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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박국 2장 설교말씀] 믿음으로 사는 의인(합 2:1-4)

복음의 능력 2021. 5. 5.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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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오늘은 하박국 2장 설교말씀 중에서 믿음으로 사는 의인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의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난다는 것을 말합니다. 많은 사람이 행위로 살아난다고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행위로 인간이 살아날 수 있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을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의 율법을 지켜서 행위로 구원받으면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죽음에서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살아났다는 것을 기억하고 예수님께 감사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제목 : 믿음으로 사는 의인

 

본문 : 2:1-4

 

합 2:1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하였더니

합 2:2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합 2: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합 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곧 잘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나쁜 마음을 쓰는 사람들이 잘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 북한의 김정은이는 계속 살아서 우리 남한을 괴롭히고 있는 것일까?' `악한 것들을 좋아하시지 않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는데 어떻게 이런 일들이 계속될 수 있을까?' 과연 성경 말씀대로라면 그 결과를 놓고 볼 때 이런 해답을 충분히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성경에 많은 이야기들은 악인의 최후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말해주며, 하나님은 악한 모습을 얼마나 싫어하고 계시는가가 잘 나타나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현실을 놓고 볼 때 많은 악한 사람들이 의로운 사람들을 핍박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으며, 그 결과도 눈에 거슬리지 않을 만큼 탄탄하게 잘 살아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내용도 이와 같은 내용으로 하나님께 질문을 하고 있는 하박국의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유대나라가 흉악스러운 그 거대한 바벨론의 침략을 목전에 두고 하나님께서 정말 공의를 행하시는가 하는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유대 사회가 타락하고 종교와 도덕이 부패하여 예언자의 소리를 무시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나타나는 것은 마땅하지만 돌이켜 생각할 때,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들어 쓰시는 바벨론이라는 나라는 과연 의로운 나라이기 때문에 사용하시는가?

 

그 악한 이리떼 같은 바벨론이 밀려와 이스라엘을 칠 때 다치는 사람 중에는 악한 사람들뿐일까?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리 악하다 해도 바벨론 사람보다 더 악할까? 하는 질문을 하나님께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 악인이 존재하나? 의인이 악인에게 고난을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먼저 악인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 그 하나는 악인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심판의 도구로 사용할 것이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다른 길로 갈 때 그들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의 말씀을 듣고서도 진리의 길로 나아오지 않을 때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시면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 백성들을 사용하셔서 심판하십니다.

 

성경 말씀 가운데서도 특히 사사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그들의 잘못을 깨우치고 회개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은 다른 이방 민족들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게 하십니다. 그러면 그들은 하나님께 자신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떠나 죄를 짓고 있었나를 회개하면 하나님은 사사를 부르시어 이스라엘을 이방 백성들의 핍박에서부터 건져 구원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악한 나라가 존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을 믿는 의로운 자들이 하나님을 떠나 악한 길로 갈 때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가를 보면서 바르게 가야 하겠다는 결심을 흩으러 뜨리지 않고 나아갈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하여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말씀들에 비추어 본다면 우리나라 북한이 공산당의 치하에서 종교의 자유가 없는 그런 곳으로 바뀌어진 것은 평양이 한국의 예루살렘이라고 일컬어지던 곳에서 일제시대 때에 신사 참배를 결의하는 등 많은 잘못된 일로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심판을 받은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요즈음 우리나라 역사에 보면 악한 일을 일삼는 자들이 나라를 좌지우지하면서 지내는 것도 필경은 그들의 결과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에게 보여 주시므로 온전한 의로운 믿음의 길을 가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살아계신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면 의인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사는 의로운 길을 잘 가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그 본을 보여주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악한 자들이 잘 된다고 할 때 의인의 존재는 그들의 결과가 멸망받을 수밖에 없음을 알고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사는 자들임을 깨달아서 이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고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번 약속하신 것은 변하지 않으며 그 약속대로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임을 그대로 믿을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은 과거에 악한 사람이었어도 죄지은 것을 깨끗하게 용서를 받았으므로 의인이 되었다는 칭호를 받습니다. 의인의 칭호를 받은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모두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의롭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음이 정직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의롭게 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공정하게 이루어져 가는 역사입니다. 이것은 때로 저울과 같아서 공정하지 못할 때는 언제나 한쪽으로 기울게 마련인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공정한 판단 속에서 무슨 일이든지 결정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속임수도 갖은 모략과 술수도, 악한 꾀도, 자기의 잘못을 감추려는 변명도, 모두 거짓임이 판명이 나므로 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지를 못합니다. 아무리 공정한 판단을 하려고 해도 인간의 판단 기준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고 맙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의인이 되지 못하면 그 사람은 자신의 판단에 따라서 공정하게 하지를 못하고 맙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의인은 하나님의 판단 기준을 어기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그렇게 이루어 주실 것을 바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공정한 역사는 때로 그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저울추를 놓고 달아볼 때 모자라면 채울 길이 없습니다. 이미 그때는 심판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가서 생활을 하고 있을 때 다니엘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벨사살 왕이 하나님께 예물을 바치고 제사를 드렸던 그릇들을 가져다가 술잔을 삼았습니다. 그때 왕과 신하가 잔치를 벌이고 있던 방안의 벽에 손가락이 나타나서 글씨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그 글씨는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으로 이를 번역하면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는 뜻이며, `데겔'은 왕을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함이 뵈었다는 뜻이며, `우바르신'은 그러므로 이제 왕의 나라를 나누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주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다니엘 5장에 나오는데 실제로 이 글의 내용대로 벨사살 왕은 그 밤에 죽고 바벨론 나라는 즉시 메대 사람 다리오가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멀리하게 되자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그들에게 보내어서 회개하고 의인답게 믿음으로 살 것을 말씀하시지만 이스라엘은 점점 멀어가기만 하였습니다.

 

드디어 이들을 심판하시게 되었는데 심판의 도구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바벨론이라는 나라를 택하셔서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바벨론은 하나님의 공정하신 판단에 따라서 심판을 받게 되었고 공의로우신 판단의 저울추에 모자람이 되었을 때 그 나라는 바로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역사는 은혜롭게 이루어가는 역사입니다. 마음이 정직하지 못한 자와 교만한 자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통해 이루시는 역사를 믿지 못하고 맙니다. 교만한 자들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역사에 순종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의로운 뜻을 따라 순종하지 못하므로 올바른 믿음도 갖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공정하면서도 은혜롭게 그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런데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것을 참지 못하고 이를 억지로 풀려고 합니다. 인간의 노력이 하나님의 뜻을 앞서고 맙니다.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시기를 원하지만 사람은 자신을 앞장 세우기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려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길을 갈 수 없습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길은 은혜를 통하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이 길은 의인만이 갈 수 있는 길이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뜻을 이루실 때까지 순종할 때만이 은혜를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의인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기다림은 곧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릴 줄을 모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 전에 자신의 뜻을 앞세우고 자신의 소견대로 행하며, 자신의 노력으로 일을 해결하려고 앞장서 나아가는 사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한 때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지루함 속에서 믿음이 약하여지자 하나님은 사라의 몸에서 아들을 주시겠다고 하셨지만 아브라함은 사라의 몸종이었던 하갈과 동침하여 이스마엘을 낳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사라가 낳은 아들 이삭과의 사이를 불화하게 만들고 결국 다른 곳으로 쫓아내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때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더딜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길은 의인이 가야 하는 길이기에 때로는 우리가 가고 싶은 곳과는 다른 길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결정은 공의로우시기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손해를 봐야 하는 길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은혜로우시지만 때로는 공의로 판단하시기에 우리 인간의 생각과 판단은 하나님의 길인 믿음으로 사는 의인의 길을 바르게 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확실히 구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다만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순종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약속은 분명히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서는 언제든지 하나님께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깨끗해져서 하나님으로부터 의인의 칭함을 받아야 함을 기억하고 항상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잠언 1장 주석 강해] 여호와 경외와 부모의 훈계 순종 권면(잠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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