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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8장 예수님 말씀] 예수님이 심문받으심(요 18:1-40)

복음의 능력 2022. 5. 1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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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8장에서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체포됩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입맞춤으로 팔아버렸습니다. 예수님이 빌라도 앞에서 심문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의 예언대로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습니다. 예수님은 선택받은 백성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게 됩니다.

 

예수님이 심문받으심(요 18:1-40)

 

1-27, 잡히시고 심문 당하심

[1-6]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저편으로 나가시니 거기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다. 거기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가끔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곳을 알더라. 유다가 군대와 및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하속들을 데리고 등과 홰[횃불]와 병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가라사대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가라사대 내로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저희와 함께 섰더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내로라 하실 때에 저희가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예수께서는 유월절 식사와 그 후에 제자들에게 주신 여러 교훈과 기도를 마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셨다. 기드론 시내는 예루살렘 북쪽에서 시작하여 사해로 이어지는 골짜기를 가리킨다. 이 시내는 평소에는 물이 없고 겨울의 우기(雨期)에 물이 흐르는 와디라는 시내이다. 그는 거기에 있는 동산에 들어가셨다. 그것은 감람산, 좀더 좁게는 겟세마네 동산이다. 다른 복음서들은 예수께서 그 밤에 거기서 약 3시간 기도하셨다고 증거하는 것 같다(26:40, 44; 14:37, 41). 사람이신 예수께서는 그 밤에 간절한 기도로 그의 연약한 마음을 굳세게 하셨던 것 같다.

다른 복음서들은 사람들이 강도라도 잡을 자들처럼 검과 몽둥이를 가지고 왔다고 증거한다. 그 상황은 누구나 두려워 떨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 당할 일을 다 아셨다. 그러나 그에게는 마음의 안정과 담대함이 있으셨다. 그것은 기도로 준비된 담대함이었을 것이다. 그는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자신을 증거하셨다. 의인에게는 담대함이 있다(28:1). 의로우신 예수께는 담대함이 있으셨다. 그를 파는 유다도 그들과 함께왔다. 예수께서 자신을 알리실 때 그들은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졌다.

[7-11] 이에 다시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신대 저희가 말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로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의 가는 것을 용납하라 하시니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이에 시몬 베드로가 검을 가졌는데 이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검을 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예수께서는 인간의 연약함을 잘 아셨고 제자들이 잡히거나 다치거나 죽게 되지 않기를 원하셨다. 주께서는 과연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고 아끼셨다(13:1). 자신보다 남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시몬 베드로는 검을 빼어 말고라는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렸다.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보다 좀더 용기가 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검을 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에 보면, 그는 또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72,000]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라고 말씀하셨다. 누가복음에 보면, 그는 이것까지 참으라”고 말씀하신 후 그 귀를 만져 낫게 해주셨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악인들의 악행에 대해 악으로 보복해서는 안 된다고 교훈하셨었다(5:39-40). 더욱이, 그가 잡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다.

[12-14] 이에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하속들이 예수를 잡아 결박하여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 권고하던 자러라.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결박하였다. 사람이 하나님을 결박한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거꾸로 된 일이다. 온 세상의 심판자이신 그가 죄인들에게 결박을 당하시는 일이 역사상 실제로 일어났다. 이것이 악한 세상의 모습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갔다. 다른 복음서들은 그들이 예수님을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끌고 갔고 대제사장은 공회 앞에서 그를 심문했다고 증거했으나, 요한은 그들이 그를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갔다고 보충적으로 증거했다.

예수님 당시의 제사장들은 유대 사회의 지도자들이었으나 부패되어 있었다. 그들은 항상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과 교통하므로 백성들보다 더 경건해야 했으나 부패되어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죽이려고 공모하였다. 젊은이들은 혹 믿음과 인격이 부족해서 잘못을 범할지라도 노인들이 바른 조언을 해야 할 터인데, 안나스는 오히려 이 모든 일을 조종하였던 것 같다.

[15-18]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하나가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 베드로는 문 밖에 섰는지라. 대제사장과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왔더니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 그때가 추운 고로 종과 하속들이 숯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베드로와 함께 다른 한 제자가 예수님을 따랐다. 마태복음은 예수께서 잡히시는 때 제자들은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고 베드로는 비록 멀찍이이었지만 예수님을 따라갔다고 증거했다(마 26:56, 58). 대제사장과 아는 한 제자가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해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왔다. 그런데 그 밤에 베드로는 문 지키는 여종 앞에서 자신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 밤은 추운 밤이었다. 시험은 종종 성도가 예상치 못한 때에 닥친다. 사탄은 우리를 주목하며 틈을 노린다. 여종의 갑작스런 질문에 베드로는 실수를 했다. 그 밤에 깨어 기도하지 않았던 베드로는 주님의 염려대로 크게 실수하고 말았다(26:41).

[19-24] 대제사장이 예수에게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하여 물으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의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히는 아무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 저희가 나의 하던 말을 아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매 곁에 섰는 하속 하나가 손으로 예수를 쳐 가로되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거하라. 잘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시더라. 안나스가 예수를 결박한 그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내니라.

예수께서는 안나스의 질문에 직접 대답지 않으시고 자신이 회당과 성전에서 사람들에게 드러내놓고 가르쳤으니 그들에게 물어보라고 말씀하셨다. 그가 그렇게 대답하신 까닭은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않기 위해서이실 것이다(7:6). 안나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의 마음은 이미 예수님을 정죄하였고 단지 그 정죄의 정당성을 증명하려고 애쓰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의 질문에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셨고 그 앞에 비굴하게 육신의 목숨을 구걸하려 하지도 않으셨다.

이 말씀을 하시자, 곁에 선 하속 하나가 손으로 예수님을 쳤다. 그때 예수께서는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거하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을 정죄하려면 먼저 그의 죄를 확증해야 한다. 죄를 확증하지 않고 남을 정죄하는 것은 그 자체가 큰 잘못이며 큰 악이다. 안나스는 예수님을 결박한 채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내었다. 공관복음은 가야바 앞에서 되어진 일만 증거하지만, 요한은 그 내용을 생략하고 안나스 앞에서 되어진 일만 보충해 증거한다.

[25-27]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아니라 하니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베어 버리운 사람의 일가라. 가로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던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그 밤에 시몬 베드로는 세 번이나 자신이 예수의 제자가 아니라고 말했다. 다른 복음서들에 보면, 그는 두 번째는 맹세하며 부정하였고, 세 번째는 저주하고 맹세하며 부정했다. 인간은 참 약하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자신보다 남을 배려하자. 주님을 죽기까지 따르겠다고 말했던 제자들이 그 밤에 그를 보호하지 못하고 다 도망쳐 버릴 것이지만, 주께서는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셨고 배려하셨다. 사랑은 이기적이지 않고 자신보다 남을 배려한다.

둘째로, 우리는 악을 악으로 갚지 말자. 시몬 베드로는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오른편 귀를 베어버렸지만, 주께서는 베드로에게 검을 집에 꽂으라고 말씀하셨다. 누가복음에 보면, 그는 말고의 귀를 고쳐주셨다(22:51). 그는 자신을 잡으러 온 자에게도 선을 베푸셨다. 우리는 그의 교훈과 모범대로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끝까지 선을 베풀자.

셋째로, 우리는 친구가 우리를 버려도 낙심치 말자. 시몬 베드로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예수의 제자임을 세 번이나 부인했다. 우리는 사람들을 신뢰치 말고 그들이 우리를 배신하거나 떠나갈 때라도 크게 낙심치 말아야 한다. 우리는 언제나 또 끝까지 신실하신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고 신뢰하며 섬기며 사랑하며 순종하자.

넷째로, 우리는 항상 담대하고 당당하게 살자. 예수께서는 악한 자들에게 잡히시고 심문을 받으셨고 구타를 당하셨다. 그러나 그는 세상 권세 앞에서 비굴하지 않으셨고 육신의 목숨을 구걸하지도 않으셨다. 우리는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게 살 때 항상 담대할 수 있다.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다(28:1). 우리는 항상 담대하고 당당하게 살자.

28-40, 빌라도의 심문

[28-32] 저희가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저희는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그러므로 빌라도가 밖으로 저희에게 나가서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소하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저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이 없나이다 하니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대제사장 가야바에게서 로마 총독의 관정으로 끌고 갔다. 그들은 총독으로 예수를 정죄케 함으로 백성의 반발을 최소화하려 한 것 같다. 시간은 새벽이었다. 그들은 예수를 정죄하고 죽이는 일에 열심이 있었다. 그것은 무지하고 악한 열심이었다. 그들은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죽이려는 악한 계획을 이루기 위해 열심을 내고 있었다. 그래서 그 밤에 공회를 소집하여 그를 심문했고 그 새벽에 그를 로마 총독에게로 데려간 것이다.

그 날이 무교절의 첫날이므로 그들은 더럽힘을 받지 않고 유월절 음식을 먹고자 하여 이방인인 총독의 관정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정죄하고 죽이려는 것보다 자신들을 더럽히는 더 큰 악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들은 무지한 자들이었거나 자신들의 이성과 양심을 억누르는 위선자들이었다.

빌라도는 밖으로 그들에게 나가서 말하였다.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소하느냐?” 그는 유대 지도자들이 끌고 온 예수의 정확한 죄목을 알기를 원하였다. 그들은 대답하였다.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들은 예수를 행악자라고 말했다. 예수께서 무슨 악한 일을 하셨는가? 그가 자신의 신분에 대해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이 악한 일인가? 빌라도가 말했다. “너희가 저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빌라도는 그 재판에 관여하려 하지 않았으나, 유대인들은 말했다.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이 없나이다.” 이렇게 예수께서 자신이 어떤 죽음으로 죽을 것을 미리 말씀하신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33-36]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뇨?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여 네게 한 말이뇨?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예수께서는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는 빌라도의 질문에 즉시 대답하지 않으시고 그 대신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는 이 세상 나라와 다르다. 세상 나라는 세상에서 나와서 세상에 속하여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나라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시는 나라이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나라이다. 예수께서는 바로 그 나라의 왕이시다. 예수 믿는 우리는 세상 나라인 대한민국에 살지만,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천국 백성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으며 예수께서는 이 세상의 방식으로 일하지 않으신다. 그는 대적자들과 싸우지 않으신다. 세계를 정복하시되 칼과 창으로가 아니고 말씀과 성령의 역사와 성도들의 사랑으로 하신다.

[37-40]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저희가 또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러라.

예수께서는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는 빌라도의 두 번째 질문에는 대답하셨다.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 곧 하나님의 나라는 진리의 나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다. 세상 나라는 거짓된 악인들이 다스리는 나라이므로 불경건하고 부도덕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가 법이며 진리가 지배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나라의 왕이시며 진리를 위해 세상에 오셨고 진리에 대해 증거하셨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은 그의 음성을 듣고 그를 믿고 따를 것이나, 세상은 진리를 알지 못하고 진리에 대해 무관심하고 진리를 듣지 않고 받지 않고 도리어 배척한다.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고 말했다. 그가 진리를 알았다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무죄(無罪)를 선고하고 그를 곧 풀어주며 그 자신이 그를 믿고 구원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진리에 대한 진지한 갈망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지나가는 말로 진리가 무엇이냐?”고 말했던 것 같다. 그는 예수님의 무죄함에 대해 인식하였으나 마침내 그를 정죄하고 유대인들에게 넘겨줄 것이다.

빌라도는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말했다.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다음 장(19)을 보면, 빌라도는 예수의 무죄함을 두 번 더 말한다(19:4, 6). 그러나 유대인들은 빌라도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고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들은 이미 예수를 죽이기로 작정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빌라도에게 예수 대신 강도 바라바를 사면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 의인 예수 그리스도를 강도보다 못한 악인으로 취급하였던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무지한 열심은 오히려 위험하다.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정죄하고 죽이고자 하는 데 있어서 열심이 있었다. 그들은 새벽부터 모여 예수님을 정죄하였다. 사람이 열심히 산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이해하고 그 뜻에 일치하게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지한 열심을 버리고 바른 지식과 지식 있는 열심을 소원해야 한다.

둘째로, 타락한 종교인은 불신자보다 더 나쁘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긴다는 유대 지도자들은 이방인 빌라도보다 더 나빴다. 로마 총독 빌라도는 비록 이방인이었지만, 예수가 무죄하다는 것을 이성적으로, 양심적으로 알았다. 사형은 큰 죄를 범한 자에게 내려져야 한다. 종교적인 죄 때문에 사형이 필요한 경우도, 먼저 그 죄를 확증해야 할 것이다. 어떤 재판에서든지 죄의 명확한 증거가 없이 사람을 정죄하는 일은 옳지 않다. 도덕성 없는 경건의 모양은 위선에 불과하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들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그를 믿고 따르는 것은 그의 왕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우리의 왕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영접한 자들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다. 성경은 그 나라의 법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는 도덕적인 나라이다. 그 나라의 행동지침은 의와 사랑이며 그 나라의 특징은 평안이다. 신약교회는 이 나라의 부분적 성취이다. 그 나라는 장차 주 예수의 재림으로 영광스럽게 완성될 것이다.

[누가복음 21장 예수님 말씀] 예루살렘 멸망과 재림 징조(눅 2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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