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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히브리어 원어 성경 강해] 대제사장 아론 집안 소개(민 3:1-4)

복음의 능력 2022. 1. 25.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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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3장에서 대제사장 아론의 가정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론의 아들들은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입니다. 구약 시대의 대제사장은 직분이 아들로 승계가 되었습니다. 

 

대제사장 아론 집안 소개(민 3:1-4)

 

1절 비엘레 톨리도트 아하론 우모셰 비욤 디베르 아도나이 에트 모셰 비하르 시나이

성 경: [민3:1]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아론의 가계(家系)]

󰃨 여호와께서 ... 이러하니라 - 어떤 특정한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라기보다 각 장의 내용으로 들어갈 때에 관용적으로 사용되는 히브리 문학적 표현의 한 기법이다(2:4). 한편 본절의 내용을 직역하면 '그리고 이 부분은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계시하실 때의 일로서 아론과 모세의 후손에 대한 말씀이니라'이다.

󰃨 아론과 모세의 낳은 자 - 여기서 '낳은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톨도트''일족들', '세대'(generations), '가문', '족보'등으로 번역된다. 본장 중 2-4절은 아론의 아들로서 제사장이 된 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17절 이하는 레위 지파의 족장 이름 및 인구수를 가계별로 비교적 상세히 밝히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모세의 자손들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의 이름이 여기 언급된 것은 그가 아론과 더불어 레위 지파의 머리이며 영적인 아버지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었다(Keil). 한편 여기서 아론의 이름이 이례적으로 모세보다 먼저 언급된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 이유는 아마 연령상으로는 그가 장자였을 뿐 아니라 본장에 소개되는 제사장들의 아버지요, 초대 대제사장이었고, 또한 레위인들 전체를 통솔하는 종교 지도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론의 직계 자손들은 제사장이 된 반면 모세의 후손들은 제사장을 보필하는 일반 레위인들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Keil). 따라서 아론과 모세를 개인적으로 볼 때는 분명 모세의 권위가 절대적이지만 (4:16; 32:22; 12:1-16), 그것은 어디까지나 모세 개인에게만 국한되는 특별 은총이었고, 회막 봉사를 중심으로 하는 종교적 사명에 있어서는 분명 아론의 후손들이 모세의 후손들보다 고귀한 직분에 임명되었으므로, 여기서는 바로 그러한 사실에 근거하여 아론을 모세보다 앞세워 기록한 것이다. 한편 모세가 낳은 자들의 족보는 대상 23:14-17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들은 평범한 레위인으로 조용히 봉사했던 것 같다. 이것은 아론의 두 아들이 제사를 잘못드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를 사 죽임을 당하였고(10:1, 2), 위대한 종교 지도자 엘리나 사무엘의 아들들이 불량했다고 하는 평가(삼상 2:12; 8:1-3)에 비춰볼 때 충분히 유추 가능한 일이다. 이는 모세의 자녀 교육이 철저했음을 시사한다. 한편 이와 같은 기록상의 다양한 조절은 결코 이 책이 오류 투성이 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당신의 초월적인 목적과 경륜에 부합된 내용들을 중심으로 엮어져 간 책임을 나타낸다.

2절 비엘레 쉬모트 비네 아하론 하비코르 나다르 바아비후 엘리아자르 비이타마르

성 경: [민3:2]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아론의 가계(家系)]

󰃨 나답...아비후...엘르아살...이다말 - 이들은 아론이 그 아내 엘리세바를 통해 얻은 네 아들들이다(출 6:23). 따라서 이들은 제사장 성별식 때 아버지인 아론과 더불어 거룩한 제사장으로 위임받았다(8:6-13). 그러나 이 네 아들 중 장자인 나답과 차자인 아비후는 제사를 잘못 드린 관계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10;1, 2). 따라서 셋째 아들인 엘르아살이 후일 아비 아론의 뒤를 이어 대제사장직을 계승하였다(20:25-28). 한편 아론의 넷째 아들인 이다말은 후일 이다말 가문의 조상이 된 자이나(대상 24:4-6). 그에 대한 특별한 언급은 없다. 다만 성막 건축 시나 광야 행진 시 제사장으로서 그 맡은 바 직분을 충실히 감당한 자로 서술되고 있을 뿐이다(출 38:21; 4:28, 33).

3절 엘레 쉬모트 비네 아하론 하코하님 하미쉬힘 아셰르 밀레 야담 리카헨

성 경: [민3:3]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아론의 가계(家系)]

󰃨 기름을 발리우고 거룩히 구별되어(함메슈힘) - 여기서 '기름을 발리우고'에 해당하는 기본 동사 '마솨흐'는 곧 '기름을 받은 자'(the anointed)란 뜻이다. 그런데 '기름을 붓다'라는 말을 '기름 부음을 받은 자'(the anointed)란 뜻을 가진 '메시야'(마쉬아흐)라는 명칭의 어근이 되기도 한다(단 9:25, 26). 한편 아론의 아들들은 관유(灌油)로 기름 부음을 받는 의식을 가짐으로써 거룩히 구별되어 제사장직을 수행할 수 있었다(29:4-9). 물론 원문에는 '구별되다'란 말이 언급되지 않고 있으나, 의미상 그들은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된 것이다. '기름을 붓는 행위'는 그 대상에 대한 소유권을 외적으로 표현하는 한 방법인 것이다. 한편 지사장 성별식 때 사용되는 거룩한 기름, 곧 관유는 성령을 상징한다(출 30:22-33). 그러므로 그들은 성령의 역사로 성결하게 구별되어 봉사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이는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4:8)께서 성령으로 기름부음 받아 사역하신 사실(10:10:38)을 상기시킨다. 아울러 여기서 우리는 오늘날 '왕 같은 제사장'인 우리들(벧전 2:9) 역시 어떠한 자세로 일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즉 우리는 하나님께서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성령(2:7)으로 세례를 받고(고전 12:13), '복음의 제사장'(15:16)으로서 복음사역에 종사해야 하는 것이다(61:1-4).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가운데 기름부음이 되신 성령의 지시를 따라 순종하고 행동해야 함을 의미한다(36:27; 요일 2:27).

󰃨 위임받은(밀레 야담) - 직역하면 '그들의 손이 채워진'이다. 그러므로 '위임식'이란 곧 제사장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그들의 손에 예물을 채워주는 의식을 가리킨다(7:37). 그리고 본절에서 이 말은 '기름을 발리우고'라는 말과 연결된다. 여기서 기름을 위에서 언급한 대로 성령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을 또한 성령으로 채움을 받은 자들이라 볼 수도 있다. 그런 맥락에서 미가 선지자는 자신이 오직 여호와의 신으로 채움을 얻고 선지자의 직무를 감당할 것이라고 고백했다(3:8). 여기서 '채움''충만'을 뜻한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오직 성령 충만한 자라야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혹자는 '그들의 손이 채워졌으므로 다른 일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실로 성령으로 충만하고 사명감으로 불타는 하나님의 일꾼을 세상적인 일로 인해 마음이 나뉠 수 없다(6:24).

4절 바야마트 나다브 바아비후 리피네 아도나이 비하키리밤 에쉬 자라 리피네 아도나이 비미드바르 시나이 우바님 로 하이우 라헴 바이카헨 엘리아자르 비이타마르 알 피네 아하론 아비헴

성 경: [민3:4]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아론의 가계(家系)]

󰃨 다른 불(에쉬 자라) - '이상한 불'(KJV, strange fire), '신성치 않은 불'(RSV, Living Bible-unholy fire), '공인되지 않은 불'(NIV, unauthorizedfire)등을 의미한다(10:1). 성막 봉사 시 하나님께서는 오직 번제단 위에서 피운 불로 분향단에 점화할 것을 요구하셨다(16:12, 13). 그러나 나답과 아비후는 그에 불순종했으며 자의(自意)에 따라 하나님을 예배하다가 하나님의 분노를 사 결국 여호와의 불로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실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는 것처럼 망령된 일은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경고를 교훈 삼아 하나님께 봉사하는 자들을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사실(삼상 15:22)을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 여호와 앞에(리프네 예호와) - 직역하면 '여호와 면전에'란 뜻이다. 따라서 나답과 아비후의 경거망동은 여호와 하나님의 얼굴을 완전히 무시한 행위나 다름없었다. 결국 여호와 앞에 방자했던 그들은 '여호와 앞에서' 심판을 받고 말았다. 한편 오늘날 하나님 앞에서 복음의 제사장 된(벧전 2:9)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Coram Deo) 서 있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고양(高揚)하든지 아니면 훼손하든지 둘 중 하나의 결과를 초래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운명과도 직결된다. 그런 점에서 침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 직무를 성실히 수행한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삶으로써(눅 1:6) 의인으로 인정받았던 것은 우리에게 좋은 귀감이 된다.

󰃨 무자하였고 - 나답과 아비후에게 자식이 없었던 것은 자연적인 불임의 결과이기보다 하나님의 저주에 따른 결과였다. 사실 자식을 하나님의 축복의 증거로 간주했던 히브리인의 사고 개념상(127:3), 나답과 아비후에게 임한 징계와 그들의 무자식이 단순한 우연일 수 없었다.

󰃨 아론 앞에서(알 프네 아하론) - 이 말은 '아론이 생존 시에'(RSV, in the lifetime of Aaron)로 번역함이 좋을 듯하다(Pulpit Commentary). 그것은 그들이 아론과 함께 성직을 위임받았고 (28:1), 아론 평생에 그를 보좌하며 봉사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아론 사후에도 제사장 직무를 계속 수행했다(20:22-29; 27:18-23). 그러나 그들의 사명도 아론처럼 유한한 것이었다. 결국 아론의 뒤를 이어 대제사장이 된 엘르아살도 자신의 죽음과 함께 대제사장직을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밖에 없었다. 이 사실을 돌아보며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의 영원성을 설파(說破)했다. '저희 제사장 된 자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을 인하여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7:23, 24)라고 했던 것이다. 이처럼 아론과 그 자손들의 제사장직은 일시적이고 당대에 한한 것이었으나,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은 영원하여 만세에 효력을 미치는 것이다(10: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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