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힘들고 지칠 때가 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기도하게 됩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가 기도를 왜 해야 하며 기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기도는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가장 큰 사역이다.
기도는 바로 하나님과의 동역인 것이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고,
사탄의 의도는 깨져버린다.
또한 기도하는 자의 받는 은혜는 대단히 큰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께서 "일어나 기도하라"(눅22:46)고 하신 경고를 따라야 할 것이다.
1.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는 가장 오묘한 일일 뿐 아니라 가장 놀라운 영적 활동이다.
기도는 하나의 비밀이다. 이 제목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볼 때,
우리는 기도의 오묘한 면들을 더 많이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기도의 비밀이 불가사의한 것이라거나 불가해하다는 뜻은 아니다.
이 말은 다만 기도에 대해 잘 깨닫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일 뿐이다.
이 점에서 볼 때, 기도로써 하나님을 위해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드문 것이다.
기도의 능력은 기도를 얼마나 많이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기도가 기도의 원칙에 얼마나 일치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기도의 원칙에 일치된 기도만이 참 가치를 가진 것이다.
왜 기도하는가? 이것은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왜 기도가 필요한가?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 아닌가?
왜 그는 우리가 기도할 때까지 일을 시작하지 않고 기다리시는가?
그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분인데 왜 우리가 모든 것을 그에게 아뢰어야 하는가(빌4:6)?
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즉각 일하시지 않는가?
왜 그는 우리의 기도를 필요로 하시는가?
왜 구하는 자만 얻게 되고, 찾는 자만이 찾게 되며, 두드리는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가(마7:7)?
하나님은 왜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약4:2)이라고 말씀하시는가?
이상의 질문들에 대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계속해야 한다.
그러면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인가?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은 그의 뜻과 반대되는 것은 결코 실행하지 않으신다.
문을 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왜 그는 우리가 문을 두드리기까지 기다리시는가?
왜 그는 그의 뜻을 따라 그냥 문을 열어 놓으시지 않는가?
그는 전지 하신 분이므로 우리에게 문이 열려야 할 필요를 다 아실텐데,
왜 열기 전에 우리가 두드리기를 기다리시는가?
문은 열리기로 되어 있고, 문을 여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것이며,
그는 문 열리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함을 잘 아시는데 왜 우리가 두드리기를 기다리시는가?
왜 그는 문을 그냥 열어 주시지 않는가 우리의 두드림이 하나님께 무슨 유익을 주는가?
우리는 또 다음의 질문들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문을 여는 것이고, 문을 여는 것은 그의 의와 일치하는데도
그는 우리가 두드리지 않으면 열지 않으실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기도를 기다리기 위해 그의 뜻과 의를 이루기를 지연시키는 것인가?
그는 우리가 두드리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문을 열려는 그의 뜻이 중단된 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시는가?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은 우리 때문에 제한되는 것이 아닌가?
과연 하나님은 전능하신가?
그가 전능하신 분이라면 왜 우리가 두드리기를 기다리기 전에 혼자 열지 않으시는가?
과연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이룰 수 있는가?
그가 정말 능력 있는 분이라면 왜 그가 문을 여는 것(하나님의 뜻)이 우리가 두드리는 것(사람의 기도)에 의해 지배를 받으시는가?
이 모든 질문을 할 때, 우리는 기도가 하나의 큰 비밀임을 깨닫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한 가지 원칙을 볼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 일어나 일하시기 전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뜻은 그의 백성들의 기도를 통해 실현되며,
성도들의 기도는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뜻을 혼자서 이루시지 않고 그의 백성들이 기도로 동의를 보인 후에 이루신다.
그러므로 기도는 성도들이 하나님과 동역하는 활동이다.
기도는 성도의 생각을 하나님의 뜻에 연결시키는 것이다.
성도들이 이 땅에서 드리는 기도는, 곧 하늘에 계신 주님의 뜻을 소리로 나타내는 것이다.
기도는 우리의 탄원을 들어 달라는 요구가 아니요,
자신을 위한 욕망을 채워달라는 소원을 하나님께 표현하는 것도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분의 뜻을 바꾸게 하거나 뜻하지 않았던 일을 하시도록 그분께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단지 성도의 입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것이다.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로 간구하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결정을 변경시키지 않는다.
기도는 아무것도 변경시키지 않는다.
다만 그분이 이미 정하신 것을 이룰 뿐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도로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이 부족할 때, 그의 결정은 공중에 그대로 떠 있는 상태가 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8:18). 우리는 주님의 이 말씀을 잘 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기도와 관련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 말씀 다음에 연결되는 주님의 말씀은,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19절)는 것이다.
땅의 통제를 받는 하늘
기도와 하나님의 사역의 관계는 분명해졌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다만 땅에 있는 그의 자녀들이 묶고 푸는 것을 묶고 푸신다.
매야 할 것들이 많지만 하나님 혼자서는 매지 않으신다.
그는 그의 백성들이 땅에서 먼저 매기를 원하신다. 그다음에 그도 하늘에서 매는 것이다.
또, 풀어야 할 것들도 많다. 그러나 역시 하나님 혼자서 풀기를 원치 않고 땅에서 먼저 그의 백성들이 풀기를 기다렸다가, 푼 후에야 하늘에서도 푸는 것이다.
이 사실을 생각하라! 하늘의 모든 활동은 땅의 활동의 통제를 받는다.
하늘의 모든 움직임은 땅의 움직임에 의하여 제한을 받는다.
하나님은 그의 모든 일을 그의 백성들의 지배 아래 두기를 매우 기뻐하신다.
(그러나 마태복음의 이 말씀은 육적인 사람들에게 한 말이 아님을 지적해 둘 필요가 있다. 그러한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들을 자격이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육적인 것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만일 육적인 것이 들어오게 되면 우리는 여러 면에서 하나님을 손상시키게 된다.)
마태복음에서 보는 것과 똑같은 의미의 말씀이 이사야서에도 나온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일과 내 손으로 한 일에 대하여 내게 부탁하라"(사45:11). 이 말씀을 볼 때 우리는 참으로 엄숙해지고, 육적인 것이 몰래 들어오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명령하기를 원하신다. 그는 우리들의 기도에 따라 그의 일을 시작하신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취한 행동은 묶는 것이든 푸는 것이든 모두 이 땅에서 우리가 행한 기도에 따라 이루어진다.
하늘이 매기 전에 먼저 땅이 매어야 한다. 하늘이 풀기 전에 먼저 땅이 풀어야 한다.
하나님은 그의 뜻에 반대되는 것은 결코 하시지 않는다.
그가 매기를 원치 않는 데도 땅의 강요를 받아서 매는 것은 아니다.
땅에서 매는 그것이 그의 원래의 뜻이기 때문에, 결국 땅에서 맨 것을 하늘에서도 매는 것이다.
그는 하늘에서 매려고 하는 것을 땅에서 그의 백성들이 매기까지 기다리시고, 그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셨다.
그들이 간구한 것을 매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의 간구를 기뻐하시고 그들이 맨 것을 하나님도 매기를 기뻐하신다는 그 사실은, 그분이 이미 매기로 작정하셨음을 증거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왜 그분은 더 일찍 매시지 않는가? 매는 것이 그의 뜻이고,
따라서 그 뜻이 영원한 이상 왜 그는 그의 뜻에 따라서 매야 할 것을 더 빨리 매시지 않는가?
왜 그가 하늘에서 매기 전에 땅이 매는 것을 기다려야 하는가?
땅이 매지 않은 것은 하늘에서도 맬 수 없다는 것이 사실인가?
땅에서 매는 것이 지연되면 하늘에서도 지연되는가?
하나님은 왜 오랫동안 매기 원하신 것을 자신이 매기 전에 땅이 맬 것을 기다려야 하는가?
이런 질문의 대답을 통해 성도들은 하나님의 손에서 좀 더 쓸모 있게 될 수 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이유는.,
사람이 하나님과 연합하여 사탄을 멸하고 하나님과 동역하기 위해서이다.
사람은 자유 의지를 갖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람이 자신의 의지를 행사하여 사탄을 거절하고 하나님과 연합하기를 원하신다. 이것이 구속의 이유뿐만 아니라 창조의 목적이다.
주 예수께서는 그의 온 생애를 통해 이 원칙을 그대로 보여주셨다.
우리는 하나님이 혼자 독립적으로 행동하지 않으심을 알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의 뜻만 내놓고 그들의 생각만을 기도로 나타냄으로써,
하나님의 뜻에 대한 동의를 나타내지 못했을 때에는 하나님은 차라리 잠깐 기다리고 서서 그의 일을 연기하신다.
그는 혼자 행동하기를 거절하신다. 그는 그의 백성들로 그와 동역하게 하여 그들을 높이신다.
그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지만 그의 전지전능하심이 그의 자녀들에 의해 제한받기를 기뻐하신다.
그는 반드시 그의 뜻을 잊고 그에게 동의를 나타내지 않아 동역을 실패하는 경우도 허락하신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오늘날처럼 식어지지 않고,
자신을 기꺼이 더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에 더 순종하며 그분의 영광만을 바라고
그분의 말씀만을 지킨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의 이 시대를 향한 뜻은 신속히 실현될 것이고,
교회는 이렇게 혼란에 빠지지 않을 것이며, 죄인들은 그렇게 강퍅하지 않을 것이다.
주 예수와 그의 나라는 더 가까이 다가오고, 사탄과 그의 졸개들은 더 빨리 무저갱에 던져지고,
온 땅에 주님이 더 빨리 알려질 것이다.
성도들의 마음에 자신의 일들만 가득 차 있어 하나님과의 동역을 실패하고 있으므로
수많은 원수들과 불법들이 매이지 않고, 수많은 죄인들과 많은 은혜가 풀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은 땅 때문에 얼마나 큰 속박을 받고 있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그토록 깊이 존중하시므로 우리는 그만큼 그를 믿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하나님께서 매기로 하신 것을 우리는 어떻게 매는가?
또한 그가 풀기로 하신 것을 우리는 어떻게 푸는가?
주님께서 주신 대답은 이것이다.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이것은 기도, 곧 그리스도의 몸의 기도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우리가 합심하여 기도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와 하나님과의 최고의 동역이다.
참된 기도는 바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우리의 갈망을 표현하는 기회이다.
기도는 우리의 뜻이 하나님 편에 선 것을 뜻한다. 여기에서 벗어난 기도는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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