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설교 알쓸잡

[요한일서 1장 강해 설교문] 예수 그리스도의 피(성찬식) 요일1:5-10

복음의 능력 2020. 7. 27. 14:27
반응형

안녕하세요. 오늘도 알쓸잡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요한일서 1장 강해 설교문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제 목: J의 피(성찬식)

성 경: 요일1:5-10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며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며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릴 죄를 사하시며 모드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 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제게 있어서 생명처럼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고 누가 묻는다고 하며 나는 몇 가지를 이야기할 수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목회입니다. 몇 년 전 저 나름대로 아주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 집과 교회를  떠나 목회를 계속하여야 할 것인가 아니며 그만두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목회자 저에게 있어서 생명보다 더 귀한 것으로 그것을 떠나서는 도저히 살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막상 닥친다고 하면 무슨 일이나 다 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 필요하면 장사도 할 수 있고 또 노동도 할 수 있습니다. 아주 작은 경험이지만 노동과 장사의 경험도 실제로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은 다 귀한 일이며 일에는 귀천이 없고 더 나아가 모든 일은 성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을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목회만이 성스러운 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소명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분명히 목회를 하도록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목회가 저의 소명이기 때문에 그것을 떠나서는 저는 이 땅에 존재하여야 할 의의를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생명과도 같은 목회를 잘하는 것은 둘째치고 계속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반드시 잃어버리지 않고 지켜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것은 명예와 권위입니다. 그것은 권위주의와 세속적인 명예욕과는 구별되는 것으로 목회자가 참된 의미의 목회자로서의 명예와 권위를 잃어버린다고 하면 어떻게 목회를 할 수 있겠습니까? 몇몇 동역자 중에 중요한 목회자로서의 권위와 명예를 잃어버려서 생명과도 같은 목회를 떠나는 분들이 실제로 있습니다. 목회 생활을 하는 중에 치명적인 죄와 허물이 드러남으로 목회자로서의 권위와 명예가 실추되어 목회자를 불명예스럽게 하여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목회자에게 있어서 죄와 허물은 치명적입니다. 그것은 목회의 생명인 목회자의 명예와 권위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러한 분들의 불행한 사건을 볼 때마다 그것이 비단 그분 만의 문제가 아님을 생각하곤 합니다. 생각할 때마다 깨달을 수밖에 없는 중요한 것은 그와 같은 허물과 죄는 나에게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그것이 현재 목회하는 중에 구체적인 사건이 되어 드러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을 중에 구체적이 사건이 되어 드러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일 뿐 과거 속에 또는 미처 실행되지 않았지만 의식 속에 숨어져 있다는 사실을 보고 또 자신의 사람됨을 살펴볼 때 저도 감히 목회를 할 수 없는 부끄러운 죄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저는 제가 말할 수 없는 죄인임을 압니다. 그리고 저는 그 죄의 삯이 사망임을 압니다

 

 

제가 이와 같은 죄인임에도 이 귀한 목회의 직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저의 죄를 사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시편 321절에서 허물의 사하심을 받고 죄의 가림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라고 감격적인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도 우리와 똑같은 죄인이었습니다. 밧세바를 범하고 그 죄를 은폐하기 위하여 계획했던 간악한 계교와 나중에는 우리아를 최전방에 내보내어 죽게 하는 다윗에게서 우리는 아주 추악한 죄인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그 엄청난 허물을 용서받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과 후손들에게 존경을 받는 믿음의 조상이 됩니다. 다윗은 그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세상에 자신과 같이 복 받은 사람은 없다고 간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허물의 사하심을 얻고 죄의 가림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이러한 간증은 우리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제가 죄인임을 압니다. 저는 그 죄의 삯이 사망임을 누구 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그대로 가진 채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과 더 나아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그러나 저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또한 압니다. 그것은 그 엄청난 죄를 우리 하나님께서 모두 용서하여 주셨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저는 참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사죄의 은총을 받은 사람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 위하여 하신 일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그들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게 하신 것입니다. 저는 저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셨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용서와 사랑이 비례하기 때문입니다. 얼마만큼 사랑하는가가 얼마만큼 용서할 수 있는가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형제의 죄를 일곱 번 용서하며 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형제의 죄를 세 번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은 군자요 일곱 번 용서할 수 있다면 그는 성자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로 가능한 일입니다. 부모는 자식의 죄를 그 이상이라도 용서합니다. 세상이 용서 못할 죄도 부모는 용서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 줄 여러분 아십니까? 랑하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위하여서는 자기의 목숨도 아까운 것으로 생각지 아니하는 그 엄청난 사랑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곧 하나님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시리 만큼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십자가의 사랑 때문에 모든 죄가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용서받지 못할 죄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의 죄가 용서받을 수 있었던 까닭도 십자가의 사랑 때문이었으며 십자가 상의 강도가 용서받고 구원받을 수 있었던 까닭도 십자가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주의 보혈은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실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오늘 본문 말씀에 있는 그대로 예수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씻으신다는 말씀을 믿습니.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아 저의 모든 죄가 용서함을 받았음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제가 이 거룩한 목회의 성직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러므로 제가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생명과 같이 귀히 여기는 목회를 할 수 있는 것은 첫째도 하나님의 은혜요 둘째도 하나님의 은혜이며 셋째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습니다. 저는 사도바울이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한 것과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하신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를 압니다.

 

 

다윗은 자신의 허물과 죄가 사함을 받고 가림을 받은 사건이 너무 감사하고 감격스러워서 시편 84절에서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이자가 무엇인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 하고 말씀하고 있으며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죄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죄 없다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요 그 속에 진리가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 자신을 한번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깊이 돌이켜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의로우며 옳다는 착각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구주이신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죄인인 줄을 모르면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이심을 또한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죄인입니다. 우리의 부끄러운 죄가 용서함을 받고 가리어지지 아니한다고 하면 우리는 부끄러움과 수치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우리들에게 영육 간에 귀한 생명을 허락하시고 놀라운 하나님의 사역을 맡기어 감당하게 하시며 때로는 존귀와 영광으로 관을 씌워 주시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입니다. 이 귀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십자가의 보혈로 값 주어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아니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쓸모없는 사람입니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를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그는 어디를 가나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오늘 예수님의 피를 기념하는 성찬식을 거행하려고 합니. 우리의 죄를 속하시기 위하여 피를 흘리신 예수님과 예수님의 십자가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며 하나님의 놀라우신 속죄의 은총을 체험하시는 귀한 성찬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명기 8장 강해] 고난 후의 축복(신 8:1-10)

안녕하세요. 오늘도 알쓸잡에 방문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신명기 8장에서 고난 후의 축복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제 목 : 고난 후의 축복 구 절 : 신 8:1-10 기독교는 십자가와 부활

skh123.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