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설교 알쓸잡

[사도행전 18장 강해 설교말씀] 바울의 고린도 사역(행 18:1-28)

복음의 능력 2022. 8. 11.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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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고린도 사역(행 18:1-28)

 

1-17, 고린도에서의 전도

[1-3] 이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아가야 지방의 수도인 고린도는 고대 헬라의 상업의 중심지이었고 매우 음란했던 도시이었다. 글라우디오는 주후 41-54년경 통치한 로마의 황제이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서 아굴라라 하는 유대인을 만났다. 그는 황제의 명령 때문에 그의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를 떠나 고린도에 새로 온 자이었다. 바울은 그들에게 갔는데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했다.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었다. 바울은 전도하기 위해 스스로 일을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4-5]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서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성령에](전통사본)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

바울은 안식일마다 말씀을 강론했다. ‘강론하다는 원어(디아레고마이)는 논리적으로 변론하다는 뜻이고, ‘밝히 증거하다는 원어(디아마르튀로마이)열심히 증거하다는 뜻이다. 또 그는 성령에 붙잡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오늘날에도 말씀을 전하는 자는 전하는 말씀을 가급적 논리적으로 증거하고 또 성령에 붙잡힌 바 되어 열심을 다해 전해야 할 것이다.

[6] 저희가 대적하여 훼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떨어 가로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바울의 전도 사역에는 항상 대적자들이 있었다. 사탄은 영혼들이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며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싫어하며 방해한다. 사람들이 바울을 대적하고 비방하자, 바울은 옷을 떨어버리고 그들과의 단절을 분명히 하였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라고 말씀하셨다(10:14).

[7-8]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공경[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이 회당 옆이라.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다한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바울을 대적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그의 말을 믿고 따르는 자들도 많이 있었다. 하나님의 복음은 항상 상반된 반응을 가져온다. 예수님과 사도 바울의 사역에서 그러하였다면, 하물며 오늘날 우리들의 사역에서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우리를 대적하는 자들이 있다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일은 항상 있는 것이나, 구원의 열매들도 또한 있을 것이다.

[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예수께서는 살아계신 주님이시다. 물론 그 자신은 천국에 계시지만, 신성(神性)의 영으로 환상 중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환상은 사도시대에 하나님의 계시의 한 방법이었다. 하나님의 뜻이 성경에 충족히 기록되고 성경이 완성된 후에는 하나님께서 그런 방법으로 자신을 계시하실 필요성이 없다고 우리는 믿는다. 환상 중에 나타나신 주께서는 바울에게 두려워 말고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후시대의 모든 전도자들에게 교훈이 된다. 오늘날 말씀의 봉사자들은 두려워 말고 잠잠하지 말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말하였다(딤후 4:2).

[10-11]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16개월을 유하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부활하신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었다(28:20). 이 위로와 격려의 말씀은 모든 전도자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주께서 우리와 늘 함께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를 대적하는 자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또 그 성에는 구원받을 하나님의 백성이 많이 있었다. 전도자는 구원의 도구이다. 전도자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의 구원을 위해 존재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지 전도자는 담대히 말씀을 전해야 하고, 택자들을 다 구원해내어야 한다.

[12-13]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주후 51년 혹은 52년경)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재판 자리로 데리고 와서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어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그러나 바울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 율법에 예언된 분이시요 율법을 성취하신 분이시다. 예수께서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고 말씀하셨다(5:17).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를 알지 못하여 그를 미워하였고 그를 믿는 제자들을 핍박하였다.

[14-17]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무슨 부정한 일이나 괴악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주는 것이 가하거니와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고 저희를 재판 자리에서 쫓아내니 모든 사람[헬라인들](전통본문)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재판 자리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치 아니하니라.

갈리오가 그들을 재판 자리에서 쫓아낸 것은 그 일이 도덕적 사건이 아니고 종교적 사건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전도 사역을 막으려는 유대인들의 고소를 이렇게 막으셨다. 순교의 잔은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주어질 것이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전도할 때 힘써 증거해야 한다. 물론 인간의 구원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일이다.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택하시고 실제로 이끄시지 않으면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논리적으로, 열심히 증거하며 사람들을 설득한 것처럼, 전도자는 성령에 붙잡혀서, 논리적으로 그리고 열심히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전하며 가르쳐야 할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전도할 때 고난을 각오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전도할 때 유대인들의 대적과 훼방을 당하였다. 그들은 바울에게 위협적이었다. 바울은 인간적으로 두려운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말씀 사역에는 항상 어려움이 있고 대적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마음 속에는 두려움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도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구원을 얻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이 일을 이루시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고난을 각오하며 일해야 한다.

셋째로, 주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셔서 그의 일을 이루신다. 주께서는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통해 주의 일을 이루실 것이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하나도 잃어버려지지 않고 다 구원을 받고 또 다 교훈 속에 강건케 될 것이다. 살아계신 주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이것은 오늘날 모든 목사들과 선교사들뿐 아니라, 주일학교 교사들과 구역 권찰들에게도 적용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의 구원과 유익을 위해 있는 말씀의 봉사자들은 담대히 일해야 한다.

18-23, 하나님 중심의 사역

[18] 바울은 더 여러 날 유하다가 형제들을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하더라. 바울이 일찍 서원이 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브리스길라는 아내이고 아굴라는 남편인데, 성경 다른 곳에서 그 부부의 이름이 언급될 때 두 번 더(16:3; 딤후 4:19) 아내의 이름이 남편보다 앞에 나온다. 그것은 그 아내가 남편보다 더 성경 지식과 믿음이 있었음을 보이는 것 같다. 그 부부는 바울에게 그를 위해 자신들의 목이라도 내어놓을 만한 좋은 동역자가 되었다(16:3-4).

바울은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다. 겐그레아는 고린도의 동쪽에 있는 항구 도시이다. 서원은 하나님께 맹세하며 약속하는 기도이다. 바울은 고난과 위험 중에서 하나님께 서원했던 것 같다. 머리를 깎는 것은 일정 기간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것을 나타낸다. 서원은 하나님을 참으로 의지하고 사모할 때 한다. 서원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믿음의 행위이다. 옛날 이스라엘 왕 사울은 쉽게 맹세하고 쉽게 그 맹세를 깨뜨렸으나 한나나 입다는 하나님께 한 서원을 지켰다. 시편 15:4, 하나님의 성산에 거할 자는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는 자라고 말했다.

[19] 에베소에 와서 저희를 거기 머물러 두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에베소는 애게 해 건너편에 있던 도시로서 당시 소아시아의 수도이었다. 사도 바울은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였다. 그는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에게 핍박을 받았지만, 먼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애썼다. 그에게는 분명히 영혼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이 있었고 복음 전도에 대한 불붙는 사명감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때 에베소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20-21]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지 아니하고 작별하여 가로되 [나는 다가오는 이 절기를 예루살렘에서 꼭 지켜야 하겠노라. 그러나](전통본문)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그가 말한 절기는 유월절 혹은 오순절일 것이다.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는 말은 바울이 하나님의 주권적 작정과 섭리를 믿고 있음을 나타낸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일을 하나님께 다 맡기며 항상 그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한다. 잠언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야고보서 4: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22] 가이사랴에서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본문의 안디옥은 수리아 안디옥이다. 이로써 그의 2차 전도여행은 끝났다. 이번에는 복음이 마게도냐 지방과 아가야 지방에 심겨졌다.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 고린도 등 중요한 도시들에 교회가 세워졌다. 이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수리아 안디옥 교회의 선교에 대한 깨달음과 열정과 순종, 전도자 파송과 후원을 사용하셨다. 각 곳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졌고 구원 얻는 영혼들이 생겨났고 교회들이 설립되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이 곳곳에서 이루어졌다.

[23]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게 하니라.

이것이 소위 사도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이다. 사도 바울은 수리아 안디옥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의 마음은 하나님의 일로 인해 불타고 있었다. 갈라디아와 부르기아 땅은 그가 처음에 전도하였던 비시디아 안디옥을 비롯하여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등을 가리킬 것이다. 그는 두루 다니며 제자들을 굳게 하였다. 전도는 씨를 뿌리며 심는 것이고, 심방은 돋아난 싹에게 물을 주며 보살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에는 전도도 필요하고 심방도 필요하다. 교회의 목회에는 이 양면, 즉 전도와 양육의 두 측면이 있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과 간섭과 역사를 구하며 그에게 기도하고 모든 일을 그에게 의탁하자.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를 사모하자. 또 하나님께 무엇을 약속하는 기도를 드린 것이 있으면 그 약속을 잘 지키자. 그것이 바른 믿음이다. 그것이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믿자.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나 자신의 뜻이나 계획을 앞세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자.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허락하시면 잘 될 것이지만,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고 허락하지 않으시면 잘 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의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힘쓰자. 우리는 수리아 안디옥 교회와 같이 선교사를 파송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고 후원하든지, 아니면 파송받은 바울과 동료들처럼 실제로 전도 사역에 자신을 드려 전도하고 구원 얻은 자들을 돌아보든지 간에, 하나님의 일을 힘쓰자. 전도와 심방 혹은 양육은 다 하나님의 일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일, 즉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에게 부탁하셨던 그 일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만세 전에 택하신 영혼들을 죄와 사망과 지옥 형벌에서 구원하고 그들을 믿음 안에 굳게 세우며 참된 교회를 건립하며 구원받은 영혼들을 온전케 하는 일이다.

24-28, 아볼로

[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학문이 많고(로기오스)[달변이며(KJV, NASB), 학식이 있고(NIV)] 성경에 능한 자라.

알렉산드리아는 당시 애굽의 수도이었고 정치적 문화적 중심지이었다. 그 도시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고 주전 3세기에는 거기에서 구약성경의 헬라어역(70인역, LXX)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곳에는 필로(주전 20-주후 45년경)라는 헬라파 유대인 철학자가 있어서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아볼로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랐고 공부를 하였고 성경을 배웠다.

[25]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전통사본)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주의 도혹은 주에 관한 것이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그에 관한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사도행전에서 는 주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아볼로는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고 그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고 그의 교훈들과 기적들과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등에 대해 자세히 알았고, 그래서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는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다. 즉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지 못했던 것 같고 또 성령의 세례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즉 아볼로는 요한의 물 세례를 받았으나 아직 성령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세례 요한은 말하기를,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라고 하였고(3:11), 또 부활하신 예수께서도 승천하시기 전에 그의 제자들에게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1:5). 아볼로는 아직 사도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은 구원의 복음을 바로 듣지 못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지 못하였고 성령을 받지도 못하였고 성령의 내주(內住)하심을 경험하지 못하였다고 보인다.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아굴라와 브리스길라](전통본문)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아볼로에게 개인적으로 복음을 더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그 내용은 그들이 사도 바울에게서 배운 것들이었을 것이다. 그 내용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과 재림 약속에 대해 몰랐던 것이나 그의 죽음의 대속(代贖)적 의미, 죄사함 받음과 의롭다 하심 얻음 등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아볼로는 천막 만드는 자인 아굴라 부부에게 겸손히 하나님의 진리를 배웠다. 이런 겸손한 마음은 하나님께서 아볼로에게 주신 귀한 은혜요 많은 사람들에게 모범이 된다. 기독교 신앙 지식은 세상 지식이나 심지어 성경 지식의 많고 적음에 의존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다. 천막 만드는 자인 일반 신자 아굴라 부부라도 성경에 능한 아볼로보다 더 복음에 대한 이해와 믿음이 있었다. 아볼로는 아굴라 부부를 통해 아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을 것이고 또 성령의 세례, 즉 성령께서 그의 심령 속에 오시고 내주(內住)하시고 역사하심을 체험했을 것이라고 본다.

[27-28]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하니 형제들이 저를 장려[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하여 영접하라 하였더니 저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여 공중 앞에서 유력하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일러라.

성경에 능한 아볼로가 복음의 도를 바로 이해하게 되었을 때 많은 유익을 끼치는 일꾼이 되었다. 본문은 믿는 자들을 은혜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이라고 표현한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음을 나타낸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만 된다. 믿음도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예수께로 나올 수 없고 그를 진심으로 믿을 수 없다. 예수께서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노라고 말씀하셨고(6:44), 사도 바울도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 말했다(9:16). 우리의 우리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구약성경에 능하여도 세례 요한의 세례만 아는 자가 있을 수 있다. 아볼로는 구약성경이나 세례 요한이 메시아에 대해 증거한 내용들은 알고 있었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았고 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거나 성령을 받지 못했다고 보인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고 따른다는 것은 큰 복이다.

둘째로, 우리는 처음 믿는 자에게 복음 진리를 자세히 풀어줄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일반 신자이었지만 하나님의 도, 곧 복음 진리를 잘 알아서 학식 있고 말 잘 했던 아볼로에게 그 도를 자세히 풀어줄 수 있었다. 우리도 성경의 모든 진리에 대해 정통하고 능통하여 처음 믿는 자들을 가르칠 수 있기를 원한다.

셋째로, 지식이 있고 성경에 능한 자가 예수님의 도를 확실히 알면 믿는 이들에게 많은 유익을 줄 것이다. 지식이 있고 성경에 능한 아볼로가 구원의 복음을 알게 되었을 때 믿는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었다. 오늘날도 세상적으로 지식이 많은 자가 성경에 정통하고 능통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큰 유익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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