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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 1장 하나님 말씀] “성경을 사사로이 풀지 말라”(벧후 1:19-20)

복음의 능력 2020. 11. 23.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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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베드로후서 1장 하나님 말씀 중에서 성경을 사사로이 풀지 말라는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성령의 감동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성경을 인간의 마음으로 풀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대로 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 시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을 사사로이 풀지 말라”(벧후 1:19-20)

 

명제: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목적: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 진 책이기 때문에 반드시 성령의 조명을 받아야 한다.

체데크성경원어신학대학원이 하나님의 은혜로 설립이 되고 첫 학기부터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것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허락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첫 수업을 시작하여 벌써 종강이라는 시점에 우리가 서 있습니다. 한 학기 동안 열심히 공부하시고 성경에 대하여 열정을 품은 학우들에게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이제 무엇이든지 시작이 있으면 마침이 있듯이 한 학기를 마무리했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방학기간 학교에 나오지 않지만 성경을 항상 연구하시면서 성령님의 조명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벧후1:20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 예언을 자신이 직접 직통 계시로 받아서 하는 예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예언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예언입니다. 기록된 말씀으로 모든 예언은 끝이 났습니다. 이것을 오해하다 보니 자신이 하나님과 직접 직통으로 계시를 받아서 말한다고 하면서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사사로이’ ιδιος(이디오스 2398) 자기, 자신, 혼자, 조용히, 스스로,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예언을 자기 자신이 혼자서 스스로 골방에서 풀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주님과 성령님의 조명을 받아 함께 풀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말씀을 자기 멋대로 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잘 낫다고 자의적으로 혼자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마음대로 성경을 풀어버리면 하나님의 의도와는 정 반대로 풀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성경을 사사로이 푸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신의 공명심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자기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 나는 다른 사람들과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다르다고 으름장을 놓는 사람들입니다. 소유격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저와 여러분들은 성경을 절대 자의적으로 생각해서 혼자 풀어 서는 안 됩니다. 성령님과 함께 성령의 조명을 받아 풀어야 합니다. 저는 이것이 원어에 모두 풀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방학기간에도 성경을 연구하는데 게을리하지 마시고 열심히 성경을 연구하시기 바랍니다.

 

‘풀 것이’ επιλυσις(에필뤼시스 1955) 해석, 설명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επι(에피 1909) ~을 근거로 하여, ~ 때문에, 라는 뜻과 λυω(뤼오 3089) 풀다, 놓아주다, 헐다, 라는 뜻의 합성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을 사사로이 풀지 않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원어에 기초하여 정확한 성경의 근거를 가지고 해석하고 설명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이렇게 성경의 정확한 근거를 가지고 성도들을 죄에서 풀어주고 해방시켜 주어야 할 것입니다. 율법에 매여 있는 자들을 풀어주고 자신의 의로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것을 모두 헐어버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로 구원을 얻은 것을 해석하고 설명해 주는 것이 성경을 사사로이 풀지 않고 하나님의 의도를 정확하게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학우 여러분들은 이제부터 성경을 해석할 때에 원어에 근거하여 성경을 해석해야 합니다. 나의 생각이 우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를 깨닫고 성경에 나타나고 있는 말씀을 성령님의 조명을 받아 정확하게 근거 있게 성도들에게 풀어주고 설명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원어의 근거를 찾기가 귀찮다고 내 생각대로 성경을 풀어버리면 결국 하나님께 징계를 받게 되고 성도들은 잘못된 성경 지식 때문에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벧후1: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성경의 예언의 말씀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고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서 말한 말씀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낸 것이 아니요’ φερω(페로 5342) 메고 오다, 가지고 오다, 감동하다, 운반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 인간의 뜻에서 말씀이 운반되어 나온 것이 아닙니다. 인간 스스로 감동하여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며 자신 스스로 말씀을 메고 함부로 전해서는 안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성막이 이동할 때에 법궤를 관리했습니다. 항상 법궤를 어깨에 메고 다녔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뜻대로 메고 다닐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내 어깨에 나의 영광을 위해 성경을 해석하고 풀어 버리면 하나님께 진노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의 말씀이 확실하게 사람의 뜻에서 나온 말씀이 아니라고 정확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직설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것이 이미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인간의 뜻이 전혀 담겨있지 않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과거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만 계획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인간에게 전하기 위하여 예언자들을 사용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해석하는 자들에게 감동을 주시지 않으면 절대 해석이 되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사람의 뜻대로 풀어버리는 사람들은 자신의 공명심을 위하여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해석하기 때문에 악령에 영향을 받아 성경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결국 이단이 되고 이단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절대 성경을 사람의 뜻대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성령 하나님의 감동에 의하여 성경을 해석해야 합니다. 이렇게 성경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내가 알지 못하면 성경을 내 마음대로 풀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방학기간에도 저와 여러분들은 마음을 무장해제하지 마시고 열심히 원어로 성경을 연구하여 학문을 연마하는데 게으름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대장장이의 풀무에 불이 꺼지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의사의 손에 칼이 없으면 직무유기입니다. 학자의 손에 책이 떨어지면 직무유기가 됩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생명을 살리는 학자이며 목사입니다. 이런 자들의 손에서 성경책이 떨어지면 결국 하나님 앞에서 직무유기가 되는 것입니다.

‘감동하심을 받은’ φερω(페로 5342) 메고 오다, 가지고 오다, 감동하다, 운반하다, 라는 뜻입니다. 그럼 성경을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성령님의 감동하심을 받아 말씀을 운반해야 합니다. 성도들에게 정확한 하나님의 의도를 제시하여 해석하고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항상 저와 여러분들은 두 어깨에 메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감동을 받지 않으면 절대 성경을 해석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의도를 하나님은 원어에 모두 풀어놓았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것만 알면 절대 내 마음대로 성경을 해석하지 않고 풀어서 설명만 해주면 됩니다.

 

그런데 성령님의 감동을 언제 받습니까? 시간과 장소와 공간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감동을 받게 됩니다. 성경을 교회에서 연구하든지 집에서 하든지 밖에서 하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은 성경을 볼 때에 깨달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분사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 현재에 하나님은 성경을 연구할 때에 눈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현재시제를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단어를 쓰고 있는데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았다고 했을 때에는 과거 시제를 사용했고 성령님의 감동을 받을 때는 현재시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차이가 무엇입니까? 과거 시제는 절대 사람의 뜻대로 나지 않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성경이 기록된 것을 말씀하시고 현재시제는 성령님의 조명은 지금 내가 받아야 만이 성경을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그것도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의 힘으로 성경을 깨닫고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지금 감동을 주시므로 성경을 기록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유기적 영감이며 축자적 영감입니다. 그렇다면 유기적과 축자 된 영감을 깨닫기 위해서는 성령 하나님의 조명을 지금 내가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가장 근접하게 깨달을 수 있는 도구가 원어입니다. 그래서 체데크성경원어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시는 학우들께서는 원어를 공부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시고 부지런히 학문을 연마하여 이 시대에 하나님 앞에서 크게 쓰임 받은 인물로 거듭나셔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방학기간에도 열심히 원어를 손에서 놓지 않기를 바랍니다. 방학기간 원어를 손에 놓고 다음 학기에 오면 공부하기가 벅차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한 학기 동안 열심히 공부하신 학우들의 노고를 치하하면서 다음 학기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뵙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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