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도 알쓸잡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교회 연구 중에서 예수님의 치유 사역 원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 재 범 목 사
(아세아 연합신학대학 강사)
4. 예수의 치유사역의 원리
첫째는 병자에 대한 동정심, 즉 사랑입니다. 복음서 제자들은 예수의 치유사역이 사랑에 의한 동기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믿음을 중요시했습니다. 백 부장의 큰 믿음을 보시고 그의 하인을 고치셨고(마 8:5~13), 소경들의 믿음을 보셨고(마 9:27~31), 열 두해 혈루증으로 고생하는 여인의 믿음을 보셨고(막 5:25~34), 귀신 들린 아들의 아버지의 믿음을 보셨습니다.(막 9:14~29). 그러나 예수의 고향인 나사렛에서는 믿음이 없는 고로 많은 치유를 베풀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눅 4:23~30, 막 6:1~6).
셋째로 예수님은 항상 치유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백 부장의 하인이 중풍병으로 고생한다는 말을 듣고 ‘고쳐 주리라’(마 8:7)고 말씀하셨습니다.
넷째로 치유의 방법으로는 여러 가지 형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① 손을 댔다(마 8:15), ② 기도로써(요 11:41~42), ③ 명령-가라(마 8:5~13), 일어나라(눅 5:17~26), 손을 펴라(눅 6:6~10), 가서 씻으라(요 9:7), 가서 제사장에게 보이라(눅 17:11~19), ④ 손을 대시고 동시에 명령하심(눅 5:12~16), ⑤ 진흙 또는 침을 사용하셨습니다(막 7:31~37).
다섯째로 예수의 치유는 공개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치유를 은밀히 하신 적도 있긴 합니다(막 5:35~43, 막 8:22~26, 눅 4~38~39).
여섯째로 환자에게 질문을 하심으로 치유를 하셨습니다. 소경에게는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었고(막 8:22~26), 귀신 들린 자에게는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고(막 5:1~13),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또 내가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 하는 질문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일곱째로 예수께서는 치유에 대한 의학적인 증명을 하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치유 사역에서 문제 되는 것이 바로 약을 먹거나 병원에 가지 말라는 것인데, 예수께서는 치유하시고 나서 의학적인 수단을 사용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배경은 레위기 13:49, 14:2~32에 그 근거가 있고 예수께서는 의학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문둥병 환자들에게 병 고침을 베푸시고 난 후 “가서 제사장들에게 보이라”고 하신 점이 바로 그 점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제사장들은 의사의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마 8:1~4, 눅 17:11~19, 막 2:17).
여덟째 계속해서 기도하셨습니다(막 8:22~26, 눅 4:31~41).
이런 치유 사역을 하신 예수님의 삶에는 네 가지의 중요한 삶의 국면들이 있습니다.
① 성부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17~21에 보면 예수는 아버지가 하신 것을 본 그대로 행동하고 말씀하셨습니다.
② 성령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셨습니다. 누가는 그리스도의 삶에서 성령의 역할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세례 받을 때에 성령으로 충만하셨고(눅 3:21~23), 성령이 충만하여 세례 후에 시험을 받으셨고(눅 4:1이하),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가셨고(눅 4:14), 성령이 충만하여 사역하셨습니다(눅 4:18). 또 성령의 권능으로 병자를 고치셨습니다(눅 5:17).
③ 기도의 삶이었습니다. 신약에서 기도는 치유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벙어리,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신 후에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또 세례 받을 때도 기도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시험받을 때도 기도하셨습니다. 바쁜 속에서도 기도하셨고, 시간이 있을 때마다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고, 열 두 제자를 선택하셔서 파송하기 전에도 기도하셨습니다(눅 6:12~16). 마찬가지로 말씀이 확실히 증명되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되고, 기도할 때 여러 가지 표적이 확실히 증명하고 흥왕 하게 한다고 성서는 말하고 있습니다(막 16:20).
④ 하나님 나라를 가져오기를 원하셨습니다. 대개 하나님 나라 하면 미래적이고 종말론적인 개념으로만 생각합니다. 물론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종말에 되지만 말씀과 신유의 역사를 통해서 현재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와 치유 사역의 훈련
이제 과연 예수께서 행한 치유사역을 오늘날 교회가 할 수 있으냐 하는 문제를 언급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영혼을 구원하시고 병든 자를 치료하심으로 자신의 하나님 나라를 현재적으로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이 치유 사역에 동참하여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사람들이 들어오기를 원했습니다. 왜 하나님 나라와 치유가 관계가 있습니까. 치유가 될 때에 치유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는 일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이 치유 사역을 강조하고 중요하게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첫째로 예수께서는 치유사역의 모델이셨습니다. 그는 12제자를 택하시고 70인을 택하셔서 그들에게 자신의 치유사역을 실제적으로 보여주셨고, 그들은 그것을 배웠으며, 그들이 스스로 나가서 치유사역을 하도록 명령을 받았고, 치유사역을 한 후에 예수께 와서 보고를 했습니다.
둘째는 훈련입니다. 예수는 그들을 훈련시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이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셋째는 성령의 능력입니다. 즉 치유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능력이 필수적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충만히 힘입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치유사역에 있어서 성령의 기름부음을 충만히 받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넷째는 지혜롭게 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치유사역은 교만과 자신의 욕망이 살아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 중심이 되어 자기 바벨탑을 쌓을 위험이 있습니다. 또한 치유 목회를 하게 되면 주변에서 시기하고 험담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 이름으로 치유하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능력 전도와 교회 성장 그리고 하나님 나라와의 관계
교회성장의 요인이 크게 세 가지가 있다고 봅니다. 첫째는 생물학적(Biological)인 요인입니다. 즉 기성 교인이 아이를 낳아서 자연 증가하는 현상입니다. 이런 생물학적인 증가는 10년에 25%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둘째는 전입 성장(Transfer Growth)이 있습니다. 즉 타 교회에서 이전해 오는 성장입니다. 셋째는 회심 성장(Conversion Growth)입니다. 즉 예수를 처음 믿고 교회에 나오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성장 중에서 하나님 나라의 성장과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는 성장은 바로 회심 성장입니다. 생물학적 성장은 아직 중생의 체험이 없는 명목상의 교인이고, 전입 성장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보실 때 왼쪽 주머니에서 오른쪽 주머니로 옮겨가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에드먼드 크라우니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교회 성장은 성령의 능력 즉 새 피조물의 활력에 의한 왕국 성장이라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교회가 곧 하나님 나라 그 자체는 아닙니다.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 나라와 교회 사이에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지만 동일시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하고 교회는 사람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의 통치이며 그의 통치의 축복이 경험되는 영역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하고 그 축복을 누리는 사람들의 교제가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를 창조하고 교회를 통해서 일하며 교회에 의해서 세상에 선포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능력 전도로 제자를 삼아야 합니다. 교회 성장은 하나님 나라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능력 전도가 활발히 전개되어 신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생활양식에 따라 살아가는 교회로 성장한다면, 하나님 나라의 성장과 밀접하게 관계가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능력 전도는 참된 교회 성장과 하나님 나라의 성장에 큰 공헌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 론
우리는 과연 무엇을 놓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성서를 볼 때 성서를 전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를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물론 그것을 생각해 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2천 년 역사 속에서 계속해서 발전해 온 신학을 재조명해 보고 다시 한번 연구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조심할 것은 위대한 신학자의 말이라고 해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어떤 사상의 영향을 통해서 그러한 신학이 나왔는가를 철저하게 연구함으로써 기독교적인 신학으로 돌아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전도의 방법 중에서 과연 능력 전도의 방법은 얼마만큼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는가. 우리는 혹시 이 능력 전도의 방법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세계관이 바뀌고 시야가 넓혀져서 이 능력 전도에 대해 눈을 뜨고 적극적으로 수용할 때, 교회에 커다란 성장이 있을 줄로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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