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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3장 하나님 말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사건”(벧전 3:18-20)

복음의 능력 2020. 11. 21.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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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베드로전서 3장 하나님 말씀 중에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사건이라는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부활시켜 주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활 사건을 통해서 우리도 마지막 날에 부활의 소망을 갖게 됩니다. 이 시간 우리도 부활된다는 것을 믿고 주님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사건”(벧전 3:18-20)

 

명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오직 선택된 백성들을 위한 것이다.

목적: 부활하신 예수님은 노아의 때처럼 지금도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단 번에 죽으심으로 선택된 백성들의 생명을 살려주셨습니다. 또한 죽으심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부활하셔서 구원받은 백성들도 마지막 날에 부활의 소망을 갖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것은 온 인류를 위해서 이루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택하시고 예정하신 하나님의 아들들을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 시간 바로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십자가의 보혈로 나의 죄를 씻어주시고 영적 생명을 불어넣어주셨으며 부활의 소망을 갖게 해 주셨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아니면 절대 살아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영원히 죄와 허물로 죽어있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 은혜로 살아나 하나님께 영광의 예배를 이 시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바로 나를 위해 이 위대한 승리의 사건을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오늘 이 예배를 통해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서 깊이 있게 깨닫고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벧전 3:18)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예수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의인으로서 불의한 나를 대신하여 죽으셨으며 바로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려고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습니다.

 

‘인도하려’ προσαγω(프로사고 4317) 데리고 가다, 인도하다, 가까워지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영으로 살리심을 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들을 데리고 하나님께 인도하여 죄로 인해 죽었던 우리들을 하나님과 가까워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아니면 절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지 않으면 절대 하나님께 인도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무시하고 직접 하나님께 가려고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들은 절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이미 주님의 은혜로만이 하나님께 나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계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직접 창세전에 선택한 우리를 하나님께 인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인도하는데 바로 나를 직접 데리고 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많은 사람들 중에 바로 나를 선택하셔서 직접 주님께서 하나님께 인도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사건은 바로 나를 하나님께 인도하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죽임을 당하시고’ θανατοω(다나토오 2289) 죽게 하다, 죽이게 하다, 죽임을 당하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셨는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이게 하셨습니다. 육체로 직접 십자가에 죽이심으로 선택된 백성들이 죽음에서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생명을 바로 나에게 전가시켜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육체로 죽으실 때에 골고다의 언덕이라는 장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영광을 돌리시고 예수님이 죽으실 때에 하늘에서 어둠이 깔리고 해도 빛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이 죽음은 이미 하나님께서 예비하시고 계획하셔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계획하셔서 하나님이 직접 죽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죽임을 당하셨으며 이 죽음은 하나님의 모든 뜻을 이루어 드린 사건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아니면 절대 이룰 수 없는 일입니다.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ζωοποιεω(조오포이에오 2227) 살려주다, 살게 하다, 살아나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육체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육체를 죽이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영으로 살려주시고 살게 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 스스로 살아날 수가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살려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살아난 장소는 바로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서 살아나셨습니다. 죽었던 자들을 살리기 위해 하나님께서 살리셨으며 시간은 바로 새벽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육체로 죽이시고 영으로 살리실 것이 이미 계획이 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영으로 살아나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사역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영만 살리신 것이 아니라 영원히 썩지 않을 영화의 몸으로 살려주셨습니다. 부활의 첫 열매로 예수님을 살려주셨으며 선택받은 백성들도 예수님처럼 부활에 대한 소망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부활케 하신 분이 하나님이고 나를 마지막 날에 영화의 몸으로 부활케 하실 분이 하나님입니다.

 

(벧전 3:19)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만 보면 오해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지옥에 가셔서 복음을 선포했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지옥에서 주님이 복음을 선포하셨다면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열심히 자신의 욕심에 따라 살면서 죄를 짓고 죽어서 지옥에 가서 복음을 듣고 천국으로 가면 됩니다. 지옥에서 회개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구원의 제 이 기회설이 됩니다. 구원은 육체가 살아있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육체의 몸을 가지고 있을 때에 복음의 말씀을 듣고 구원을 얻게 됩니다. 육체가 죽어서는 절대 복음의 말씀을 들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영으로’ רוח(루아흐 7307) 영, 영혼, 심령, 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영화의 몸으로 부활하시고 영혼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바로 노아의 때에 죄악 가운데 죽어있던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던 것입니다. 바로 영원히 썩지 않고 죽지 않는 몸으로 영혼을 살리기 위해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가서’ πορευω(포류오 4198) 가다, 다니다, 행하다, 라는 뜻입니다. 번역본에는 없지만 원어성경에는 있는 단어입니다. 예수님께서 노아의 때에 직접 영화의 몸으로 부활하시고 가셔서 복음을 전파하시며 두루 돌아다니면서 택한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파하셨던 때가 노아의 때입니다. 복음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열심히 주님을 택한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던 것입니다. 지옥에 있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신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죄악 가운데 갇혀있던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노아의 때에 가셔서 복음을 전파하실 것이 이미 하나님께서 계획을 세워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심으로 죄악 가운데 죽었던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이 가신 목적은 이미 하나님께 택함 받은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직접 가셨습니다. 복음을 전파하셔서 죽은 자들을 살리려고 가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복음을 깨닫고 알아들은 자는 노아의 가족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살았지만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은 오직 노아의 8명 외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양심으로는 절대 구원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노아의 때에도 예수님께서 직접 택한 백성들을 위해 십자가 복음을 전파하시고 살려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노아의 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죄악 가운데 영적인 감옥에 갇혀 있는 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런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지만 깨닫는 자들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들입니다. 아무나 십자가 복음을 듣고 깨닫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 주시는 자만이 깨닫고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께서 구원의 은총을 주시고 깨닫게 해주셔서 주님을 구원 주로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옥에’ משםר(미쉬마르 4929) 옥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שםר(샤마르 8104) 지키다, 단속하다, 순찰하다, 살펴보다, 라는 뜻에서 왔습니다. 옥에 있다는 말씀은 지옥을 의미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죄악가운데 갇혀 있는 것을 말합니다. 이곳에 갇혀있는 영들에게 주님은 영화의 몸으로 부활하시고 직접 찾아가셔서 세상을 순찰하시고 살펴보시며 죄로 인해 죽어있던 자들을 사탄의 무리들이 지키고 있어서 영원히 살아나지 못하도록 단속하고 있는 자들에게 복음의 말씀을 선포하셔서 사탄의 죽음으로부터 선택한 백성들을 살려내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사탄의 죽음에 있었던 자들입니다. 사탄들이 살아나지 못하도록 지키고 단속하여 하나님과 관계를 끊어버렸던 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보혈로 사탄이 막고 있는 죽음의 영적 감옥에서 복음의 말씀으로 끌어내 주셨던 것입니다.

 

‘선포하시니라’ קרא(카라 7121) 부르다, 선포하다, 불러내다, 부름을 받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몸으로 노아의 때에 복음을 선포하셨는데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기쁜 소식을 들었지만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만 불러내셨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노아의 때에도 예수님을 통하여 부름을 받고 구원받을 자들이 예정되어 선택된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노아의 가족들입니다. 이들 외에는 한 명도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지 못하고 심판을 받아 죽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죄악 가운데 갇혀있는 자들에 복음을 선포하셨는데 즉시 가셔서 선포하셨으며 계속적으로 노아의 때에 복음을 전파하셨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으며 노아의 때에 완전하게 복음이 모든 사람들에게 전파되었지만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힘으로 하나님 앞에 나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결국 이들은 모두 죽고 노아와 가족들이 주님의 복음의 말씀을 인정하고 믿음으로 예수님을 예표 하는 방주를 지어 살게 된 것입니다. 이 시대도 노아의 때와 같이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의 말씀을 믿는 자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십자가의 공로를 믿지 않습니다. 반면에 하나님께 택함 받은 백성들은 노아처럼 믿고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 사람이 바로 오늘 나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벧전 3: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주님의 복음의 말씀을 믿지 않고 죽었던 자들이 바로 감옥에 갇혀 심판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복음의 말씀에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준비할 동안’ κατασκευαζω(카타스큐아조 2680) 준비하다, 예비하다, 세우다, 라는 뜻입니다. 노아시대에 노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을 듣고 방주를 예비하고 준비하여 세웠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세울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고 기다리셨습니다. 그 이유는 택함 받은 백성들을 택함 받지 않은 백성들과 함께 죽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도 복음이 전파되고 있지만 주님의 재림이 더딘 것은 택한 백성들을 모두 구원하여 준비가 끝날 때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준비하여지었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 현재에 준비하고 복음을 전파하면서 방주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매일 같이 복음으로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방주를 준비한 것은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시키신 대로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방주를 짓고 기다렸습니다. 복음은 오직 주님께서 주신대로 믿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나의 생각과 지혜가 섞여 있으면 안 됩니다. 순수한 복음이어야 합니다. 율법의 의가 조금이라도 섞여 있으면 잘못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십자가 예수님의 복음으로만 준비해야 합니다.

 

‘기다리실 때에’ חכה(하카 2443) 낚시, 갈고리,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חכה(하카 2442 VPAMZS) 기다리다, 지체하다, 앙망하다, 라는 뜻에서 왔습니다. 주님께서 복음의 말씀을 노아의 때에 전파하실 때에 기다리고 있는데 이때는 바로 하나님께서 인내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낚시로 한 마리씩 고기를 잡듯이 갈고리로 잡아 올리는 것처럼 구원받은 백성들을 한 명씩 선택하여 죄악에서 건져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유보하시면서 지금도 기다리시는 것은 하나님의 시간적 한계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노아의 때에 주님을 바라보고 앙망하면서 구원을 받았던 자들이 노아의 식구들입니다. 지금도 택함 받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복음의 낚시에 걸려 구원을 받고 있습니다.

 

그물로 잡는 것이 아니라 낚시로 한 마리씩 택한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잡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이 많은 것 같지만 노아의 때에 그 많은 사람 중에 낚시에 걸린 자들은 8명밖에 없었습니다. 이 시간 내가 주님의 복음의 낚시에 걸린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내가 낚시를 물고 싶다고 해서 물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낚시 바늘에 걸리게 해 주셨기 때문에 내가 복음의 말씀으로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구원을 얻은 자가’ מלט(말라트 4422) 해방되다, 구원을 얻다, 보존하다, 라는 뜻입니다. 노아의 때에 홍수 심판에서 구원을 얻은 자는 방주에 들어간 노아의 가족밖에는 없습니다. 이들은 심판에서 해방되었고 구원을 얻어 생명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보존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이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으며 헬라어도 수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구원을 완전히 받았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영원한 천국에까지의 완전한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여자와 남자 모두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노아의 때에 노아의 가족을 말씀하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니면 절대 구원이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우리도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없이는 절대 구원을 얻을 수가 없고 지금도 복음은 전파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영화의 몸으로 부활하셔서 노아의 때에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옥에 갇힌 자들은 지옥이 아니라 죄악의 감옥에 갇혀 있는 자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도 죄악의 옥에서 고통을 당하며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노아의 때에도 복음을 전파하셨던 것처럼 노아의 때와 같은 지금도 십자가 복음을 죄 가운데 갇혀 있는 자들에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믿지 않으면 절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전적 사역입니다. 수동적이므로 나의 힘으로는 절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준비한 것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준비가 된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이 늦다고 한가하게 있으면 안 됩니다. 구원받은 자들이 되었으니 복음의 말씀으로 더욱더 무장하여 주님을 섬기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세상에 죽어있는 자들에게 복음의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선택한 백성들 가운데 한 명도 절대 잃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이 시간 우리를 통해 택한 백성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복음의 낚시를 가지고 세상의 택함 받은 주님의 물고기들을 낚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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