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신명기 3장 주일 설교 말씀 중에서 기도의 응답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제 목: 기도의 응답
성 경: 신 3:23-29
<서론>
기도만큼 쉽고도 어려운 것도 없습니다. 기도가 쉽다는 것은 형식에 구애를 받지 않고 아무데서나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기도가 어렵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바른 자세가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노년의 모세가 드리는 이 기도를 통하여 참된 기도란? 무엇이며, 기도의 응답에 대한 자세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론>
1. 기도의 시작은 항상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으로 해야 합니다.(23-24).
모세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서두에서 지금까지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며 역사하신 그 능력의 일들에 대하여 찬양하고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그 기도가 자신의 공로와 의를 과시하는 방편이 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눅 18:9-12절에 보면 바리새인의 기도 내용이 나옵니다.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자신의 자랑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기도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도입니다. 마 6:9,33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2. 겸손하고도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십니다(25).
본문 25절에 "구하옵나니 나로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편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모세는 하나님을 찬양한 이후에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의지하여 자기의 소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꿈에도 그리던 약속의 땅 가나안을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오래전부터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그 언약의 땅에 들어가고 싶은 강한 욕망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미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가나안 땅에는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을 들은 바가 있었지만 다시 한번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구한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목이 말라 원망하던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분을 내며 하나님의 일을 덕스럽지 못한 불평하는 자세로 행하다가 하나님께 책망과 징계가 따랐던 것입니다. 그 징계가 바로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민 20:12절에 이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용서하시되 그 죄 값에 대가는 반드시 치르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죗값으로 반드시 죽어 마땅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죗값을 예수님께서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치르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얻은 의는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되고 치러진 의인 것입니다.
3. 기도의 응답은 항상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집니다(26-29절).
모세의 간절한 소원이 그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누구보다도 약속의 땅을 한결같이 갈망하였던 그의 심정을 헤아린다면 참으로 엄청난 절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본문 26-27절에 "여호와께서 너희의 연고로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너는 비스가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 남북을 바라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보라 네가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 이렇게 기도의 응답이란? 항상 나의 소원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나의 간절한 소원을 하나님께 아룁니다. 그러나 응답이 주어졌을 때는 우리의 소원대로 가 아닌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죤 뉴톤은 어느 날 하늘의 온갖 축복을 달라고 간절한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었지만 그가 받은 것은 혹독한 고통과 시련이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고통과 시련의 시간을 지나왔을 때에 왜 하나님께서 그런 식으로 응답하셨는지를 그는 알았습니다. 그의 고통과 시련은 그를 겸손케 하며 영적 성숙을 가져오게 한 길이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소원에 항상 "그래 주마!"라고 하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그만해도 족하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령한 사람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모세의 개인적인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그 중대한 일은 이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우리의 개인적인 기도 제목이 혹 응답이 "안돼!"라는 것으로 응답이 왔다고 할지라도 그 속에서도 분명히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포함되어 있어서 크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모세가 가나안을 쳐다봄으로써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볼 수 있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그 택한 백성을 반드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고야 마시는 은혜의 하나님을 목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인생이 사모해야 할 더 나은 본향인 가나안인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들어갔던 가나안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천국에 대한 모형이었습니다.
그 모형을 실감 있게 목도하고 참된 실체 되는 천국으로 모세는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그만하면 되었다"는 하나님의 응답이 모세 개인으로는 가장 좋은 응답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장래를 그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부탁하게 함으로 미련 없이 영원한 천국으로 입성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결론>
기도에 항상 내 소원과 요구 조건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이상으로 더 좋게 응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놀랍고도 신령한 세계의 축복들을 예비해 놓으시고 우리를 초대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욱더 절대 주님을 신뢰하고 의지하여 기도에 힘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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