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설교 알쓸잡

[아가서 강해 설교문] 그리스도를 사랑함이 마땅하다(아가 1:2~4)

복음의 능력 2020. 7. 1.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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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오늘도 알쓸잡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아가서 강해 설교문을 통해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함이 마땅하다(아가 1:2~4)

 

 

1 솔로몬의 사랑 노래라.

2 (술람미)내게 입 맞추어 주세요. 임의 사랑은 포도주보다 더 달콤합니다.

3 임의 향취, 그 이름조차 향기로운 향과 같아, 뭇 처녀들이 임금님을 사랑합니다.

4 임이여, 나를 데리고 가세요. 임을 따라 달려가서 침실까지 이르기를 원합니다.

(친구들의 합창)

우리는 왕이 있기에 기쁘고 즐거워. 왕의 사랑은 포도주보다 더 달콤하네.

아가씨들이라면 왕을 사랑함이 마땅하다네.

 

 

 

아가서를 이해하는 첩경은 구절구절의 화자가 누구인가를 살필 줄 아는 안목입니다. 개역 성경의 단점은 이와 같은 구분이 되어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즉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인, 그리고 간간이 등장하는 친구들의 대화가 전혀 구분이 안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공동번역 성경이나 표준새번역 성경 또는 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영어 성경인 New International Version 등을 참조해서 읽는다면 내용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부족하나마 종은 여러 성경을 참조하여 성도님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사역하여 설교 첫 페이지에 실어 드리겠습니다.

 

공 동 번 역 성 경

새 번 역 성 경

1 가장 아름다운 솔로몬의 노래

(신부)

2 그리워라,

뜨거운 임의 입술,

포도주보다 달콤한 임의 사랑.

 

3 임의 이름, 따라 놓은 향수 같아

아가씨들이 사랑한다오.

4 아무렴, 사랑하고 말고요.

임을 따라 달음질치고 싶어라.

나의 임금님, 어서 임의 방으로 데려 가

주셔요.

(합창단)

그대 있기에

우리는 기쁘고 즐거워

포도주보다 달콤한 그대 사랑 기리며 노래하려네.

 

1 솔로몬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

(여자)

2 나에게 입맞춰 주세요.

숨막힐 듯한 임의 입술로.

임의 사랑은

포도주보다 더 달콤합니다.

3 임에게서 풍기는 향긋한 내음,

사람들은 임을

쏟아지는 향기름이라고 부릅니다.

그러기에, 아가씨들이 임을 사랑합니다. 4 나를 데려가 주세요, 어서요.

임금님, 나를 데려가세요,

임의 침실로.

 

(친구들)

우리는 임과 더불어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포도주보다 더 진한

임의 사랑을 기리렵니다.

아가씨라면,

누구나 임을 사랑하고 싶을 것입니다.

 

이미 낮 시간에 말씀드렸습니다만, 문자 적으로 아가서의 내용은 연인의 사랑 노래입니다. 그러므로 세속적인 시각에서 아가서를 읽는다면 자칫 오해될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아가서가 시작되는 첫 단락부터 그 같은 문제가 나타납니다. “입 맞추기를 원하니”라는 구절이라든지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라든지 “왕이 나를 침궁으로 이끌어 들이시니”라는 구절 등이 그러합니다.

 

 

그래도 우리가 읽고 있는 개역 성경은 완곡한 표현을 많이 쓰고 있어 거부감이 덜하지만, 새번역 성경이나 공동번역 성경 등은 솔직한 표현으로 인하여 거북스러움을 많이 주고 있습니다. 앞에 소개한 두 성경을 참조하여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미 말씀드렸듯이 우리 기독교는 문자적 해석보다는 유형적 해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그같은 표현 속에서도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을 발견합니다. 이 단락에서도 우리는 당연히 그리스도와 교회가 사랑하는 아름다운 관계를 찾아보게 됩니다.

 

 

먼저 사랑의 노래를 술람미 여인이 시작합니다. 왕에게 사랑을 구하는 술람미 여인은 “나에게 입맞추어 주세요”, “나를 침궁으로 인도하여 주세요”라는 두 가지의 사랑 표현 행위를 부탁합니다. 어째서 왕에게 그 같은 사랑 표현을 구할까요? 아직 왕과 결혼도 하지 않은 처녀의 요구치고는 너무 무리한 요구일까요? 아니올시다. 정작 깊은 사랑은 이와 같은 사랑의 표현 행위를 당당하게 바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입맞춤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사랑은 함께 있는 것”이라고.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사랑을 하면 곰보의 얽은 구멍도 보조개로 보인다”고.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사랑은 눈으로 말하고 입으로 달아오른다”고.

 

사랑을 받아 보셨나요? 그리고 사랑을 해 보셨나요? 사랑의 모양이 어떠하던가요? 청구영언에 나오는 사랑 노래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사랑이 어떻더니 두렵더냐 넓었더냐

(사랑이 어떻더냐? 둥글더냐, 넓더냐?)

기더냐 자르더냐 발을러냐 자일러냐

(길더냐, 짧더냐? 발로 밟겠더냐, 자로 재겠더냐?)

지멸이 긴 줄을 모르되 애긏을 만하더라

(매우 지루하게 긴 줄을 모르되 애가 끊일 만하더라.)

 

 

사랑을 하면 열병에 걸리는가 봅니다. 사랑을 하면서도 몸과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면 이는 가짜 사랑입니다. 사랑을 하면 사랑하는 임이 보고 싶은 것이 첫째 증세요, 둘째 증세는 사랑하는 임의 말을 듣고 싶은 것이며, 셋째 증세는 사랑하는 임과 언제까지고 함께 있고 싶은 것이며, 그리고 더 깊은 사랑의 증세는 사랑하는 임의 입술을 찾는 것이며, 최고 절정의 증세는 사랑하는 임에게 온몸을 내어주고 싶은 것입니다.

 

 

사랑에 빠진 술람미는 사랑하는 솔로몬을 찾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의 향기로운 향취를 맡기 원합니다. 달콤한 입맞춤의 사랑 행위를 찾고 있습니다. 술람미가 이처럼 사랑의 행위를 구하는 것으로 보아 이미 그녀는 솔로몬과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가 무르익은 시점의 어느 때라 보여집니다.

“내게 입맞추어 주세요. 왕의 사랑은 포도주보다 더 달콤합니다.”

 

 

“입맞춤”하면 우선 우리는 사랑하는 남녀의 애정 표현을 머리에 떠올립니다. 물론 그것은 사랑하는 남녀가 행할 수 있는 당연한 사랑의 표현 행위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입맞춤”에 대한 새로운 성경적 진리가 있습니다. 이 진리를 알지 못하면 우리는 아가서의 사랑 노래를 크게 잘못 해석하게 됩니다.

 

 

첫째, “입맞춤”은 성경적 사랑의 표현이라는 사실입니다. 즉 사랑을 하는 관계라면 입맞춤으로 그 사랑을 표현함이 마땅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꼭 남녀의 사랑 관계에 있어서만이 아닙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할 때에 자녀의 볼에 입을 맞추는 것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자녀가 부모를 사랑하여 부모님을 얼싸안고 입을 맞추는 것 또한 아름다운 행위입니다.

 

 

형제가 헤어졌다가 오랜만에 만나 반갑고 사랑스러워서 서로 입 맞추는 모습, 또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창세기에는 이와 같은 입맞춤의 경우가 여러 번 나옵니다. 이삭이 아들에게 입맞추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27:26). 라헬이 야곱을 떠나보낼 때에 입 맞추며 울었습니다(29:11). 야곱의 삼촌 라반이 야곱과 헤어질 때에 그 외손자들에게 입 맞추며 이별하였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된 후에 형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형들과 만남이 너무도 반가워서 입맞추며 울었습니다. 룻기에는 시어머니 나오미와 자부 오르바가 입맞추면서 헤어졌습니다. 출애굽기에는 모세가 장인 이드로를 만날 때에 절하고 입 맞추었습니다. 시편 2:12 말씀에는 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라고” 직접적인 명령도 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죄인인 한 여인이 예수님께 향유가 담긴 옥합을 깨서 붓고 눈물로 주님의 발을 적시며 자기의 머리털로 주님 발을 씻으며 그 발에 입 맞추었습니다. 15장에는 탕자가 돌아오니 그 아버지가 더러운 아들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어 웁니다. 고린도후서 13:11 말씀에는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 5:14 말씀에는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피차 문안하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입맞춤은 지극히 성경적인 사랑 표현이며, 그 대상은 주님, 임금, 부모님, 형제, 친구, 교회의 교우들,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또 이상의 모습들을 통하여 우리는 입맞춤의 행위에 담긴 의미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① 사랑의 솔직한 표현 ② 경배의 표현 ③ 평화의 인사가 그러합니다. 사랑하기에 입을 맞추고, 경배하기에 엎드려 입을 맞추며, 서로 화해하고 평화를 빌어주는 의미에서 입을 맞추는 것입니다. “예배”라는 헬라어 “프로스쿠네오”(προσκυνέω)가 “~~~에게 입맞추다”라는 의미는 곧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그분과 사랑의 입 맞추는 일이요, 엎드려 경배의 입맞추는 일이며, 살롬을 빌어주시는 하나님의 입맞춤이 함께 하는 아름다운 사랑의 환희가 이루어지는 현장인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에게 입 맞추어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왜 그녀는 그토록 솔로몬의 입맞춤을 원하였을까요?

먼저 솔로몬의 사랑이 포도주보다 낫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이스라엘 나라에서 포도주는 아주 귀하고 없어서는 안 될 음료입니다. 마음을 기쁘게 하는 음료이고 잔치 집의 기쁨을 주는 술이 되며, 때로는 약용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또 잠언에 포도주는 인생의 쾌락을 주는 음료라고 했습니다(잠 23:31, 31:4, 전 10:19).

 

 

그러나 포도주를 너무 많이 마시는 것은 좋지 않음도 말씀 하였습니다. 포도주가 주는 쾌락과 기쁨이 아무리 좋다한들 어디 사랑하는 임의 입맞춤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포도주가 육적인 쾌락을 잠시 주는 것이라면, 입맞춤은 사랑하는 사람의 가슴과 가슴의 정감을 나누는 기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포도주의 맛보다도 사랑하는 임의 입맞춤을 원하는 술람미 여인의 사랑을 구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리스도인이라면 사랑하는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더 달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임의 향취가 너무도 향기롭기 때문에 입맞추어입 맞추어 달라고 부탁합니다. 이스라엘은 더운 아열대 지방이라 땀이 많이 납니다. 그래 땀 냄새를 지우고자 향내 나는 기름을 몸에 바릅니다.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 왕에게서 나는 그 향내에 흠뻑 취한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입맞춤과 함께 사랑하는 솔로몬 왕의 향취를 더 가까이서 맡고 싶은 것입니다. “솔로몬”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풍겨오는 그 향취가 너무도 그리워서 입 맞추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며, 그 향취는 자기뿐 아니라 이스라엘 뭇 처녀들이라면 모두가 사랑한다고 말합니다(3절).

 

 

성도 여러분!

우리 주 예수님의 향취를 맡아 보셨나요? 예수라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셀레이고 그 이름이 너무도 귀하고 아름다워 정작 입 밖으로 부르지 못하고 속으로만 “주여!”하고 불러본 적이 있나요? 예수님에게서 풍겨나는 향취를 맡아보세요. 온유한 향취, 겸손한 향취, 사랑의 향기로 가득한 그 향취를 맡아보시기 바랍니다. 샤론의 꽃보다 더 그윽하고 깊은 향내음이 예수님에게 풍겨난답니다.

 

 

둘째, 침궁으로 인도하시는 임의 손길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술람미는 “임금님, 나를 데리고 가세요. 임금님을 따라 달려가서 침궁까지 이르기를 원합니다”라고 간청합니다.

 

 

침실은 사랑하는 연인들에게 가장 은밀한 사랑의 교제 장소입니다. 그곳에서는 두 남녀의 가장 고귀한 사랑의 교제가 이루어집니다. 그곳은 사랑하는 두 연인 이외는 어느 누구에게도 공개할 수 없는 둘만의 비밀 장소인 것입니다.

 

 

구약 유대에는 하나님을 만나고 섬기는 성막▷성전이 있었습니다. 그 성전의 가장 은밀한 중요한 장소는 지성소였습니다. 지성소는 아무에게도 열리지 않은 가장 신비스러운 곳이었습니다. 일 년 열두 달 매일 같이 휘장으로 닫힌 곳입니다. 그러나 7월 10일 대속죄일이 되면 그 지성소의 휘장이 걷히고 이스라엘에게 열렸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아무나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온 이스라엘을 대표해서 대제사장이 가장 순결한 염소의 피를 갖고 지성소에 들어가 온 이스라엘의 부끄러운 모든 것을 고백하고 속죄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 예수를 보내셔서 지성소의 그 은밀한 휘장을 걷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그곳에 들어옴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은밀한 교제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곧 만민의 기도하는 집인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과 깊은 영교(靈交)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제 신약의 제사장인 그리스도인은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주님의 사랑을 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신부가 신랑 앞에 벌거벗었으나 부끄럽지 않은 것과 같이 교회는 주님 앞에 벌거벗었으나 부끄럽지 않게 된 것입니다. 사실 만물이 하나님 앞에는 모두가 벌거벗은 몸으로 설 뿐입니다(히 4:13).

 

 

사랑한다 하면서 침실로 인도하지 않는 임은 가짜 사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작 사랑한다면 그 어느 곳보다 침실에서 둘만의 사랑을 나누는 시간을 갖고 싶어할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라면 마땅히 기도의 침실(기도의 골방)에서 주님과 나누는 사랑의 기쁨을 맛보아야 합니다. 이 최상의 기쁨을 얻은 성도 라야 참 성도요, 주님의 신부로서 자격이 있다 하겠습니다.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그 때가 가장 즐겁다

이 세상 근심 걱정에 얽매인 나를 부르사

내 진정 소원 주 앞에 낱낱이 바로 아뢰어

큰 불행 당해 슬플 때 나 위로 받게 하시네 (482장)

 

 

은혜의 지성소, 사랑의 침실, 기도의 골방에서 주님과 최고의 사랑을 나누는 복된 성도 님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셋째, 그리스도를 사랑함이 마땅합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 사랑을 입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다윗 왕의 위대함을 계승하여 지혜의 왕, 평화의 왕이 되었습니다. 솔로몬 왕이 통치한 이스라엘은 평화와 번영이 극에 달하였습니다. 솔로몬 왕에게 왕후가 육십이요, 비빈이 팔십 이었으며, 온 이스라엘의 처녀들은 모두 그를 사랑하고, 그의 사랑받기를 원하였습니다(아 6:8). 그러므로 친구들이 합창합니다.

“아가씨들이라면 왕을 사랑함이 마땅하다네!”

 

 

예수님 시대 때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을 받기를 소원했습니다. 벳새다 광야의 오천명이 주님을 따랐으며,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에는 나귀 앞뒤에 어린아이와 많은 어른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찬송을 하였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사랑 받기를 원합니다. 또한 예수님을 사랑함은 너무도 마땅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솔로몬 왕에게 왕후가 육십, 비빈이 팔십, 시녀가 무수하여도,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로구나”라고 6:9절에 기록되었습니다. 바로 술람미 여인이 가장 사랑받는 자요, 또 솔로몬 왕을 가장 사랑한 여인이었습니다.

 

 

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자 중에 으뜸은 막달라 마리아가 아닌가 합니다. 그녀는 죄인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간음하던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 막달라 마리아라고 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분은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이 막달라 마리아라고도 했습니다. 어쨌든 마리아는 죄인인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예수님을 만나 죄를 용서함 받고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그래 그녀 또한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귀한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붓고 눈물로 발을 적시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을 수없이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자 안식 후 첫날 제일 먼저 향유를 갖고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으로 만난 여인이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세상에는 주님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저와 여러분도 한 사람입니다. 문제는 우리 모두가 주님을 사랑함이 마땅하지만, 내가 더욱 주님을 사랑함이 마땅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모두가 주님을 사랑하고 사랑을 받는 일도 지극히 중요하고 아름다운 일이나, 무엇보다도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일이 더욱 귀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시몬의 아들 요한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베드로가 주님께 묻습니다.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너는 나를 따르라라는 말씀을 바꾸면 너는 나를 사랑하라라는 말씀입니다. 다른 사람 상관할 것이 아니라 내가 주님을 사랑하느냐를 물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쪼록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가 주님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도 받는 법입니다. 진정 그리스도를 사랑함이 마땅합니다.

사랑의 입맞춤으로 주님의 사랑을 확약받는 성도, 은밀한 기도의 침실에서 영적 교제는 나누는 성도, 주님을 마땅히 사랑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뜨겁게 기원합니다. 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함이 마땅합니다.

 

 

[여호수아 1장 설교문] 후계자 여호수아(수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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