되어야 그 뜻이 통한다. `절망한 자는 그의 친구들의 헌신(동정)을 받아야 한다. 심지어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을 포기한 자라 할지라도 그리하여야 한다'(NIV, A despairing man should have the devotion of his friends, even thougth he forsakes the fear of the Almighty). 여기서 욥은 엘리바스의 태도에 대해 직접적인 비난을 나타내고 있다. 즉 자신에게 진정으로 요구되었던 것은 온후한 동정과 사랑의 말이었으되, 엘리바스의 변론에는 그것이 결여되어 있었다. 더욱이 엘리바스가 이미 은연중 지적한 것처럼 욥이 죄를 범했다고 할지라도(4:7, 8) 엘리바스는 욥을 권고하고 동정하는 참다운 우정을 보여주었어야 했다는 사실이다(17:5; 19:21, 22). 실로 엘리바스를 비롯하여 욥의 친구들에게서 부족한 것이 있었다면 진정한 사랑에서 출발한 이해였다. 우리는 여기서 타인에 대한 권고의 말을 할 때는 그 말이 지니는 논리성이나 말의 유창함이 아닌, 그 사람의 정황에 대한 전적인 이해와 사랑으로 하여야 함을 교훈받을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사도 바울은 타인, 심지어 범죄 한 자를 권고할 때라도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으로(6:1)고 했다.

15절 아하이 바기두 키모 나할 카아피크 니할림 야아보루

성 경: [욥6:15]

주제1: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1)]

주제2: [친구를 질책하는 욥]

󰃨 나의 형제 - 원문상으로는 복수형(KJV, RSV, My brethren)이다. 4,5장의 변론이 엘리바스 단독으로 선포되었음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복수형은 모순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1) 비록 엘리바스가 4,5장의 변론을 독자적으로 설파하기는 했으나 그것은 실제적으로 엘리바스, 빌닷, 소발 등 세 친구의 공동 변론과 다름없었다. 왜냐하면 5:27에서 엘리바스는 자신의 변론을 `우리의 연구한 바'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욥과 그의 친구들과의 변론은 매우 자유스러운 대화(discussion or dialogue)의 형식이었을 것이다. , 그것은 우리가 현재 접하고 있는 것처럼 한 사람이 긴 주제를 변론(또는 강연)하는 식이라기보다는 짤막한 대화로써 구성되었을 것이다. 그런 것을 본서 저자가 극시(劇詩) 형태에 맞게 각 사람의 대화를 일목요연하게 재조정 내지 편집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엘리바스와 함께 그의 다른 친구들이 욥에게 말했을 가능성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욥은 그들을 염두에 두고 `나의 형제들'이라고 지칭했을 듯싶다.

󰃨 시냇물의 마름 같고 개울의 잦음 같구나 - 팔레스틴 지역의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와디(wadi)의 특성을 들어 욥은 친구의 변덕스러움과 불성실을 비난하고 있다. 여기서 `시냇물'`개울'은 공히 `와디'를 가리키는데, 이것은 비가 오면 금방 물이 불어나다가도 비가 그치고 조금만 지나면 그 강바닥이 드러나 보일 정도로 메말라 버린다. 이러한 현상은 팔레스틴 지방의 지층(地層)이 물을 오래 가두어 둘 수 없는 모래와 자갈 들로 주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와디는 농부와 행인(行人) 에게 있어서 전혀 쓸모없는 무용지물(無用之物)과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물이 절실히 필요한 건기(乾期, 5월 중순부터 10월 말까지)에는 메말라 있으며, 그 반대로 물이 필요 없는 우기(雨期, 11월부터 다음 해 5월 초순까지)에는 비로 인해 와디가 넘쳐흘러 버리기 때문이다. 욥에게 있어서 그의 친구들도 이와 같았다. , 그들은 욥이 절실히 필요로 했던 따뜻한 동정과 위로는 주지 않고 자기중심적인 변론과 주장으로 욥의 심화(心化)를 자극시켰던 것이다. 그러므로 욥은 그들에게 일종의 배신감(RSV, My bre-thren are treacherous)과 속았다는 느낌(KJV, my brethren have dealt deceitfully)을 갖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그들을 신뢰할 수 없는 존재(NIV, my brothers are asundependable)로 여기게 되었다.

16절 하코디림 미니 카라흐 알레모 이티알렘 샬레그

17절 비에트 이조리부 니치마투 미히모 니디아쿠 미미코맘

성 경: [욥6:16,17]

주제1: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1)]

주제2: [친구를 질책하는 욥]

본절에서는 15절에서 토로된 친구에 대한 욥의 책망이 더 신랄해진다. 일반적으로 팔레스틴 고지대, 특히 길르앗(Gilead)이나 바산(Bashan) 지역에는 겨우내 눈이 내린다. 기온이 더 하강하면 산의 협곡의 물들이 얼게 되며, 종종 그 얼음 위에 또다시 눈이 내려 겹겹으로 얼게 되기도 한다(16b). 그런데 봄이 되어 기온이 올라가면 이들의 녹아 흘러내리게 되는데 대개 이때에는 주변의 흙과 먼지, 얼음 조각, 자갈, 암석, 잡초 덩이 등이 함께 휩쓸려 내려온다. 따라서 자연히 그 물빛은 검은색을 띠게 된다(1 6a). 여러 지류(支流)가 합쳐진 본류(本流)에서 그 물은 넘쳐흐르게 된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그 양은 급격히 줄어들며 정작 물이 절실히 필요한 여름철에는 아예 강바닥이 마른다(17). 욥의 친구들도 그가 절실히 필요했던 때에는 멀리 떨어져 있었던 존재들이었다. 한편 본절의 내용을 기초로 볼 때 욥의 고향은 레바논 인근 지역이었을 것이다.

18절 일라피투 아리호트 다리캄 야알루 바토후 비요베두

성 경: [욥6:18]

주제1: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1)]

주제2: [친구를 질책하는 욥]

본문은 그 주어를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 뜻이 달라진다. (1) 와디(wadi)의 수로(水路)로 볼 경우 : 와디의 수로는 그 발원지(發源地)에서는 넓고 크며, 또 거의 한 갈래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하류로 내려올수록 그것은 여러 갈래로 나누어져(支流) 각기 다른 지역으로 흐르게 된다. 따라서 자연히 그 물의 양이 격감하게 되며 어떤 것은 사막으로 흘러들어 수로의 흔적조차 사라져 버리게 된다. 본문은 이것을 `광야로 가서 죽고'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법은 델리취(Delitzsch), 데이빗슨(A. B.Davidson), 부드(K. Budde), 히찌히(F. Hitzig)등에 의해 주장되고 있다. 그러나 본절에서 `떼를 지은 객'을 지칭하는 히브리어 `아르호트'가 19절에서도 `'(대상)를 분명히 지칭하고 있기 때문에 이 해석은 무리가 따른다. (2) 떼를 지은 객(NIV, Caravans)을 주어로 볼 경우 : 일반적으로 여행객, 특히 장거리 여행자들은 수통(水桶)을 준비하여 그곳에 물을 채운다. 사막으로 이루어진 팔레스틴 지역에서는 더욱 그리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장거리 여행을 하는 도중 그 수통에 물이 떨어지면 그들은 시냇가를 찾는다. 이때 만약 시냇가가 말라 있으면(17) 그들은 물을 찾아 상류로 이동하게 될 것이며, 나중에는 수원지(水源池)인 협곡이나 산지까지 다다르게 된다(Driver & Gray). 그래도 찾지 못하면 그들은 광야로 나와 방황하다가 결국 갈증 때문에 죽음을 맞게 된다. 이 같은 해석은 쉴로트만(Schlottman), 히르첼(Hirzel), 에발트(Ewald), 랑게(Lange)등에 의해 주장되며 본장의 전후 문맥상 타당하다. 욥은 자신의 고난의 해결책을 찾아 방황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비애감만을 맛본 자신의 심경을 물을 찾는 여행자에 비유하고 있다.

19절 히비투 아리호트 테마 할리코트 쉬바 키부 라모

성 경: [욥6:19]

주제1: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1)]

주제2: [친구를 질책하는 욥]

󰃨 데마 - 이스마엘의 후손으로서 주로 무역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다(25:15). 그리고 이들의 거주지는 에돔 근방의 아라비아 지역으로 알려진다(21:4; 25:23) 따라서 본문의 `'라는 말은 `대상' (隊商, RSV, NIV, caravans)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20절 보슈 키 바타흐 바우 아데하 바예히파루

성 경: [욥6:20]

주제1: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1)]

주제2: [친구를 질책하는 욥]

본문은 장거리 여행을 하는 자들이 시냇물을 찾았으나 그것이 메말라 있음을 발견한 직후의 허망한 심정을 묘사함으로써 현재 욥의 심경을 생생하게 전달해 준다. , 그들은 사막의 폭염(暴炎) 아래서 갈증에 허덕이다 먼발치에서 시내가 있음을 발견한다. 기뻐 뛰어가지만 그물이 메말라 있음을 발견하고 그들은 깊은 절망감과 당혹감에 휩싸이게 된다. 이는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했으나 다가가 보자 그것이 신기루였음을 알아챈 직후의 심경에 비견된다 하겠다. 따라서 본문은 고난에 빠진 욥이 친구들로부터 인말의 도움을 기대했으나 오히려 냉담한 질책만 당한 자신의 참담한 심경을 토로한 것이라 하겠다(6:1).

21절 키 아타 헤이템 로 로 티리우 하타트 바티라우

성 경: [욥6:21]

주제1: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1)]

주제2: [친구를 질책하는 욥]

󰃨 너희가 두려운 일을 본즉 겁내는구나 - 여기서 욥은 자신을 위로하려 온 친구들의 이기적인 성향을 날카롭게 꿰뚫어 보고 있다. , 그의 친구들은 처음에는 욥을 동정하려는 진정 어린 충정심(衷情心)에서 찾아왔다. 그리고 욥의 고난에 동참하는 행위를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2:12, 13). 그러나 욥에게 내려진 재앙의 참혹함과 그것이 조만간 회복될 가능성이 희박함을 깨닫고 난 다음부터는 두려워하며 넌지시 발뺌하고자 했을 것이다. 아마 그들은 욥의 재앙을 하나님의 형벌로 생각했을 것이다. 즉 욥은 죄인이요, 그 죗값으로 지금의 재앙을 겪고 있는 것으로 그들은 보았다. 따라서 그들은 본래의 태도에서(2:12, 13) 후퇴하여 욥에게 온후한 사랑과 동정의 행동( )을 나타내 주기를 주저하게 되었다.

만일 이러한 태도를 보였다가는 죄인()과 연합했다는 이유로 그들 자신들도 형벌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측면에서 그들의 신앙은 구약 초기의 `동태(同態) 보복법'(talion)적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출 21:23-25; 레 24:17-21; 19:21). 그러나 14절에서 욥이 밝힌 것처럼 그 친구들이 보여야 할 의당한 행위는 고난에 처한 자, 심지어 욥이 하나님을 떠난 죄인이었다 할지라도 그에게 온정과 위로를 보내는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의인뿐 아니라 창가와 세리 등을 사랑하시고(9:10; 21:31), 눌린 자에게 위로를 주심으로(눅 4:18 ; 행 10:38) 이러한 모범을 몸소 보이셨다.

22절 하키 아마리티 하부 리 우미코하켐 쉬하두 바아디

23절 우말리투니 미야드 차르 우미야드 아리침 티피두니

성 경: [욥6:22,23]

주제1: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1)]

주제2: [친구를 질책하는 욥]

본문에 나타난 4가지 질문을 통해 욥은 그의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기대했던 바가 무엇이었는지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것은 예물이나 용맹스러운 행위(23)가 아니라 14절에서 분명히 지적하고 있듯, 진퇴양난의 고통 중에 처한 욥에 대한 사랑(헤세드)이었다. 한편 23절에 나타난 `대적', `포악한 자'는 욥의 소유물을 약탈하고 종들을 죽인 스바인(1:15)과 갈대아인(1:17)으로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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