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아모스 2장 히브리어 주석 강해 중에서 북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예언의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은 솔로몬 이후에 남과 북으로 갈라지고 나서 북쪽은 영적으로 타락하여 선한 왕이 한 명도 나오지 않습니다. 여로보암의 길을 따라가다가 결국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했습니다. 하나님이 회개하라고 선지자들을 보내서 외쳤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회개할 것이 있다면 빨리 회개하고 돌아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 멸망받습니다. 이제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온전한 믿음 생활을 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북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예언(암 2:6-16)
6절은 코 아마르 아도나이 알 쉘로솨 피쉐에 이스라엘 베알 아르바아 로 아쉬베누 알 미케람 바케쎄프 차디크 베에브욘 바아부르 나알라임입니다.
암 2:6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팔며
====2:6
이스라엘의... 이는 저희가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궁핍한 자를 팔며 - 아모스는 유다를 향한 심판에 이어 본격적으로 이스라엘의 죄를 들추어내며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한다. '이스라엘'은 야곱의 다른 이름으로 여기서는 북이스라엘을 지칭한다. '의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차디크'는 '의'(righteousness)를 의미하는 것으로 본절에서는 올바름(rightness), 정의(justice)등의 개념을 갖는다.
또한 문맥상 '궁핍한 자'와 병행을 이루고 있어서, 여기서는 의를 추구하다가 정당한 근거를 가지고 궁핍하게 된 사람을 의미한다. 구약 성경은 이런 어법을 많이 사용하였다(출 23:7;신 25:1). 그러므로 이 구절은 뇌물을 받고 불의한 재판을 진행하거나, 죄 없는 자를 노예로 팔아넘기는 행위를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7절은 하쑈아핌 알 아파르 에레츠 베로쉬 달림 베데레크 아나빔 야투 베이쉬 베아비브 옐쿠 엘 하나아라 레마안 할렐 에트 솀 코드쉬입니다.
암 2:7 힘없는 자의 머리를 티끌 먼지 속에 발로 밟고 연약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아버지와 아들이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2:7
가난한 자의 머리에 있는 티끌을 탐내며 - '탐내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쇼아핌'은 '열망하다'(pant after), '짓밟다'(trample upon) 등의 뜻을 가진 '솨아프'에서 온 분사형이다. NIV는 '짓밟다'는 의미를 부여하여 '그들의 땅의 티끌을 짓밟듯이 가난한 자의 머리를 짓밟는다'(They trample on the heads of the poor as upon the dust of the ground)라고 번역하였다.
여기서 아모스는 가진 자들의 탐심을 아주 생생하게 나타낸다. 모세 율법에 의하면, 가난한 자에게 공평할 것과 뇌물을 받지 말 것을 명령하고 있지만(출 23:6-8), 이스라엘은 이를 무시하였다.
부자가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 '한 젊은 여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나아라'에서 정관사 '하'는 동일한 여인임을 가리킨다. 모세 율법에 의하면, 아버지와 아들이 동일한 여인과 동침하는 것은 사형에 해당되었다(레 18:6-18;20:17-21). 비록 그녀가 창기일지라도 근친상간에 해당하는 것이고, 이외에 어떠한 근친상간도 금지되어 있었다. 더욱이 이 여인이 카일(Keil)의 견해대로 '케데샤', 즉 바알 신전에 있는 성녀(sacred harlot)였다면, 더욱 심각하고도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거룩성을 침해하는 것이다. 또한 '다녀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옐쿠'는 미완료 시제로 습관적인 행동을 뜻한다. 그렇다면 계속해서 이런 악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8절은 베알 베가딤 하불림 야투 에첼 콜 미즈베아흐 베에인 아누쉼 이쉐투 베이트 엘로헤헴입니다.
암 2:8 모든 제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그들의 신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니라
=====2:8
모든 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 '옷'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베게딤'은 '베게드'의 복수형으로 온몸을 감쌀 수 있는 옷을 가리킨다. 이런 옷은 밤 사이에 추위를 막을 수 있기 때문에 가난한 자들에게는 몸을 보호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러므로 모세 율법은 전당 잡힌 옷을 해가 지기 전에 돌려주도록 명하였다(출 22:26,27;신 24:12,13).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를 무시하고 무자비함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런 일이 모든 단 옆에서 자행되었다는 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만큼 신앙과 실천의 완전한 괴리 상태에 있었음을 강조한다.
저희 신의 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니라 - '저희 신의 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베이트 엘로헤이헴'은 문자적으로 '그들의 하나님의 집'(the house of their God)이라는 뜻이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의 지배층들은 여호와의 종교를 표방하고 종교 생활을 영위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우상 종교를 도입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혼합 종교를 만들었다. '벌금'은 가난한 자들의 옷을 저당 잡아 받아낸 무자비한 돈이 분명하다(J.Calvin). 그렇다면, 그들은 겉모양 새는 그럴듯하게 꾸몄지만, 실속 없는 형식적인 종교 생활을 했음을 보여준다. 북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들이 타락하니 백성들도 타락할 수밖에 없다.
9절은 베아노키 히쉐마드티 에트 하에모리 미페네헴 아쎄르 케고바흐 아라짐 고브호 베하손 후 카알로님 바아쉐미드 피르요 미마알 베솨라솨이브 미타하트입니다.
암 2:9 내가 아모리 사람을 그들 앞에서 멸하였나니 그 키는 백향목 높이와 같고 강하기는 상수리나무 같으나 내가 그 위의 열매와 그 아래의 뿌리를 진멸하였느니라
====2:9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종교적 타락을 언급하고 나서 곧바로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한 이스라엘의 과거를 회상한다.
내가 아모리 사람을 저희 앞에서 멸하였나니 - '아모리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이전에 있었던 가나안 거민을 가리킨다(창 15:16).
그 키는 백향목 높이와 같고... 진멸하지 아니하였느냐 - 아모스는 과거 역사를 돌이켜 보면서, 아모리 사람들이 아무리 강하였더라도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셨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스라엘 백성이 처음으로 가나안에 들어가려고 정탐꾼을 보냈을 때 돌아온 정탐꾼의 보고는 본문과 같았다(민 13:22-33). 샤마드라는 히필 사역 능동 동사를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가나안 족속을 하나님이 진멸하신 것을 말한다.
10절은 베아노키 헤엘레티 에트켐 메에레츠 미츠라임 바올레크 에트켐 바미드바르 아르바임 솨나 라레쎄트 에트 에레츠 하에모리입니다.
암 2:10 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인도하고 아모리 사람의 땅을 너희가 차지하게 하였고
=====2:10
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어... 아모리 사람의 땅을 너희로 차지하게 하였고 - 본절에 이르러서는 인칭의 변화가 있다. 즉, 아모스는 그의 민족들에게 직접 말하고 있는 형태를 취하는 것이다(R.Martin-Achard). '이끌어 내어'의 히브리어 '헤엘레이티'는 '이끌어 올린다'(bring up)는 의미로 출애굽 기사에 언급된 용어 그대로이다(출 32:7;33:1;신 6:12). 아모스는 이처럼 이스라엘의 역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시작되었고,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여기서도 히필 사역 능동을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주셨음을 말한다.
11절은 바아킴 미베네켐 리네비임 우미바후레켐 리네지림 하아프 엔 조트 베네 이스라엘 네움 아도나이입니다.
암 2:11 또 너희 아들 중에서 선지자를, 너희 청년 중에서 나실인을 일으켰나니 이스라엘 자손들아 과연 그렇지 아니하냐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11
본절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향한 관심이 가나안 정착으로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또 너희 아들 중에서 선지자를, 너희 청년 중에서 나실인 사람을 일으켰나니 - 아모스는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하게 부각된 선지자로 모세(호 12:10,13)와 엘리야(왕상 17장)와 미가야(왕상 22장)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R.Martin-Achard). '나시르 사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지림'은 문자적으로 '구별되거나 성별 된 사람'(seperated or consecrated ones)을 의미한다. 그들은 특별한 서원을 하였고(민 6:1-12), 사무엘처럼 평생을 나실인으로 보낸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삼상 1:28), 얼마 동안만 나실의 서약을 지키는 사람도 있었다(민 6:5-8). 그들은 포도나무의 소산과 발효시켜서 만든 독주는 일체 마시지 않았고, 부정한 음식을 먹지 않았으며, 머리도 깎지 않았고, 시체를 가까이하지 않았다(삿 13:3-14). 이처럼 나시르 사람들은 철저하게 거룩성을 유지하며 하나님께 바쳐진 삶을 살았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과연 그렇지 아니하냐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앞서 아모스는 출애굽 역사에 이어 선지자와 나실인을 언급함으로써 이스라엘 전역사를 축약하여 개괄하였다. 이로써 타락의 일로를 걷고 있는 회중들에게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하고, 앞으로 경고할 내용에 대해 수긍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본절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움 아도나이'는 히브리어 본문에서 대개 문장 끝에 나온다(16절;3:10,15;4:3,6,8-11;6:8,14;9:7,8,12,13).
이 표현은 사실상 '아마르 아도나이'와 동의어이긴 하지만, '네움'은 '신음하다'(groan), '탄식하다'(sigh)라는 의미를 내포한 '나암'에서 온 것으로(BDB), '아마르'보다 깊이 있는 표현이다. 즉, 깊은 묵상을 통해 잔잔하게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 등을 가리킨다(S.R.Driver). 이 단어는 간혹 선지자가 계시의 말씀을 전달할 때 주어가 되기도 하지만(민 24:3,15;삼하 23:1), 보통은 하나님의 말씀을 언급하는 데 사용되었다(T.J.Finley). 그만큼 이 단어는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예언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특별하고 직접적인 계시라는 사실을 지지한다.
그러나 너희가... 포도주를 마시게 하며... 예언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 이스라엘 사람들의 이 같은 행위는 단순히 나시르 사람이나 선지자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다. 즉, 여호와의 말씀을 거부하고 하나님께 헌신하는 행위를 비웃는 일이었다.
12절은 바타쉐쿠 에트 하네지림 야인 베알 하네비임 치비템 레모르 로 티노브우입니다.
암 2:12 그러나 너희가 나실 사람으로 포도주를 마시게 하며 또 선지자에게 명령하여 예언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2:12
그러나 너희가... 포도주를 마시게 하며... 예언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 이스라엘 사람들의 이 같은 행위는 단순히 나시르 사람이나 선지자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다. 즉, 여호와의 말씀을 거부하고 하나님께 헌신하는 행위를 비웃는 일이었다. 하나님께 구별된 나실인에게도 포도주를 마시게 하는 타락에 빠졌다.
13절은 힌네 아노키 메이크 타흐테켐 카아쎄르 타이크 하아갈라 하멜레아 라흐 아미르입니다.
암 2:13 보라 곡식 단을 가득히 실은 수레가 흙을 누름 같이 내가 너희를 누르리니
=====2:13
곡식 단을 가득히 실은 수레가 흙을 누름 같이 내가 너희 자리에 너희를 누르리니 - 히브리어 본문에는 '보라'(behold)의 의미를 가진 '힌네'가 본절 처음에 나와서 청중들로 하여금 주의를 환기시킨다. 그리고 곧바로 '내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노키'가 있어서 이스라엘을 행한 심판 내용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한편, '누르리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본절에만 나오는 단어로 해석하기가 난해한데, 능동형과 수동형의 번역이 모두 가능하다(J.Calvin). 그래서 어떤 번역본들(개역 성경, RSV, JB, NIV)은 능동형으로 간주하여 '내가 너희를 누르리니'라고 했고, 어떤 번역본들(KJV, NASB)은 이를 수동형으로 간주하여 '내가 너희 아래 눌리리니'라고 번역하였다.
이 가운데 전자의 번역이 자연스럽다. 왜냐하면, 본절은 줄곧 이스라엘의 심판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아마도 땅을 가르시겠다는 즉, 지진에 대한 예언으로 여겨진다(Wolff, T.J.Finley, R.Martin-Achard, T.E.McComiskey). 아모스는 다른 부분에서도 지진에 대한 모습을 묘사하였다(1:1;8:8;9:1,5).
14절은 베아바드 마노스 미칼 베하자크 로 예아메츠 코호 베기보르 로 예말레트 나페쑈입니다.
암 2:14 빨리 달음박질하는 자도 도망할 수 없으며 강한 자도 자기 힘을 낼 수 없으며 용사도 자기 목숨을 구할 수 없으며
======2:14
빨리 달음박질하는 자도 도망할 수 없으며 - '도망할 수 없으며'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아바드'는 문자적으로 '멸망하리라'(shall perish)는 의미로 심판이 급속하게 이루어질 것을 보여준다.
강한 자도 자기 힘을 낼 수 없으며 용사도 피할 수 없으며 - 히브리어 본문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피할 수 없으며'(로 예말레트)는 '탈출하다'(escape), '구출하다'(deliver)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고, 강한 의미를 나타내는 피엘(Piel)형 강조 능동형 동사이다. 절대 도망칠 수 없으며 힘을 낼 수 없다는 의미다.
15절은 베토페스 하케쎄트 로 야아모드 베칼 베라겔라이브 로 예말레트 베로케브 하쑤스 로 예말레트 나페쑈입니다.
암 2:15 활을 가진 자도 설 수 없으며 발이 빠른 자도 피할 수 없으며 말 타는 자도 자기 목숨을 구할 수 없고
=====2:15
활을 가진 자도 설 수 없으며 - 아무리 활을 잘 쏘고 자기 방어에 뛰어난 사람이라도 더 이상 제자리를 지킬 수 없고 달아날 수밖에 없으리라는 말이다.
발이 빠른 자도 피할 수 없으며 말 타는 자도 피할 수 없고 - 아무리 민첩한 사람이라도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말한다. 피할 수 없다고 했는데 피엘 강조 능동형 동사를 사용했다. 하나님의 심판을 절대 피할 수 없다는 의미다.
베아미츠 리보 바기보림 아롬 야누스 바욤 하후 네움 아도나이입니다.
암 2:16 용사 가운데 그 마음이 굳센 자도 그 날에는 벌거벗고 도망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16
용사 중에 굳센 자는 그 날에 벌거벗고야 도망하리라 - '그 날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욤 하후'는 아모스가 장래의 날에 관심이 있음을 나타낸다. 이 용어가 종말의 날을 가리키기도 하지만(사 24:21), 구태여 종말론적인 의미만을 부여할 필요는 없고, 임박한 포로 시대를 의미하기도 한다(J.Niehaus).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이는 11절 주석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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