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4장에서는 구속받은 성도들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사만사천 명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선택한 백성인 자들을 구원하여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속죄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 명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구속받은 성도들(계 14:1-20)
14장은 일곱째 천사의 나팔 재앙의 계속으로 큰 용과 두 짐승들의 핍박 속에서도(12-13장) 구속받은 성도들이 승리적임을 증거한다.
1-5절, 구속받은 성도들
[1-3절]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 . . .
요한은 또 말한다.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14만 4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救贖)함을 얻은 14만 4천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요한은 어린양이 시온산에 선 것을 보았다.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시온산은 천국이다. 히브리서 12:22,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또 요한은 그와 함께 14만 4천명의 성도들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이 14만 4천명의 성도들은 7장에서 하나님의 인을 이마에 맞은 자들이다. 그들은 땅에서 구속함을 받은 모든 성도들, 즉 교회를 가리킨다. 그 이마에는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었다. 그것은 소속과 소유권을 나타낸다. 그들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사신 자들이다.
요한은 또 하늘에서 나는 큰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았으며 거문고 타는 자들의 거문고 타는 것 같았다. 그것은 분명히 14만 4천명의 성도들이 부르는 찬양의 소리이었다. 참된 성도들은 지상과 천상에서 찬송을 부를 것이다.
요한은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았다. 그 노래는 땅에서 구속함을 받은 14만 4천명의 성도들밖에는 배울 수 있는 자가 없는 새 노래이었다.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 좋아하며 불렀던 노래들, 민요든지 유행가든지, 그것들은 다 옛 노래들이다. 우리는 이제 그것들이 헛되다는 것과 그것들 중 어떤 것들은 심지어 죄악되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더 이상 그런 노래를 좋아하지 않으며 또 부르기를 원치 않는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새 노래를 부른다. 새 노래는 구원의 노래이다. 어린양의 피로 구속받은 자들만 새 노래를 부를 수 있다. 속죄신앙을 가진 자들만 새 노래를 부를 수 있다. 새 노래는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하며 감사하고 또 증거하는 노래이다. 구원받은 자들은 새 노래를 배우고 그것을 부르고 그것을 사랑할 마음을 가지고 있다. 시편 98:1,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대저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도다.”
[4-5절]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 . . .
요한은 또 말한다.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예수로 말미암아] 구속(救贖)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본문은 구속받은 성도들의 특징들을 묘사한다. 첫째로, 구속받은 성도들은 순결한 자들이다. 원문을 다시 번역하면, “이들은 여자들로 더불어 더럽혀지지 아니했으니 이는 그들이 처녀임이라.” 여자들은 세상을 가리킨다. 참 성도들은 구원받은 후 다시 죄악되고 멸망할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다. 비록 그들이 과거에 술 마시고 방탕하였을지라도, 이제 그들은 다시 그런 세상 생활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들은 이제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다. 만일 그들이 이 세상을 사랑했다면, 그들은 자신의 몸을 더럽힌 여자와 같았을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고 말하였다(고후 11:2-3). 또 그는 고린도 교인들이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용납한 것을 지적하며 책망하고 권면하였다. 우리가 구원받은 자라면, 우리는 모든 잘못된 사상과 교리, 모든 잘못된 행위와 풍조를 버리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 믿고 섬기며 경배하며 또 오직 성경에 밝히 계시된 하나님의 온전한 뜻만 믿고 그를 따르며 섬겨야 할 것이다.
둘째로, 구속받은 성도들은 순종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어린양이 어디로 가시든지 따라가는 자들이다(원문). 우리는 사람을 따라가는 자들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범할 수 있으며 목사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만 따르며, 그의 말씀과 명령이 성경에 있으므로 성경말씀만 믿고 순종하며, 목사의 성경적 교훈을 존중하고 순종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바른 태도이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그의 말씀만 따라야 한다. 우리의 삶 속에서 그의 명령이 보이는 대로, 그가 어디로 가시든지 그를 따라가는 것이 순종의 삶이다. 그러나 주를 따라가는 것은 항상 기쁘고 즐겁고 평안한 길만이 아니다. 주를 따라가는 길에도 수고와 슬픔이 있고 심지어 고난과 핍박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주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경의 교훈대로 즐거이, 자원함으로 따라가야 한다.
셋째로, 구속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첫열매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 즉 모든 피조 세계의 회복을 계획하셨고, 택하신 사람들을 먼저 구원하셨다. 그들은 첫열매들과 같다. 성도들의 구원이 충만하게 성취되면, 온 세상 만물이 회복되며 새로워질 것이다. 요한계시록 2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넷째로, 구속받은 성도들은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다. 흠이 없는 인격은 거짓말하지 않는 것으로 증거된다. 거짓말하는 것은 작은 죄악이 아니다. 거짓은 사탄의 죄악이며 그 종들의 특징이고, 진실은 하나님과 그 종들의 특징이다.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지옥불에 던지울 것이다. 요한계시록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요한계시록 22:15,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 참 성도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계속 거짓말하는 자는 성도가 아니다.
1절부터 5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본문은 우리에게 하늘의 시온산에 어린양과 함께 서 있는 십사만 사천 명의 성도들의 모습을 증거한다. 그들은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송하였다. 그들은 신앙의 순결성을 지킨 자들이며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한 자들이며 흠 없이, 진실되게 산 자들이었다. 오늘 우리가 참으로 구원받은 자들이라면 땅에서 구속함을 받은 저 십사만 사천 명의 성도들의 모습을 본받자. 우리는 신앙의 순결성을 지키고 주님께 순종하며 흠 없이, 진실되게 살면서 항상 새 노래, 즉 구원의 노래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자.
6-12절, 세 천사들의 외침
[6-7절]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 . . .
요한은 또 말한다.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요한은 온 세계에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 공중에 날아가는 한 천사를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뜻을 계시하시기 위해 천사들을 사용하신다(계 1:1; 8:2; 10:1; 16:1).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신속히 수행함을 상징한다. 그가 가지고 있는 복음은 영원한 복음이다. 그것은 어느 한 시대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시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복음이다. 그 효력은 영원하다. 그것은 사람에게 영원한 천국과 영생을 주는 복음이다. 그것은 특히 마지막 심판 전에 온 세계에 증거되어야 할 복음이다.
그 천사는 큰 음성으로, 하나님의 심판의 시간이 되었으니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며 천지와 바다와 샘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에게 경배하라고 외쳤다. 이것은 어느 시대에나 매우 근본적인 진리들이다. 모든 인생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지혜와 지식의 시작이다(잠 1:7; 9:10). 거기에 하나님께 대한 참된 믿음도 가능하다. 또 모든 인생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그에게 감사와 찬송을 올려야 한다. 또 모든 인생은 하나님께 경배해야 한다. 그들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그에게 온전히 순종해야 한다. 이것은 모든 죄인들에게 필요한 근본적 진리이다.
[8절]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 . .
요한은 또 말한다.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요한은 다른 한 천사 곧 두 번째 천사의 외침을 들었다. 그 외침은 큰 성 바벨론이 무너졌다는 내용이었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라고 두 번 반복한 것은 그 무너짐의 확실함을 나타낸다. 큰 성 바벨론은 마지막 날에 확실히 무너질 것이다. 이 바벨론은 17:5, 18에서는 땅의 임금들과 음행하는 큰 음녀요 그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고 말했고, 19:3, 10에서는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해 부요함을 얻었던 크고 견고한 성이라고 말했고, 16:19에서는 일곱째 대접 재앙에서 큰 지진으로 인해 세 갈래로 무너질 큰 성이라고 말했다. 그 성은 무너질 것이다.
이 큰 성 바벨론에 대해서는 성경 주석가들의 해석이 다양하다. 어떤 이들은 이 바벨론이 로마 제국을 가리킨다고 본다(헹스텐버그). 어떤 이들은 이 바벨론이 이 세상을 가리킨다고 본다(헨드릭슨, 박윤선). 다른 많은 이들은 이 바벨론이 로마 천주교회를 가리킨다고 본다(매튜 풀, 벵겔, 알포드, 반즈). 또 다른 많은 이들은 이 바벨론이 미래의 배교한 교회를 가리킨다고 본다(포셋, 렌스키, 비더울프, 김응조). 이 마지막 두 견해의 조합이 적절해 보인다. 이 바벨론은 짐승을 탄 음녀(17:3)로서 세속화된 배교한 교회를 가리키며 그것은 아마 장차 로마 천주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 큰 성 바벨론은 모든 나라를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먹였다. 여기의 ‘음행’은 육적인 의미와 영적인 의미를 둘 다 가질 것이다. 배교한 교회는 음행의 풍조를 퍼뜨리는 일에 앞장 설 것이다. 또 그 교회는 이단들을 포용하고 이방 종교들을 포용하는 신학적 포용주의와 종교적 다원주의의 교회가 될 것이고, 또 물질적인 부요와 육신적인 향락을 조장하는 세속화된 교회가 될 것이다.
옛날 로마 천주교회는 종교적으로, 도덕적으로 심히 부패하였었다. 그것은 큰 성 바벨론과 같았다. 그래서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로마 교황청이야말로 성경에 예언된 그 바벨론이라고 생각했었다. 오늘날 온 세계의 배교한 교회들의 연합체인 세계교회협의회(WCC)는 또다시 로마 천주교회와 연합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우리는 마지막 때에 나타날 전 세계적 배교한 교회의 중심에 또다시 로마의 교황이 서게 되리라고 본다. 또다시 로마가 전세계의 종교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 배교한 교회는 망하고 말 것이다.
[9-11절]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 . . .
요한은 또 말한다.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요한은 또 다른 천사 곧 세 번째 천사의 외침을 들었다. 그것은,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실 것이라는 선언이었다. 배교한 교회의 교인들 곧 신앙의 변절자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신앙의 정절을 지켜야 한다. 그는 비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고 비진리와 타협할 수 없다. 그러나 신앙을 버린 자는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잔을 받을 것이며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 곧 지옥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것은 영원한 고통의 형벌이다. 거기에서 그들은 밤낮 쉼을 얻지 못할 것이다.
[12절]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 . . .
요한은 또 말한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미래의 사실들이 이러할 것이기 때문에 성도들에게는 오직 인내가 필요하며 끝까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님 믿는 믿음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의(義)이며 그것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죄이다. 성도는 은혜로 구원받은 자이지만, 의로운 행위로 그 구원을 증거해야 한다. 행위은 구원의 조건은 아니나 구원의 증거가 된다. 사람이 의로운 행위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 의로운 행위 없이 구원받는 것도 아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죄 가운데 살 수 없다. 죄 가운데 사는 자는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예수님의 속죄의 피로 구원받은 자는 죄를 미워하고 죄와 싸우며 죄를 떠날 것이다. 또, 성도들은 예수 믿는 믿음을 지켜야 한다. 참 신앙은 성경에 계시된 그대로 예수님을 믿는 신앙이다. 그것이 보수 신앙이다. 보수 신앙은 성경말씀대로 믿고 성경말씀대로 사는 것을 말한다.
6절부터 12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말세에 선포된 영원한 복음을 받아들이자.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을 경배하자.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과 세상을 구별하는 잣대가 된다. 둘째로, 우리는 적그리스도의 나라와 배교한 교회가 결국 망하게 될 것을 알자. 우리는 성경적 교훈의 터 위에 세워지고 그 교훈 안에서 양육되는 바른 교회를 건립해야 한다. 우리는 배교한 교회들의 연합운동을 분별하고 그것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인내로써 바른 믿음을 지키고 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자. 바른 믿음이란 성경적이고 역사적인 기독교 신앙을 가리킨다. 그 믿음을 지키는 것이 보수 신앙이다. 또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한 삶을 끝까지 실천해야 한다.
13절, 주 안에서 죽는 자가 복됨
[13절]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 . . .
요한은 또 말한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이제부터]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저희는 수고를 그치고 쉴 것이며 저희의 행한 일이 저희와 함께 따르리라] 하시더라.”
‘이제부터’라는 말은 ‘복음 신앙을 가진 이후부터’라는 뜻이라고 본다. 복음 신앙은 곧 구원이 되므로 복음을 믿고 죽는 자는 확실히 천국에 들어갈 것이므로 복되다는 뜻이라고 본다. 또 이 시점에서 새삼스럽게 죽음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대환난 시대에 순교자들이 많을 것을 암시한다(계 6:11). ‘주 안에서’ 죽는다는 것은 ‘주를 믿는 믿음 안에서, 주님과의 영적 연합 속에서’ 죽는다는 뜻이다. 사람이 주 밖에서, 복음 신앙 없이 죽는다는 것은 큰 불행이다. 모든 믿지 않는 죄인들에게 지옥 형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눅 16:19-31).
그러나 주 안에서 죽는 것은 큰 행복이다. 본문은 그 이유를 두 가지로 말한다. 첫째는 그가 그 수고를 그치고 쉴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수고와 고생이 많다(시 90:10; 마 11:28). 그러나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죽은 자에게는 참 안식이 있다. 히브리서 4:3, 10-11,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그 안식은 바로 천국의 안식을 가리킨다. 천국은 안식의 세계이다.
둘째는 그가 이 세상에서 행한 선행들에 대해 보상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행이란 천국 들어갈 만한 가치도 없는 보잘것없는 것이며 그 자체도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귀히 보시고 상 주실 것이다. 고린도후서 5:8-10,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14-20절, 곡식과 포도송이 추수
[14-16절]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 . . .
요한은 또 말한다.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이(利)한[날카로운] 낫을 가졌더라.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 하니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요한은 흰 구름 위에서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날카로운 낫을 들고 땅의 곡식을 거두는 인자(人子) 같은 이를 보았다. 요한이 본 그 사람은 구름 타고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가 날카로운 낫을 들고 곡식을 베는 것은 성도들의 구원의 때 곧 그들이 천국에 들어갈 때가 된 것을 상징한다. 심판의 때는 성도들에게는 구원의 때이다. 가을에 곡식이 다 익으면 추수하여 창고에 들이듯이, 마지막 심판 때에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천국으로 들이신다. 이것은 세상에서 우리의 가장 큰 소망이요 기쁨의 이유이다.
[17-20절]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 . . .
요한은 또 말한다.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또한 이(利)한[날카로운] 낫를 가졌더라.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이(利)한[날카로운]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가로되, 네 이(利)한[날카로운]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1천 6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날카로운 낫으로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는 것은 땅의 악한 자들을 심판하시는 것을 상징한다. 그들을 포도송이에 비유한 것은 그들이 큰 전쟁으로 많은 피를 흘리게 될 것을 상징한다. 피가 말굴레 즉 말의 목까지 닿은 것은 온 세상이 피의 강수가 될 것을 암시한다. 인류의 마지막 전쟁은 많은 피를 흘리는 처참한 전쟁이 될 것이다. 1,600스다디온은 약 295km로서 이스라엘 땅의 남북의 길이에 해당한다. 이스라엘 땅 전체에 피가 넘쳐흐를 것이다.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은 심히 두렵고 그들이 당할 재앙은 무섭고 처참할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의 진노는 심히 두려울 것이다.
13절부터 20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는 주 안에서 죽는 것이 복됨을 깨닫자. 복음 신앙을 가지고 죽는 것은 복되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참된 안식이 있고 그 선행에 대한 상급이 있기 때문이다. 성도에게는 천국에서의 안식이 있다. 또 마지막 심판 때에 주께서는 성도의 선행에 대해 상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고 오직 의와 선을 행하자. 그러나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 즉 믿음 없이 살다가 죽는 자들에게는 화가 있다. 불경건과 우상숭배, 미움과 음란과 거짓은 죄악이다.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있다. 그것은 많은 피를 흘리는 심판이며 그 피는 온 땅을 붉게 물들일 것이다. 우리는 그 심판을 두려워해야 한다.
[신약 히브리어성경 마태복음] 산상수훈 주기도문 예수님 말씀(마 6: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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