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복음 12제자 성경공부 중에서 신중한 사람 빌립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빌립은 나다나엘을 주님께로 인도했습니다. 우리도 주변에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전도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신중한 사람 빌립(요한복음 1:43-46)
1. 이름의 뜻
“말을 좋아하는 사람”이란 뜻인 이 이름은 아마 북쪽 갈릴리 바다에 그리스의 영향력을 계속하여 행사한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빌립의 이름을 따른 것 같기도 하다. 또 사도들의 고향인 벳새다를 도시의 지위로 승격시킨 공적이 있어서 지방의 통치자인 영주 빌립이란 이름으로 보상으로 받았으리라는 추측도 있다. 빌립은 그리스라는 세력을 배경으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유대뿐 아니라 그리스에도 메시지를 전하는데 유용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벳새다가 안드레와 베드로의 고향이었기 때문에 동향인 빌립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이들과 친하게 지냈다. (요4:4) 메시아를 찾으려는 안드레나 베드로처럼 빌립도 마찬가지로 메시아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2 빌립의 기질
태어날 때부터 오랜 친구인 베드로와는 달랐다. 베드로가 오직 자신의 신념만으로 나아가려 하는 것과는 달리 빌립은 결단을 내리기 어려운 순간에는 또 하나의 오랜 친구인 안드레에게 많은 협조를 구했다.
흑백을 가려야 할 일이 생기면 분석적이면서 치밀한 빌립의 마음은 그 일을 심사숙고하고 흑백을 가리는 찬반의 결정에 신중을 기했다. 사실, 빌립은 어떤 한정된 범위 내에서 조심스럽게 계산하기 때문에 더러는 우유부단하기도 했으며 다른 사도의 조력에 의존하기도 했다. 빌립은 결코 경솔한 판단을 하여 실수하는 일이 없었다.
1. 메시아를 증거 하는데 신중(요 1:43-46)
1. 빌립을 부르심
요한복음은 안드레가 베드로를 예수께 데리고 간 사실을 기록한 후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은 만나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하셨다고 쓰고 있다(요 1:43). 안드레와 베드로는 이미 예수님에 대하여 빌립에게 이야기했을는지도 모른다. 베다니와 갈릴리 사이의 길을 가다가 어느 곳에서인가 예수님은 빌립에게 제자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을 권하셨다. 예수께서는 빌립을 세례 요한을 따르는 한 사람일 거라고 아셨기에 빌립을 제자로 삼으셨다.
예수께서 빌립을 찾으신 것을 주목해야 한다.
우리가 예수를 찾는 것은 예수께서 우리를 먼저 찾는데 대한 반사적인 행동이다. 세리 삭개오가 예수님을 찾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다만 나무에 올라가서 힐끗 예수를 구경하려고 했을 뿐이지 예수님의 발걸음을 멈추시고 나무 위를 보신 후 스스로 삭개오의 집을 찾아 들어가셨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19:10)고 진실로 누가 누구를 찾는가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빌립은 예수님의 부름을 받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전설은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마8:21)라고 말한 사람과 빌립이 동일한 인물이라고 하고 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빌립의 우유부단한 성격과 상통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름에 빌립이 우물쭈물했다면 그것은 잠시 뿐이었을 것이다. 예수님의 눈을 보고 목소리를 들은 빌립은 자신의 생애가 변함없이 항상 똑같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빌립은 천천히 심사숙고하여 선택한 길이지만 이것은 충심에서 우러나온 최종적인 결단이었다.
2. 빌립의 전도
빌립은 친구인 나다나엘의 생각이 나자, 즉시 예수님을 만난 사실을 친구에게 말해 주려고 걸음을 재촉했다. 이것이 빌립의 첫 번째 전도였다. 새로 만난 삶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진실한 전도 정신으로 빌립은 친구인 나다나엘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 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요 1:45)고 말했다.
예수께서 율법과 예언을 성취하리라고 빌립은 확신한 것이다. 빌립은 확신한 것이다.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확신을 말하였으나 나다나엘은 예루살렘이 더욱 실증적인 곳이라고 생각하면서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나?”(요1:46)고 물었다. 친구가 자기의 증거하는 것을 부인하였으니 빌립은 분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구약의 모든 예언들이 에수 안에서 성취된다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빌립은 말다툼을 하지 않고 간단하게 “와 보라”(요1:46)고 대꾸했다. 논리적인 대화가 신앙에 훌륭한 기초가 된다 하여도 우리는 어떤 사람과도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논쟁을 하면 안 된다. 논쟁이 더 이상 불필요함을 깨달은 빌립은 친구에게 예수께로 가보자고 했을 뿐이다. 자신 있게 설명할 수도 없고 신념이 확고하지 못했기 때문에 “와 보라”라고만 한 것은 빌립의 성격을 잘 말해 주고 있다.
이와 같이 주님께 의지하는 것을 증거해 주기를 원하거나 논쟁하려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한 사람이 나쁘기만 하지는 않다. 이런 사람에게는 “저는 당신의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없습니다. 돌아 오는 주일 아침에 당신을 교회로 모시겠습니다. 아침 열 시까지 당신 집으로 제가 가지요”라고 말하는 것이 현명하다.
드디어 빌립의 노력은 성과를 거두어 나다나엘은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미 안드레, 요한, 베드로와 야고보가 예수를 메시아로 믿었으며 빌립이 다섯 번째가 되며 모두 기록되어 있다. (마10:3/막3:18/눅6:14). 그 후 사도들이 두 사람씩 작을 지어 복음전도 여행을 할 때 빌립과 나다나엘은 아마 한 짝이었을 것이다.
2. 오천 명을 먹일 수 있는 계산(요한복음 6장 5-14절)
1. 빌립은 수효를 계산했다.
어느 날 자기를 따르는 수천의 무리를 보신 예수께서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라고 빌립에게 물으셨다.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면서도 빌립에게 그 해결 방법을 물으신 것이다. 그런데 빌립은 시험에 불합격하였다.
빌립은 마음속의 컴퓨터 단추를 눌러 무리들에게 떡을 먹이는 데는 이백 데나리온 이상이 필요하다는 상당히 정확하고 실제적인 계산을 해 냈다. 이 금액은 모든 사람들을 조금씩 먹이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액수였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하기 때문에 빌립은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충분하게 먹을 것을 사주려면 거의 일 년 품삯이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가진 돈이 없는데 어떻게 당장 음식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식으로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빌립의 정확하고 논리적인 생각은 필요한 돈을 잘 계산해 냈다.
2. 현대의 빌립들
빌립과 비슷한 현대인은 맵시 있게 옷을 입고 슈퍼마켓에 가서 물건을 사는 사람일 것이다. 이 사람은 자기가 사려고 하는 품목을 기록한 종이를 들고 짐차를 밀면서 선반에서 물건을 내릴 때마다 물건값을 적어 놓으며 카운터에 가서 자기의 계산과 맞추어 본 다음에 지불할 것이다.
교회에서 봉사할 때에는 항상 신속하게 일한다. 논리가 정연하고 계산에 밝으며, 거의 기계적인 만큼 정확한 이 사람은 항상 전통을 존중하며, 근본 원리를 탐구하고 수치를 맞추어 본다. 이 사람은 “우리는 전에 그렇게 한 일이 없어”. 또는 “그것은 할 수 없었어”라는 말을 자주 쓴다. 그런데 현대의 빌립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반대되는 그 계획안에 결코 찬성하고 싶지 않습니다. 상식에 따라서 일을 처리합시다 “라고 역설하였다.
2. 빌립은 믿음이 없이 계산을 했다.
빌립은 비전을 갖지 못한 사람이었다. 오로지 확증과 계산과 최악의 경우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위기에 처할 때를 대비하여 주님께서 예비하신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빌립은 수천 명을 먹일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으며 떡을 살 수 있는 돈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의 기질은 기적을 배척했다. 그는 너무도 타산적이기 때문에 담대하지 못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빌립에게 믿음을 가르치는 데 도움이 되게 하시려고 무리들을 먹일 떡에 대하여 그에게 물으신 것이다. 빌립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대답을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바구니에 음식을 가진 아이를 데리고 옆에서 있는 안드레를 쳐다보셨다. 빌립이 비전을 갖지 않은 것과는 대조적으로 안드레는 속 시원하게”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요6:9)고 여쭈었다. 안드레의 믿음에 대한 응답으로 예수께서는 아이가 가진 것으로 무리들을 모두 배부르게 먹이고도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에 가득 채우는 기적을 성취하셨다.
이 사건이 있은 후 다행스럽게도 빌립은 타산적인 성격을 가지고도 하나님을 모시고 배웠다. 빌립은 자신의 믿음이 깊지 못함을 부끄러워했을 것이다.
”나는 알아야 한다. 바람을 재우고 병을 고치며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이는 무리들을 먹일 수 있다. 나는 왜 「주여, 무리들을 먹이는 일은 당신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아닙니다.」라는 말씀드리지 못했을까? 나는 왜 믿음이 없을까?라고 빌립은 혼자 말했을 것이다. 그날 빌립은 자신이 얼마나 속되고 융통성이 없는가에 대하여 얼마쯤 깨달았을 것이다. 또 하나님이 그 안에 계시면 작은 것이 크다는 것도 배웠다. 교회는 주제넘고 경솔하게 예산의 집행을 좌절시키려는 기도로부터 보호되기 위하여 신중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보다 큰 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믿음이 강한 것을 필요로 한다.
계산적이며 보수적인 머리가 반드시 냉정한 마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또 기계적으로 철저히 따지는 것이 불신앙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 논리적인 생각을 가진 빌립은 무리를 충분히 먹이기를 원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졌을 것이지만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알지 못했을 뿐이다. 빌립은 불가능하다는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으로는 가능하다는 생각으로 바꾸어야 했던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성경 이야기)//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에 이르고 애굽의 군대가 양쪽으로 포위하여 뒤쫓을 때 모든 일은 불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다를 가르시고 이들이 무사히 빠져나가도록 하셨다(출 14:8-31). 옥에 갇힌 베드로의 처형이 이튿날 아침으로 계획되어 있을 때 그에게는 모든 것이 끝장인 것같이 보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사슬을 풀고 옥문을 열어 자유의 몸이 되게 하셨다(행 12:1-10). 우리에게 모든 일이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주신다.
3. 헬라인을 맞을 때의 우유부단함(요 12:19--22)
(요12:19-20) 유월절에 예배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온 헬라인들이 있었다. 이들 중에 몇 사람은 유명한 선생인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 직접 만나기를 원했다. 그들은 빌립을 소개자로 선택하였다. 그의 이름이 헬라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빌립은 그들이 유대인이 아니라 헬라인이기 때문에 곧장 데려가지 않고 주님의 뜻을 생각해 보았다. 언젠가 (마10:6)“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신 적이 있음을 기억하였다. 이방인들은 사마리아인들 보다도 한 단계 아래로 낮은 사람들이었다. 주님이 원하실까? 생각하며 썩 내키지 않아서 착한 친구 안드레에게 상의했다. 빌립은 안드레의 조언에 힘을 얻어 주님께 고하였고 주님은 그들과 대화를 나누셨다.(요12:25)
분석적인 태도를 가진 빌립은 갈릴리와 예루살렘을 불을 붙이지는 못 하였으나 자신의 가슴에는 불을 댕겼다. 주님과 함께 하면서 설령 안에 거하는 생활을 통하여 빌립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데 크게 성공하였다. 지나치리 만큼 신중한 성격은 보다 큰 단호한 결심을 하도록 만들었다.
우리가 어떤 결심을 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게 보통이다. 만일 빌립이 계속 망설이기만 했다면 헬라인들은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제 갈길을 갔을 것이고 그들의 영혼은 구원의 기회를 놓쳤을 것이다. 어떤 성도는 중요한 기회가 마주칠 때 마지못해 하듯이 꾸물거린다. 기회는 중요하다. 안드레가 상드레와 상의 없이 구원에 관한 것은 신속히 행동에 옮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4. 빌립은 믿음을 갖기가 어려운 사람이었다.
비록 이해하는 데에는 우둔하였으나 부지런히 영적인 문제를 추구하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합리적인 생각을 쓸어 버리고 주님께 대하여 품고 있었던 의문도 없애기 시작하였다. 자신이 찾고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예수 안에서 발견하였다. 과학적인 방법과 실용주의 속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들과 같은 모습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자신의 무한 능력과 존재에 대하여 우리들의 한정된 지식에 대하여 깨어서 주목하시기를 원하신다.
1. 그의 생애
초대교회의 문서들은 소아시아에서 선교하였다고 전한다. 라오디게아, 골로새 둥지에서 사역했는데 자주 갈라디아 지역을 순회하였다고 한다. 갈라디아 사람들이 불란서 고올(GAUL) 지역으로 이주하여 살았는데 그곳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였다고 한다. 특히 히에라폴리스라는 도시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기독교를 박해하는 무리들에게 잡혀서 몰매를 맞고 십자가를 지면서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훗날 그의 유해는 로마로 옮겨져서 빌립을 기념하는 교회당에 안치되었다.
2. 교훈
1) 말씀의 권위 앞에 내 생각을 맡기는 훈련이 필요하다.
2) 내가 말씀을 받았을 때에는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3)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결단으로 옮겨지기 위해서는 내 주변에 좋은 그리스도인 친구들이 있어야 한다. 혼자의 생각은 오류에 빠질 우려가 있으므로 성도는 교제하라.
4) 주님을 계속 바라보아야 한다.
신앙의 성장과정에는 의심과 회의가 있어서 의심하고 질문하는 것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질문을 드리면서 계속 주님 앞에 있어야 한다. 이것이 그가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빌립보서 4:8-9) 함께 읽읍시다.
생각하라// 행하라//진리를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되자.
[이사야 강해설교] 포도원의 비유로 본 하나님의 유다 심판(사 5: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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