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고린도전서 3장에서 상급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천국에는 상이 없다고 가르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에는 상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과 상을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마지막 날에 공적이 불타는 사람은 구원은 받았지만 상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상이 없다고 해서 구원도 못 받은 것은 아닙니다. 우편 강도는 상은 없지만 구원은 받았습니다. 구약에서는 롯은 소돔과 고모라가 불탈 때에 구원은 받았지만 아무것도 가지고 나오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구원도 받고 상도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이 세상에서 구원받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서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야 합니다.
제목: “하나님의 동역자들” (고전 3장)
본문: 고전 3:1~23
요절: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농사요, 하나님의 건물이니라. For we are labourers together with God: ye are God's husbandry, ye are God's building.” (고전 3:9)
주제: 교회 직분자들은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니 겸손하게 주님을 위해 봉사하자
고린도전서 3장은 교회의 분열을 언급하면서 내분의 치료약인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으로 우리 모두 하나님의 동역자로 돌아가서, 사람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을 바꾸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분열은 육신적인 것임(고전 1:1-4)
1 형제들아, 내가 영에 속한 자에게 말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갓난아이들에게 말하는 것 같이 하였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음식으로 하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지금까지 너희가 그것을 능히 감당하지 못하였으며 지금도 능히 못하기 때문이라. 3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하였도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다툼과 분열이 있으니 너희가 육신에 속하여 사람들처럼 걷지 아니하느냐? 4 어떤 이는 말하기를, 나는 바울에게 속하였다, 하고 다른 이는 말하기를, 나는 아볼로에게 속하였다, 하나니 너희가 육신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냐?
1-2절. 고린도교인들은 영에 속한 자들(프뉴마티코이스 πνευματικοῖς)로 형제를 대하기를 원하지만, 교회내 분열이 있는 것은 ‘육신에 속한 자들’(사르키노이스 σαρκίνοις) 곧 ‘육신적인 사람’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육신에 속한 자’라는 말은 3절에도 두 번, 전통사본(안디옥 학파)에는 4절에도 또 한 번 나옵니다. 바울은 이 표현을 그리스도 안에서 미숙하고 철이 들지 않은 갓난아이와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용어에서 ‘육신’(사르크스 σάρξ)은 로마서 7, 8장에서 많이 사용된 바대로 ‘사람의 본래 타고난 죄악성을 가진 몸’을 말합니다. 육신적인 사람이란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믿기는 하지만 아직 성신님의 지배를 받지 않고 본성의 죄악성에 지배를 받는 자, 즉 영적으로 미숙하고 갓난아이 성도를 말합니다. 2절. 이런 육적인 성도에게 우유와 같이 유순하고 쉬운 말로 훈계합니다. 성숙한 영적인 성도에게 먹일 수 있는 ‘밥’은 ‘딱딱한 음식’ 즉 엄한 훈계, 어려운 교훈, 영양가 있는 말씀을 말합니다. 갓난아기는 엄마의 젖을 먹지 딱딱한 음식을 먹지 못합니다. 이와 같이 영적으로 미숙한 성도들은 듣기 쉬운 교훈만 받고 어려운 교훈들을 받지 못합니다,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자들에 대하여 히 5:12-14에서 “시간으로 보건대 너희가 마땅히 가르치는 자가 되었어야 할 터이나 하나님의 말씀들의 첫째 기초 원리들을 남에게 다시 가르침을 받아야 할 필요가 너희에게 있나니 너희가 단단한 음식이 아니라 젖을 필요로 하는 자가 되었도다. 젖을 사용하는 자마다 갓난아이이므로 의의 말씀에 능숙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들에게 속하나니 그들은 그것을 사용하여 자기 감각들을 단련시킴으로 선악을 분별하느니라.”고 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자랄수록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모든 뜻을 연구하고 배우며 믿고 행하며 지식과 인격이 온전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영적으로 자라야 함을 가르칩니다. 에베소서 4:13-16,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분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분은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분에게서 온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벧전 2:1-2, “그러므로 모든 악의와 모든 교활함과 위선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새로 태어난 아기들로서 말씀의 순수한 젖을 사모하라. 이것은 너희가 그 젖으로 말미암아 성장하게 하려 함이라.” 벧후 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분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고 하십니다.
3-4절. 고린도 교회의 파당에 대해 지적합니다.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하였도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다툼과 분열이 있으니 너희가 육신에 속하여 사람들처럼 걷지 아니하느냐?” 고린도 교회가 다툼과 분열에 있음은 아직 육에 속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개역성경이나 개역개정역에서는 이를 ‘시기와 분쟁’으로 번역하는데 전통사본(개혁자들이 사용한 성경)에는 ‘시기와 다툼과 분열’(envying, and strife, and divisions)로 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갈 5:19-21에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죄악들 가운데 시기, 분쟁, 분열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분열의 죄들을 회개해야 구원 받습니다. 교회내에 분열과 파당과 분파가 있다면 주님께서 결코 기뻐하지 아니하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한국의 여러 교파들이 주님 안에서 연합해야 합니다(요 17:21). 4절. 교회의 내적 분열은 지도자들에 대한 교인들의 잘못된 태도에서 나타났습니다. 바울은 그 교회를 개척하여 설립한 자이었고 아볼로는 바울 후에 그 교회에 와서 성경 말씀을 가르친 목회자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안에 어떤 이들은 바울을 추종하며, 다른 이들은 아볼로를 추종하는 파당을 형성하였습니다. 교회에서 영적으로 미성숙한 자들은 사람에게 속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파당과 분열이 생깁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에서 주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람은 사람에 불과합니다. 지도자나 목사도 사람일 뿐입니다. 교회에 나아와 사람을 바라보면 시험에 떨어지고 실망하고 실족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에 나아와 오직 예수님만을 믿고 섬기고 순종하고 바라봅시다. 오직 예수님만, 오직 진리 중심으로 일치 단합해야 합니다. “보라, 형제들이 하나가 되어 동거함이 어찌 그리 좋으며 어찌 그리 기쁜가!” (시 133:1). 고전 2:14-3:4에서 세 종류의 사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① 육적인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이고 성신님을 받지 못한 자입니다. ② 영적인 사람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신님을 받아 하나님의 영의 지배를 받는 자이다. ③ 육신적인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만 아직 성신님의 지배를 받지 못하고 본성의 죄악성의 지배를 받는 자입니다. 한국교회의 분열 모습은 육신적인 사람의 모습으로 결코 주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137년 전부터 한국에 들어오신 선교사님들은 1889년 선교공의회(Council of Missions)를 조직하여 캐나다선교부는 함경도, 미국감리교 선교부는 서울, 충청도, 강원도지역, 미국북장로교 선교부는 서울, 평안남북도, 경상북도지역을, 호주장로교는 경상남도지역을 중점으로 선교하기로 했습니다. 1907년 1월 평양 장대현장로교회에 있었던 평양대부흥운동은 기독교 전 교파가 참여했으며, 이것의 영향으로 일어난 1919년 3월 삼일독립운동도 전 교파가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신사참배문제에 조선기독교 전체가 단합하지 못했습니다. 해방 후 장로교에서 신사참배 문제로 1946년 고려파(고신)이 갈라지고, 자유주의 신학문제로 1954년 기장(한신)이 갈라지고, 1959년 WCC(세계교회협의회) 가입문제로 찬성을 한 연동측(현재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과 반대한 '승동측'(현재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이 분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일치와 연합 운동도 있었습니다.
2008년에는 제주도 선교 100주년을 맞이하여(이기풍 선교사가 1908년 9월에 파송받음)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과 통합측, 합신측은 물론 예장 고신, 대신측도 제주도 선교 100주년 기념 총회와 연합집회를 개최하였습니다. 2012년 9월에는 한국 장로교 총회 100주년을 맞이하여 장로교의 주요 교단들이 장충체육관에 모여 감사예배를 드렸고, 합동측과 통합측은 제주에서 100회 총회를 가지면서 연합예배를 드리고, 양 총회장들이 섬기는 교회를 상호 방문하는 강단교류를 하면서 대한예수교장로회가 대표적인 교단의 연합 분위기가 무르익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2013년 가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세계교회연합회(WCC, World Council of Churches) 제10차 총회개최로 찬성하여 참석하는 통합측, 백석측과 반대하는 합동측과의 냉전이 지금까지 진행 중입니다. 연합의 분위기는 또 다시 강건너 갔습니다. 예수님이 머리와 몸이 되시는 교회가 찢겨져 있는 모습이 주님께 너무 죄송할 뿐입니다. 오늘날 미국장로교(PCUSA)와 감리교(UMC)는 동성애자들 안수문제로 분열이 되어 교단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우한코로나(COVIC 19)의 전염병으로 각 나라마다 예배 모임이 제한을 받고, 특히 중국과 대한민국의 교회들이 핍박과 고난 가운데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백신접종으로 다소 진정될 것이라는 예측과는 달리 델타(Δ), 람다(Λ) 변이 바이러스(variant virus)로 4차 대확산 중이고 수도권은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 4단계 발효 중입니다. 기도하시는 많은 분들은 이 시기야 말로 모든 목회자들, 성도들, 교회들이 본질로 돌아가고 분열과 교만과 우상숭배의 죄를 하나님께 회개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하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더니 그날 밤에 여호와께서 응답주시기를 “혹시 내가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시 메뚜기들에게 명령하여 땅을 삼키게 하거나 혹시 내 백성 가운데 역병(전염병 pestilence)을 보낼 때에 내 이름으로 불리는 내 백성이 자기를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고 자기들의 악한 길들에서 떠나면 그때에 내가 하늘에서부터 듣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며 그들의 땅을 고치리라.” (대하 7:13-14) 말씀대로 겸손하고 기도에 전혀 힘쓰며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고 땅을 고쳐주실 것입니다.
온 교회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영적 전투를 위해 하나로 뭉쳐야 합니다. 주님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 순복음, 등 정통교회들은 대장되시는 예수님 아래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 있었던 대각성운동이 오늘날 코로나 후기(post-corona) 시대를 준비하는 한국교회에 일어나기를 기도드립니다. 장대현교회는 1893년 미국 북장로교 한국 선교부 대표인 새뮤얼 마펫 선교사(마포삼열, Samuel A. Moffett)가 평양 널다리골에 세운 교회가 그 뿌리입니다. 길선주 장로님께서 시작한 새벽기도운동의 고향이며,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시발점이었고, 일제강점기엔 독립운동의 중심지로, 광복 후엔 반공의 터전으로 모진 핍박을 받았으며, 지금은 이 자리에 북한 공산주의 우상인 김일성과 김정일 동상이 다니엘2-3장에 나오는 느부갓네살 신바벨론 제국 왕이 세운 금신상 크기(높이가 60규빗= 27미터)로 세워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시는 우상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대현교회가 복원되기를 기도하며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 경기도 이천시 있는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관장 한동인 장로, 2007년 개관) 마당에 있는 평양 장대현교회를 5분의 1크기로 축소해 복원한 것(25평)이 서 있습니다. 이제 평양이 한국의 예루살렘으로 회복될 날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의 통일을 준비하며 기대하며 북한에 있었던 교회 3040개가 복원되도록 우선 우리 자신이 성신님의 충만과 지배를 받는 영적인 사람, 영적인 교회가 됩시다. 평양장대현교회 복원하는 일을 추진합시다.
2. 자라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고전 3:5-15)
5 그런즉 바울은 누구며 아볼로는 누구냐? 그들은 단지 주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이와 같이 심는 자나 물 주는 자는 아무것도 아니며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니라. 8 이제 심는 자와 물 주는 자는 하나이며 저마다 자기의 수고에 따라 자기의 보상을 받으리라. 9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농사요, 하나님의 건물이니라. 10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에 따라 내가 지혜로운 주 건축자로서 기초를 놓았고 다른 사람이 그 위에 세우되 저마다 어떻게 그 위에 세울지 주의할지니라. 11 아무도 이미 놓은 기초 외에 능히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나니 이 기초는 곧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12 그런데 만일 어떤 사람이 이 기초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건초나 짚을 세우면 13 각 사람의 일이 드러나리라. 그날이 그것을 밝히 드러내리니 이는 그것이 불에 의해 드러나고 그 불이 각 사람의 일이 어떤 종류인지 그것을 시험할 것이기 때문이라. 14 어떤 사람이 그 기초 위에 세운 일이 남아 있으면 그는 보상을 받고 15 어떤 사람의 일이 불타면 그는 보상의 손실을 당하리라. 그러나 그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에 의해 받는 것 같이 받으리라.
바울은 하나님께서 복음 사역자들을 사용하여 혼들을 구원하시고 교회를 세우시고 구원받은 혼들을 온전케 하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5-8절. 바울이나 아볼로는 주님께서 각각 주신 대로 고린도 교회를 세우게 하셨고 목양하게 하신 사역자들입니다. ‘사역자(使役者)’라는 원어(디아코노스 διάκονος)는 ‘섬기는 자, 일꾼, 봉사자(ministers)’라는 뜻입니다. 바울과 아볼로는 고린도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쳐 그들로 하여금 믿음을 갖게 하고 믿음에서 자라게 한 복음의 일꾼들이었습니다. 일꾼들이 중요하지만, 하나님과 복음은 그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일꾼은 자기 자신을 자랑하지 말고 그를 보내주신 주인님, 곧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해야 합니다. 또 교회는 일꾼들 중심으로 분열하지 말고, 하나님 중심, 주님 중심, 복음 진리 중심으로 일치 연합해야 합니다. 6절에서 바울은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게 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씨를 심는 것은 복음을 전하여 혼들을 구원하고 교회를 세우는 것을 가리켰고, 물을 주는 것은 세워진 교회를 목회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농사에서 심는 일도 가꾸는 일도 다 중요하듯이, 복음 사역에서는 전도도 목회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씨를 자라게 하시는 분은 사람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생명은 오직 하나님께 속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 받지만, 하나님께서 하시지 않으면 사람이 한 혼(soul)도 구원받을 수 없고 한 혼도 성장시킬 수 없습니다. 개인의 구원과 성장도, 교회의 설립과 성장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분열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십니다. 7절에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복음 사역에 있어서 복음의 일꾼 자신이 대단히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복음 사역자들을 사용하셔서 영혼들을 구원하셨을 뿐입니다. 8절에 심는 이와 물 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고 하십니다. 복음 사역자들에게 상급이 따를 것입니다. 각각 자기의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을 것입니다. 성경은 복음 사역자들이 받을 상(reward)에 대해 종종 말합니다. 상급은 구원과 다릅니다. 구원이란 죄에서 건짐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죄 있는 자가 죄 없는 자가 되는 것이 구원입니다. 우리의 죄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해결됩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는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따라 영광스럽게 부활하고 변화될 것입니다(롬 8:30; 빌 3:21). 그것이 구원의 완성과 목표인 영화(榮化)입니다. 그러나 상급은 다릅니다. 상급은 선행과 봉사, 특히 복음 사역에 대해 약속됩니다. “심는 이와 물 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구원에 차등이 없으나, 상급에는 차등이 있습니다. 죄로부터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값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받으며(롬 3:24), 마지막 날에 모든 성도는 다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할 것입니다(롬 8:30). 구원받은 성도에게 주어지는 상급은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즉 자신의 선행과 봉사와 충성의 정도에 따라서 주어질 것이므로 거기에는 차등이 있습니다.
9-10절. 바울은 복음 사역을 이렇게 농사에 비유하고 또 건축에 비유합니다. 복음 사역은 밭에 씨를 뿌리고 물을 주는 일과 같고, 또 터를 닦고 집을 짓는 일과 같습니다. 복음 사역자들은 다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성도들과 교회는 하나님의 밭과 같고 하나님의 집과 같습니다. 집을 짓기 위해서는 먼저 기초를 닦아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고린도 교회의 터를 닦은 자로 표현하고 자기 뒤에 일하는 사역자들을 그 기초 위에 건물을 세우는 자들로 묘사합니다. 바울은 터를 바르게 잘 닦아 놓았기 때문에 그 위에 건물을 세우는 자들은 조심스럽게 건축해야 합니다. 기초를 닦는 것은 바울이 고린도에서 전도하여 혼들을 구원함으로 교회를 시작한 것을 말합니다. 이제 기초가 잘 닦여진 고린도 교회는 더욱 튼튼히 세워져야 합니다. 목회(牧會)는 집을 완성하는 일과 같습니다. 목회자는 집을 완성하는 자입니다. 목회의 목표는 교회의 영적 건립과 성장입니다. 이미 구원받고 속죄 신앙을 가진 자들은 충실한 가르침을 통하여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인격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출산 후에 양육이 있듯이, 영적으로도 중생(重生)과 칭의(稱義)는 구원의 시작이요 성화(聖化)는 구원의 진행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이번 8월 한 달을 “경건의 달”로 지키고 있습니다. 경건 곧 하나님의 거룩성을 회복하는 일에 최선을 다합시다.
11-15절. 교회의 터는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그 외에 다른 터는 있을 수 없습니다. 만일 다른 터를 닦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고, 사이비 이단 집단이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반석은 “주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한 그의 신앙고백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것이 교회의 기초입니다. 속죄 신앙은 그 믿음의 핵심이며 성도의 기본적 자격입니다. 12-15절에 구체적으로 집을 짓는데 필요한 건축 자재에 대해 언급하는데 교회를 금, 은, 보석, 나무, 풀, 짚으로 지으면 인간의 공적이 강조되어 조심해야 합니다. 요한 칼빈은 이 구절을 강해하면서 “항상 그 기초를 가지고 있지만 풀과 금, 짚과 은, 나무와 보석을 섞는 자들, 즉 그리스도 위에 짓지만 육신의 연약성의 결과로 어떤 인간적인 것을 용납하거나, 무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의 엄격한 순수성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는 자들에 대해 바울이 말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설명합니다. 프린스톤 신학교의 찰스 핫지(Charles Hodge, 재임 1851~1878년)교수는 주석하기를 “사도가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바는 비록 복음의 기본적 교리들을 지니고 있지만 그것들에 오류를 섞는 교사들에 관한 것이다,”고 설명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예수님의 보혈로만 이지 인간의 공로나 노력이 아닙니다. 건축 자재에 따라 교회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누일 것입니다. 하나는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지어진 내구성(耐久性)과 영구성(永久性)이 있는 교회요, 다른 하나는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지어진 내구성과 영구성이 없는 교회입니다. 이것은 또 두 종류의 목회를 의미하기도 할 것입니다.
하나는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집을 짓는 목회요, 다른 하나는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집을 짓는 목회입니다.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짓는 것은 자재값이 비싸지 않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크고 웅장하게, 또 빠르게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짓는 것은 재료값이 비싸고 기술도 많이 필요해서 아마 집을 짓기가 힘들고 그렇게 웅장하지도 못하고 또 더딜 것입니다. 그러나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교회를 짓는 목회만이 참 목회요 그렇게 지어진 교회만이 참 교회가 될 것입니다. 13절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그러면 금이나 은이나 보석은 무엇이며, 나무나 풀이나 짚은 무엇입니까? 금이나 은이나 보석은 바른 교훈을 가리키며, 나무나 풀이나 짚은 거짓된 교훈을 말합니다(Hodge). 바른 교훈, 건전한 교훈, 견고하고 확실한 교훈이 없다면, 참되고 바른 교회가 세워질 수 없을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이 섞이지 않은 바르고 순수한 설교는 바른 교회 건립에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나무나 풀이나 짚은 거짓된 교훈을 가리킵니다. 참 평안은 죄를 버릴 때에만 오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찬 257장(통 189장) 2절 가사에서 교회는 주님의 보혈로 세워져야 합니다. ”금이나 은같이 없어질 보배로 속죄함 받은 것 아니오. 거룩한 하나님 어린양 예수의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 속죄함 속죄함 주 예수 내 죄를 속했네 할렐루야 소리를 합하여 함께 찬송하세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 아멘” 14-15절은 일차적으로 목회에 관해 말합니다. 복음 사역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하신 일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사역자들에게 상을 약속하십니다. 복음 사역자들은 자신의 일한 바가 불 시험을 통과하면 상을 받을 것입니다. 즉 그가 목회했던 교인들이 불같은 환난을 잘 통과하면 그는 성공적 목회를 한 자일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불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비록 그 자신이 구원을 받는다 하여도 그는 부끄러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며 그의 목회 사역에 대한 상을 잃게 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 몸을 더럽히지 말라(고전 3:16-17)
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그를 멸하시리니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며 너희가 곧 그 성전이니라.
16절.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것은 성도 개인도 그러하고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도 그러합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한 것은 우리 속에 하나님의 영께서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께서 거하시는 곳은 거룩한 곳, 곧 성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성막이나 성전은 신약시대에 일차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예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라고 하셨습니다(요 2:19). 요 2:21은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의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했을 뿐 아니라, 신약시대의 교회를 상징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 성전에 계심으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셨던 것처럼, 신약시대에 하나님의 영께서는 성도 개개인 속에 계시고 또 온 회중 가운데 계십니다. 고전 6:19에서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신님의 전(the temple of the Holy Ghost)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했고, 엡 2:20-22에서는, “너희는 사도들과 대언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분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님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영(the Spirit)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라고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 즉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영께서는 성도 개개인 가운데 그리고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 가운데 거하십니다. 17절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성도의 모임인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은 큰 복이지만, 그 사실은 또한 우리에게 성도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지 않고 거룩하게 보존해야 한다는 중대한 의무를 보여줍니다. 성전을 더럽힌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 범죄 하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성전인 개인의 몸을 더럽힐 뿐 아니라, 또한 교회를 더럽힙니다. 특히 당시에 고린도 교회에서 볼 수 있었던 미움과 시기와 질투와 분쟁은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를 더럽히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모습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자는 하나님께서 멸하시리라고 경고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 개인이 죄짓는 것을 미워하십니다. 죄를 토해 냅시다.
4. 세상의 지혜를 피하라(고전 3:18-23)
18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로운 것처럼 보이려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그가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19 이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음이니 기록된바, 그분께서 지혜로운 자들을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느니라, 하였고 20 또 다시, 주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의 생각들을 아시며 그것들이 헛된 줄 아시느니라, 하였느니라. 21 그러므로 아무도 사람들을 자랑하지 말라. 모든 것이 너희 것이니라. 2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상이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현재 것들이나 장래 것들이나 모든 것이 너희 것이요, 23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18-20절. 사람의 사상들과 철학들은 실상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진리 되신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진리를 논하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 세상의 가장 지혜로운 자의 지혜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미련한 것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는 자들을 스스로 속게 하시며 그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의 지혜가 참 지혜가 되지 못하며 오히려 자기 꾀에 빠지고 자기모순 속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는 헛된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21절에서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사람 중심의 파당과 분쟁이 그들의 문제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만 자랑하고 하나님께만 감사해야 합니다. 22-23절. 바울도 아볼로도 게바도 다 교회를 위한 일꾼들이요 교회의 공동 소유물입니다. 그들은 교회의 한 파당의 당수가 될 수 없고 모든 교회의 공동적 봉사자들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으로 돌아와 온갖 시기와 분쟁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온 교회가 그리스도의 한 몸임을 깨닫고 서로 사랑하며 일치 단합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지 말고,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을 섬긴다는 신앙으로 하나가 됩시다. 세상적 지혜를 다 버리고 또 그런 지혜가 자신을 속이는 헛된 것임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만 자랑하고, 사람을 자랑하지 맙시다. 십자가와 보혈의 신앙으로 하나가 됩시다. 아멘.
[오늘의 기도]
교회의 머리와 몸이 되시는 주님, 저희들로 영적인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여 하나님의 성전으로 회복되게 하시며 온 교회가 주님의 한 몸임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거룩성을 회복하여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룻기 1장 히브리어 성경 강해] 룻이 나오미에게 간청함(룻 1: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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