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설교 알쓸잡

[시편 23편 히브리어성경강해] 나의 영원하신 목자(시 23:1-6)

복음의 능력 2021. 1. 27. 21:44
반응형

안녕하세요. 오늘은 시편 23편 히브리어 성경 강해 중에서 나의 영원하신 목자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다윗은 여호와가 자신의 목자가 되어 주시면 인생에 부족한 것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이 나의 목자가 되어주시면 인생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주님이 나의 인생길을 인도하여 주시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님이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양이 목자만 있으면 광야에서 늑대나 사자나 곰이 와도 두렵지 않습니다. 목자가 지켜줄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나의 주님이 인생의 광야에서 목자가 되어 주셔서 사탄으로부터 보호해 주시고 어려운 곤경에서 건져주십니다. 우리는 목자 되신 주님을 열심히 따라다니면서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주님이 인도하는 데로 가야 합니다.

나의 영원하신 목자(시 23:1-6)

 

시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 23: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 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 23: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1절은 미제모르 레다비드 아도나이 로이 로 에흐사르입니다.

시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3:1

여호와 - 다윗은 이 하나님의 이름을 본시의 첫머리에 둠으로써 여호와에 대한 그의 절대적인 신앙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여호와'는 본 시의 대주제이기 때문에 앞에 두어졌을 것이다(Craigie, Kidner).

나의 목자시니 - 로이라는 단어다. 하나님을 `목자'로 비유한 표현은 다윗에 의해 처음 사용된 것이 아니다. 이 비유는 이미 야곱에 의해 사용되었으며(48:15), 근동 지방의 이방 종교에서도 사용되었다(Craigie). 또한 성전 예배에서도 이 비유가 여호와께 적용되었(80:1). 따라서 이 비유는 당시 유목 사회였던 팔레스틴에서는 널리 알려진 것으로 이를 다윗은 자신의 시에서 발전시켰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 목자의 비유가 나타내는 주요 의미는 인도와 자비로운 돌보심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목자적 속성을 이스라엘의 광야 40년 생활 동안에 구체적으로 잘 보여 주셨다. 또한 다윗은 `나의'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특별한 관계를 자신에게 적용시켰다. 한편, `목자'라는 비유는 `바위'`방패'와 같이 비인격적인 것도 아니며 `'이나 `구원자'와 같이 권위적인 비유도 아니며 상호 간의 밀접한 사랑과 순종의 관계를 내포하고 있는 비유로서 실제적으로 하나님과 다윗의 관계를 밀도 있게 묘사하고 있다(Kidner).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 하사르라는 동사이다. 능동태 미완료 시제를 사용하여 주님이 함께 하시면 영원히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이는 다윗이 여호와를 목자로 삼은 결과이다. 다윗에게 부족함이 없는 까닭은 목자이신 여호와께서 충분한 것으로 공급하여 주셨기 때문이. 자기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충분한 공급은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 중에도 잘 나타난 바 있다(2:7; 8:9). 이와 같은 하나님의 공급으로 다윗은 환난 중에서도 만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도 주님이 함께 하시면 영원히 부족함이 없다. 영적으로는 말씀으로 채워주시고 육적으로는 먹을 양식을 공급해 주신다.

 

2절은 비네오트 데쎄 야르비체니 알 메 메누호트 예나할레니입니다.

시 23: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23: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 여기서 양을 인도하는 선한 목자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초장'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오트'`거처'를 의미한다. 누인다는 단어는 라바츠 동사로서 히필 사역 능동형 미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편안하게 누울 수 있도록 해주신다는 말씀이다. 그것도 계속해서 푸른 초장으로 인도해 주심을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푸른 초장' 은 단순히 녹지대를 의미한다기보다 사막의 뜨거운 태양열을 피하여 쉴 수 있는 그늘진 곳, 즉 휴식처를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다(Calvin). 그러나 `'이란 수식어는 `네오트'`초장'을 가리킴을 강력하게 시사해준다. 한편, 초식 동물인 양 떼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푸른 초장은 절대적인 삶의 토대로서 그들의 생존과 직결되는 것이었다.

 

쉴 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 도다 - 여기서 `쉴 만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메누호트'는 세찬 물결과는 대조적인 개념으로 `잔잔한'이란 의미이다(C- raigie, Kraus, Calvin, Delitzsch). 만일 목자가 급류로 인도하였다면 그 양 떼들은물을 마시기에 불편할 뿐만 아니라 해()를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목자는 양들을 잔잔한 물가로 인도함으로써 안전히 쉴 수 있게 한다. 인도하신 다는 단어는 나할 동사인데 피엘 강조 능동형 미완료 시제를 사용했다. 양이 가기 싫다고 해도 광야에서 쉴만한 물가로 계속해서 인도하고 있음을 말한다.

 

3절은 나페쉬 예쑈베브 야네헤니 베마에겔레 체데크 레마안 쉐모입니다.

시 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 목자 되신 여호와의 인도하에서 다윗의 영혼이 회복된 것이다. 여기서 `소생하다'(슈브)`되돌아오게 하다'는 뜻으로 죄악과 곤경으로 헤매던 영혼이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는 의미이다(Delitzsch, Lange). 피엘 강조 능동형 미완료를 사용하고 있다. 어떤 상태에서도 하나님은 영혼을 계속해서 살려내고 있음을 말한다.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 여기서 `의의 길'이란 도덕적으로 의로운 삶을 의미한다기보다는(Briggs) 평탄의 길, 형통의 길을 뜻한다(Calvin, Raw- linson).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을 평탄과 형통의 길로 인도하심으로써 목자로서의 자비하신 성품을 보여주신 것이다. 한편, 이 말이 `자기 이름을 위하여'란 표현과 함께 언급되고 있으므로 그 인도의 궁극적인 목적이 하나님 자신의 영광에 있음을 보여준다.

 

4절은 감 키 엘레크 베게 찰마베트 로 이라 라 키 아타 임마디 쉬베트카 우미쉐아네테카 헴마 예나하무니입니다.

시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23:4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 `사망의 음침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찰마웨트'는 그림자를 뜻하는 `'과 죽음을 의미하는 `무트'의 합성어인 것으로 보인다(TWOT). 그리고 여기서 `무트'는 죽음 그 자체를 의미한다기보다는 `그림자'를 수식하는 최상급 형용사로 사용된 것 같다(Thomas). 이렇게 볼 때 이 말은 `매우 짙은 그늘', 또는 `흑암'(thick darkness)을 나타내는 말이다. 성경의 용례를 보면, 이 말은 광산 통로의 암흑(28:3), 사자(死者)의 거처의 어두움(10:2 1f.; 38:17), 창조 이전의 어두움(5:8)등에 적용되었다. 이와 같이 이 말은 어두움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단어 중 가장 강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죽음을 상징한다.

 

한편, 이처럼 어두운 골짜기는 산지가 많이 있는 팔레스틴에서는 쉽게 발견된다. 그러한 곳에서 목자 없는 양 떼들은 사나운 짐승의 먹이가 되고 말 것이며, 기타 여러 가지 죽음의 위험을 당할 수밖에 없다.

()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양 떼 곁에는 항상 목자가 있다. 그래서 그 양 떼들은 안전하게 골짜기를 지날 수 있다. 지금 어떠한 해롤 당할지도 모르는 환난의 골짜기를 지나고 있으면서도 다윗이 그 해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처럼 목자이신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 `지팡이'와 `막대기'는 목자의 장비이자 무기이다. `지팡이'(미쉬에네트)는 양들을 인도하기 위한 장비이며, `막대기'(쉐베트)는 일종의 무기로서(삼하 23:21) 공격해 오는 맹수들을 방어하는 도구이다. 안위하신다고 했는데 피엘 강조 능동형 미완료 시제를 사용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평안을 주신다는 의미다. 

 

5절은 타아로크 레파나이 쓜한 네게드 초르라이 디샤네타 바쎄멘 로쉬 코시 레바야입니다.

시 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23:5

목자와 양에 대한 묘사에서 주인과 손님에 대한 묘사로 바뀌고 있다. 다윗은 이 부분에서 현재보다 더욱 안전하고 평안하게 될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복된 미래는 여호와께서 자신의 목자가 되신 결과로써 주어질 것이다. 한편 주인과 손님의 관계는 상호 간의 긴밀한 결속과 언약적 관계를 뜻하므로 앞에서 언급된 목자와 양의 관계보다 발전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Craigie).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 다윗의 주변에는 그의 생명을 노리는 대적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러한 위기 가운데서도 지금까지 다윗은 하나님의 풍성한 대접을 받아온 것이다. 여기서 `베푸시고'란 미완료 시제로서 과거로부터 지금까지의 계속적인 행동을 시사하고 있다(Calvin). 그리고 `상을 베푸셨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다윗과의 언약 관계를 견고히 하셨음을 나타낸다. 왜냐하면 구약적인 상황에서 하나님 앞에서 베풀어진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및 언약 관계의 발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24:8-12; 고전 11:25). 이렇게 볼 때, 본 구절은 험난한 세상 중에서도 하나님은 목자와 같이 다윗을 지키시고 보호하심으로 시종 당신의 언약을 이행하셨음을 증거하고 있다.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 여기에서 `기름'은 왕이나 선지자 또는 제사장의 위임식에서 붓는 것이 아니라 잔치 때에 주로 사용되었던 향유를 의미한다. 이것은 필수품은 아니었고 귀족들, 특히 왕실에서 주로 사용한 귀중품이었다. 이들 귀족들은 잔치에 참여할 때 이 기름을 머리나 수염 등에 발랐다. 이렇게 볼 때, 본 구절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크게 높이시고 부요하게 하신 데 대한 감사의 노래다. 실제로 다윗의 왕실에는 이 값비싼 기름이 풍부했었다(대상 27:28, Calvin, Lange).

 

내 잔이 넘치나이나 `'은 기업을 비유한 말이다(16:5). 이러한 잔이 단순히 가득 찬 정도가 아니라 흘러넘치고 있다고 하였으니 이는 다윗이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최대의 기업을 소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그가 차지한 왕실의 재산과 사유 재산은 실로 엄청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대상 27:25-31; 29:2-5). 그러나 그는 이토록 풍성한 기업을 자기의 쾌락을 위해 사용하지 아니했고 하나님의 전(殿)을 건축하는 데 아낌없이 바쳤다.

 

6절은 아크 토브 바헤쎄드 이르데푸니 콜 예메 하야이 베샤베티 베베트 아도나이 레오레크 야밈입니다.

시 23: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23: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 다윗은 언약을 지키시고 풍성한 기업을 주신 하나님의 신실성에 근거하여 앞으로 그의 남은 삶도 하나님 안에서 복될 것임을 확신하고 있다. 한편, 여기서 `인자하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헤세'는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의미하는 용어이다. 인자하심이 미완료 시제를 사용하여 계속해서 따라다닐 것을 말한다.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 `여호와의 집'은 문자 그대로 예루살렘 성소를 가리킨다. 하지만 본 구절에는 이보다 더 깊은 영적인 의미가 추가로 담겨있다. 그 근거로 전치사 `'를 들 수 있다. , 단순히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갈 것만을 확신했다면 `'대신에 방향 전치사 `'(...으로)을 사용했을 것이나  그는 `... 안에'라는 의미를 지닌 `'를 사용한 것이다. 더욱이 이 말은 `영원히'라는 말과 어울려 다윗의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에 대한 확신을 표현해 주고 있다. 따라서 본 구절은 결코 문자 그대로 영원히 성소에만 앉아 있겠다는 말이 아니다. 이는 다윗이 지금으로부터 영원토록 하나님과의 보다 깊은 영적 교제의 세계에 들어가게 될 것에 대한 확신의 표현이다(Lange, Rawlinson).

 

 

[다니엘 2장 설교말씀] 인류 종말의 난제 해결(단 2:31-45)

안녕하세요. 오늘은 다니엘 2장 설교말씀 중에서 인류 종말의 난제 해결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큰 신상을 보았습니다. 이 신상은 앞으로 나타날

skh123.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