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설교 알쓸잡

[디모데전서 5장 은혜로운 말씀] 과부와 장로에 대한 교훈(딤전 5:1-25)

복음의 능력 2022. 4. 29.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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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5장에서는 과부와 장로와 목회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부를 교회에서 존대하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장로를 우대해야 할 것에 대해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살아야 합니다. 

 

과부와 장로에 대한 교훈(딤전 5:1-25)

 

1-8, 참 과부를 공경하라

[1-2]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비에게 하듯하며 . . . .

바울은 말한다.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비에게 하듯하며, 젊은이를 형제에게 하듯하고, 늙은 여자를 어미에게 하듯하며, 젊은 여자를 일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하라.”

말씀 사역자들은 성도들을 교훈하며 권면할 때 예절과 덕을 가지고 해야 한다. 나이 많은 성도들에게는 꾸짖지 말고 자기의 아버지에게 하듯이 권면하고, 젊은 성도들에게는 형제에게 하듯이 하고, 나이든 여성도들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이 하고, 젊은 여성도들에게는 일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이 해야 한다. 특히 교회 봉사자들은 젊은 여성도들에 대해 깨끗하고 덕스럽게 처신해야 한다.

하나님의 구원 진리는 사람을 사람다워지게 하는 것이지, 사람으로 비상식적이고 예절 없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직분자들과 성도들은 예절 있고 덕스러운 인격자가 되어야 하고, 말씀 사역자들은 더더욱 높은 마음을 가지 말고 항상 겸손하게 그리고 예절 있게 말하며 행동해야 한다.

[3] 참 과부인 과부를 경대하라.

바울은 참 과부인 과부를 경대(敬待)하라”고 말한다. ‘경대(敬待)하다는 원어(티마오)공경하다, 존경하다는 뜻이다. ‘참 과부는 나이가 60세가 넘은 과부로서 그를 돌아볼 자녀나 친척이 없고 평소에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거나 병환자들을 돌보는 일 등의 선한 일들을 행한 자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본문은 교회가 그런 자를 공경하고 물질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뜻이라고 본다.

[4]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 . . .

바울은 또 말한다.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유세베인)[공경하며]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과부에게 자녀들이나 손자들이 있으면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부모나 조부모를 공경하며 보답하기를 배우게 해야 하였다. 효도는 제5계명이 가르친 중요한 덕이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마땅한 보답이며 하나님 앞에서 받으실 만한 일이다. 자녀들은 마땅히 집에서부터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자는 의와 선을 실천해야 한다.

[5-6]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 . . .

바울은 말한다.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과부도 두 종류가 있었다. 한 종류는 과부로서 외롭기 때문에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는 자이었다. 이런 사람은 육신적으로는 외롭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과 늘 교제함으로 은혜 풍성한 삶을 사는 자이었다. 만일 그가 남편을 잃지 않았다면 그는 그렇게 하나님과 천국을 사모하고 항상 기도하는 생활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 종류의 과부가 있었다. 그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대신 육신의 쾌락을 구하며 사는 자이다. 그의 처지는 그의 신앙생활에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하였다. 남편이 없는 것이 그로 하여금 오히려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게 할 뿐이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환경을 최선용할 지혜를 가지지 못한 자이었다. 오늘 본문은 이런 사람은 살았으나 죽었다고 말한다. 그는 영적 생명을 갖지 못한 자이다.

[7] 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그들로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라.

바울은 또 말한다. “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그들로 책망받을 것이 없게 하라.” 위의 말씀은 모든 성도에게 교훈이 된다. 구원받은 우리는 육신에 치우쳐 세상의 헛된 쾌락을 구하며 살 자들이 아니고 하나님을 바라며 천국을 소망하고 말씀과 기도로 살아야 할 자들이다. 성도가 하나님께서 주신 천국의 소망을 저버리고 이 세상에만 치우쳐 산다면 되겠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도무지 모르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마땅히 그런 세상적이고 쾌락적인 헛된 생활을 버리고 하나님께 소망을 둔 경건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 . . .

바울은 또 말한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이것은 중요한 교훈이다. 신앙과 행위가 분리될 수 없음이 다시 한번 더 잘 증거되었다. 어떤 자녀나 손자들이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자기의 외로운 부모님이나 어떤 가족이나 친척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그는 믿음이 없는 자일 것이다. 그런 사람은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고 본문은 말한다. 모든 사람에게는 일차적으로 자기 가족을 사랑하고 돌아볼 의무와 책임이 있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것은 이런 의무와 책임을 면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보다 더 많이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이것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뜻이다. 그렇게 해야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본이 되며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1절부터 8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각 연령층의 교인들을 가족처럼 대해야 한다. 둘째로, 교회는 참 과부들을 공경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가족들과 친족들을 돌아보아야 하며 자녀들이나 손자, 손녀들은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을 공경하고 섬겨야 한다.

9-16, 과부에 대한 규례

[9-10]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는 나이 60이 덜 되지 . . . .

바울은 말한다.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는 나이 60이 덜 되지 아니하고 한 남편의 아내이었던 자로서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기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좇은 자라야 할 것이요.” 본문은 초대교회가 물질적으로 공급해야 할 과부들의 명부를 작성하였음을 보인다. 과부의 명부에 올릴 자는 적어도 세 가지의 자격 요건을 갖추어야 하였다. 첫째로, 그는 나이가 60세 이상이 되어야 했다. 60세라는 나이는 그들이 경제적으로 스스로를 공급하기 어렵고 또 그들이 재혼할 만하지도 않은 나이를 가리킨 것 같다. 둘째로, 그는 한 남편의 아내이었던 자이어야 했다. ‘한 남편의 아내라는 표현은 합법적이지 않게 이혼하고 재혼한 자를 제외하는 말일 것이다. 60세가 되기까지 한 남편의 아내이었던 자라면 그는 아내의 역할을 잘 감당한 자이었을 것이다. 셋째로, 그는 여러 가지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는 자이어야 했다. 본문은 선한 행실의 예로 자녀들을 양육한 일이나 나그네들을 대접한 것이나 성도들의 발을 씻긴 것이나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한 일 등을 들었다.

[11-15] 젊은 과부는 거절하라.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 . . .

바울은 말한다. “젊은 과부는 거절하라.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가고자 함이니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심판을 받느니라. 또 저희가 게으름을 익혀 집집에 돌아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망령된 폄론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 그러므로 젊은이는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훼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 이미 사단에게 돌아간 자들도 있도다.”

젊은 과부는 나이가 60이 되지 않은 자들을 가리키며 그들을 과부의 명부에 올리지 말아야 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결혼하고자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욕으로 배반한다는 원어(카타스트레니아소시)는 ‘음탕하게 된다, 정욕적이게 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모든 젊은 과부들이 다 그렇게 된다는 말은 아니겠지만, 그들 중에 그런 자들이 생기게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을 과부 명부에 올리지 말라고 하였다.

그런 자들은 처음 믿음, 곧 맨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믿었을 때 이제부터는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순종하며 따르겠다고 맹세했던 믿음을 저버렸기 때문에 정죄를 당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첫 신앙을 저버렸을 뿐 아니라 자기 일에 성실하지 않고 게을러 일하기를 싫어하고 오히려 집집에 돌아다니며 해서는 안 될 남을 비난하는 말이나 한다. 이런 자는 교회에 유익을 주는 일꾼이 되지 못하고 도리어 교회를 허물고 성도들에게 해를 끼치는 자이다. 참으로 믿고 구원받은 자는 세상적으로 음탕하고 정욕적이게 살 수 없다. 세상적으로 음탕하고 정욕적인 자는 회개하고 죄를 청산하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굴복하여 이제부터 그만을 믿고 섬기며 따르겠다고 결심해야 한다. 또 참으로 구원받은 자는 말에 덕을 세워야 하며 하나님의 교회를 허물지 말고 세우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젊은 과부들이 재혼할 수 있으면 해서 아이를 낳고 집을 돌보고 대적에게 훼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정욕적인 죄를 범치 않도록 예방하는 길이 된다. 남편이나 아내의 사별로 인한 재혼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정당한 일이다. 성도는 정욕의 죄를 범하는 것보다 재혼하는 것이 낫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지 않는데도 스스로 독신(獨身)을 서약하는 것은 자신에게 올무가 되는 어리석은 일이다.

15절에 사단에게 돌아갔다는 원어(엑세트라페산 오피소 투 사타나)사탄을 따라 치우쳤다는 뜻이다. 사람을 그리스도에게서 떠나게 하는 자는 사탄뿐이다.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은 혹 사탄의 시험을 잠시 받을 수 있을지라도 결코 사탄의 지배를 받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탄의 권세 아래서 건져 자기의 품 안에 두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는 사탄을 따라 그리스도에게서 떠나며 진리의 정로(正路)에서 치우쳐 나간다. 바울 당시에도, 가룟 유다처럼, 이미 사탄을 따라 바른 길에서 치우쳐 나간 자들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젊은 과부들이 결혼하여 사탄의 시험에 빠지지 않게 되기를 원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16] 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 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 . . .

바울은 말한다. “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 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주고 교회로 짐지지 말게 하라. 이는 참 과부를 도와주게 하려 함이니라.” 바울은 반복하기를, 믿는 성도에게 과부 친척이 있으면 그가 도와주고 교회로 짐지지 않게 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왜냐하면 교회가 참 과부 곧 아무에게서도 물질적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자들을 돌아보며 공급하기 위해서이다.

9절부터 16절까지의 본문은 과부의 명부에 올릴 자의 자격을 말하고 젊은 과부는 거절하라고 말하며 또 자녀나 손자들이 있는 과부는 교회로 짐지게 말라고 하였다. 특히 성도는 처음 믿은 대로 하나님만 소망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아야지 육신의 쾌락을 구하며 살아서는 안 된다. 정욕적이게 사는 것은 그리스도를 배반하고 믿음을 저버리는 행위이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정죄받을 일이다. 구원받은 성도는 마땅히 자기 가족과 친척을 돌아보아야 한다.

17-25, 장로에 대한 교훈

[17-18]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 . . .

바울은 또 말한다.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이는]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하였음이니라].” 교인들은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아야 한다.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장로들이란 목사들을 가리킨다. 목사들을 더욱 존경하라고 말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기 때문일 것이다.

교인들이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목사들을 더욱 존경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성경에 복음의 일꾼들을 물질적으로 공급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성경이라는 말(헤 그라페)는 단수명사로서 여러 개의 책들로 구성된 성경을 한 권의 책으로 간주함을 보인다. 구약 39권의 책들과 신약 27권의 책들은 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고 한 권의 성경으로 간주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에 일렀으되라는 원어(레게이 헤 그라페)성경이 말하되라는 뜻이다. 성경이 말한다는 것은 성경을 의인화(擬人化)한 표현이다. 실상 성경이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지만,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므로 성경이 말한다고 표현한 것이다.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는 말씀은 신명기 25:4이다. 이것은 신명기의 신적 권위를 증거한다. 이 말씀은 물론 일차적으로 문자적 의미를 가진다.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워서는 안 된다. 그러나 바울은 이 말씀을 복음 사역자들에게 적용한다.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씀은 구약에 나오지 않고 신약의 복음서에 나온다. 누가복음 10:7, “일꾼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니라.” ‘성경에 일렀으되라고 말하며 이 말씀을 인용한 것은 사도 바울이 이 서신을 쓸 당시 이미 복음서들이 성경으로 인정된 것을 보이는 것 같다.

[19] 장로에 대한 송사는 두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

바울은 또 장로에 대한 송사는 두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라고 말한다. 목사와 장로는 가장 중요한 직분이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송사는 두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아야 했다. 신명기 19:15사람이 아무 악이든지 무릇 범한 죄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라”고 말한다. 일반인들에게도 그렇게 해야 한다면, 장로들에게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교회의 직분자들에 대한 송사는 경솔히 이루어져서는 안 되며 신중하게 또 정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20]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 꾸짖어 나머지 사람으로 . . . .

바울은 또 말한다.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 꾸짖어 나머지 사람으로 두려워하게 하라.” ‘범죄한 자들이라는 원어(투스 하마르타논타스)는 현재분사로서 계속 범죄하는 자들이나 죄 가운데 있는 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문맥상 장로들을 가리킬 수도 있으나 꼭 그들에게 한정된 것은 아닌 것 같다. ‘모든 사람 앞에서꾸짖어야 할 이유는 그들이 현재 죄 가운데 있기 때문이며 다른 이들에게 그 죄가 전염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범죄자는 공개적으로 책망받아 회개하게 해야 했다. 만일 그가 그 책망을 인신공격이나 인격모독으로 생각하여 불쾌하게만 여긴다면 그는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는 자일 것이다. 정말 그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책망받는 그 죄를 즉시 통회하며 고치려 할 것이다.

[21]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 . . .

바울은 말한다.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편벽되이 하지 말며.” 천사들 중에는 타락한 천사들도 있지만 택하심을 받은 거룩한 천사들도 있다. 그들은 마지막 심판날에 하나님의 일을 받들게 될 것이다. 우리는 심판자 하나님 앞에서 말하고 행해야 한다. 주의 종들은 아무 일에도 편견이 없어야 하고 편벽되지 않게 행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정의의 하나님이심과 같이, 주의 일꾼들은 정의의 사람이어야 한다. 그는 범사에 공명정대하며 공평해야 하며, 모든 불의와 불공정을 버려야 한다. 교회의 재판 회의는 바르고 공평한 회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원고와 피고가 다 충분히 발언할 기회를 얻어야 할 것이다. 잠언 18:17송사에 원고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 피고가 와서 밝히느니라”고 말한다.

[22]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죄에 . . . .

바울은 또 말한다.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지 말고 네 자신을 지켜 정결케 하라.” ‘안수는 안수받는 자를 구별하며 하나님의 일을 맡기고 축복하는 행위이다. 안수할 때 안수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상대방에게 진지하게 쏟는다. 그러므로 이런 의미심장한 행위가 경솔하게 이루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지 말라는 말씀(메데 코이노네이 하마르티아이스 알로트리아이스)은 ‘다른 이들의 죄에 참여치 말라는 뜻이다. 죄는 전염성이 많다. 그러므로 성도의 교제 시 우리는 죄에 빠지지 않기를 항상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깨어 있지 않으면 범죄자와의 친분 관계 때문에 우리는 그의 죄에 영향을 받게 되고 그 죄에 참여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아무리 친한 자라 하더라도 우리는 그의 범죄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네 자신을 지켜 정결케 하라는 말씀은 교리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다 적용해야 할 교훈이다. 이 세상에는 교리적으로, 사상적으로 이단사설들이 많고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죄악된 풍조들과 일들이 많다. 이 모든 것들의 배후에는 사탄과 악령들의 활동이 있다. 구원받은 우리는 지식과 도덕성에 있어서 이미 법적으로 깨끗케 되었고 또 실제적으로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

[23]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비위와 자주 나는 . . . .

바울은 또 말한다.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비위[]와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디모데의 자주 나는 병아마 위병은 바울의 육체의 가시처럼(고후 12:7), 만성적 질병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그에게 하나님의 은혜이었을 것이다. 성도에게 고난은 결코 불행의 요소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영적인 은혜와 복이다. 성도는 고난을 통해 더욱 겸손해지며 더욱 주님만 의지하게 되며 더욱 성결해지며 더욱 천국만 바라보게 된다.

[24-25] 어떤 사람들의 죄는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 . . .

바울은 또 말한다. “어떤 사람들의 죄는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 뒤를 좇나니 이와 같이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아니한 것도 숨길 수 없느니라.” 사람들의 죄는 먼저 혹은 나중에 드러나 심판에 나아간다. 그것들이 이 세상에서 다 드러나지 않는다면, 마지막 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다 드러나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는(12:14) 하나님의 철저한 공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은밀한 구제도, 무익한 말 한 마디도 다 갚음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다(6:3-4; 12:36).

17절부터 25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하며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자들을 더욱 그러해야 한다. 둘째로, 목사와 장로에 대한 송사는 두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아야 한다. 셋째로, 목사는 아무 일도 편벽되이 하지 말고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또 다른 사람의 죄에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

[성령강림절 주일 설교말씀] 예수님은 영원무궁하신 기업(히 9: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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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성령강림절을 맞이해서 하나님께 영광의 예배를 드리는 주일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고 나서 부활하신 후에 하늘에 오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가면 성령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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