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시편 131편 히브리어 강해 중에서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믿음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의지할 분은 하나님 밖에는 없습니다. 구원받은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서 살아간다는 것을 물고기가 물 밖으로 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물고기가 물 밖으로 나가면 숨을 쉴 수가 없어서 죽듯이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면 복음을 듣지 못하기 때문에 영혼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전적 믿음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식언치 않는 분입니다. 우리에게 약속한 것을 이루어 주시는 분입니다. 이 시간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함으로 영원히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믿음(시 131:1-3)
1절 쉬르 하마알로트 레다비드 아도나이 로 가바흐 리비 베로 라무 에나이 베로 힐라크티 비게돌로트 우베니플라오트
시 131:1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 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131:1
이 시편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써 겸손하게 지어진 다윗의 겸손의 고백이다. 결코 헛된 영광을 위해 써진 것이 아니다. 이 시편은 다윗이(대부분의 주석가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사울과 그의 신하들의 모략에 대한 답변으로 지은 것임이 거의 틀림없다. 그들은 다윗을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가장하고, 교만한 마음으로 나라를 노렸던 야심에 불타는 자로 묘사했다. 그러나 다윗은 그와 반대로 하나님께 호소한다.
1. 그는 높은 것이나 위대한 것을 결코 노리지 않았다고 함(1).
2.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할당해 주신 어떤 여건이라도 편안했다고 함(2).
3.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행한 것처럼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모든 선한 백성들을 격려함(3).
어떤 사람들은 “나의 마음이 교만하지 않다”라고 말할 수 없는 자들이 많기 때문에 다윗의 시편을 부르는 데 거부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사람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이 시편을 우리 자신을 가르치고 권면하며, 다른 사람들도 가르치고 권면하기 위해 읽고 노래해야 한다. 참회하며, 또 그렇게 해 우리를 만들어주신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겸손한 기도를 드려야 한다.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 모든 미덕들이 한 몸을 이룬다면 그 몸의 머리는 겸손일 것인데 여기서 저자는 자신의 겸손에 관해 감히 말하고자 한다. 그런데 우선 겸손은 자포자기의 체념적인 상태를 가리키지 않는다. 그가 겸손의 상태에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셨기 때문이었다(사 57:15).
또한 이것은 바리새인의 기도와는 다르다. 왜냐하면 바리새인은 자신을 세리와 비교하며 자신이 그와 같지 않음을 감사하였는데(눅 18:9-14). 여기에는 다른 사람과의 비교가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시인은 자신의 덕목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인한 내적 상태를 자연스럽게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본절의 전반 절은 다른 사람을 업신 여기는 교만의 죄에 빠지지 않았음을, 그리고 하반절은 스스로를 과대평가하여 주제넘게 행동하지 않았음을 각각 나타낸다(Kidner).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빅돌로트 베니플라오트) - 여기서 전자는 '어떤 사람에게 너무 과중하여 그것을 맡을 수 없는 임무나 의무들'을 , 후자는 '너무 신비롭고 어려워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가리킨다. 수동태 분사수동을 사용하고 있다. 인간 이상의 일들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이 주신 능력대로만 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힘쓰지 아니하나이다(로 힐라크티) - 문자적인 뜻은 '내가 내 자신을 걷게 하지 않았다'이다. 여기서 '걷는다'는 것은 삶, 혹은 어떤 행동을 총체적으로 가리킨다. 결국 여기서 시인은,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 스스로의 야망이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하나님의 뜻을 무모하게 앞서 가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섭리에 겸허하게 순종하는 삶을 살았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다윗의 모습을 통치자의 합당한 자세가 어떠한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우리의 성실성에 대한 자각. 이 사실은 다윗이 기뻐하는 것이었다. 그의 마음은 그가 받았던 비난과 그가 처해 있던 유혹에도 불구하고 겸손하게 하나님과 같이 걸었다는 것을 증언할 수 있었다.
그는 높은 지위를 원하지 않았고, 세상에서 두드러진 위인이 되기를 갈망하지도 않았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명령하셨다면 그는 양의 우리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것같이 그의 일생을 지내기에 만족했을 것이다. 그의 형은 격노하여 그가 교만하다고 비난했지만(삼상 17:28), 그 비난은 근거가 없는 것이었고 부당했다.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아신다.
그는 자기 자신의 의견이나 공로를 자부하지 않았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나이다.” 겸손한 성도들은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자신을 높이 평가하지 않으며, 자신의 옛 모습을 사랑하지도 않고, 자신의 달성이나 성취를 과장하지 않는다. 마음을 지배하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지나친 자애를 정복한다.
그는 업신여기는 자세나 높은 것을 바라보는 자세를 갖지 않았다.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옵니다. 나는 내 위에 있는 자들을 부러워해 바라보지도 않으며, 나보다 아래에 있는 자들을 경멸하여 바라보지도 않나이다.” 교만한 마음이 있는 곳에 주로 교만한 모습이 있다(잠 6:17). 그러나 겸손한 정치가는 그의 눈을 그리 높게 올리지 않는다.
그는 그의 지위보다 높은 일에 관여하지 않았고, 그에게 너무 큰 일이나 높은 일에 종사하지 않았다. 그는 너무 높은 것을 연구하는 데 시간을 소비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의 묵상으로 삼았으며, 즐거운 사색이나 의심스러운 논쟁거리로 즐거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써진 것 이상으로 현명하게 되기를 탐하지도 않았다. 하나님과 우리의 의무를 안다고 함은 우리에게 충분히 높은 것을 배움과 같다. 그는 너무 큰 일에 힘쓰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추구했고, 결코 정치가가 되기를 준비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병사가 되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그의 형이 전쟁터에 나갔을 때 그는 집에서 양을 지키기 위해 머물러 있었다. 우리의 영역을 지키며, 우리가 보지 않은 것을 참견하지 않고, 우리에게 속하지 않은 것을 간섭하지 않음이 우리의 지혜며, 우리의 찬양이 된다. 방백들과 학자들은 사람들에게 너무 크거나 높은 일에 관심하지 말아야 한다. 낮은 자리에 있는 자들과 평범한 능력을 가진 자들은 그들의 영역 밖에 있는 것을 바라지 말아야 하고, 실속 없이 뽐내지 말아야 한다. 과도한 명예에 매혹되는 자들은 부끄러움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2절 임 로 쉬비티 베도마므티 나페쉬 케가물 알레 임모 카가물 알라이 나페쉬
시 131:2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131:2
젖 뗀 아리가 그 어미품에 있음 같게 - 이것은 인생의 온갖 우여곡절을 신앙으로 극복해 낸 한 영혼의 겸손에 대한 아름답고 순수하고 또한 감동적인 비유적 표현이다.
대체로 젖 떼는 나이를 세 살가량으로 본다면, 그 나이가 지나도 여전히 젖을 떼지 못한 아이는 모유의 양이 부족했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그 아이는 젖이 부족하여 안달하고 우는 때가 많을 것이다. 반면에 적절한 때에 자연스럽게 젖을 떼었다는 것은 만족스럽게 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Anderson).
또한 이 표현은, 아이가 젖을 떼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요구되는 바, 젖 뗀 후의 편안함을 얻기 위해 치른 대가 및 그가 얻은 평안함의 순수성과 비 이기성(unselfishness)을 읽게 한다. 젖 뗀 아이는 젖떼기 전처럼 더 이상 안달하거나 짜증스러워하지 않고 어머니의 가슴을 바라며 그것에 기대어 만족해하듯이 우리의 영혼도 모든 불만족스러운 생각들, 땅의 것들을 얻으려고 애쓰다가 생기는 모든 안달하는 마음들로부터 벗어나고 나면 조용히 하나님만을 기다리며 그분의 임재 속에서 만족을 찾으며 그의 팔 안에서 평화롭게 안식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1절과 연관시켜 볼 때, 젖을 뗀다는 것은 이기적이고 세상적인 욕심과 야망으로부터 벗어난다는 뜻을 암시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요 4:34; Kidner).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모든 상황에 잘 적응했다(2절).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다.” 그가 교만하게 왕국을 노리지 않았던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기름 부으신 이래로 그는 누구에게도 오만하게 대하지 않았으며, 때가 이르기 전에 왕관을 얻으려 시도하지도 않았다.
그는 어미 품에 있는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했고, 높은 것을 바라보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루기 쉽고, 다스려지기 쉬울 정도로 겸손했다. 어머니나 유모의 뜻에 따르는 아이처럼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다. 품에 있는 아이처럼, 그는 왕으로 임명되었지만, 자기 자리를 고수하거나 발전된 미래를 전망하면서 자신을 높이 평가하지도 않았다. 우리의 구원자는 이와 같은 비유로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치셨다(마 18:3). 우리는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어야” 한다.
그는 어린아이가 젖을 뗐을 때의 그 가슴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의 부귀와 영광에 무관심한 것 같다(하몬드 박사는 이렇게 해석한다). “나는 젖 뗀 아이처럼 고요하고 평온했다.” 이 구절은 어린아이가 어머니 품을 갈망하듯이 우리의 마음은 본성적으로 세상적인 것들을 갈망함을 암시한다. 그와 같은 방법으로 그것을 좋아하며, 그것을 위해 부르짖고 기뻐하며, 그것 없이는 살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성화된 영혼은 그러한 세상적인 것들을 버린다. 섭리는 가슴에 쓴 쑥을 발라놓고 젖을 떼도록 우리를 돕는다. 아마도 어린아이는 젖을 떼는 동안 성을 내며 안달할 것이다. 그리고 젖을 잃었을 때 원상태로 돌아오기를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하루 이틀이 지나면 그것은 잊혀진다. 애타는 시기가 지나고, 새로운 음식물이 충분히 공급되며, 이제는 젖이 아니라 단단한 음식에도 견디게 된다.
이와 같이 은혜로운 영혼은 사랑하던 것의 상실과 바라던 것에 대한 실망에도 평온하며, 어떤 일이 일어나도 고요하다. 하나님과 언약의 은총에 의해 안전하게 살아간다. 그때 피조물의 메마른 젖가슴이 드러날 것이다. 우리의 상황이 마음에 맞지 않을 때 우리는 마음을 상황에 맞추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평안하게 되며, 만족하게 된다. 그러면 우리의 영혼은 “젖 뗀 아이와 같이” 된다.
3절 야헬 이스라엘 엘 아도나이 메아타 베아드 올람
시 131:3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131:3
이스라엘아...바랄지어다 - 바로 앞 시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저자는 개인의 경험이 만족의 경험이 되기를 기원하는 기도로 본 시편을 끝맺고 있다. 바라보라고 했는데 피엘 강조능동 명령법을 사용하고 있다.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은 반드시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라보아야 할 것을 말한다.
하나님에 대한 확신. 다윗은 신뢰의 은택에 대한 자신의 경험에서 의심할 여지없이 하나님의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 대한 확신을 갖도록 추천한다(3절).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다윗은 그에게 주어질 왕관을 인내심 있고 조용하게 기다릴 수 있었지만, 그가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때가 차기 전에 그를 위해 어떤 일을 시도하려고 준비했다.
그는 그들을 조용하게 하려고 노력하며, 그들이 적당한 시기에 사건의 국면이 평화롭게 변화되는 것을 보도록 하기 위해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하고 명한다. “이와 같이 여호와의 구원을 소망하며, 조용히 기다리는 것이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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