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도 알쓸잡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다니엘서의 강해 설교문 중에서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역사적 배경
옛적에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택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아브라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와 그의 후손들을 통해 세상의 모든 족속들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의 가족을 형성하였고 이 가족은 하나의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나중에 이 나라는 이집트로 내려가서 400년 간 체류하였습니다.
그 이후 이 나라는 이집트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출애굽과 관련된 재앙들과 유월절 및 홍해의 횡단은 익히 잘 알려진 이야기들입니다. 이 나라는 모세를 영도자로 삼고 40년간 광야에서 방황하였는데 그때에 성막과 희생제물과 제사장 제도에 관한 하나님의 지시와 율법을 받았습니다. 이 나라는 광야 생활을 마친 후에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삼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여호수아가 죽기 전에 가나안 땅은 대부분 정복되었으며 12지파들에게 분할되었습니다.
그다음은 사사 시대입니다. 사사들은 침략자들로부터 나라를 구해 내도록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사 시대는 왕권 시대로 바뀌게 됩니다. 첫 번째 왕은 사울이었고 그의 왕위는 다윗, 솔로몬, 르호보암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왕들은 모두 12지파들로 구성된 단일 왕국을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의 통치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왕국은 두 개로 분할되었습니다. 10지파로 구성된 북쪽의 이스라엘(혹은 에브라임) 왕국은 수도를 사마리아로 정하였고, 2지파로 구성된 남쪽의 유다 왕국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았습니다. 처음에 이 두 왕국은 원수들이었으나 점차로 우호적인 관계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다시 적대 관계로 되돌아 갔습니다.
북쪽에서는 여러 왕조들이 일어났지만 경건한 왕이 왕좌에 앉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 자주 북왕국의 배도를 질책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않자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주전 722년 앗시리아의 막강한 군대들이 이스라엘을 침공하자 사마리아가 함락되었고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갔으며 북왕국은 지상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한편, 남왕국은 1백 년 이상 더 지속되었습니다. 왕들은 모두 같은 왕조에 속한 다윗의 후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다 왕국도 줄곧 배도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렇지만 남왕국은 매우 경건한 왕들도 있어서 수차례에 걸친 전국적인 영적 각성의 시기도 있었습니다. 여호야김이 왕위에 오른 때는 주전 609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당시에 편만했던 우상숭배와 부도덕을 바로잡기는커녕 오히려 더 증가시켰습니다. 선지자들은 회개와 경고를 외쳤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주전 605년에 느부갓네살이 유다를 침입 하였고 그 후 23년 동안 4차례에 걸쳐 유다 백성들의 대다수가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들은 바벨론 강가에 앉아 시온을 그리워하며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타국에 포로로 잡혀온 처지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겠느냐고 자문하여 한탄하였습니다(시 137:1,4).
유다 왕국은 하나님의 거듭된 경고들을 무시하다가 이제 원수들의 손에 꼼짝없이 묶어버린 신세로 전락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배도의 나라에 극소수이긴 하지만 하나님을 계속 신뢰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개인들에 대해서는 선지자들이 미리 예고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작은 남은 무리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이들은 비록 머나먼 바벨론이지만 그곳에서도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했습니다. 이 남은 자들은 70년의 포로기 동안 존속하였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범민족적으로 우상숭배를 개탄하며 눈물을 흘린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따르는 자들은 소수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벨론 포로 생활이 끝난 다음부터는 남은 자들의 수효가 점점 더 줄어들었습니다. 우리들이 아는 한, 남은 자들의 총수는 사가랴, 엘리사벳, 마리아, 요셉, 시므온, 안나 그리고 몇몇의 목자들에 한정될 정도로 대폭 감소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을 제외한다면, 유다에서 약속된 아브라함의 자손이 이 세셍에 태어나는 것을 환영할 준비가 된 자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누구도 이방인들과 하나님의 백성들인 이스라엘의 영광을 밝혀주려고 찾아오신 큰 빛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바벨론 포로기 동안 남은 자들을 대변하는 인물들은 다니엘,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였습니다(단 1:6). 이 네 개의 촛불을 위시한 소수의 몇몇 촛불들이 당시의 경건치 못한 어둠의 땅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불과 몇 안 되는 소수의 사람들만 하나님께 신실하였습니다. 이들은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무시하며 살 때에 충심으로 하나의 편에 서 있었던 믿음의 인물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숫자에 큰 관심을 두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를 증언하는 자들을 자들을 언제나 남겨두십니다. 하나님의 참 종교는 이 세상에서 침묵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의 수효는 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에 있는 참 백성들의 수효가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까지 내려가도 염려치 않았습니다. 다니엘서의 처음 여섯 장은 이 소수의 남은 자들이 적대적인 타국의 여건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께 신실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중심 교훈
다니엘은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께 진실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이 교훈들은 만사가 우리에게 불리한 때에 어떻게 하나님을 위해서 살 수 있으며 타국 땅에서 어떻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지를 알려줍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그 비결을 알고 실천하였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자기편에 아무것도 없어도 하나님을 위해 살 수 있습니다.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은 모두 경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 모두가 매우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성품에는 적어도 한 가지씩 결함이 있었으며 어떤 이는 한 가지 이상의 허물을 지녔습니다. 성경은 지도적인 인물들의 결점들을 감추지도 않고 그들의 장점들을 과장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같은 성경책인데도 다니엘의 생애에 대해서는 어떤 흠이 있었다고 지적한 곳이 없습니다. 영성과 고결한 성품은 이상적인 계발 조건들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보호막이 쳐진 온실의 환경 속에서 번창하는 식물이 아닙니다. 영성과 고결한 성품은 오히려 눈과 바람과 우박과 가뭄과 그리고 뙤약볕을 받을 때 가장 잘 자랍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다니엘은 14세의 어린 소년이던 때 고향과 가족과 친구들을 떠나 이국 당으로 강제 이송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계획적인 세뇌 교육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그는 자기 목숨을 노리는 질투에 찬 모함꾼들에게 둘러 싸여 있었습니다. 그는 큰 재산을 모으고 출세의 가도를 끝없이 달릴 수 있는 그릇된 방법의 유혹들에 언제나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겪는 유혹들 가운데 다니엘이 겪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다니엘의 결함을 한 가지도 지적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고 작정한 후 한 번도 마음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사는 일은 악한 세상에서도 가능합니다. 경건은 이상적인 환경이 아니더라도 가꾸어지며 또한 잘 함양될 수 있습니다.
우리들 중에서 다니엘이 직면했던 어려움들을 경험한 자는 극히 드뭅니다. 우리는 자신들의 문제만 들여다보면서 남들은 쉽게 사는 것처럼 생각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의 환경이나 입장이 지금과 다르다면 영적으로 진보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간주합니다 공장의 공원들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것이 신앙생활하는데 더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무원들은 차라리 집안 살림을 하면 신앙생활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한편 가정 주부는 학교나 공장이나 사무실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생활하며 겪는 어려움들을 인식하지 못하고 학생들은 공장 근무나 사무실 근무의 고충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문제만큼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는다는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들의 열악한 환경을 탓하며 영적 성장의 둔화를 변호합니다. 다니엘서는 우리의 이러한 그릇된 인식을 반성케 합니다. 참된 영성은 좋은 형편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아님을 다니엘서는 힘 있게 증거 해 줍니다.
그럼 다니엘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대답은 간단합니다. 다니엘이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해석하기 전에 무엇을 했습니까? 그는 기도하였습니다.(2:17-19). 그가 모함을 당하여 사자굴에 던져졌을 때 무엇을 하였습니까? 그는 기도하였습니다(6:10). 다니엘서 9장은 무슨 내용을 담고 있습니까? 다니엘의 기도에 대한 것입니다.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올바른 기도생활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께 신실할 수 있는 비결 가운데 절반을 차지합니다.
나머지 절반의 비결도 매우 간단합니다. 9:2절을 보면 다니엘이 ‘서책’을 살펴보고 깨닫는 장면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이 서책들은 무슨 책들이었습니까? 그것들은 당시의 구약 선지서들이었습니다. 9:11절과 9:13절에서 다니엘은 ‘모세의 율법’을 언급하였습니다. 그는 성경을 읽고 깨닫는 자였습니다. 우리는 비록 실천에 옮기기는 어렵지만 다니엘의 비결을 지적해 내기는 쉽습니다. 그는 성경을 읽고 기도를 했기 때문에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 있을 수 있었습니다.
이 평범한 두 가지 훈련은 오늘날 새롭게 강조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신앙생활의 비결을 어떤 신비한 영적 체험이 있어야 하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그런 영묘한 체험이 있으면 신앙의 차원도 높아져서 현재의 얕은 신앙 수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신비 체험을 추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기야 다니엘도 하나님에 대한 기이한 체험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그러한 진기한 체험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기를 위해 어떤 일을 해 주실 것을 바라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있기를 즐거워하였습니다. 그는 성경 말씀에서 주님의 듯을 헤아리고 기도로써 주님과 교통 하였습니다. 다니엘의 신앙생활의 비결은 너무도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이 비결은 초기 그리스도인 순교자들과 핍박받던 종교개혁자들과 그들의 자녀들과 뜨거운 열심으로 전도했던 초기 감리교인들의 비결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또한 19세기의 대 선교사들이 지녔던 비결이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발하리라”(11:32)는 사실을 익히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처럼 그들도 두 개의 세계 속에서 살았습니다. 다니엘처럼 그들도 이 세상 일에서 하늘나라의 능력을 받을 수 있음을 자주 체험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친구들이 되었고 하나님의 ‘은총을 크게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신앙 비결은 너무나도 간단명료해서 아무도 오해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한 사람들입니다. 이제 우리도 이 비결을 염두에 두고서 다니엘서를 공부하여 어려운 세상에서 하나님을 위해 홀로 설 수 있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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