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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삼서 1장 하나님 말씀] “성도의 삶”(요삼 1:1-4)

복음의 능력 2020. 11. 25.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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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삼서 1장 하나님 말씀 중에서 성도의 삶이 무엇인지에 관하여 말씀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요한은 가이오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가이오는 진리 안에서 성도의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도 구원받았으니 진리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십자가 복음의 말씀 안에서 살아갈 때 주님이 기뻐합니다. 이제 우리가 복음 안에서 주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 말씀 따라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성도의 삶”(요삼 1:1-4)

 

명제 : 가이오는 진리 안에서 성도의 삶을 살고 있다.

목적 :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한 말씀의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가 된 사람은 성도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종교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기 때문에 세상적인 삶을 살지만 성도는 주님 안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됩니다. 종교인은 율법주의에 빠져 율법대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율법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율법주의는 나쁜 것입니다. 율법주의는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자신을 드러내는 삶이 아니라 주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게 됩니다. 성도가 자기를 높이는 삶을 살게 되면 성령이 마음속에서 탄식하게 됩니다. 성도는 성령이 이끄는 데로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님도 요한의 세례를 받고 공생애가 시작되었을 때에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성도는 사생애의 삶이 아니라 공생애의 삶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공생애의 삶은 내가 주도적으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데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내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성도가 되었다면 내가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의 인생에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나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도록 주님께 의탁해야 합니다. 이런 자가 진정 성도이며 공생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공생애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내 생각과 달라도 주님이 이끄는 데로 따라가는 삶입니다. 나의 고집과 아집을 버리고 성령께서 이끄시는 데로 가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종교인의 신앙이 아닌 성도의 신앙을 갖기를 바랍니다.

 

요삼1:1 장로인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 하노라

 

사도 요한은 자신을 장로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한다고 말합니다. 요한은 가이오를 특별하게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종교인이 아니라 성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만 나오는 종교인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가이오와 같은 성도를 사랑합니다.

 

‘가이오’ Γαιος(가이오스 1050) 가이오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기쁜, 나는 기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이오는 이름에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진리 안에서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는 자를 말합니다. 가이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입니다. 종교인은 율법으로 구원을 얻으려 하기 때문에 교회 안에 있지만 가이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구원을 얻었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자의 삶은 매일같이 기쁨이 있습니다. 세상의 환경과 상황이 가이오의 믿음을 흔들지 못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빼앗지 못합니다. 이 시간 나도 가이오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입니다. 교회에 나와 율법의 행위를 주장하면서 나의 의만 드러내는 종교인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으면 나는 항상 기쁨이 떠나지 않습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주님은 나에게 평안을 주신다고 말합니다. 주님의 평안을 나에게 주십니다. 주님이 나에게 주신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는 않습니다. 주님의 평안이 내 안에 있으니 나는 마음에 근심과 두려움이 없습니다. 가이오와 같은 성도는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평안이 매일같이 있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평안이 있으니 기쁨이 넘치고 세상의 근심과 두려움이 사라지게 됩니다. 종교인들은 주님의 신랑이 없기 때문에 근심과 두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에 평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고대 근동의 과부는 자신이 스스로 모든 것을 책임지고 인생을 살아가니 삶이 지치게 됩니다. 하지만 신랑이 있는 여자는 신랑이 책임지기 때문에 삶이 지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랑을 맞이했기 때문에 영적인 과부가 아닙니다. 신랑이 책임지기 때문에 삶이 고생스럽지 않습니다. 이런 자가 성도입니다.

 

요삼1: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사도 요한은 가이오에게 편지를 쓰면서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요한이 간구한다고 쓰고 있습니다. 성도는 먼저 영혼이 잘되어야 합니다. 교인은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기를 먼저 구하지만 성도는 나의 영혼이 잘되기를 먼저 구합니다.

‘잘됨같이’ ευοδοω(유오도오 2137 동사, 직설법, 현재, 수동태, 단수, 3인칭) 일이 잘되다, 번영하다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ευ(유 2095) 잘, 좋게라는 뜻과 όδος(3598, 호도스) 길, 생활 방식이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영혼이 잘 된다는 것은 좋은 길로 인도되어 구원을 받고 주님의 생활 방식을 따라가면서 살아가는 성도의 삶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먼저 영혼이 잘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직설법은 사도 요한이 가이오의 영혼이 잘되기를 실제로 간구했다는 의미입니다. 현재 시제는 성도인 가이오가 매일같이 영혼이 잘되고 주님의 길을 걸어가서 타락하지 않기를 원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수동태는 영혼이 주님의 진리를 따라가는 성도는 자신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계신 성령께서 이끌어 가시니 잘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성도가 되었습니다. 성도가 되었다는 것은 공생애의 삶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먼저 내 영혼이 주님의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주님이 가신 그 길을 따라가는 자가 성도입니다.

 

마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자신을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고 했습니다. 성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그 당시 죄인들은 로마의 처형 법에 의하여 자신의 십자가를 메고 죽음의 장소로 갔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로 올라가셨습니다. 내가 성도라면 나의 세상적인 정욕을 부인하고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의 삶을 살기 위해서 죽을 각오로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현재는 옛날처럼 순교자의 삶을 살지는 않지만 세상적인 정욕을 버리고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세상에서 많은 것을 내가 포기해야 합니다. 세상에서의 육적인 욕심과 정욕을 포기해야 만이 주님을 따를 수가 있습니다. 성도는 영적인 주님의 말씀을 듣고 따라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우선은 영적인 구원입니다. 내 영혼이 구원받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잘되고’ ευοδοω(유오도오 2137 동사, 부정사, 현재, 수동태) 일이 잘되다, 번영하다는 뜻입니다. 영혼이 잘되고 나면 범사가 잘된다고 했습니다. 영혼이 잘된다는 것은 영혼이 구원을 받고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로 거듭난 것을 말합니다. 이런 자가 그다음에는 범사가 잘되게 됩니다. 세상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부정사는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어느 곳에 있든지 주님의 말씀대로 육체가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혼이 구원받은 자는 진리 안에 있기 때문에 육체도 세상에서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게 됨으로 성도로서의 삶을 여러 사람에게 보여주게 됩니다.

현재 시제는 영혼이 잘된 사람은 범사가 계속해서 잘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수동태는 영혼이 잘된 사람도 하나님의 의지로 영혼이 구원을 얻어 잘되었는데 범사가 잘된 사람도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관여하실 때 잘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영혼과 범사가 잘된 것은 내가 잘나서 잘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축복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영혼이 번성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신 믿음으로 가능합니다. 육체의 범사가 잘된 것도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함께 해주셔서 이 세상에서의 모든 일에 관심을 가지고 축복해 주셨기 때문에 번성할 수 있습니다. 내가 잘된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지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요삼1: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주변에 많은 형제들이 사도 요한에게 와서 가이오에게 있는 진리를 증언해주었다고 말합니다. 네가 진리 안에서 행동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요한은 심히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가이오와 같은 성도는 진리를 선포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 안에서 주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성도는 가이오처럼 진리가 있어야 합니다. 진리가 없다면 성도가 아닙니다. 종교인은 그 안에 진리가 없습니다. 초대교회에는 거짓 복음을 전하는 거짓 선생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은 그 안에 진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가이오의 마음에는 진리가 살아있습니다. 진리가 살아있는 사람은 진리 가운데 행동하게 됩니다.

 

‘행한다 하니’ περιπατεω(페리파테오 4043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단수, 2인칭) 돌아다니다, 걷다, 행하다는 뜻입니다. 사도 요한은 많은 형제들에게 가이오의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주님과 동행한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어디에 있든지 진리 안에서 주님과 함께 걷고 행동하며 돌아다니면서 진리의 복음을 전파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직설법은 가이오가 실제로 진리 안에서 행동하면서 복음을 전파했다는 의미입니다. 현재 시제는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계속해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구약에서 성도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 있습니다.

 

창5: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후에 하나님과 삼백 년을 동행하면서 살았습니다. 65세까지는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았습니다. 에녹은 65세까지는 종교인의 삶을 살았던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므두셀라를 낳고 회개하여 삼백 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진리 안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어디에 있든지 주님과 함께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이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우리도 가이오와 에녹처럼 성도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에녹은 삼백 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살다가 죽음 없이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공생애의 삶을 살았던 에녹을 하나님이 하늘로 불러올리신 것은 마지막 날에 성도에게도 부활하여 승천된다는 것을 예표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도는 어디에 있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안에서 생활해야 합니다. 세상에 있든지 교회에 있든지 가정에 있든지 우리는 성도이기 때문에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요삼1: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사도 요한은 주님의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동하면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소식을 듣는 것이 너무나 기쁘다고 말합니다. 목사의 큰 기쁨은 성도들이 주님 안에서 비 진리를 따르지 않고 복음을 따르는 것을 기뻐합니다. 교회에서 열심히 복음을 전해주었는데 거짓 복음을 따르는 종교인이 된다면 목사는 마음이 아픕니다. 더 나아가 주님은 마음이 더 아픕니다. 이제 우리는 종교인이 아니라 성도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시간 우리는 성도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가 복음을 듣고 영혼이 구원을 받았다면 종교인의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 당시에 종교인들은 겉과 속이 다른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믿지 않고 율법의 행위에만 초점을 맞추어 사람 앞에서 자신의 거룩함만 나타내려고 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에서도 종교인이 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 복음을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위를 우선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바라보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성도는 주님만을 높이는 사람이고 교인은 자신만을 높이는 사람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성도가 되었으니 언제든지 어디에 있든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을 살면서 주님만을 높이는 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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