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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1장 성경 말씀] “자기 욕심에 끌려가는 인생”(약 1:14-15)

복음의 능력 2020. 11. 18.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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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야고보서 1장 성경말씀 중에서 자기 욕심에 끌려가는 인생이라는 설교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다 보면 육적인 것을 보게 되면 욕심에 이끌리게 됩니다. 죄는 눈으로 먼저 보게 됨으로 죄를 짓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정욕적인 삶을 살지 말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살라고 권면합니다. 이 시간 우리도 세상에 빠져 죄를 짓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 욕심에 끌려가는 인생”(약 1:14-15)

 

명제: 욕심에 끌려가는 인생은 죽음에 이른다.

목적: 욕심은 죄를 낳고 죄가 성장하여 죽게 된다.

 

야고보서는 예수님의 형제 중에 한 명이 기록한 것입니다. 야고보서의 특징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성화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구원만 받으면 끝이 났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 안에서 나의 삶을 어떻게 의롭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도 고민해야 합니다. 그래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야고보 사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했던 것입니다.

이때 당시에도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구원을 얻었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행위의 의가 많이 나타났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도 맞지만 그래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또 한편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니 내 멋대로 살아도 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믿음에 대한 폐단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구원과 성화는 떼어 놓고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구원을 믿음으로 받았다면 주님의 거룩한 성화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맞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오해하여 행함으로 선을 이룰 때에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착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반드시 성화의 삶을 살 때에 그 믿음이 주님 안에서 올바른 믿음이라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내가 구원을 얻었다고 하면서도 개인의 삶은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게 산다면 온전한 회개가 일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과 성화는 항상 하나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말씀은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 때문에 시련을 참고 견뎌내면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현재 내가 주님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다면 이것은 축복입니다. 육적으로 문제가 해결되고 돈을 많이 벌고 좋은 집에서 사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주님의 나라를 위해 핍박을 받을 때에 이것이 축복이라고 주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시험을 받을 때에 하나님께 시험을 받았다고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험을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험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연단을 하시는 것입니다. 연단을 통해서 더 좋은 상태로 만들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연단을 받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서 교만해집니다. 하지만 삶에서 연단을 받으면 겸손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징계입니다. 하나님은 시험을 하시는 분이 아니라 잘못하면 징계를 내리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내 욕심 때문에 시험을 받는 것이지 하나님이 시험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이 시간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물질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결국 이 세상에서 물질에 욕심을 부려 시험에 걸리는 것입니다.

 

약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하나님은 시험을 하시는 분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되기 때문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시험을 받는 것은’ πειραζω(페이라조 3985) 시련하다, 시험하다, 유혹하다, 라는 뜻입니다. 모든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신의 욕심 때문에 시련을 받고 유혹에 넘어간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시험에 넘어가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이미 죄악 된 자들이기 때문에 욕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담도 욕심 때문에 선악과를 먹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욕심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먹었습니다.

 

만약에 욕심이 없었다면 아담은 절대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아담이 죄를 짓고 난 후에 인간들은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욕망의 죄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자신은 욕심이 없다고 하지만 아담의 후손들은 모두가 욕심을 갖은 죄인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욕심의 유혹을 십자가에서 못 박아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욕심을 이겨내는 시험은 주님 안에서만이 이겨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의지로는 절대 이겨낼 방법이 없습니다. 나는 죄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확실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시험한 것이 아니라 너의 욕심 때문에 시험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직설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언제 시험을 받게 됩니까? 지금 당장 시험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시제가 현재입니다. 내가 현재 주님 안에 있으면 시험을 받지 않지만 세상에 있으면 시험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내가 시험을 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세상의 물질의 시험이 나에게 계속해서 엄습해 오기 때문에 넘어지게 됩니다. 수동태를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런 유혹을 어떻게 몰아낼 수 있습니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의 정욕을 못 박으면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세상의 욕심의 유혹들은 나를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 현재 저와 여러분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까? 세상의 욕심 안에 있습니까? 말씀을 통해서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욕심’은 επιθυμια(에피뒤미아 1939) 충동, 욕망, 갈망, 이라는 뜻입니다. 욕심은 무엇입니까? 나의 갈증을 해소시키는 것이 욕심입니다. 욕심은 충동적인 것으로서 억제하지 못하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못된 욕망은 자신을 타락의 늪으로 빠져버리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항상 욕심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럼 필요와 욕심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필요는 나에게 꼭 있어야 할 것을 채우는 것이 필요입니다. 배고픈 자가 떡을 먹는 것은 필요지 욕심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욕심은 현재 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가지려고 한다면 이것은 욕심입니다. 자기 과시를 하려고 얻으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욕심이 무엇입니까? 나에게 있는데 하나 더 요구하고 있다면 이것은 욕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남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또한 남의 재산을 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욕심이 무엇입니까? 이것 때문에 내가 시험에 걸리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많은 욕심의 소유가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여자를 욕심내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돈을 욕심내는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명예를 욕심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욕심은 내가 갖지 말아야 할 것을 갖는 것이 욕심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것을 가지려고 하는 것은 욕심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을 갖는 것은 욕심이 아닙니다. 이것은 정당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으로 욕심을 내어 가지려고 한다면 불법을 행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죄가 되는 것입니다.

‘끌려’는 εξελκω(엑셀코 1828) 끌어내다, 이끌어내다, ~에서 돌리다, 라는 뜻입니다. 모든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이끌려 나가기 때문에 시험에 걸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세상의 욕심에 걸리게 되면 주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데 최선을 다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육적인 욕심을 채웠다고 해서 만족감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채워질 때에 영혼의 만족감이 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욕심에 끌려가는 장소가 어디입니까? 교회가 될 수 있고 직장이 될 수 있고 학교가 될 수 있고 어느 곳이든지 욕심에 끌려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영적으로 말씀에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현재 욕심에 끌려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것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성화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내가 구원을 받았다고 해도 세상적 욕심은 항상 내 안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시제를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내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욕심에 끌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수동태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육적 욕심이 나에게 접근하여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눈만 뜨면 육체의 욕심이 나를 유혹합니다. 이때마다 말씀으로 쳐서 복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미혹됨이니’는 δελεαζω(델레아조 1185) 꾀다, 속이다, 유인하다,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δελερ(델레아르)미끼,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된다는 것은 세상의 욕심이 미끼가 되어 유인된 것입니다. 동물들도 미끼로 유인하여 사냥꾼에게 잡히게 됩니다. 사탄들도 미끼로 유인하여 우리의 영혼을 죽이는데 물질로, 성적 유혹으로, 명예와, 권세로, 지식으로, 유인하여 넘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욕심 때문에 미혹되는데 어느 장소와 시간에 관계없이 미혹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지금 현재 욕심에 노출이 되어 미혹되고 있습니다. 현재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사탄은 계속해서 나에게 미끼를 던지고 있습니다. 가장 약한 부분으로 미끼를 던져 그 미끼를 물게 하는 것입니다.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내가 세상의 욕심에 걸려 넘어지지 않으려면 주님의 십자가 복음 말씀에 서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넘어져 세상에서 타락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약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세상의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성장하면 사망을 낳게 됩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이것이 결국 영혼의 사망을 가져오게 됩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의 삶으로 가서는 안 됩니다.

‘잉태한즉’은 συλλαμβανω(쉴람바노 4815) 붙잡다, 포획하다, 임신하다, 취하다, 라는 뜻입니다. 욕심이 잉태하였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임산부가 아이를 잉태하듯이 마음속에 이미 욕심으로 붙잡혀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욕심에 포획되어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 상태를 말씀합니다.

 

이 정도로 욕심이 무서운 것입니다. 내가 욕심을 잉태하고 있는데 시간과 장소와 때에 상관없이 눈에 보이는 욕심에 이미 포획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것도 이미 주님 안에 있지 않다면 세상의 욕심에 넘어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거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세상의 욕심에 사로잡힌 것은 과거에 이미 눈으로 보고 현재 잉태되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내가 전에 보지도 않았는데 지금 욕심에 빠지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재 내가 죄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장성한즉’은 αποτελεω(아포텔레오 658) 완료하다, 해치우다, 마무리하다, 이행하다, 라는 뜻입니다. 죄가 장성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이미 완료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욕심 때문에 죄 가운데 들어가서 모든 것이 마무리가 되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욕심은 결국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태로 가게 됩니다.

 

욕심이 잉태하여 계속해서 행동을 하니 자연스럽게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장성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도 이전에 욕심의 씨가 내 심령에 떨어져 지금은 완전하게 열매를 맺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죄가 장성하여 완료된 것은 나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욕심의 의지로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욕심이 무서운 것입니다. 어느 정도 성장해 가면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진리의 말씀 안에 있지 않으면 욕심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주셨기 때문에 주님 안에 있으면 세상의 정욕적인 욕심을 버릴 수가 있습니다. 내가 주님 안에서 구원을 받았다고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항상 죄에 노출되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반복적인 자 범죄의 회개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육체의 정욕에 빠져 하나님을 버리고 사망에 이르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원죄가 사라진 구원받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나의 모든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 욕심 때문에 고민하지 마시고 모든 것을 허락해 주신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신앙생활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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