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디모데전서 5장 강해설교 중에서 목양의 자세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제목: “목양의 자세” (딤전 5장)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디모데전서 5:1-25
요절: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두 배나 존경할 자로 알며,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딤전 5:17)
주제: 목양하는 방법에 대한 권면과 목회자에 대한 적극적 태도를 권면하다.
오늘은 디모데 전서 5장을 강해합니다. 목양의 자세를 가르치며 특히 연세 많으신 여성들과 목회자들에 대해 교훈하고 있습니다.
1. 참 과부를 공경하라(딤전 5:1-8)
1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면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2 늙은 여인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인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3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 4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도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5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밤낮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6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7 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그들로 책망받을 것이 없게 하라. 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1-2절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면하되 아버지에게 하 듯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 듯하고, 늙은 여인에게는 어머니에게 하 듯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 듯하라.” 말씀 사역자들은 성도들을 교훈하며 권면할 때 기본적인 예절과 덕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나이 많은 성도님들에게는 꾸짖지 말고 자기의 아버지에게 하듯이 대하고, 젊은 성도들에게는 형제에게 하듯이 권면하고, 나이든 여성들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이 대하고, 젊은 여성들에게는 일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이 처신해야 합니다. 교회 내에서 성추행이나 성적 문제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구원 진리는 사람을 사람다워지게 하는 것이지, 사람으로 비상식적이고 예절 없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직분자들과 성도들은 예절 있고 덕스러운 인격자가 되어야 하고, 말씀 사역자들은 더더욱 높은 마음을 가지 말고 항상 겸손하게 그리고 예절 있게 말하며 선한 품행의 행동해야 합니다.
3절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 Honour widows that are widows indeed.” ‘존대(尊敬待)하다’ 즉 경대(敬待)란 원어(티마오 τίμαω timao)는 ‘공경하다, 존경하다’는 뜻입니다. 당시 ‘참 과부’는 나이가 회갑을 넘긴 과부로서 그녀를 돌아볼 자녀나 친척이 없고 평소에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거나 환자들을 돌보는 일 등의 선한 일들을 행한 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런 자를 공경하고 물질적으로 도우며 존경하라는 가르침입니다.
4절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도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과부에게 자녀들이나 손자들이 있으면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부모나 조부모를 공경하며 보답하기를 배우게 해야 합니다. 효도(유세베인 εὐσεβεῖν “to show piety towards”)는 제 5계명으로 부모에게 경건을 보이라는 말입니다. 존경하는 마음과 태도로 품위를 갖춘 언행, 책임지는 삶, 비중과 무게를 두는 태도를 포함합니다. 행 17:23에서 유세베인 동사는 우상을 섬기는 것 “너희들이 위하는 것들 ye ignorantly worship”으로 사용됩니다. 부모들이 별세하시고 나서 신으로 숭배하거나 섬기는 일이 제사로 연관되어 이해되어집니다. 그러나 부모님들이 살아 계실 때 마음 편하게 해 드리고 존경하고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것이 자녀들의 마땅한 의무입니다. 신앙생활을 잘하시는 부모님이라면 그분들의 믿음을 본받아 살아가며 자녀들의 후손에게도 이 믿음을 전수하는 것이 효도이며, 믿지 아니하는 부모님이라면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게 하여 천국으로 가시게 하는 것이 최고의 효도입니다. 그래서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효자, 효녀가 되게 하셔야 하며, 자녀들은 부모님의 믿음을 본받아 효도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십니다.
5-6절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두 종류의 과부(widow)가 있다는 것입니다. 한 종류의 과부로서 외롭기에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는 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육신적으로는 외롭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과 늘 교제함으로 은혜 풍성한 삶을 살아갑니다. 만일 그녀가 남편을 잃지 않았다면 그렇게 하나님과 천국을 사모하고 항상 기도하는 생활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 종류의 과부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대신 ‘육신의 쾌락을 구하며 사는 자’입니다. 남편이 없는 것이 그녀로 하여금 오히려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게 할 뿐입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주신 환경을 선용할 지혜를 가지지 못합니다. 이런 과부는 영적 생명을 갖지 못합니다.
7-8절 “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그들로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라.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7절에서 구원받은 우리는 책망받을 것이 없게(blameless, 아네피렙토이 ἀνεπίληπτοι) 살라고 합니다. 육신에 치우쳐 세상의 헛된 향락을 구하며 살 자들이 아니고 하나님을 바라며 천국을 소망하고 말씀과 기도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소망을 둔 경건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8절에서 가족과 친족들에 신앙의 본을 보이라는 권면입니다. 신앙과 행위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어떤 자녀나 손자들이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자기의 외로운 부모님이나 어떤 가족이나 친척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그는 믿음이 없는 자입니다. 그런 사람은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고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일차적으로 자기 가족을 사랑하고 돌아볼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보다 더 많이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복음의 빛을 가정에서 비취는 빛의 자녀로서 본이 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2. 과부에 대한 규례(딤전 5:9-16)
9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는 나이가 육십이 덜 되지 아니하고 한 남편의 아내였던 자로서 10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만일 자녀를 양육하며 만약 나그네를 대접하며 만약 성도들의 발을 씻으며 만약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만약 모든 선한 일을 행한 자라야 할 것이요 11 젊은 과부들은 올리지 말지니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가고자 함이니 12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정죄를 받느니라. 13 또 그들은 게으름을 익혀 집집으로 돌아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쓸데없는 말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 14 그러므로 젊은이는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비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 15 이미 사탄에게 돌아간 자들도 있도다 16 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 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주고 교회가 짐 지지 않게 하라. 이는 참 과부를 도와주게 하려 함이라.
9-10절에서 3절에 언급한 참 과부의 자격을 논하고 있습니다. ① 환갑이 넘은 여인(나이 60이 덜 되지 아니하고 under threescore years old) ② 한 남편의 아내였던 자로서(having been the wife of one man) ③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well reported of for good works) 만일 자녀를 양육하며(if she have brought up children), 만일 나그네를 대접하며(if she have lodged strangers) 만일 성도들의 발을 씻기며(if she have washed the saints' feet) 만일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if she have relieved the afflicted), 만일 모든 선한 일을 좇은 자라야 할 것이요(if she have diligently followed every good work.)” 이 말씀은 초대교회가 물질적으로 공급해야 할 과부들의 명부를 작성하였음을 보입니다. 여성 나이가 60세라는 것은 그들이 경제적으로 스스로를 공급하기 어렵고 또 그들이 재혼할 만하지도 않은 나이를 가리킨 것 같습니다. 또한 합법적이지 않게 이혼하고 재혼한 자를 제외합니다. 60세가 되기까지 한 남편의 아내이었던 자라면 그녀는 충실한 아내의 역할을 잘 감당한 자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여러 가지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는 자이어야 했습니다. 선한 행실의 예로 자녀들을 양육한 일이나 나그네들을 대접한 것이나 성도들의 발을 씻긴 것이나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한 일 등을 들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존경을 받을 신앙의 여성이 참 과부의 자격이 있습니다.
11-15절 젊은 과부들(the younger widows)은 돌보아주어야 할 과부 명단에 올리지 말 것을 권면합니다. 이유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가고자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정욕으로 배반한다’는 원어(카타스트레니아소시 καταστρηνιάσωσι katastreniasosi)는 ‘음탕하게 된다, 정욕적이게 된다 to wax wanton’는 뜻입니다. 물론 모든 젊은 과부들이 다 그렇게 된다는 말은 아니지만, 이런 자들이 생기게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을 과부 명부에 올리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서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정죄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이들은 게으름을 익혀 집집으로 돌아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쓸데없는 말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 그러므로 환갑 전의 과부들은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비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지 않는데도 스스로 독신(獨身)을 서약하는 것은 자신에게 올무가 되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15절에 어떤 과부는 이미 사탄에게 돌아간 자들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사탄(Σαταν)에게 돌아갔다’는 원어(엑세트라페산 오피소 ἐξετράπησαν ὀπίσω, turned aside)는 ‘사탄을 따라 치우쳤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은 혹 사탄의 시험을 잠시 받을 수 있을지라도 결코 사탄의 지배를 받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탄의 권세 아래서 건져 자기의 품 안에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은 사탄을 따라 그리스도에게서 떠나며 진리의 정로(正路)에서 치우쳐 나갑니다. 젊은 과부들이 결혼하여 사탄의 시험에 빠지지 않게 되기를 원합니다.
16절 “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 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주고 교회가 짐지지 않게 하라(let not the church be charged). 이는 참 과부를 도와주게 하려 함이라.” 믿는 성도에게 과부 친척이 있으면 그가 도와주고 교회로 짐 지지 않게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3. 목회자에 대한 태도(딤전 5:17-25)
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18 왜냐하면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기 때문이라. 19 장로에 대한 고발은 두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 20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 나머지 사람들로 두려워하게 하라. 21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불공평하게 하지 말며 22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하지 말며 네 자신을 지켜 정결하게 하라. 23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24 어떤 사람들의 죄는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 뒤를 따르나니 25 이와 같이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아니한 것도 숨길 수 없느니라.
17-18절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왜냐하면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기 때문이라.” 교인들은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을 해야 하는데 특히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목회자들을 배나 존경하라고 권면합니다.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장로들은 목회자들로 더욱 존경하라고 말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교인들이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목회자들을 더욱 존경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성경에 복음의 일꾼들을 물질적으로 공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이라는 말(the scripture 헤 그라페 ἡ γραφή he graphe)는 단수명사로서 여러 개의 책들로 구성된 성경을 한 권의 책으로 표현합니다(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All scripture is given by inspiration of God). 구약 39권의 책들과 신약 27권의 책들은 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고 “한 권의 성경”으로 성경의 저자는 한분이신 성령님이시며 이를 40여 구약 인물과 10여 신약 인물을 통해 주신 생명의 말씀입니다. ‘성경에 일렀으되’(For the scripture saith, 레게이 헤 그라페 λέγει ἡ γραφή, legei he graphe) 즉 성경이 말한다는 것은 성경을 의인화(擬人化)한 표현입니다. 실상 성경이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지만,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므로 성경이 말한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Thou shalt not muzzle the ox when he treadeth out the corn.’는 말씀은 신명기 25:4을 인용합니다. 이 말씀은 물론 일차적으로 문자적 의미로 곡식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워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복음 사역자들에게 적용합니다.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씀인데 눅 10:7 “일꾼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니라.”는 말씀과 짝을 이룹니다. 목회자에게 반드시 사례를 하라는 것입니다. 말씀 사역자들에게 드리는 재정 지원을 월급이나 연봉(salary)이란 단어를 쓰지 않고 사례금(gratuity)이라 합니다. 목양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드리는 것입니다. 월급은 일을 다한 후 받는 삯인데, 사례비는 ‘목양을 잘해 주세요’며 미리 드립니다. 그러면 목회자는 이를 감사히 받고 열과 성을 다해 목회를 해야 합니다. 사례비에서 혹시 남으면 어려운 성도들을 위해 사용합니다. 만약 목회자에게 사례비를 드리지 못하면 목회자는 생활 때문에 목양 대신 세상의 직업이나 일을 하여 생활을 하기 때문에 그만큼 목양을 하시지 못하기에 영적 양육을 제대로 받을 수 없게 됩니다. 목회자는 마땅히 사례비를 받을 자격이 있음을 일하는 소에게 먹을 것을 시간마다 제공해야 하는 것으로 예증을 하는 것입니다. 선교사님들도 재정적인 후원으로 복음을 전하며 선교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직원들이나 노동자에게도 반드시 임금을 그때그때 지급해야 합니다. 곡식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고 먹을 양식을 제공해야 합니다.
19-20절 “장로에 대한 고발은 두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 나머지 사람들로 두려워하게 하라.” 목사와 장로는 중요한 직분이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송사(lawsuit)는 두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 19:15 “사람이 아무 악이든지 무릇 범한 죄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라”라고 합니다. 일반인들에게도 그렇게 해야 한다면, 장로들에게는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교회의 직분자들에 대한 송사는 경솔히 이루어져서는 안 되며 신중하게 또 정확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20절에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 꾸짖어 나머지 사람으로 두려워하게 하라.” ‘범죄한 자들’(투스 하마르타논타스 τοὺς ἁμαρτάνοντας tous hamartavnontas)의 원어는 현재분사로서 ‘계속 범죄하는 자들’이나 ‘죄 가운데 있는 자들’을 말합니다. 범죄한 자들은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야 할 이유는 그들이 현재 죄 가운데 있기 때문이며 다른 이들에게 그 죄가 전염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범죄자는 공개적으로 책망받아 회개하게 해야 했습니다. 만일 그가 그 책망을 인신공격이나 인격모독으로 생각하여 불쾌하게만 여긴다면 그는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는 자입니다. 정말 그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책망받는 그 죄를 즉시 회개하며 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범죄할 수 있습니다. 창피를 당하며 정죄당할 때 오히려 좋은 기회를 삼고 주님 앞으로 돌아오면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다윗도 나단 대언자의 방문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고범죄(알고 지은 죄 presumptuous sins)를 용서받으면 됩니다. “하나님이여 주님의 인자를 따라 제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님의 많은 긍휼을 따라 제 죄악을 지워 주소서. 저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저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우슬초로 저를 정결하게 하소서. 제가 정하리이다. 저의 죄를 씻어 주소서. 제가 눈보다 희리이다...주님의 얼굴을 제 죄에서 돌이키시고 제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하나님이여 제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제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시 51:1-2, 7, 9-10)
21절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불공평하게 하지 말며” 천사들 중에는 타락한 천사들도 있지만 택하심을 받은 거룩한 천사들이 더 많습니다. 그들은 마지막 심판 날에 하나님의 일을 받들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심판자 하나님 앞에서 말하고 행해야 합니다. 주님의 종들은 아무 일에도 편견이 없어야 하고 치우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정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의 일꾼들은 정의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는 범사에 공명정대하며 공평해야 하며, 모든 불의와 불공정 및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교회의 재판 회의는 바르고 공평하며 양심에 기초한 회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원고와 피고가 다 충분히 발언할 기회를 얻어야 하며 충분한 소명의 기회를 주어 억울함이 없어야 합니다. 잠 18:17은 “송사에 원고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 피고가 와서 밝히느니라 He that is first in his own cause seemeth just; but his neighbour cometh and searcheth him.”고 가르칩니다.
22절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하지 말며, 네 자신을 지켜 정결하게 하라.” ‘안수 lay hands’는 안수받는 자를 성별되이 구별하며 그에게 하나님의 일을 맡기고 축복하는 기도입니다. 안수할 때 안수하는 자는 자기의 영과 혼을 상대방에게 진지하게 쏟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의미심장한 행위가 경솔하게(suddenly) 이루어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안수하기 전에 철저하게 회개하도록 해야 하며, 자격을 엄격하게 심사하며, 검증한 후 하자가 없을 때 귀한 직분을 위임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하지 말라 neither be partaker of other men's sins”는 말씀(메데 코이노네이 하마르티아이스 알로트리아이스 μηδὲ κοινώνει ἁμαρτίαις ἀλλοτρίαις)은 ‘다른 이들의 죄에 참여치 말라’는 뜻입니다. 죄는 전염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성도의 교제시 우리는 죄에 빠지지 않기를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깨어 있지 않으면 범죄자와의 친분 관계 때문에 우리는 그의 죄에 영향을 받게 되고, 그 죄에 참여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친한 자라 하더라도 우리는 그의 범죄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네 자신을 지켜 정결케 하라 keep thyself pure”는 말씀은 교리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다 적용이 되는 권면입니다. 이 세상에는 교리적으로, 사상적으로 이단 사설들이 많고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죄악된 풍조들과 일들이 많습니다. 이 모든 것들의 배후에는 사탄과 악령들의 활동이 있습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지식과 도덕성에 있어서 이미 법적으로 깨끗케 되었고 또 실제적으로도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23절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디모데의 ‘자주 나는 병’이 아마 위병으로 사도 바울의 육체의 가시처럼(고후 12:7), 만성적 질병이었던 것 같습니다. 주님의 목회자나 성도에게 고난은 결코 불행의 요소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영적인 은혜와 복입니다. 성도는 고난을 통해 더욱 겸손해지며 더욱 주님만 의지하게 되며 더욱 성결해지며 더욱 천국만 바라보게 됩니다. 위장병 치료를 위해 포도주(wine 오이노스 οἶνος)를 권합니다. 약주의 개념입니다. 정상적인 사람은 적당량의 포도주를 마시면 위액분비가 증가하므로, 감정적인 긴장에 의해 위액분비가 안 되는 환자에게는 식전의 포도주가 효과적이랍니다. 거기다 포도주의 페놀 화합물은 살균작용이 있어서 경련성 변비, 대장염, 설사 등 위장관의 감염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포도주의 산도는 위산과 비슷하고, 적은 양으로 타액 분비를 촉진하고 위장운동을 자극하며 변비에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이 그리스도인들도 음주를 해도 된다는 생각으로 잘못 사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노아 할아버지가 홍수 후 포도주로 인해 실수를 하였고(창 9:20-21) 솔로몬의 잠언에서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그것이 마침내 뱀 같이 물 것이요, 독사 같이 쏠 것이며” (잠 23:31-32) 권면의 말씀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24-25절 “어떤 사람들의 죄는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 뒤를 따르나니 이와 같이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아니한 것도 숨길 수 없느니라.” 사람들의 죄는 먼저 혹은 나중에 드러나 재판정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들이 이 세상에서 다 드러나지 않는다면, 마지막 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다 드러나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는(전 12:14) 하나님의 철저한 공의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은밀한 구제도, 무익한 말 한마디도 다 갚음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마 6:3-4; 12:3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늘 자신을 점검하고 하나님의 종으로 관리를 합시다. 고후 13:5의 말씀대로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선한 행실의 증거를 날마다 실천하며 사탄, 시험, 죄악에서 벗어나 진리, 빛, 사랑 가운데 거하시기 바랍니다. 존경받는 목회자가 되시며, 또한 말씀과 가르침에 전념하시는 목회자를 잘 대접하시기 바랍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 10:41-42) 말씀을 기억하며 하늘나라의 상급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과 정의 주님, 저희들로 하여금 매일 매 순간 경건과 성별의 생활로 인도하옵소서. 무궁한 태양이 되시는 예수님으로부터 빛을 받아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 5:16)는 말씀을 실천하게 하옵소서. 존경받는 지도자가 되게 하시며 신실하고 착한 청지기로 주님만을 따라가게 하옵소서. 8월을 마무리 짓고 9월을 맞이하여 “믿음의 달”로 지키며 오직 믿음으로 살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요한복음 12제자 성경공부] 신중한 사람 빌립(요한복음 1:4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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