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랴가 자신의 반열이 되어 제사장으로 섬기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직무를 행할 때 하나님의 천사가 사가랴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섰습니다. 사가랴가 보고 놀라서 무서워하는데 천사가 사가랴에게 말합니다. 너의 간구함이 하나님 앞에 들렸다고 말합니다.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준다고 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하라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출생 예언(눅 1:8-13)
8절 에게네토 데 엔 토 히에라튜에인 아우톤 엔 테 탁세이 테스 에페메리아스 아우투 에난티 투 데우
성 경: [눅1:8]
주제1: [인자 탄생 직전의 이야기들]
주제2: [세례 요한의 출생 예고]
마침...할새(에게네토 데) - 이 말은 이야기를 상호 연결시켜 주며 무엇을 소개해 주는 문구로서 히브리어의 '와에히'('때마침 그것이 일어났나')와 유사한 표현이다. 특히 이 문구는 타 복음서보다 본서에서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킬 때 흔히 사용된다. 그리고 이 문구와 비슷한 '기노마이' 역시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쓰인 것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이 본서에 사용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누가가 복음서를 기술할 때 자신의 문학적인 역량에 덧붙여 자신이 참고한 자료들을 하나하나 편집해갔음을 알 수 있다(Gaston).
반열(班列)의 차례대로 - 유대의 제사장들은 전체적으로 2만 명 정도가 되고, 이들은 종가(宗家)에 따라 24 반열(division, 각 반열에 천명 정도)로 나눠진다. 이러한 제도는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건국자라 할 수 있는 다윗 때에 정비된 것으로, 다윗은 초대 대제사장인 아론의 두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의 후손들을 24 가족(반열)으로 나누고 그 각 가족으로 하여금 1년에 1주씩 2차로 성전 봉사를 하게 했다 (대상 23, 24장 ;대하 8장). 그런데 이러한 제도는 바벨론 포로 당시에 일시 끊어져 포로 귀환하면서 4 반열만(하김, 예수아, 임멜, 바스훌) 귀국하게 된다(스 2:36-39). 그 후, 이 반열은 에스라의 주도하에 가능한 한 본래의 모습대로 재조직하여 24 반열의 이름만이라도 유지하게 되었다. 사가랴는 그중에 아비야의 반열로 여덟 번째 반열에 속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 근원을 따져보면 사가랴가 속한 아비야 반열은 다윗 당시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것임을 알 수 있다.
제사장의 직무를...행할새 - 각 제사장 가족들은 그 해(年)에 해당되는 기간 동안 성전 봉사의 책무를 맡게 된다. 즉 제사장들 중 그해에 봉사할 임무를 맡게 되는 지사장 가족은 일주일 동안씩(8일간;안식일에서 안식일까지) 일 년에 두 번 성전을 섬기게 된다(J. Jeremias). 그러나 다음과 같은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 등 절기 때에는 제사장들 모두가 함께 참여했다. 그러나 한 제사장 개인이 상번제(the daily sacrifice)를 위해 분향단에 향을 피운다는 것은 극히 희박한 경우이며 일생에 단 한번 주어지는 것조차 큰 행운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왜냐하면 당시 제사장의 수효(일설에는 약 2만 명 정도였다고 함)가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혹자(Farrar)에 따르면 한 제사장이 평생에 두 차례에 걸쳐 성전 봉사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그 많은 제사장들 가운데 제비가 자신에게 떨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제사장에게 있어 이 일은 자신의 생애에 최고의 영광이요 은총이 아닐 수 없었다. 한편 본문에는 직무를 맡은 제사장 사가랴가 '하나님 앞에서'(에난티 투 데우) 그 임무를 수행했다고 표현되었는데, 이는 성전이 곧 하나님의 임재 처소로 이해되었던 히브리인들의 전통적 사상에 의한 묘사로 보아야 할 것이다(합 2:20).
9절 카타 토 에도스 테스 히에라테이아스 엘라켄 투 뒤미아사이 에이셀돈 에이스 톤 나온 투 퀴리우
성 경: [눅1:9]
주제1: [인자 탄생 직전의 이야기들]
주제2: [세례 요한의 출생 예고]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 이 말은 내용상 원래 8절에 부속되고 있으나 개역 성경의 읽기대로 '제비를 뽑아...분향하고'라는 표현과 연결시켜 생각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따라서 '제사장의 전례' 곧 '제사장들이 전통적으로 수행해 오던 관습(에도스)'이란 8, 9절에 명시된 내용들을 모두 지칭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제비를 뽑아(엘라케) - 제사장들의 24 반열 중 각 반열의 차례가 돌아오면 그 해당 반열의 제사장들은 제비를 뽑아 각각 수행해야 할 임무를 맡게 되었다. 한편 이 제비뽑기는 히브리어로 '고랄'이라 하는데,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특수한 표시를 한 물건을 땅에 던지거나 용기(容器)에서 뽑는 제비뽑기가 매우 유행하였다. 물론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이 제비뽑기는 미신적 의미에서 이뤄진 것이라기보다 항상 '여호와 앞에서' 제비를 뽑는다는 신전 의식(Coram Deo) 하에서 이뤄진 것이다(신 18:10-12;수 18:6, 8). 구약에서는 여러 경우의 제비뽑기 사례가 등장하는데, 새로운 땅 분배 시(민 26:55;수 14:2), 죄인을 찾아낼 때(수 7:14;삼상 14:42), 첫 번째 왕 선택 시(삼상 10:20,21), 성도의 일을 다스리는 자나 노래 부르는 자 또는 문지기의 일을 맡을 자 등을 선택할 때 제비뽑기를 하였다. 그리고 신약에서도 제비 뽑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예수의 11 제자가 맛디아를 가룟 유다 대신에 제자로 선출할 때 등에서 나타난다(행 1:26). 여기서 보듯이 이 제비뽑기는 모든 의사결정의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가 시행되던 시기,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가 필요했던 경우에 한해서만 시행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인간들에게 알리시기 위해 제비뽑기를 부분적으로 허용하셨으며, 그 일의 배후에는 당신이 친히 섭리하셨으나(잠 16:33) 특별 계시인 성경이 완성되고 성령의 적극적인 역사가 시행되는 오늘날에는 이 제비뽑기가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여하튼 사가랴 당시에 제사장들은 제비뽑기를 통하여 대략 아침 일찍 제단과 불을 준비하고, 제물이나 성소의 기구들을 예비하며, 또 준비된 기구들로 분향하거나 제물을 드려 제사하는 일 등을 각각 분담받았다.
주의 성소에 들어가 - 여기서 '성소'(나오스)란 성소(Holy Place)와 지성소(the Holy of Holies)를 합한 성전 내부를 가리키는 말로서 성전 전체를 가리키는 '히에론'(*)과 구별된다. 결국 사가랴는 이때 향단에 향을 지피기 위해 성전의 내부에 해당하는 성소에 들어가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 한편 이와 같이 성소에 들어가 분향의 임무를 맡게 되는 제사장은 출 28:1-43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세마포 및 에봇으로 된 성의(聖衣)를 착용하고 홀로 성소에 들어가 여호와께 봉사하게 된다.
분향하고 - 분향 곧 향을 불사르는 일은(출 30:7, 8) 제사장의 고유 임무로서, 이때에 드려지는 향은 모든 백성들의 마음의 간구 곧 기도를 상징한다(시 141:2;계 8:3). 제사장이 이 분향의 절차를 밟는 동안 백성들은 바깥에서 엎드린 채 그 향이 여호와 하나님께 흡향(吸香)되도록 온전히 기도하였다(10절). 바로 이같이 하나님께 온 마음이 열려있을 때 사가랴는 천사로부터 요한의 수태 고지(受胎告)를 받게 된다.
10절 카이 판 토 플레도스 투 라우 엔 프로슈코메논 엑소 테 호라 투 뒤미아마토스
성 경: [눅1:10]
주제1: [인자 탄생 직전의 이야기들]
주제2: [세례 요한의 출생 예고]
모든 백성은...기도하더니 - 이 구절의 '모든 백성'에 대해 NIV는 '운집한 경배자들'(all the assembled worshipers)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이 부분의 헬라어 원문은 '라오스'('백성')이다. 따라서 정확한 의미 전달이 안 되고 있다. 예배자들만이 성소 밖에서 기도한 것이 아니라 모든 백성들이 기도한 것이다. 백성들은 기도하기 위해서 하루에 세 번씩 성전 뜰이나 성소 바깥뜰에서 모였다. 이들의 첫째와 셋째 모임 시간은 아침과 저녁 분향 시간과 일치하는 시간이었다(Geldenhuys). 한편 이 백성들 가운데 연로한 시므온(2:25)과 여선지자 안나(2:36)도 함께 있었다고 한다(Pulpit Commentary). 이곳에 모인 백성들은 뒤에 21, 22절에 기록된 백성들과 일치한다(Liefeld).
11절 오프데 데 아우토 앙겔로스 퀴리우 헤스토스 에크 덱시온 투 뒤시아스테리우 투 뒤미아마토스
성 경: [눅1:11]
주제1: [인자 탄생 직전의 이야기들]
주제2: [세례 요한의 출생 예고]
주의 사자 - 사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앙겔로스'는 '사자', '천사',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번역된다. 성경에는 곳에 따라 '사자'(12:9;마 2:13), 또는 '천사'(마 24:36;막 12:25;롬 8:38;고전 4:9;1:13, 14) 등으로 번역되었다. 이곳 외에도 누가복음 전체를 통해서 '천사'에 관련된 기사는 매우 많이 등장한다(1:26;2:9, 13, 21;12:8;15:10;16:22;22:43;24:4, 23). 누가가 기록한 사도행전에서도 이러한 특징들이 눈에 띄게 나타난다(행 10:4, 7;12:8-10). 주의 사자가 사가랴에게 나타난 이 사건은 결국 역사의 분수령이 되는 사건의 시작이 된다.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실 구체적 일을 시작하신 것이다.
향단 우편 - 향단과 번제단은 다르다. 번제단은 성소 밖에 위치한다. 매일의 분향은 성막 뜰의 번제단 위에서, 제사는 성소 안에서 드려졌다. 분향을 드리는 제사장은 제사를 드린다는 표시로 번제단에서 향단으로 불을 가져가 향을 사른다(Alford). 주의 사자는 향단과 떡상(진설병을 놓는 상) 사이에 나타났다. 성소를 들어가면 왼쪽에 떡상, 오른쪽에 등대(촛대) 그리고 정면에 분향단이 있고, 그 뒤에 휘장이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게 된다(출 30:1-10;40:2-27, 아래 그림 참조).
12절 카이 에타라크데 자카리아스 이돈 카이 포보스 에페페센 에프 아우톤
성 경: [눅1:12]
주제1: [인자 탄생 직전의 이야기들]
주제2: [세례 요한의 출생 예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 '놀라며'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타라크데'는 원형인 '타라쏘'의 수동태 과거형이다. 그 뜻은 '요동하다', '내적 동요를 일으키다', '마음의 평정을 없애버리다'이다(마 2:3;막 6:50;요 11:33). '무서워하니'에 해당하는 '포보스'는 '두려움', '놀람', '경악', '공포를 일으키는 것'이라는 뜻을 갖는다. 이로 미루어 사가랴는 천사의 출현 때문에 마음의 평정을 잃을 정도로 놀랐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하나님의 사자를 만난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현상이다(삿 6:22;13:22).
13절 에이펜 데 프로스 아우톤 호 앙겔로스 메 포부 자카리아 디오티 에이세쿠스데 헤 데에시스 수 카이 헤 귀네 수 엘리사베트 겐네세이 휘온 소이 카이 칼레세이스 토 오노마 아우투 이오안넨
성 경: [눅1:13]
주제1: [인자 탄생 직전의 이야기들]
주제2: [세례 요한의 출생 예고]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 간구함에 해당하는 헬라어 '데에시스'는 일반적인 기도를 뜻하는 단어 '프로슈케'와 비교해 특별한 기도를 뜻한다. 따라서 사가랴는 평소와는 다른 특별한 기도를 드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들린지라'에 해당하는 부분을 KJV는 현재형으로, NIV는 현재완료형으로 각각 표현하고 있다. 헬라어 원문 '에이세쿠스데'는 제1부정과거 직설법의 형태로 사용되었다. 이는 일종의 무시간적 부정과거의 형태로, 과거에도 들렸고 지금도 들린다는 의미이다(Robertson). 따라서 사가랴의 기도는 일회적이 아니고 지속적 행위로 나타나고 있다. 한편 제사장 사가랴가 성소 안에서 무슨 기도를 드렸는지를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천사의 응답은 그 내용을 추정 가능하게 한다. 즉 그의 기도 내용은 자식이 없는 자신을 돌보실 것과 자신의 민족을 구원하실 메시아의 도래에 관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천사는 사가랴의 간구 이상으로 응답하신다. 즉 아들을 주시고, 메사아도 곧 오실 것인데, 그의 아들이 메시아의 오실 길을 예비하리라는 것이다. 이는 분명히 사가랴에게 임한 축복으로서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약 5:16)는 사실을 절감케 한다.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 아들의 이름까지 지어줌으로써 확신을 더해준다. 요한(요안넨)은 히브리어 '예호하난'과 같은 말로 '하나님께서는 자비하시다'라는 뜻이다. 이 이름은 '요난'(대상 3:24), '요아네스'(대하 28:12)등의 변형으로 히브리인들이 좋아하는 이름 중 하나이다. 성경적인 사고방식에 의하면 이름이란 단순한 호칭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본성(本性)과 인격까지 나타낸다. 다시 말해 이름은 인격의 본질이자 내적 존재의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한편 작명법(作名法)은 바벨론 유수기(幽囚期)를 전후 해서 뚜렷한 차이점이 나타났다. 초기에는 아이의 타고난 특성에 따라 특징 있는 이름을 지어주었으나 B.C. 5세기 이후부터 아이의 이름을 친척이나 특히 조부의 이름을 따르는 관습이 생겼다. 이러한 관습에 의해 과거 인물들의 이름이 다시 등장하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사람들의 이름도 따서 쓰게 되었다.
[마태복음 추수감사절 설교]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마 6:9-13, 시 5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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