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설교 알쓸잡

[데살로니가후서 강해설교말씀] 재림 신앙의 균형(살후 3:1-18)

복음의 능력 2022. 4. 9. 10:24
반응형

데살로니가후서 3장에서는 종말에 성도들이 어떻게 믿음을 지켜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종말에 주님이 더디 오신다고 게으름 피우면서 신앙생활을 하면 안 됩니다. 주님은 도둑같이 이 땅에 재림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재림 신앙의 균형(살후 3:1-18)

 

1-5, 기도의 교통

[1-2] 종말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 . . .

바울은 말한다. “종말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달음질하여 영광스럽게 되고 또한 우리를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기도를 부탁한다. 목사가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당연하나, 성도들도 목사를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데살로니가전서 5:25,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기도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체험하는 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을 위해서든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고 또 기도해야 할 것이다. 특히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하나님의 종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부탁한 기도 제목은 두 가지이었다. 첫 번째는, 주의 말씀이 그들 가운데서와 같이 달음질하여 영광스럽게 되기를 기도하라는 것이었다. 바울이 전한 주의 말씀은 그들의 영혼을 죄에서 구원한 능력의 말씀이었다(살전 1:5). 이제 그는 그 동일한 말씀이 다른 사람들 속에서도 힘있게 역사하기를 기도하라는 것이다. ‘달음질하다는 원어(트레코)는 ‘자유로이 혹은 빠르게 전진한다는 뜻이다. ‘영광스럽게 된다는 것은 주의 말씀이 사람들 가운데서 영혼들을 구원하는 역사를 이루는 것을 가리킨다. 말씀의 힘있는 역사, 그것은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말씀의 일꾼들이 간절히 소원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때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성도들도 이 일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가 교인들에게 부탁한 두 번째 기도 제목은, 바울 일행을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져달라는 것이었다. ‘무리하다는 원어(아토포스)이성과 양심을 저버리다, 악하다는 뜻을 가진다. 바울이 이런 기도를 부탁한 것은 육신의 죽음을 두려워했기 때문이 아니고 복음 전파의 직무를 다하기를 원해서이었을 것이다. 주께서 바울에게 맡겨주신 사도의 직무가 악한 자들에 의해 방해를 받아서는 안 되었다. 바울은 그 직무를 완수하기를 원하고 있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사람에게 전파되지만 모든 사람이 다 믿는 것이 아님을 증거한다.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제자들은 그를 떠나갔고 더 이상 그와 함께 다니지 않았다(6:66). 바울이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도착하여 날을 정하고 유대인들에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했을 때 그 말을 믿는 사람들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28:24). 심지어 지금 믿는 것처럼 보이는 자들 중에도 하나님께서 참으로 구원하신 자가 아니면 어느 날 떠나갈 수 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심은 것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라”고 말씀하셨다(15:13).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믿지 않는 자들의 방해나 핍박을 이상히 여기지 말고 다른 곳으로 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주께서 가르치신 바이었고 사도들이 행한 바이었다.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고 말씀하셨다(10:14). 사도행전 18:6-7에 보면, 유대인들이 바울을 대적하고 비방하였을 때 바울은 옷을 떨고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공경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서 사람들을 가르쳤다. 비록 우리가 지금 믿지 않는 사람들을 완전히 포기해 버리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얽매이지 말고 또 다른 곳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이다.

[3-4]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 . . .

바울은 또 말한다.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너희에게 대하여는 우리의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 줄을[너희가 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앞으로도 행할 줄을] 우리가 주 안에서 확신하노니.”

바울은 주께서 미쁘셔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굳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실 것을 확신하였다. ‘미쁘다는 말(피스토스)신실하다는 뜻이다. ‘굳게 하신다는 말은 믿음의 견고함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주이시다. 그는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이 자라고 견고해지게 하신다. 우리의 믿음의 시작과 성장과 견고함은 다 신실하신 우리 구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빌립보서에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고 증거하였다(빌 1:6). 또 히브리서 12:2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믿음의 시작자요 완성자]인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권면하였다.

악한 자에게서 지키신다는 말에서, ‘악한 자에게서라는 원어(아포 투 포네루)는 ‘악으로부터’(KJV)라고도 번역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마귀의 시험과 유혹에 넘어지지 않도록 지키실 뿐만 아니라, 악에 빠지지 않게 지키신다. 구주이신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죄악에 빠지게 버려두지 않으신다. 우리가 잠시 연약에 떨어질지라도 주께서는 즉시 우리를 일깨우셔서 그 연약에서 우리를 건지시고 우리로 그 연약에서 떠나게 하신다. 그러므로 주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에서도,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셨다.

바울은 또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그가 명한 것을 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 앞으로도 행할 줄을 확신하였다. 이것은 그가 주 안에서확신하는 확신이었다. 즉 그는 신실하신 주께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굳게 하시고 그들을 악한 자에게서 혹은 악으로부터 지켜주시고 말씀을 순종케 하실 것을 확신한 것이다. 사도들의 명령과 교훈들은 신약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우리는 그 말씀을 순종해야 한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도우셔서 말씀을 순종케 하실 것이다.

[5]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 . . .

바울은 또 말한다.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주께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마음을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 안으로 인도하시기를 기원한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마음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6:5). 잠언 4:23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고 말한다. 우리는 마음을 헛된 데 두지 말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께서 친히 보이신 사랑과 그가 우리 속에 일으키시는 사랑을 다 가리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으로 우리를 사랑하셨다. 요한일서 4:9-10,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하고 그 사랑을 본받아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들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인내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십자가 위에서 보이신 인내와 또 우리 속에 주시는 인내를 다 가리킬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참으셨다. 또 그는 우리에게도 그리스도 때문에 당하는 고난을 참게 도우신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는 모든 시대의 모든 성도에게 참으로 필요한 덕이다. 우리는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 안으로 들어가기를 원한다.

1절부터 5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복음사역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성도들은 그들의 목사가 전하는 말씀이 사람들 속에 힘있게 역사하기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저도 여러분에게 담임목사와 부교역자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주기를 부탁한다.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들 속에 힘있게 역사하도록!

둘째로,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께서 진실한 성도들을 굳게 하시고 그들을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며 성경의 바른 교훈을 순종하게 하실 것을 확신하자. 하나님의 교회는 연약한 인간 목사들의 손 안에 있지 않다. 하나님의 교회는 우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시고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시는 신실하신 구원자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셋째로,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하나님께 끊임 없이 기도하자. 우리는 주께서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 안으로 인도하시기를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이라는 확신은 기도하지 않게 만들지 않고 오히려 더욱 기도하게 만든다. 주께서 우리를 도우시고 돌보실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낙망치 않고 주께 기도하는 것이다. 성도의 믿음이 힘있게 전파되고 굳세어지는 것은 기도의 교통을 통해서이다. 목사를 위한 성도들의 기도와, 성도들을 위한 목사의 기도는 하나님의 일을 흥왕케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다른 이들의 강건함과 순종과 사랑과 인내를 위해 기도하자.

6-18, 무질서한 형제들에 대한 교훈

[6]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 . . .

바울은 또 말한다.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명한다는 말은 권면한다는 말보다 강한 뜻이다. 권면도 순종해야 하지만, 명령은 더욱 순종해야 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한다는 말은 이 명령이 인간 바울의 권위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로 주어지는 것임을 보인다. 바울은 성령의 감동 가운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로 명한다.

규모 없이라는 원어(아탁토스)무질서하게라는 뜻이다. 그것은 사도들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유전’(遺傳)이라는 말(파라도시스)은 ‘받은 교훈을 가리킨다. 그것은 교리적 내용과 윤리적 내용을 포함한다. 바울은 2:15에서도 그들이 받은 교훈을 지키라고 말하였다: “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 오늘날 신약성경은 사도적 교훈이다. 성경의 교훈을 순종치 않는 것이 규모 없이 즉 무질서하게 행하는 것이다. 데살로니가교회 안에는 이런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교회 안에 있는 형제들이었다. 그들은 교리적 문제에 있어서는 이상이 없었고 단지 윤리적 문제에 있어서 사도의 교훈을 순종치 않고 있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그런 자들로부터 떠나라고 명령하였다. ‘떠나라는 말은 교제의 단절을 의미한다. 어떤 형제가 성경의 교훈대로 바르게 행하지 않는다면, 비록 그가 바른 신앙사상을 가진 믿음의 형제라 하더라도, 우리는 그와 교제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사도의 명령이다. 이것은 우리가 지켜도 좋고 안 지켜도 좋은 권면 정도가 아니고 반드시 지켜야 할 명령이다.

물론, 이것은 일차적으로 교회의 분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 안에 한두 명의 형제의 잘못 때문에 교회가 분립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 헌법의 규정대로, 교회는 잘못을 행하는 자를 권면, 책망하고, 성찬 교제에서 제외하고, 끝으로 제명, 출교시켜야 할 것이다. 이것이 교회의 권징 순서이다. 칼빈의 말대로, 권징은 교회의 힘줄과 같다. 교회가 권징을 성실히 행할 때 교회는 튼튼한 교회가 될 것이지만, 교회가 바른 권징을 포기하면 힘을 잃게 될 것이다. 권징을 포기한 교회는, 비록 그 교회에 교인수가 많고 재정이 넉넉할지라도, 영적으로는 힘이 없는 교회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전체적으로 배교적일 때도 있다. 물론 교회가 전체적으로 배교하고 변질되는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교회 안에는 진실한 신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교회는 쉽게 타락지 않고 단지 서서히 그렇게 될 뿐이다. 그러므로 진실한 성도들이 좀 깨어 있기만 하면 그들은 교회의 타락을 상당히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16세기 종교개혁이 있기 직전에 교회는 전체적으로 배교적이었고 진리를 붙드는 자들은 매우 소수이었다. 오늘날 기독교계도 16세기 종교개혁 때와 비슷하게 전체적으로 매우 배교적이고 해이해져 있다. 세계적으로 역사적 대교단들은 이단적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는 넓어진 교회가 되었고 하나님 앞에 불성실한 교회가 되어 있다. 오늘 시대에 성경적 교회들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교제의 문제이다.

[7-9]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 것을 너희가 스스로 . . . .

바울은 또 말한다. “[이는]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 것을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앎임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규모 없이 행하지 아니하며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주어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바울은 이런 엄숙한 명령의 이유로 자신의 모범을 들고 있다. 그것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주야로 수고하고 일하면서 일한 모범이었다. 바울은 천막을 만드는 기술자이었고 친히 그 일을 하면서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는 교회들로부터 선교지원비를 가급적 받지 않으려 하였다. 그것은 그가 물질적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고, 연약한 교인들의 믿음에 시험을 주지 않기 위해서이었다.

바울의 모범은 목사가 세상 일을 하고 교회의 사례를 받지 말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성전 봉사자들인 레위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의 십일조로 생활하도록 정하셨다. 또 레위인들은 그들이 받은 물질의 십일조를 제사장들에게 드려야 했다. 십일조 헌금은 하나님의 종들의 생활비로 쓰였다. 그것이 성전 봉사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방식이었다.

신약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전도자들과 목사들을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도록 뜻하셨다. 고린도전서 9:14,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디모데전서 5:17-18,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치는 일을 하는 자들을 더할 것이니라.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목사들은 자존심 상하게 생각지 말고 감사히 받고, 또 교회는 그들에게 의식주와 자녀 교육을 위해 필요한 비용을 드려야 할 것이다.

바울의 모범은 단지 목사들이 복음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처신해야 함을 보인다. 목사는 물질에 대해 초연해야 하고 그런 문제 때문에 교인들에게 누를 끼쳐서는 안 될 것이다. 목사는 자신이 전하는 복음과 하나님의 진리가 귀하기 때문에 목사가 된 자이므로 그 고귀한 진리를 세상의 물질과 바꾸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10-12]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 . . .

바울은 또 말한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고 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종용히[조용히] 일하고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우리는 일하지 않고 먹으려 해서는 안 된다. 노인들도 힘든 일은 못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청년들은 무슨 일이든지 땀 흘리며 일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무슨 일이나 죄 아닌 일을 열심히 해서 돈을 벌어 먹고 사는 것이 떳떳한 일이다. 사람은 게으르면 안 된다. 게으른 자는 음식을 먹을 자격이 없는 자이다.

데살로니가교회 안에는 일하지 않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었다. ‘일만 만드는 자들’(페리에르가조메노이)이라는 원어는 남의 일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자기 일은 성실히 하지 않고 남의 일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우리는 자기 일을 성실히 하고 남의 집은 자주 방문하지 말고 남에게 쓸데없이 자주 전화도 하지 말아야 한다. 조용히 일하라는 말은 야단스럽게 돌아다니며 여기저기에 나타나 남의 일이나 참견하지 말고 자기 일을 조용히, 성실하게 하라는 뜻이다. 우리는 자기 손으로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음식을 먹어야 한다.

[13-15]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 . .

바울은 또 말한다.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지 말고 형제와 같이 권하라.”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는 말은 열심히 일하며 사는 자들이 그렇지 못한 자들 때문에 낙심하지 말라는 뜻이다. 갈라디아서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우리는 성경의 교훈을 고의적으로 불순종하는 자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본문은 그를 지목하고 교제를 단절하고 그를 부끄럽게 하라고 말한다. 그러한 태도는 미움이 아니고 사랑이다. 그와 교제하고 그를 인정하면 그가 깨닫지 못하겠지만, 그와 교제를 끊는다면 그가 깨닫게 될 것이다. 잘못된 행동을 버려두면, 교회의 기강이 흐려지지만, 그것을 지적하고 책망하면 잘 될 것이다. 그가 그 잘못을 고치지 않으면 그와의 교제를 끊고 그를 책망함으로써 그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교회의 성결성을 지키려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를 원수같이 생각하지 말고 형제같이 권해야 한다.

[16-18]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 주시기를 . . . .

바울은 또 말한다.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는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실지어다.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이는 편지마다 표적이기로 이렇게 쓰노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 [아멘.]하나님은 평안의 주님이시다. 그는 우리에게 언제나 어떤 형편 어떤 처지에서나 평안을 주실 수 있는 자이시다. 바울은 주께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때마다 일마다 평안을 주시기를 기원하였다. ‘일마다라는 원어( 판티 트로포)모든 상황에서라는 뜻이다. 평안의 하나님께서는 언제든지 또 어떤 상황에서든지 우리에게 평안을 주실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때든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평안을 구해야 할 것이다.

편지마다 표적이기로라는 말은 편지가 기적이라는 뜻이 아니고 단지 편지마다의 표시라는 뜻이다. 바울은 다른 이로 하여금 편지를 쓰게 한 후에 편지 끝에 친필로 바울’(파울로스)이라고 서명하여 그것이 그가 쓴 편지임을 표시했던 것 같다.

6절부터 18절까지의 중요한 교훈은 규모 없이 행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는 것이다. ‘규모 없이 행한다는 말은 무질서하게 행하는 것,’ 즉 주께서 사도들을 통하여 주신 교훈 즉 성경의 교훈을 무시하고 고의적으로 그 말씀을 불순종하는 것을 가리킨다. 비록 그런 자들이 교리적으로 바른 사상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행함에 있어서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런 자들에게서 떠나라고 명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주 안에서 형제이기 때문에 원수같이 여기지 말고 형제같이 여기라고 했다.

특히 이 말씀은 오늘날 신복음주의자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대해 교훈하는 바가 있다. 신복음주의자들은 우리와 같이 바른 교리 사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단을 배격하고 교제하지 말라는 성경의 명백한 교훈들을 불순종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규모 없이, 무질서하게 행하는 자들이다. 오늘 기독교계는 16세기 종교개혁시대와 같이 다시 어두워진 배교적 시대이다. 우리는 배교와 타협하는 신복음주의가 속히 지나가 버리기를 원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바램에 불과하고 신복음주의는 오늘날 유행하고 인기 있는 입장이 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이 비록 우리의 형제들이고 보수적 신앙을 가지고 있고 인품에 있어서 좋은 점들이 많을지라도, 자유주의자들을 포용하는 그들의 잘못에 대하여 우리는 지적하고 책망해야 하고, 만일 그들이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돌이키지 않는다면, 그들로부터 떠나야 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이렇게 적용했지만, 우리는 또 본문의 내용 그대로 일하면서 먹어야 한다는 교훈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일하는 것은 귀한 것이다. 우리는 죄가 되지 않는 한 무슨 일이든지 해야 한다.

[요엘 2장 강해 설교말씀] 하나님의 긍휼하심(욜 2:1-32)

 

[요엘 2장 강해 설교말씀] 하나님의 긍휼하심(욜 2:1-32)

요엘 2장에서는 유다 백성에게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과 회개 촉구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니 하나님께서 심판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skh123.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