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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방언의 은사가 무엇인가요?

복음의 능력 2020. 7. 19.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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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도 알쓸잡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성경공부 중에서 방언의 은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을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이나 말하지 아니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오 (고전 14:6)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리라 (고전 14:18,19)

 

1. 머리말

 

방언 (glossolalia)은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셨을 때와 초대교회 당시 고린도 교회를 비롯하여 여러 교회들 가운데 성행했던 은사로서 성령께서 교회의 유익을 위해 주신 아홉 가지 은사 중의 하나이다. 이것이 성경에서 우리에게 말해 주는 방언인데 근래에 와서 허다한 교회와 산상 집회 등지에서 실제로 나타나고 있는 방언에 대해서는 허다한 의문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혹자들은 방언이 은사를 주장하면서 은사를 사모하는 성도들에게 방언이 은사를 받으라고 강조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더러는 방언의 은사가 오늘에는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여 현재 교회나 집회 등지에서 행해지고 있는 방언에 대하여 분명한 성경적인 이론의 근거도 없이 이단적 행위로 단정해 버리고 있어서 이런 성도들에게는 많은 신앙의 갈등을 일으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앙 성장에 커다란 장애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성경적인 방언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하여 성경에서 그 정답을 알아보는 것은 매우 시급한 일이라고 하겠다.

 

 

 

2. 방언의 종류

 

현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 방언은 실제로 교회 안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다 이방 종교나 사이비 종파에서도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같은 방언들은 성경적인 방언과는 무관한 이방 방언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방언은 다음과 같이 크게 두 가지 종류로 구별이 가능하다.

1) 사람이 직접 알아들을 수 있는 방언이다

 

이 방언은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오순절에 예루살렘 다락방에 약속하신 성령이 강림하실 때 나타난 방언이다. 그 당시 예루살렘에는 여러 각국에서 모인 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가 고국을 떠나 이방 나라에서 태어나 자라난 유대인들이기 때문에 서로 언어가 소통되지 않았다. 제자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방언으로 설교를 했다. 각국에서 모인 자들은 자기들의 난 곳의 방언으로 모두가 다 알아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신기하고도 놀라운 사건이었다 이러한 방언을 가리켜 혹자들은 대인설 방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2) 하나님만이 알아들으실 수 있는 방언이다

 

이 방언은 주로 고린도 교회를 중심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통역의 은사가 없이는 어는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고 다만 하나님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방언의 형태이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위하여 기도할찌니 .....”(고전14:13)라고하여 통역 없이는 알아들을 수 없음을 말해 주고 있다. 혹자들은 이러한 방언을 가리켜 대신설 방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 안에서나 각종 집회 등지에서 남이 알아들을 수 없는 오랑캐 소리를 발하는 역사들을 가리켜 성경에서 가르치는 방언이라고 단정하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쉽게 속단해서는 안 되는 형태의 방언이다.

 

앞에서 언급한 두 가지 형태의 방언이 정말 본질적으로 다른 것들이냐 하는 데는 많은 논쟁이 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방언이 같은 성령에 의하여 같은 목적으로 동시대의 표적적 은사로서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이라면 그것들이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나타나는 현상에 있어서 전자 즉 예루살렘에서 나타난 방언은 방언과 통역의 은사가 동시에 주어진 것이라면 후자 즉 고린도 교회에서 나타난 방언은 방언과 통역의 은사가 분리되어 나타난 것뿐이다. 이러한 의미로 볼 때 두 가지 형태의 방언은 본질적으로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3. 방언의 내용

 

하나님께서 초대 교회 시대에 성령의 은사로 주신 방언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방언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가를 알아보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방언의 내용이 방언 자체의 성격을 이해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은 방언의 내용에 대하여 아주 분명하게 밝혀 주고 있다.

 

 

1) 복음의 내용이다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제자들을 통해 방언으로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이때 각 국에서 온 자들이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 도다 (행2:11)고 말하였다. 여기서 하나님의 큰 일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신 복음적 사건을 말한다. 그것은 삼천 명이나 세례를 받고 제자가 되게 한 베드로 사도의 설교 내용이 이를 잘 증명해 주고 있다. (행2:14-42) 따라서 성령강림 시 제자들의 방언 내용은 복음적 사건 즉 하나님의 큰 일에 대한 내용임이 틀림이 없다.

2) 하나님의 비밀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 방언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해 주고 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혼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고린도 14:2)고 하였다. 즉 방언의 내용은 비밀이라고 하였는데 그러면 이 비밀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일까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 만세전의 하나님의 예정에 의하여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비밀. 감추었던 비밀이라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고린도 교회의 방언 내용인 비밀 역시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진리인 하나님의 비밀임을 확실하게 증거해 준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초대 교회 시대에 성령의 은사로 주신 방언의 내용은 오순절 성령 강림하실 때에 있었던 방언이나 고린도 교회에서 있었던 방언 모두가 한결같이 복음의 내용으로서의 하나님의 비밀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성경적인 방언과 성경적이 아닌 방언을 분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4. 방언의 용도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용도로서의 필요성에 의하여 방언의 은사를 허락하시는가에 대한 문제 역시 방언을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성경은 매우 정확한 대답을 제공해 주고 있다.

1) 성령강림의 표적이다

 

방언은 하나의 표적이라고 성경은 밝히 말해준다. 표적이란 그 무엇을 밝히 드러내어 주기 위하여 증거물이 되어 주는 어떠한 사건을 말한다. 따라서 방언이란 구약 시대에 선지자들이나 신약 시대에 예수께서 약속하신 대로 성령이 강림하신 사건에 대한 표적임이 분명하다.

 

구약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회복의 날에 있어질 사건을 예언하기를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사28:11)” 고 했고 신약에서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성령 강림 후 해야 할 복음 전파를 명하시면서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회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으로 말하며 ...(막 16:17)” 라고 예언해 주시고 있다. 이렇게 이사야와 예수님의 예언대로 방언의 역사가 복음 전파의 초기인 사도 시대에 나타났다는 것은 약속하신 성령이 강림하셨다는 사실을 증거해 주는 표적으로서의 용도와 그 필요성이 있음을 분명히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2) 계시 전달의 방편이다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오순절에 성령 강림을 시작으로 세워진 초대 교회 시대는 복음의 구체적인 내용을 계시하여 성문화 한 신약 성경이 없었을 때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약 성경을 통하여 메시아가 오리라는 예언을 하게 하시고 예언대로 성취된 복음적 진리를 계시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계지 방편들을 사용하셨던 것이다 그러한 계시 방편들 중 하나가 방언인 것이다.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셔서 제자들로 하여금 과거에 예수님으로부터 듣고 본 바를 다시 기억나게 하시고 깨닫게 하여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큰일 즉 복음 진리를 전하게 하신 것이다. 역시 고린도 교회에 있어서도 신약 성경이 없을 때였으므로 비밀 즉 하나님의 복음의 진리를 전달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방언의 은사로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작정하신 복음의 비밀이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서 타락한 인간 유체의 어두워진 이성의 장애를 무너뜨리고 땅끝까지 전달이 되게 하시려고 방언이라는 계시 전달 방편을 사용하신 것이다. 방언의 용도에 대한 성경적인 견해는 오순절 성령 강림의 표적과 신약 계시 전달 방편이라고 확인해 주고 있다.

 

5. 방언의 시기

 

방언이란 무엇인가 에 해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방언이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이에 대한 문제의 해답을 앞에서 언급한 제반 사항들을 종합 검토함으로써 얻을 수도 있으나 성경도 이에 관해 언급을 해주고 있다. 또한 교회사도 이에 한몫을 거들어 주고 있음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1) 오순절 성령강림 때이다

방언이 구약에서 이사야 선지자나 신약에서 예수님의 약속에 의한 오순절 성령 강림의 표적적 사건이라면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할 때가 방언의 시기가 된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저회가 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한지라(2:4)”고 한 말씀은 이를 증거해 주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 단회적이냐 반복적이냐 하는 것이다 오순절파를 비롯한 신비주의자들은 반복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은 성경의 예언대로 단회적으로 성취된 사건이다. 오순절 강림하신 성령은 세상 끝날까지 우리 지상 교회와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지금도 성령께서 오순절에 강림하시듯이 반복적으로 매 시대마다 때때로 강림하시는 것이 절대 아니다.

따라서 성령 강림의 표적으로서의 방언도 일시적 사건임은 너무도 분명한 것이다. 분명히 성령은 매년 오순절마다 또는 어 특별한 집회 때마다 오순절 성령 강림 때와 같은 징조와 표적을 동반하면서 강림하시지 않는다.

 

 

구약 시대에 해마다 반복적으로 규례에 따라 지켜야 했던 삼대 절기 중의 하나인 오순절 (칠칠절) 절기는 하나의 예표로서 신약교회의 시대에 예수께서 승천하신 직후 오순절 날 예루살렘 다락방에 성령께서 강림하심으로 단번에 실체적으로 성취된 것이다. 이것은 구약의 모든 예표적인 사건들이 신약 시대에 복음 안에서 실체적인 것으로 단번에 다 성취된다. (7:27)는 진리와 그 맥을 함께 하고 있다. 따라서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하나님의 언약 과정에서 단회적으로 성취되는 것이 분명한 이상 그에 따르는 표적으로서의 방언 역시 일시적인 표적적 은사임이 분명하다.

2) 신약 계시 시대 (사도 시대)이다

바울은 고린고 교회를 향해 방언에 대한 교훈을 하시면서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고전14:8,9” 고 하였다) 문제는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고 한 말씀 중에서 온전한 것이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혹자들은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때를 말한다고 하여 지금도 부분적으로 하던 방언의 은사가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온전한 것이란 방언이나 예언이나 지식을 통한 부분적인 비밀의 계시가 아닌 온전한 비밀의 계시를 뜻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14장까지 방언에 대해 언급한 후 15장에서는 온전한 비밀의 복음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즉 온전한 복음의 비밀이 성령의 감동으로 다 알려지게 되면 - 신약 계시의 완성을 뜻함 - 예언도 방언도 지식도 폐한다는 말이다.

성령께서는 사도들을 통하여 온전한 복음의 비밀을 드러내어 기록하게 하셨다. 이것이 곧 신약 성경이다 따라서 사도들을 통하여 신약 계시 즉 온전한 것을 이루기까지는 성령의 능력으로 부분적인 여러 가지 계시 방편으로서의 방언 예언 꿈 환상 음성 등을 사용하셨으나 신약 계시 즉 부분적 계시가 아닌 온전한 계시가 이루어진 이후에는 당연히 부분적 계시 방편인 방언도 폐하여졌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사도들을 통하여 신약 성경을 기록하게 하시던 계시 기간 즉 사도시 대만이 성경에서 말하는 방언의 시기인 것이다.

계시 시대는 사도시대를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사도 시대에는 사도들이 안수함으로써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방언을 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약 시대에 있어서 계시 시대 즉 사도 시대와 교회 시대를 분명하게 구별해야 한다. 이것을 혼돈하는 데서 오는 결과가 교리적인 큰 차이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방언이 나타나는 시기는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반복적이거나 계속적인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계시 시대 즉 사도 시대에만 국한된 일시적인 것이다. 이것은 사실은 교회사를 통해서도 우리가 잘 알 수 있다.

사도 시대 이후 교부 시대에는 방언에 대하여 언급한 일이 없고 예외적으로 몇몇 종파에서 언급한 일이 있다. 그중에 몬타누스 교도들이 그 좋은 예가 되고 있는데 몬타누스는 자기가 예언자의 영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자기가 곧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다가 2세기 말에 교회에서 추방당한 자이다. 그런데 글 추종하는 교도들이 방언을 했다. 확실히 전통에 속하지 않은 이들 회색 그룹의 방언에는 신학적 균형이 결여된 광신이 뒤따랐다. 결론적으로 방언이란 어떠한 형태의 방언이든지 본절적으로 같은 성령의 능력에 의한 것으로서 그 내용으로서는 복음의 비밀을 담고 있는 것인데 어디까지나 성령 강림의 표적과 계시 전달의 방편으로서 계시 시대 즉 사도 시대에만 있었던 일시적인 은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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