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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산상수훈 주일설교] 마음이 청결한 사람의 복(마 5:3-12)

복음의 능력 2021. 6. 1.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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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마태복음 산상수훈 주일설교 중에서 마음이 청결한 사람의 복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 말씀을 통해서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우리는 사람이 겉 사람과 속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겉 사람은 육체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다가 흙으로 돌아갑니다. 속 사람은 영혼입니다. 육체가 죽게 되면 하나님 나라로 가게 됩니다. 그럼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바로 속 사람의 마음이 청결하면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고 있고 하나님을 보고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의 영혼이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아서 하나님을 보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구원받은 우리가 육체로도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제    목: “마음이 청결한 사람의 복”

설교자 : 윤사무엘 목사

본문 말씀:  마 5:3-12, 시 51: 10-12

요    절: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 5:8)         

주    제: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 청결하고 신령한 눈을 가지자

 

오늘은 산상보훈 중 여섯 번째 되는 “복 있는 자”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Blessed are the pure in heart, for they shall see God. 마 5:8)”

누가 하나님을 볼 수 있느냐? 누가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가? 마음이 청결한 사람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 열납 되는 온전한 제물이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불결하고 불완전하며 거룩하지 못한 상태로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본다는 말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를 본다는 말입니다. 밤하늘이 어두울수록 별빛은 더욱 빛나게 보이는 것처럼 우리가 낮아지고 내가 없어질수록 주님은 내게 소중하고 마음 중심에 모실 수 있습니다. “주안에 기쁨 누리므로 마음의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과 나는 간곳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찬 288장 3절)

또 내가 아무리 하나님을 보고 싶어도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지 않으면 볼 수가 없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대면하던 자여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여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성전에서 예배드리는데 만군의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으신 모습을 보았습니다. 에스겔은 그발 강가에 심방하신 하나님의 보좌의 모습을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은데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고(겔 1:28) 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계시 가운데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이를 계시록에서 자세히 기록하는데 실로 인간의 언어로 다 형용할 수 없습니다.

마음이 청결하기 위해서는 앞의 다섯가지 복 있는 자의 모습을 갖추는 것입니다. 우선 심령이 가난해야 합니다. 나 자신의 죄를 인하여 애통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온유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말라야 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처럼 팔복은 서로서로가 모두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나다니엘 호오손(Nathaniel Hawthorne 1804~1864)이 쓴 단편소설 “큰 바위 얼굴”(The Great Stone Face, 1889년)의 배경을 방문해 보면 뉴햄프셔주 화잇 마운틴 중턱에 튀어나온 바위가 있었습니다(지금은 무너져 내려 형체가 사라짐).  바위 얼굴이 새겨져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자하고 친절하며 거룩한 모습을 한 얼굴이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고 인디언 추장 얼굴이라고도 하고 그저 ‘큰 바위 얼굴’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마을에 어니스트(Ernest)라고 하는 소년이 태어났습니다. 자라면서 그 소년은 그 바위 얼굴을 자주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때론 감동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을 만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마을에 전해 내려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언젠가 저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인자한 성자 같은 훌륭한 사람이 이 고장에서 태어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니스트는 그 예언이 실현되어 그 훌륭한 인물을 만나보기를 소원했습니다.

어느 날 큰 바위 얼굴을 닮았다는 억만장자 부자가 나타났으나 사실은 인색한 장사꾼에 불과했습니다. 다음에 6척 거구의 장군이 나타났으나 그 또한 천상천하 유아독존처럼 군림하는데 불과했습니다. 세 번째로 대통령감이 나타났다고 하여 가보았는데 웅변에 뛰어났으나 인자하고 겸허한 지도자는 아니었습니다. 네 번째로 천재적인 시인이 나타났으나 시만큼 사람이 뛰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어니스트는 나이가 들어갔습니다. 백발의 노인이 되어 일생의 신앙과 수양이 높은 영감이 넘치는 설교를 할 때 시인은 갑자기 소리 질렀습니다. ‘보세요. 여기 서 계시는 어니스트가 바로 저 위대한 바위 얼굴과 같습니다’  사실 그러했습니다. 그는 그의 생각대로 자기도 모르는 동안에 그렇게 변화되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품고 있는 희망이 실제로 나타납니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생각이 그의 모습 속에 나타난다고 지적했습니다. 서로가 사랑하며 재미있게 살아가는 부부를 보십시오. 부부 관계라기보다는 오누이 같이 보이는 것을 발견합니다. 함께 지내고 같은 경험을 하며 같이 생각하는 동안 서로를 닮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닮기를 원하십니까?

오늘 아침에 생각하고자 하는 말씀은 마음이 청결한 자와 그런 이가 받을 복이 무엇인지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청결한 것을 좋아합니다. 공기도 맑은 공기, 물도 맑은 물, 음식도 깨끗한 것, 청결한 화장실, 잘 정돈된 방, 깨끗한 거리, 깔끔한 복장 등을 좋아합니다. 그 나라의 문화의 척도는 청결에 있습니다. 10년 전 중국의 여러 지방이나 오늘날 남미의 많은 나라에 가보면 우리나라 70년대처럼 불결합니다. 포장되지 않는 도로, 사람들의 복장과 주택환경, 거리가 지저분합니다. 그래서 전염병이 많고 피부병도 많습니다. 현대 도시 문명은 상수도, 하수도 시설이 잘 되어 있어야 합니다.

프랑스에 가보면 고궁에 화장실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데나 일을 보는 습관이 생겨 그 나라에 향수가 발달되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뉴욕 맨해튼에 가보면 도시가 지저분합니다. 거리에 낙서가 많고 쓰레기가 거리에 많이 있습니다. 이에 비해 싱가포르에 가보면 거리에 휴지, 담배꽁초 하나 없습니다. 현재 수상의 아버지 되시는 이광요 수상이 깨끗한 싱가포르를 건설하기 위해 거리를 지저분하게 하는 자들은 중형에 처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즉시 총살까지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감히 거리에 침을 뱉거나 휴지를 떨어뜨릴 생각을 못합니다. 이처럼 강제적이라도 청결한 나라, 거리를 유지하고 싶어 합니다.

유대인들의 청결 관리는 성경에서 나왔습니다. 음식을 먹기 전에 반드시 손을 씻으며, 음식도 정결하게 요리하여 코셀(Kosher) 음식을 먹습니다. 안식일이나 절기를 준비하면서 대청소를 실시합니다. 외출하였다가 귀가하면 손을 씻되 팔꿈치까지 씻습니다. 집에 곰팡이나 누룩이 있어서는 안 되기에 냉장고 밑과 안까지 깨끗이 청소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유대인 동네에 세탁소가 잘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자주 빨아서 입고 깨끗하게 다닙니다. 초상집에 갔다 오면 반드시 옷을 세탁해야 합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유대인이 사는 동네는 집값이 올라갑니다. 그만큼 청결하기 때문입니다. 음식도 성경에서 먹지 말라는 음식은 먹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보면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가 나오는데 좋은 고기란 먹을 수 있는(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물고기를 말합니다. 나쁜 고기란 오징어, 문어와 같이 비늘이 없거나 지느러미가 없는 고기를 말합니다. 불결한 음식을 먹는 돼지를 먹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은 외부적으로 청결을 유지했으나 예수님 당시에 마음의 청결을 유지하는 데는 등한했던 것 같습니다. 한 번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비난했습니다. 물론 그런 사정이 있었겠지요. 이에 주님께서는 그들의 외식을 지적하시면서 마태복음 15:19에 보니 “너희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러한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오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마음의 청결에 더 신경을 써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회칠한 무덤과 같이 겉 다르고 속이 달랐습니다. 옛날 무덤에 회를 칠하는 풍속이 있었는데 속에는 더러운 뼈와 냄새나는 송장이 있는데 겉에는 흰색을 칠했으니 아주 깨끗하게 보였습니다. 우리도 이런 사람이 아닙니까? 속에는 갖은 죄악과 교만과 탐심과 시기와 불결로 냄새가 나는데, 겉으로는 거룩한 척, 경건한 척, 잘 믿는 척, 화장을 잘하여 예쁜 척하는 사람 말입니다. 현대 문화는 포장문화입니다. 내용보다는 포장이나 외모에 더 신경을 씁니다. 그러니 내면의 세계는 병이 들고 문제가 많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범죄하고 나서 회개하면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 51:10) 기도했습니다. 우리도 매일 매 순간 이런 기도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세수와 세면, 목욕만 하지 마시고 내 마음과 생각을 주님의 보혈로 깨끗하게 씻기를 바랍니다. 보혈의 안경을 쓸 때만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여호와의 성산에 오를 자격이 있는 자로서 시편 24:4에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의 손과 마음이 깨끗한지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마음을 청결케 할 수가 있겠습니까? 불결하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간단하게 말하면 섞이지 않을 것이 섞이면 불결해집니다. 불결한 공기란 공기 가운데 연기가 섞이든지 먼지가 섞이든지 섞이지 않아야 될 것이 섞일 때에 그 공기는 불결한 공기가 됩니다. 흐린 물이란 맑지 못하고 그 가운데 먼지든지 여러 가지 더러운 것이 섞일 때에 그 물이 흐리다고 합니다. 더러운 옷은 다른 것이 아니고 그 옷에 여러 가지 먼지가 묻는다든지 더러운 것이 묻을 때에 그것을 더럽다고 합니다. 더러운 마음은 무엇입니까?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이 주신 그 본마음 외에 여러 가지 다른 것이 그 속에 섞일 때에 그 마음을 더럽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우리의 마음을 더럽히는 것이 많지만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보통 일곱 가지로 생각합니다.

우리 사람의 마음을 더럽게 하는 것으로 흔히 일곱 가지 죄악을 열거합니다.

첫째는 음욕, 둘째는 탐심, 셋째는 시기, 넷째는 교만, 다섯째는 미워하는 것, 여섯째는 혈기, 그다음에 거짓된 것, 이와 같은 죄악들이 우리의 마음속에 머물러 있으므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이 더러워졌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썩어졌습니다. 이런 죄악들이 얽히고 얽혀서, 이런 죄악들이 점점 장성해서, 이런 죄악들이 여러 가지 악한 것을 도모해서, 우리의 마음이 더러워지고 냄새가 나고 이런 마음이 입으로 나올 때에 더러운 말이 되고 행동으로 나올 때에 더러운 마음이, 행실이 되는 것입니다.

이 더러운 마음을 어떻게 씻을 수가 있습니까? 더러운 옷처럼 우리가 한강에 나가서 빨 수 있겠습니까? 이 더러운 마음을 어디 가서 빨 수 있겠습니까? 요한복음 13장을 읽어보면 거기 예수님께서 친히 대야에 물을 담그시고 수건으로 허리를 동이시고 제자들의 발을 겸손히 씻어 주시는 모습이 있습니다. 한 사람 두 사람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 때에 베드로의 차례가 왔습니다. 베드로는 선생님 제 발은 씻지 못하실 것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이에 예수 님은 지금은 그 뜻을 네가 알지 못하나 이 앞으로 알리라―하고 어서 발을 씻으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절대로 사양했습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의미심장한 말씀을 했습니다. ”내가 너를 씻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여러분,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은 단순히 모범만 보여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도 보여 주시려니와 한 걸음 들어가서 예수님만이 우리를 깨끗이 할 수 있다고 하는 이 진리를 이 발을 씻는 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마음을 깨끗이 씻어 주실 수 있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는 것입니다. 요일 1:7절에 사도 요한 은 이와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히브리서 9:13-14절에는 이와 같이 말씀했습니다.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의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베드로 사도는 1:18-19절에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오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씻음을 받아서 구원을 얻은 것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씻는 것은 그리스도만 씻을 수 있는데 그의 보혈로써 우리의 죄를 씻어서 깨끗하게 하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다는 축복에 대해서는 먼저 말씀한 것도 아니고 두 번째로 말씀한 것도 아니고 여섯 번째에야 말씀했습니다. 먼저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습니다. 자기의 마음속에 자기가 얼마나 부족한 것을 깨달은 다음에는 자기의 죄를 깨달아서 애통하는 그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그다음에 온유한 성품을 가지게 될 때에 더욱 복된 자리로 들어갑니다. 의를 사모하기를 주리고 목마른 것처럼 간절히 사모합니다. 긍휼 함으로써 모든 사람까지 회개하게 합니다. 그다음에야 마음이 청결한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마음이 청결한 축복을 그저 갑자기 일조(一朝) 일석(一夕)에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나의 부족함을 깨닫고 나의 모든 죄를 온전히 알고 하나님 앞에 간절한 마음으로 애통하며 자복하며 회개하고 그리고 그리스도께로부터 모든 위로를 받고 은혜를 받는 가운데 결국에는 그의 마음까지 깨끗하여질 수 있는 이와 같은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찬송가 252장에서 부르기를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가운데서 죄 사함을 받고 그 신앙 가운데서 한 걸음 나아갈 때에 우리의 마음이 점점 깨끗하여질 것입니다. 세례[침례] 요한은 요르단강에서 세례[침례]를 베풀 때에 한 번은 이런 말씀을 하였습니다. “나는 너희들에게 물로 세례[침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데 그분은 불과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침례]를 주시리라”라고 하였습니다(마 3:11). 오순절에 이 말씀이 응하게 될 때에 불같은 혀로서 나타난 것은 또한 의미가 있는 줄 생각하는 것입니다. 불은 태웁니다. 불은 사르므로 말미암아 깨끗하게 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에 들어와서 점점 하나님과 가까운 생활을 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신님으로 우리 마음속에 점점 풍부한 은혜를 받게 될 때 그 뜨거운 성신님께서 우리 마음속의 여러 가지 더러운 생각을 지워 버리고 점점 우리의 마음으로 하여금 거룩하고 깨끗한 자리에 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불이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깨끗한 마음은 우리 인간의 노력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이고 이와 같이 주님의 은혜로서 주님만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이와 같이 깨끗한 마음을 얻게 될 때에 그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어디나 계십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부정해서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자연에게도 계십니다. 그러나 눈이 밝은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만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맷돌은 천천히 돌아가지만 매우 보드랍게 간다.”라고 하는 옛날부터 내려오는 말이 있습니다. 공기의 맷돌의 움직임을 역사 가운데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과연 청결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펼쳐 놓고 성경을 읽을 때 이 성경 가운데서 하나님의 일꾼을 볼 수가 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부정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는 까닭으로 성경을 읽지마는 하나님을 찾지 못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과연 마음이 청결해질 때에 그리스도의 얼굴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너희가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하느냐?”(요 14:9) 그리스도의 얼굴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의 얼굴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할 수 있는 대로 깨끗한 마음을 보존하기 위해서 우리의 마음을 더럽게 하는 모든 것을 피하는 게 좋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더럽게 하는 서적을 피하세요. 음악을 피하세요. 사진을 피하세요. 우리의 마음을 더럽게 하는 모든 오락을 피하세요. 우리를 더러운 데로 인도하는 여러 친구가 있으면 끊어 버리세요. 우리를 더러운 곳으로 인도하는 어떤 곳이 있으면 그곳을 멀리하셔야 됩니다. 우리의 마음을 항상 깨끗이 보존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든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마음을 채워 두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의 마음을 항상 깨끗이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강건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가운데 성신의 충만한 은혜를 받아서 우리 마음속에 뜨거운 성신의 불이 언제나 붙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그 간절한 정열, 모든 인류를 사랑하는 그 간절한 정열, 거룩한 불이 우리 심령 속에 언제나 붙을 때에 우리의 마음이 자연히 거룩하고 깨끗한 자리에 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 헬라어 강해] 사마리아 여인의 예수님 증거(요 4:27-30)

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복음 4장 헬라어 강해 중에서 사마리아 여인의 예수님 증거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우물에 물을 뜨러 왔다가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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