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사사기 3장 설교말씀 중에서 가시의 의미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죽고 난 이후에 전쟁을 알지 못하던 세대들이 우상을 섬기게 됩니다. 여호와 신앙을 버리고 바알을 숭배하니 하나님은 이방 민족을 가시로 남겨두게 됩니다. 삶에 고통을 당하게 하셔서 여호와 하나님을 찾고 섬기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럼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어떤 가시가 있습니까? 이 가시는 사람마다 모두 다릅니다. 이 시간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섬기면서 인생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인생이 잘 풀어지면 사람은 나태해지게 됩니다. 영적으로 게을러져 예수님을 섬기는 것을 소홀히 하게 됩니다. 우리는 인생이 풀리고 물권의 복을 받아도 하나님을 잘 섬기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가시의 의미
사사기 3:1-6, 고린도후서 12:7-10
삿 3:1 여호와께서 가나안의 모든 전쟁들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삿 3:2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남겨 두신 이방 민족들은
삿 3:3 블레셋의 다섯 군주들과 모든 가나안 족속과 시돈 족속과 바알 헤르몬 산에서부터 하맛 입구까지 레바논 산에 거주하는 히위 족속이라
삿 3:4 남겨 두신 이 이방 민족들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그들의 조상들에게 이르신 명령들을 순종하는지 알고자 하셨더라
삿 3:5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은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삿 3:6 그들의 딸들을 맞아 아내로 삼으며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고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
흔히 하는 말 가운데 '가시 없는 장미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꽃 중의 꽃이요, 가장 화려한 꽃인 장미에 가시가 있다는 말입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습니다만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게도 가시가 있습니다. 가시없는 인생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계신 성도님들 중에도 인생의 가시가 없는 인생을 사는 분들이 별로 없으리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야고보 선생은,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징계가 없으면 아들이 아니요 사생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인생에 채찍과 가시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인생에 가시가 없으면 가시를 만들어 놓고 즐기는 것이 또한 우리들 인생입니다. 옛날 선교사들이 한국에 선교하러 와서 동네 청년들과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쳤는데 조그마한 골문을 만들어 놓고 한쪽은 거기에다 공을 넣으려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거기에다 공을 못 넣도록 기를 쓰면서 뛰니까 한국의 갓을 쓴 노인들이 "저놈들 참 어리석은 짓한다. 저런 것은 종들이나 시키지 뭐 할 짓이라고 땀 흘리느냐"라고 했습니다. 고난의 즐거움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모든 스포츠는 인간이 고난을 만들어 놓고 즐기는 것입니다. 농구는 조그만 바구니에다 공 던져 넣기 위해서 그렇게 애를 쓰는 스포츠입니다. 축구도 골대가 아주 넓어서 한번 차기만 하면 공이 들어간다면 아무 재미가 없습니다. 공이 못 들어 가게 하는 그곳에다가 어떻게 해서 공을 하나 넣을 때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것입니다. 인생은 고난이라는 신비 속에서 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현재 인생의 어떤 가시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어떤 분들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아서 좀 잘 살아보려고 하는데 그 몸에 질병이 찾아와서 고통당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이제 옛날의 고생을 다 벗어나 재산도 있고 해서 마음 놓고 잘 지내려고 했는데 그만 당뇨병이 찾아와서 산해진미를 쌓아놓고 보고도 먹지 못하는 처지가 됩니다. 자식들도 다 잘 자라고 모든 것이 좋은데 돈이 없어서 걱정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이런 가시 저런 사람은 저런 가시 인생의 각양각색의 가시들이 우리에게 붙어 있습니다. 이런 가시만 없으면 얼마나 우리가 행복하겠습니까? 얼마나 멋지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인간에게 유일한 삶의 목표가 있다면 가시 없는 인생을 살고 싶어 하는 것일 것입니다. 그것이 모든 인간의 꿈이요 소망인 것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들이 있습니다. 종교가 생긴 유일한 한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인생에 붙어있는 가시로 인하여 종교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많은 종교들은 "우리 종교에 들어오면 가시를 다 뽑아준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종교를 진통제로 생각합니다. 인생에 가시가 있고 고난과 역경이 있으면 진통제 하나 맞으면 고통이 사라지듯이 어떤 종교에 가서 빌면 인생의 고통과 가시가 사라지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붙은 가시를 다 없이해 준다고는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인생에 붙어있는 가시의 의미를 우리로 하여금 알게 하여, 인생의 가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능히 승리하며 인생의 고난과 가시를 이기며 살아가는 능력 있는 삶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에게도 가시가 붙어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가시 하나하나의 깊은 의미를 발견하게 되면, 그 가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장미처럼 아름다운 인생의 꽃을 피우게 됩니다. 인생의 가시는 우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잘 섬기는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고 살아왔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이러한 가시는 끊임없이 따라다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를 했습니다. 광야 40년 동안 떠돌이 생활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꿈에도 그리던 약속의 땅에 들어갔지만 거기에는 다른 족속들이 이미 터를 잡고 살고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을 건너가자마자 가나안 땅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을 좇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성을 무너뜨리고 여리고 성을 격파했습니다.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원수들을 많이 몰아냈지만, 가나안의 많은 부족들이 그대로 가나안 땅의 처처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이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가시 노릇을 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가나안 족속들을 다 쫓아내지 아니하시고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살던 원주민들의 일부를 쫓아내고 그들이 판 우물의 물을 마시고 그들이 지어놓은 집에 살고 그들이 뿌려놓은 씨앗과 그들이 심어놓은 포도나무의 열매를 따먹었지만 그 주위에는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는 수많은 가시와 같은 적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도 가시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해 주신 그 가나안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는 이방 족속, 이스라엘 백성을 찌르는 가시가 하나도 없었다면 얼마나 행복했겠습니까? 얼마나 태평스럽게 살고 있었겠습니까?
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시와 같은 대적을 다 쫓아내지 아니하시고 부분적으로 남겨 두셨습니까? 그 이유를 성경은 네 가지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왜 가시가 붙어 있습니까? 여기에 대한 대답도 역시 네 가지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의 결과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하여 모든 적들을 다 쫓아내시리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너희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거기에 너희들의 대적이 있을 터인데 1년 동안 하나하나 쫓아내 주리라]고 약속했습니다. 여호수아 23:3에 보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다 보았거니와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자 시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신해서 싸워주셔서 이스라엘 백성 한 사람이 가나안 부족 1000 사람을 상대해서 쫓아낼 수 있게 해 주시마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또한 아울러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만약 너희가 하나님을 멀리하고 그 민족들을 가까이하고 그들의 신을 너희들이 섬기면 그들이 너희에게 볼모가 되고 덫이 되고 너희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 눈에 가시가 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가나안 원주민들이 섬기는 우상을 섬기고 바알신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가나안 땅에 남아있는 이방 족속으로 이스라엘을 심판 하리라고 약속하신 심판이 그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루어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저버린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430년간 살 도안에도 양을 치는 유목민들이었습니다. 광야 40년 동안 살 때에도 그들은 농사짓는 법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토지를 분배받았는데 농사짓는 법을 모르는 그들은 가나안 원주민들을 찾아가서 농사짓는 법을 배운다고 하다가 그만 그곳의 풍습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저버리고 농사의 신 풍요의 신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사사기 2:3 말씀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붙어있는 가시는 어쩌면 우리가 과거부터 살아온 인생의 결과로써 생긴 것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의 결과로써 생긴 것일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몸과 인생에 가시가 붙어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지나온 우리의 인생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왜 내 인생에 나를 찌르는 가시가 붙어 있을까?' '내 인생에 붙은 가시는 하나님을 떠나 살았던 삶의 결과가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진실로 회개하고 하나님 품에 안기는 계기로 삼아야 할 줄 압니다.
두 번째 하나님께서 가나안 주민을 쫓아내시지 않은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테스트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사사기 2:21 말씀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도 여호수아가 죽을 때 남겨둔 열국을 다시 그들의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니]라고 하셨습니다. 또 사사기 3:4 말씀에 [남겨두신 이 열국으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모세로 그들의 열조에게 명하신 명령들을 청종하나 알고자 하셨더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나 잘 믿지 아니 하나를 하나님께서 테스트하시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는 가시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두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가시가 있는 두 번째 이유는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 잘 섬기라고, 더 순종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라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테스트하시기 위해서 그 아들을 제물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시험에 빠져서 하나님을 저버리지 않고 오히려 이런 것을 통하여 하나님께 순종하여 그의 아름다운 믿음을 고백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욥의 믿음을 하나님께서 테스트하시기 위하여 엄청난 인생의 가시를 그에게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입술로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더 잘 섬기라고 주신 것이 우리 인생의 가시의 의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을 잘 섬기라고 주신 그 가시 때문에 하나님을 저버리는 자입니다. 이는 어쩌면 저주받은 인생입니다.
신명기 8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추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험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때로는 굶주리게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세상 그 누구도 먹어보지 아니한 만나를 먹이신 이유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님들! 아무 의미를 알지 못하는 그러한 가시가 붙어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더 깊이 나아가는 기회로 삼는 자는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능히 그 인생의 가시를 이기고도 남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 하나님께서 이방의 민족의 쫓아내시지 않는 이유는 오늘 본문에 있는 말씀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쟁을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사사기 3:1-2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전쟁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시려고 이방민족을 쫓아내지 아니하셨다고 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태어난 젊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전쟁이 무엇인지 모르는 젊은 세대들이었습니다.
이 말씀에는 깊은 진리가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시가 있습니다. 잘 지내다가 갑자기 가시가 생겼습니다. 인생은 치열한 싸움이요 투쟁인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인생은 언제나 콧노래를 부르면서 사치로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희희낙락해서 하는 것이 인생이 아니요 재미로 인생을 사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삶이 무엇인지, 인생이 무엇인지, 산다는 것이 얼마나 진지한 것인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우리를 훈련하시고 인생의 가시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성경에 있는 모든 말씀을 둘로 나누면 [하라]는 것과 [하지 말라]는 것인데 그 중에 [하지 말라]는 말을 다시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 첫째는 못되게 놀지 말라는 것이고 둘째는 더럽게 놀지 말라는 것이며 셋째는 까불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이 좀 괜찮다고 해서 까불지 마십시오. 우리의 인생은 그렇게 까불면서 살만한 인생이 아닙니다. 삶을 진지하게 살고, 인생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가를 우리에게 붙은 가시를 통하여 깨닫게 하시고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네 번째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대적을 남겨두신 것은 성경말씀에 보면, 가나안 땅이 황무지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23:29-30 말씀에 [그러나 그 땅이 황무하게 되어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희를 해할까 하여 일 년 안에는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고 네가 번성하여 그 땅을 기업으로 얻을 때까지 내가 그들을 네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리라]고 했으며, 신명기 7:22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점점 쫓아내시리니 너는 그들을 급히 멸하지 말라 두렵건대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를 해할까 하노라]하고 말씀했습니다.
한꺼번에 모든 가시들을 다 없애버리고 대적들을 다 쫓아버리면 경작할 줄 모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간 그 땅에는 모두 잡초가 생기고 땅은 황무지가 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하던 가나안 땅은 짐승들이 우글거리는 곳이 되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제 그 땅 원주민들을 다 멸절시켰습니까? 수백 년이 지난 다윗 시대에 가나안 땅에 있는 모든 대적들을 물리쳤습니다. 놀라운 진리입니다.
성도 여러분!
가난한 사람이 갑자기 벼락부자가 되면 그것이 인생의 옥토가 된 줄 알지만 그러나 반대로 그 재물이 자신을 망가뜨리기도 합니다. 아프던 사람이 갑자기 항우장사처럼 건강해지면 오히려 그 건강 때문에 인생이 황무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근심 걱정이 다 사라지고 인생에 붙은 가시가 하나도 없으면 인생이 낙원이 될 줄 알지만 성경에 보면 들짐승이 우글거리는 황무지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인생이 가시 때문에 황무지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가시 때문에 우리의 인생은 옥토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가시를 많이 가진 자, 그 사람은 순금같이 그의 삶이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버릇없이 까불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아이고 저것 고생 모르고 자랐구나"라고 합니다. 고난과 역경과 시련과 인생의 가시에 연단을 받은 사람은 겸손을 배우게 되고 하나님을 잔잔히 섬기게 되며 인생을 진지하게 살게 되는, 인생의 옥토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성경은 사도 바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섬기는, 어쩌면 사도 중에 가장 위대한 사도였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인생에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인생과 삶을 찌르는 가시가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가시만 없어지면 자기 인생이 천국이 될 줄 알고 "하나님이시여 이 가시를 제거해 주시옵소서"하고 하나님께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응답을 해주셨는데 "바울아, 너에게 붙어있어 그 가시 때문에 내 능력이 네 속에 머물러 있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바울은 이 놀라운 진리를 깨닫고 고백하기를 "나는 이제 나의 약한 것과 능욕당하는 것과 내 가난한 것과 내 핍박받는 것과 내가 곤란당하고 환난 당하는 것을 나는 자랑한다. 왜냐하면 내가 약할 그때에 곧 하나님이 강하심이라"라고 했습니다.
시편 66:10-12 말씀에 보면 인생의 많은 가시로 인하여 너무너무 고난을 당했던 시인이 고백하기를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셨으며 우리를 끌어 그물에 들게 하시며 어려운 짐을 우리 허리에 두셨으며 사람들로 우리 머리 위로 타고나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행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 붙은 가시들이 우리의 인생을 더 풍성하게 하고 이웃의 심정을 알게 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고 고난당하는 사람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시고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에 붙어 있는 가시는 어쩌면 우리 삶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요 그 결과인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회개하고 새롭게 인생을 정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당하는 모든 가시는 하나님의 테스트인 줄 믿으시고 하나님께 더 순종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인생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우리에게 인생을 더 진지하고 성실하게 살라고 가시를 주시기도 하십니다.
우리의 인생에 가시가 있음으로 인생이 옥토가 된다는 사실, 인생에 가시가 다 제거되면 우리의 심령과 삶 속에 들짐승이 우글거리고 황폐하게 되기 때문에 인생을 옥토로 만드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때로 고난과 가시를 사용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고난과 인생에 붙은 가시의 의미를 깨달아, 인생에 가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더 능력 있고 더 복된 삶을 살아가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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