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다니엘 2장 주일 설교 말씀 중에서 느부갓네살 왕의 꿈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꿈
다니엘 2장
주전 6세기 유대인들은 우상숭배를 비롯한 각종 죄악들에 대한 형벌로서 바벨론에 붙잡혀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거듭 유대 백성들에게 경고하셨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배역한 나라에 소수의 신실한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의 네 사람이 이제 바벨론의 요직을 맡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들이 보호를 받을 뿐만 아니라 이교 국인 바벨론에서 더욱 높은 직책으로 승진되는 경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표면상으로는 하나님의 참된 이스라엘이 없어지는 듯이 보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리를 고수한 소수의 무리들도 목숨을 잃을 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를 받습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이 소수의 남은 자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고 가십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본 것
2장1-13절은 느부갓네살 왕이 본 세 가지 것들을 말해줍니다. 첫째는 왕이 언급하기를 거부한 한 꿈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등극한 지 2년째 되던 어느 날 장래 일을 생각하면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는 거대한 제국의 굴대와 같은 인물이었으므로 장래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궁금히 여겼을 것입니다(29절).
우리가 자주 경험하듯이 낮에 생각하던 것들이 꿈에서 나타나는 경우는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느부갓네살 왕의 꿈은 보통 꿈이 아니였습니다. 이 꿈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꿈이 어찌나 선명한지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이 꿈을 꾸고 나서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악몽을 꾸게 되면 대개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난 뒤 한동안 꿈의 인상이 남아 있기도 하지만 결국은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느부갓네살 왕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그는 장미 깨었지만 꿈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고 전신을 휩싸는 공포심을 억제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는 즉시 자기 꿈을 해몽해 줄 자들을 불렀습니다(2절). 그의 궁전에는 온갖 종류의 재사(才士)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점쟁이, 마법사, 점성가, 갈대아 술사들이었습니다. 왕은 그들에게 자신의 번민을 호소하고 꿈을 풀어달라고 명하였습니다(3절). 그의 꿈은 풀지 않고서는 도무지 견딜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4절에서 7절까지는 갈대아어 혹은 아람어로 더 잘 알려진 시리아 언어입니다. 여기에는 왕의 재사(才士)들이 왕에게 무슨 꿈을 꾸었는지 일러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그 요청은 다소 무례한 감을 주기도 하지만 진언할 수 있는 성격의 말이었습니다. “왕이시여, 우리들에게 그 꿈을 알려 주십시오. 그러면 저희들이 해몽해 드리겠습니다. 왕께서 보신 것을 말씀해 주시면 저희들이 그 의미를 밝혀 드리겠습니다.”
재사들이 올린 이 합당한 요청은 왕의 진노를 촉발시키는 도화선이 되어 능지처참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이런 협박은 당시의 군주들에게는 다반사고 느부갓네살 왕은 자신의 극언을 실해할 수 있는 자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5절을 근거로 하여 느부갓네살 왕이 자기가 꾼 꿈을 잊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잊은 꿈을 놓고 계속 번민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왕이 꿈을 기억할 수 없다면 9절 하반절은 의미가 없어집니다. 왕은 자신이 꾼 꿈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재사들의 말이 옳은지 확인할 수 있고 따라서 그들의 해석이 정확한지 아닌지 확신을 가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6절에서 약속된 과도한 영예도 당시의 통치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조치입니다. 꿈을 알리고 해석하지 못하면 패가망신이 되고 성공하면 명예와 진급과 보상이 따르게 될 것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본 것은 꿈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갈대아 술사들이 시간을 끄는 것도 보았습니다(7-11절). 왕이 능지처참(陵遲處斬)의 위협과 과분한 약속을 함께 하자 술사들은 다소 누그러진 자세로 다시 왕에게 청하였습니다. “청컨대 왕은 꿈을 종들에게 이르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해석하여 드리겠나이다”(7절).
이에 대한 왕의 대답은 재사들의 속을 단도직입(單刀直入)적 찌르는 것이었습니다(8-9절). “너희들은 내가 묻는 물음에 전혀 답할 수 없기 때문에 시간만 때우려고 한다.
그래서 너희들이 해몽을 못할 경우 내가 능지처참(陵遲處斬)을 하겠다 한 말을 바꾸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지만 너희들이 내 꿈이 무엇이었는지를 알리지 못하면 그 해몽도 정확할 수가 없다. 내 꿈도 알리지 못하면, 너희들은 가짜며 사기꾼들임을 스스로 입증하는 셈이다. 그런 인간들에게는 한 가지 처벌밖에 없다. 내가 이미 말한 대로 극형을 받는 것이다.” 그러자 술객들은 10절에서 더듬거립니다. “왕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인간의 능력을 넘는 일입니다. 세상 역사에서 그런 요청을 한 전례가 없습니다. 우리들은 해몽을 해 올리는 것이 상례인데 이번에는 꿈까지 알아서 말씀을 드려야 한다니 인간의 힘으로는 너무 어렵습니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자는 신들뿐입니다.”
이 말은 들은 느부갓네살 왕은 노발대발(怒發大發)하였습니다. 그가 끝으로 본 것은 자신의 격노였습니다. “왕이 이로 인하여 진노하고 통분하여……”(12절). 왕이 격분하는 모습은 매우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큰 세력을 손에 쥔 자였습니다. 왕은 술객들의 고백을 들었지만 그들의 무능에 대해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술객들은 떵떵거리며 큰 소리를 쳐놓고 이제 와서는 발 뺌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내밀(內密)한 일들을 밝혀낸다고 주장했지만 왕을 번민케 하고 두렵게 하는 꿈이 무엇인지 알아내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더 깊고 지난(至難)=(아주 어려움)한 꿈들을 해몽할 수 있단 말입니까?
느부갓네살 왕은 몹시 화를 내며 “바벨론의 술객들을 모두 처형하라!”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왕이 이처럼 즉석에서 극형의 명령을 내린 것은 그의 꿈이 얼마나 그를 번뇌케 했는지를 말해줍니다. 그는 그 꿈의 의미를 알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 꿈은 느부갓네살 왕을 집요하게 괴롭혔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꿈을 해몽한 자가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의 역정은 극에 달하였습니다.
“술객들을 모조리 잡아 죽여라!”
이 명령이 미치는 범위는 다니엘,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까지 포함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점성가나 점쟁이라서 처형 대상이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교적이거나 우상적인 것들과는 일절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들도 바벨론의 재사들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넓은 의미에서 술객들에 포함되었습니다. 그래서 만약 성격이 급한 왕의 명령이 시행된다면 이 경건한 남은 자들도 끝장이 나고 말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진리에 충성을 다 바쳤던 이 소수의 인물들은 지상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며 이스라엘의 참 하나님도 증인이 없어져 잊혀지고 말 것이었습니다. 제1장에서 우리들은 이 네 명의 경건한 청년들이 타협의 유혹을 뿌리쳤던 사건들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이들이 어떤 믿음을 지키고 살아남게 될까요?
다니엘이 본 것
2장 14절부터 읽어 나가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위에서 느부갓네살 왕이 본 세 가지 사항들을 고찰했었습니다. 이제 다니엘이 본 세 가지 것들을 살펴봅시다.
첫째, 다니엘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았습니다(14-23절).
그는 바벨론 재사(才士)들을 처형하는 책임을 맡은 시위대 대장을 만나 매우 지혜롭게 접근하였습니다. 그 결과 왕의 처형 명령이 연기되었습니다.
다니엘의 다음 조치는 왕에게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왕의 접견을 허락받고 자기가 꿈을 해몽해 드릴 테니 시간적 여유를 달라고 간곡히 요청하였습니다(16절).
17절과 18절에 기록된 다니엘의 세 번째 조치로 미루어 보건대 왕은 다니엘의 청원을 받아주었음이 분명합니다. 다니엘은 경건한 그의 세 친구들에게 가서 함께 기도할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그들의 기도 제목은 다니엘이 해몽가로서 명성이 나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바벨론의 다른 재사들과 함께 억울한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하늘의 하나님께 자비를 베풀어주실 것을 간구하였습니다.
이 4명의 남은 자들은 한 집에 모여, 모든 선한 사람들의 기도가 그러하듯이 변론적인 탄원을 했을 것입니다. “주님, 우리들은 당신의 남은 자들입니다. 현재 바벨론에는 모든 재사들을 죽이라는 어명이 집행된다면 당신의 남은 자들이 없어지고 지상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끊어질 것입니다. 참 이스라엘이 멸절케 되었으니 하나님, 우리들을 긍휼히 여겨주옵소서, 제발 우리들에게 왕의 꿈과 그 의미를 알려주시기를 빕니다.”
그런데 17절을 보면 다니엘은 이미 해몽의 은사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더라.” 이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특별한 은사였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이 올린 합심 기도는 곧장 응답을 받아 다니엘은 왕의 꿈과 그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19절). 그 꿈에 대해서는 우리들에게 즉시 공개되지 않았지만 다니엘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대목이 본문에 선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니엘은 왕의 꿈을 명확하게 이해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에 대해 더욱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20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고 지혜로우시며 능력이 크신 분입니다. 이 하나님이 인간 역사를 통제하십니다. 자연이나 우상들이 아닌, 하나님이 세상 일을 붙잡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하늘뿐만 아니라 지상에까지 미칩니다. 이 사실을 믿지 않고는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모든 재사들보다 더욱 총명한 자였습니다. 그런 다니엘이 지혜에 대해 하는 말을 들어 보십시오(21절). 누가 지혜롭다면 그 사람의 지혜는 모든 지혜의 원천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다니엘은 자신의 깨달음이 하나님의 은혜로운 도우심에 의한 결과임을 감사한 마음으로 고백하였습니다(22-23절).
우리들은 다니엘의 고백을 통해 한 경건한 사람의 마음속을 일견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지체 없이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고 주를 찬양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가진 모든 것에 대해 조금도 자랑하지 않고 오직 주님께 영광과 감사와 찬양을 돌립니다.
둘째 다니엘은 매래에 되어질 하나님의 뜻을 보았습니다.
24-25절까지는 다니엘이 밤중에 본 환상에 대한 것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 기도의 응답에 대해 먼저 감사를 드린 후, 다음 단계로써 입궐하여 왕을 알현키로 하였습니다.
바벨론 궁에서는 그 누구도 함부로 왕 앞에 나아가지 못하는 엄격한 규례가 있었습니다. 16절에는 이 점이 명시되지 않았지만 다니엘이 관습에 따른 절차를 밟았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한편 이번에는 이러한 규례가 지켜진 것이 언급되었는데 25절을 보면 다니엘이 아리옥에 의해서 왕의 존전으로 안내되고 있습니다. 아리옥은 기회를 보아 왕의 꿈을 해몽할 수 있는 자를 마치 자신이 용케 찾아내었다는 식으로 왕에게 보고하였습니다.
왕은 다니엘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내가 얻은 꿈과 그 해석을 네가 능히 내게 알게 하겠느냐?”(26절).
다니엘은 서슴지 않고 답변하였습니다.
“인간들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은밀한 것을 드러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 왕께 후일에 일어날 일에 알려주신 것입니다.”
다니엘의 ‘후일’이라는 말을 들을 때 우리의 가슴은 뛰기 시작합니다. 성경에서는 이 용어가 그리스도의 탄생부터 이 세상 마지막까지의 기간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이 ‘후일’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의 시기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베들레헴의 구유로부터 시작되는 세상 역사의 전체 기간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꿈은 우리들이 지금 살고 있는 현 역사의 시기도 포함된 사건들을 말해 줍니다.
다니엘의 말은 다음과 같이 계속되었습니다.
“이 꿈은 왕께서 잠자리에 누워 생각하시던 장래의 일들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이제 소신이 그 꿈이 무엇이었는지를 알려 드리고 아울러 해몽까지 해드리겠습니다. 이것은 소신이 남달리 지혜롭고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소신을 통해 그 꿈의 해석을 드러내려 하시기 때문입니다.”
셋째,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이 꿈에서 본 것이 무엇인지 밝혔습니다.
31-35절까지는 느부갓네살 왕이 꿈에서 본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서술한 것인데 본 장의 클라이막스입니다.
왕은 꿈에서 하나의 거대한 형상을 보았습니다(31절). 이 형상은 거의 금속으로 된 것이어서 햇빛을 받아 번쩍거렸습니다. 이 형상은 광채가 크기 때문에 매우 무서운 인상을 주었습니다.
왕이 본 이 거대한 형상은 한 가지 측면만 제외하고는 모두 상이한 재료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머리는 순금이었고(32절) 가슴과 두 팔은 은이었습니다. 또 배와 두 넓적다리는 놋쇠(혹은 구리)였고 정강이는 철이었습니다.33절). 발가락까지는 아직 언급되지 않았지만, 발은 철과 진흙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꿈에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 현상은 어떤 꿈에서도 볼 수 없는 기이한 것이었습니다. 왕의 꿈에 나타난 그 거상(巨像)을 향해 하나의 보잘것없는 돌이 날아온 것입니다. 아아, 이 돌은 우리들이 길에서 밟고 다니는 한 작은 돌에 불과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돌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그 행방은 기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한편 왕은 이 돌이 형상의 발에 떨어지면서 모든 부분이 깨어져 가루가 되어버리는 것을 보았습니다(34절). 바람이 불자 그 가루들은 날려가고 자취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무섭고 단단하고 오래 서 있을 듯이 보였던 형상이 아주 없어진 것이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그 작은 돌이 켜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조그마한 조약돌이던 것이 큰 바위가 되고 점점 더 커져서 가장 높은 건물이나 제일 높은 언덕보다 더 거대한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마침내 이 돌은 하나의 거창한 산이 되어 온 세상을 가득 채웠습니다(35절).
“그 꿈이 이러한즉 내가 이제 그 해석을 왕 앞에 진술하리이다”(36절).
“왕이시여, 왕께서는 세상 권력을 한 손에 쥐고 계십니다. 왕은 하나의 왕국이시며 제국이십니다. 왕께서는 순금의 머리에 해당되십니다!”(37절).
“가슴과 두 팔도 하나의 제국입니다. 이 제국은 왕의 뒤를 이을 것인데 다소 세력이 뒤집니다”(39절).
“배와 두 넓적다리는 그다음에 서게 될 또 하나의 강대국입니다”(39절).
“정강이와 발은 그다음에 건설될 왕국입니다. 이 네 번째 제국은 철과 같은 무서운 파괴력을 지닐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제국은 철과 진흙으로 섞여 있기 때문에 서로 결합되지 못하고 분열할 것입니다. 한 부분은 강하고 다른 부분은 쉽게 부서질 것입니다.”
그럼 그 작은 돌은 어떻게 될까요? 네 번째 제국의 기간 동안에 매우 중요하고 큰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다음 말씀을 잘 들어 보십시오.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44절).
“왕이 사람의 손으로 아니하고 산에서 뜨인 돌이 철과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서뜨린 것을 보신 것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 하신 것이라. 이 꿈이 참되고 이해석이 확실하니이다”(45절).
이리하여 다니엘은 하나님이 누구시며 왕이 꾼 꿈과 그 해석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그가 세 번째로 본 것은 바벨론에서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었습니다. 46절부터 본 장의 마지막 절까지가 다니엘이 본 내용입니다. 그는 왕이 겸비해지고 참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며 경건한 남은 자들이 승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권력을 장중에 쥔 바벨론의 대왕이 얼굴을 땅에 대고 다니엘에게 절을 했을 뿐만 아니라 다니엘에게 분향을 올리라는 명령도 내렸습니다. 그런데 학자들은 이 사건을 놓고 왕이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경배를 다니엘에게 했다는 뜻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예루살렘에 왔을 때에도 대제사장의 발아래 엎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이를 본 그의 보좌관이 “그런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라고 권고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알렉산더 대왕은 “내가 대제사장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라고 답변하였다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경우도 이와 비슷합니다. 왕이 비록 다니엘의 발아래 엎드렸지만 그가 다니엘을 신으로 보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다니엘을 하나님의 대변자로 인정했기 대문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참 신인 여호와께 영광이 돌려진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아직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깨닫지는 못했지만 최고의 신으로 인정하였습니다.
몇 시간 전만 하더라도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하였습니다. 당시의 상황에서는 하나님의 남은 자들이 멸절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니엘,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 모두가 특진되었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도(道)를 다스리는 최고 감독관이 되었습니다. 아직 고고학적으로 이 직책의 내용이 상세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최고 감독관’이라는 명칭은 고대 비문에서 발견된 바 있습니다.
다니엘과 합심 기도를 했었던 다른 세 명의 친구들도 다니엘을 보좌하는 차석 감독관들로 영전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자들은 안전할 뿐만 아니라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사방으로 불리한 조건에 놓여 있었지만 그릇된 일에 굴복하지 않고 합심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갔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의 영향력이 죽지 않고 지속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방법으로 이 세상의 증인을 보존해 주십니다. 우리들이 명심해야 할 교훈입니다.
우리가 보아야 할 것
본 장에서 우리들은 느부갓네살 왕이 본 것과 다니엘이 본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럼 우리들이 보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이미 언급한 교훈들 이외에 세 가지 측면의 주된 교훈들이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되다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말씀을 왕에게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일어날 것이라고 말한 사건은 실제로 발생하였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제국 다음에 발흥된 세 개의 다른 제국들은 그 정체가 다니엘서 자체에 밝혀져 있기 때문에 우리가 추측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네 번째 왕국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에게 계시하셨습니다. 다니엘서 2장의 환상에 대한 해석들은 구구하지만 각 부분이 대표하는 세상 제국들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느부갓네살 왕이 네 개의 형상들을 본 것이 아니라 하나의 형상을 보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로써 우리는 다니엘이 서술한 모든 제국들이 사실은 동일한 하나의 왕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제국은 첫 번째 제국을 이어받았고, 세 번째 제국은 두 번째 제국을 이어받았으며, 네 번째 제국은 세 번째 제국을 이어받은 셈입니다.
환언(換言)하면 첫 번째 제국에 후계 국이 있었고 두 번째와 세 번째 제국도 각기 계승 국이 있었습니다. 다만 이 네 번째 제국이 통치하던 기간 동안에 하나의 다른 왕국이 일어났음을 보여줍니다. 본문의 작은 돌은 마지막 제국만이 아니고 네 개의 제국들 모두를 파괴시켰다고 이해해야 옳습니다.
다시 풀어서 설명한다면 바벨론은 메대와 바사에 의해 정복되고 합병되어 초강대 세력으로서의 자취를 감추어 버렸습니다. 메대와 바사 역시 그리스에 의해 정복되고 합병되었습니다. 또한 그리스 제국도 로마에 의해 대치되었습니다. 한편 로마는 그리스 제국의 국경들을 모두 로마 제국의 영토에 병합시키지 않고서도 전례가 없는 세계적인 대제국을 형성하였습니다. 이 로마 제국 시대에 다른 하나의 왕국이 세워졌습니다. 이 왕국은 점점 자라면서 끝없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그럼 이 예언적인 놀라운 환상을 조금 더 살펴봅시다. 네 개의 제국 중에서 진정한 통일 제국은 바벨론이었습니다. 따라서 바벨론이 그 형상의 머리에 해당됩니다. 메대와 바사 제국은 바벨론의 영광만큼을 누리지 못하였으므로 금이 아닌 은으로 상징되었습니다. 메대와 바사는 비록 하나의 제국이었지만 꿈의 형상에서 예고된 대로 두 팔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다음 그리스가 일어났고 알렉산더 대왕 밑에서 통일 왕국이 형성되었지만 결국 시리아와 이집트에 의해 각기 두 다리로 나뉘어졌습니다.
로마 제국도 동로마와 서로마로 크게 분할되었습니다(나중에는 10개의 소왕국들 혹은 열 발가락으로 분열되었으나 본서에서 취급할 주제가 못됩니다). 이 로마 통치 시대에 출처를 알 수 없는 돌 하나가 이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이 돌은 태초부터 존재하였습니다.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 하여 외쳐 가로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요 1:15).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이 영존하는 왕국을 건설키 위해 보잘것없는 베들레헴의 한 아기로 태어나셨습니다. 오늘날 앞서간 왕국들은 모두 흙 속에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왕국은 아직도 남아 있고 계속 확장되고 있으며 영원토록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왕국을 이을 후속 왕국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다니엘의 말대로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우리는 본 장의 사건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큰 확신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새롭게 우러러보고 더욱 깊이 신뢰해야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시19:9).
둘째, 우리는 역사가 하나님의 장중에 있음을 보아야 합니다.
다니엘서는 주전 6세기에 쓰였습니다. 최근에 와서 주전 6세기 저작설을 내세우는 자들이 많지만, 이. 제이. 영(E.J.Young)이나 로버트 딕(Robert Dick)과 같은 학자들은 이 이론을 인정치 않습니다. 이 그릇된 학설이 인기를 얻는 까닭은 많은 사람들이 장래의 일을 예언할 수 있다는 생각을 수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사건 발생 이전에 미리 정확하게 예고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일단 이 가설에 사로잡힌 사람은 아무리 조리 있게 근거를 제시할지라도 설득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6세기 저작설이 보편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공정하게 그 논증을 들어보면 수긍할 수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니엘을 다니엘서의 저자로 인정하셨다는 사실입니다(막13:14). 누가 감히 완전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오류에 빠졌다고 지적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자신 있게 다니엘서 2장이 사건 발생 이전에 기록된 예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를 통치하시지 않고서야 어찌 그런 일이 생길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단순히 장차 발생될 일들을 예견만 했다고 보아서는 충분치 않습니다. 미래의 사건들을 통제하지 않고 어찌 예견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미래의 사건들을 완전하게 관리하지 않고 어찌 완전하게 예견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자신이 전적으로 통제하지 않는 것을 오류 없이 예고하지는 못합니다. 일이 잘못될 수도 있고 누군가가 엉뚱한 짓을 할 수도 있으며 예고자가 계산에 넣지 못한 상황이 언제라도 발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미래를 통제하지 않으면 미래를 볼 수 없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이 사실을 주장합니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행17:24, 26).
다니엘은 우리에게 왕들을 세우고 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밝혔습니다(21절). 하나님이 역사를 관장하십니다. 이것은 얼마나 흐뭇한 사실인지 모릅니다. 우리들은 제멋대로 돌아가는 궤도 없는 세상에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본 장에서 언급된 여러 제국들의 시대처럼 두렵고 고통스러운 사건들이 일어나는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시키는 세계에서 생존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들을 서서히 앞당기며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직도 보좌에 좌정해 계십니다.
셋째, 그리스도인은 좌절할 이유가 없음을 보아야 합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꿈에 나타났던 돌이신 그리스도는 당신이 다스리실 하나의 왕국을 건설하셨습니다. 이 왕국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고 그리스도께서 명확하게 밝히셨습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요18:36). 예수님은 그의 왕국이 지닌 성격도 설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1). 그리스도의 왕국은 영적인 나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온 세상에 있는 남녀노소의 마음속에서 다스리십니다. 그의 왕국은 모든 국가들에서 이끌어낸 하나님의 새로운 나라입니다. 세상의 시민권을 가진 자들 중에서 새로운 시민권의 소유자들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노예와 자유민, 야만인과 문환인들 사이의 장벽들이 모두 무너졌습니다. 그리스도의 통치 영역은 지도상의 가시적인 국경으로 표시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는 복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된 각 사람의 마음속에서 다스리십니다.
그리스도는 이 왕국을 하늘의 하나님이 주신 권위로 세우셨습니다(44절). 그리스도의 왕국은, 미리 예언되었듯이 로마 제국이 통치하던 시대에 세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왕국은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영구적인 왕으로 모신 이 왕국은 후계자를 가질 필요성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자신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므로 그의 왕국은 정복되는 일이 없습니다. 따라서 그 시민들도 타국의 지배 속에 들어갈 수 없고 자기들의 영존하신 왕을 거슬러 반기를 들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자원해서 그리스도를 섬기는 종들이기 때문입니다.
본 장은 이 놀라운 왕국에 대한 서술입니다. 그 어떤 것도 이 나라의 성장을 막지 못합니다. 이 사실은 우리들의 격려의 한 원천이어야 합니다. 이미 그리스도의 나라는 모든 반대 세력을 물리쳤으며 앞으로도 계속 악의 능력을 꺾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네로가 했듯이) 산 채로 화형 당하고 원형 극장의 야수들에게 던져지며 외딴섬으로 유배당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캄캄한 지하 감옥에 갇히고 무서운 고문을 받으며 공개 처형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어떤 것도 그리스도인들의 수효가 점점 늘어나는 것을 막지 못합니다. 순교자의 피가 교회의 씨앗이 되었음은 역사가 증명합니다. 그리스도의 왕국은 자라고 또 자랍니다.
드디어 이 왕국은 온 땅을 채우는 하나의 거대한 산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물론 모든 사람들이 빠짐없이 다 구원될 것입니다. 이것은 물론 모든 사람들이 빠짐없이 다 구원될 것이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 뜻은 궁극적으로 각 나라와 인종들로부터 구원받은 자들이 한 목소리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계5:12)라고 찬양케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영원한 왕국입니다. 때가 되면 그리스도께서 지상의 모든 권세와 능력들을 폐하실 것입니다(고전15:24). 그때에는 오직 그리스도의 통치만이 남고 온 우주가 주님의 주권과 주인 되심을 인정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기꺼이 따르는 그의 종들은 다음과 같은 환대의 말씀을 듣고 기쁨이 충만해질 것입니다.
“그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마 25:34).
주님의 백성들은 언제나 남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전체 인구에 비해서 항상 소수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본 장이 가르치는 사실은 이 세상에는 남은 자들이 늘 존속될 것이며 그들이 지상의 끝부분에서도 발견될 때까지 꾸준히 증가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왕국이 미래에도 존속될 것인지를 놓고 염려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의 법궤는 제대로 잘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손을 내밀어 그 법궤를 받들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왕국이 지닌 미래는 본 장의 약속처럼 절대 안전합니다. 그리스도의 왕국은 넘어지지 않습니다. 머지않아 그의 왕국만이 세상에 남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있는 힘을 다 기울여 그리스도의 왕국을 확장하는 데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의 재산과 재능과 역량을 영혼 구원의 대사역을 위해 바쳐야 합니다. 우리의 복음을 듣는 자들이 물론 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뿌리는 씨앗은 항상 싹이 트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그중에서 얼마는 언제나 결실을 맺어 그리스도의 다스림 안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살게 됩니다.
이 같은 왕국의 백성이 되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바람직한 일입니까! 반면에 불신하고 회개하지 않아 영원히 그리스도의 나라 밖에서 머문다면 얼마나 비참한 일이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생명의 왕성함과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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