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박넝쿨 교훈(욘 4:1-11)
[1-4절]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노하여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의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하시니라.
요나는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향하신 뜻을 변하셨기 때문에 심히 싫어하고 노하였다. 그는 성낸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것은 불평하고 항의하는 기도이었다. 요나는 고국에 있을 때 그들이 혹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시리라는 것을 예측하였었다. 그래서 그는 다시스로 도망하였었다. 그는 이방 도시 니느웨의 구원을 원치 않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만 사랑하시고 이방 나라들을 사랑하지 않으신다는 편협한 선민의식을 가졌던 것 같다. 그는 하나님의 뜻보다 사람의 좁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하나님께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라고 말하였다. 요나는 죽기를 소원할 정도로 자기 생각이 너무 강했다. 그는 하나님의 뜻에 겸손히 복종하는 법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고 말씀하셨다(사 55:9).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요나에게 “너의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고 말씀하셨다.
[5-9절] 요나가 성에서 나가서 그 성 동편에 앉되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그늘 아래 앉아서 성읍이 어떻게 되는 것을 보려 하니라.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 넝쿨을 준비하사 요나 위에 가리우게 하셨으니 이는 그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 괴로움을 면케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 넝쿨을 인하여 심히 기뻐하였더니 하나님이 벌레를 준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 넝쿨을 씹게 하시매 곧 시드니라.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쬐매 요나가 혼곤(昏困)하여(알라프)[몹시 쇠약하여, 기절하여] (BDB, NASB, NIV)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 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합당하니이다.
요나는 성에서 나가서 그 성 동편에 초막을 짓고 그 그늘 아래 앉아서 성읍이 어떻게 되는 것을 보려 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 성을 용서하시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하나님께서는 박 넝쿨, 벌레, 뜨거운 동풍 등을 준비하셨고 그것들을 사용하여 요나에게 교훈을 주셨다. 그는 박 넝쿨 교훈을 주신 것이다. 자연만물과 우리의 현실의 환경들은 때때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교훈을 주시는 도구이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의 성냄이 합당치 않음을 교훈하셨다.
[10-11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12만 여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요나는 박 넝쿨이 벌레에 물려 죽은 것을 아쉽게 생각하여 화를 내었지만, 그 박 넝쿨은 요나가 심은 것도 아니고 기른 것도 아니었다. 또 그것은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죽은 식물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니느웨 성의 백성들은 창조자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기르신 자들이다. 더욱이, 그 성에는 좌우를 분별치 못하는 어린아이들이 12만 여명이 있었다. 또 하나님께서는 많은 육축들도 언급하셨다. 그는 가축들도 아끼셨다. 그러므로 요나가 박 넝쿨을 아꼈다면, 하나님께서 니느웨 성을 아끼신 것은 더욱 합당한 일이었다.
요나서는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는 하나님의 추궁적 질문으로 끝났다. 요나의 대답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당연히 “합당하나이다”라는 것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니느웨 성 용서는 합당하였다. 요나의 불평과 성냄은 합당치 않았다. 요나는 고난 후 하나님의 명령에는 순종했지만,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을 깨닫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요나는 그 생각도 고쳐야 했다. 그는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을 깨닫고 인정해야 했다. 그것은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주신 바로 그 하나님의 사랑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꺾고 하나님의 생각에 순종해야 한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니느웨에 대한 그의 뜻을 변경하심에 대해 심히 싫어하며 노했으나 그것은 잘못이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의롭고 지혜롭고 선하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뜻에 우리 자신을 항상 겸손히, 즐거이 복종시켜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항상 인정해야 한다. 그는 박 넝굴을 준비하셨고 벌레를 준비하셨고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셨다. 우리는 그가 하시는 일들에 대해 묵묵히 인정하고 바라보아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긍휼과 사랑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은 인류를 향하신 또 우리를 향하신 긍휼과 사랑이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이방인 구원의 가능성을 암시하셨다. 이것은 세계복음화에 대한 놀라운 암시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범죄하는 악인들에 대해서도 그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해를 악인과 의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신다(마 5:45). 우리는 전도 대상에 대해 제한하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전도해야 한다. 또 교회가 때때로 범죄자에게 권징을 시행할 때에도 교회는 그가 회개하기를 기다리는 긍휼과 사랑의 마음으로 시행해야 한다.
[구약 유대인 문화 풍습] 구약의 음식법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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