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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5장 헬라어 강해] 게네사렛의 병자 치유 사건(마 15:34-36)

복음의 능력 2021. 6. 20.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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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마태복음 15장 헬라어 강해 중에서 게네사렛의 병자 치유 사건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고민하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오셔서 구원해 주시고 게네사렛 땅에 이르게 됩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을 알고 모든 근방에 통지하여 모든 병자들이 예수님께로 몰려왔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병자들이 예수님의 겉옷 자락을 만졌을 때 모두 치료를 받았습니다.

게네사렛의 병자 치유 사건(마 15:34-36)

 

34절 카이 디아페라산테스 엘돈 에이스 텐 겐 겐네사레트

마 14:34 그들이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니

=====14:34

게네사렛 - 갈릴리 호수 서안(西岸)에 자리 잡고 있는 기후가 온화(溫和)할 뿐 아니라 비옥한 평야지대이며 북쪽에는 가버나움이, 남쪽에는 디베랴가 위치해 있다. 한편 게네사렛 사람들이 즉시 예수를 알아보고 그에게 모여들었다고 하는 사실은 예수의 사역 범위가 얼마나 넓었는가를 말해준다.

여기에는 그리스도께서 게네사렛 땅에 계시면서 강 건너에서 행하셨던 이적을 대대적으로 베푸신 사실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다. 게네사렛은 벳새다와 가버나움 사이에 있는 일대(一帶)의 토지(土地, a tract of and)를 말하며 이 바다를 "게네사렛 호수"(눅 5:1)라고 부르는 것은 이 지방에 연유되어 불리거나 그 호수 때문에 이 지방이 그렇게 불리거나 둘 중 하나이다. 그 지명의 뜻은 "가지의 골짜기"이다. 여기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은,



"그 지방 사람들"의 의욕과 신앙. 이 사람들은 그 호수에 인접되어 있는 거라사 사람들보다 더 훌륭하였다. 거라사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자기들에게서 떠나기를 간구하였으며," 그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지방 사람들은 그에게 자기들을 도와달라고 간구하였으며, 또한 그를 필요로 하였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그를 이용(역주:좋은 의미에서)하는 것을 우리가 그에게 드릴 수 있는 최대의 영예로 간주하신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찾아볼 수 있다.

35절 카이 에피그논테스 아우톤 호이 안드레스 투 토푸 에케이누 아페스테일란 에이스 홀렌 텐 페리코론 에케이넨 카이 프로세넹칸 아우토 판타스 투스 카코스 에콘타스

마 14:35 그 곳 사람들이 예수이신 줄을 알고 그 근방에 두루 통지하여 모든 병든 자를 예수께 데리고 와서

=====14:35

그 근방에 두루 통지하여 - '통지하다'라는 의미의 헬라어 '아포스텔로'는 사자(使者)를 보내어 소식을 전한다고 하는 뜻으로 게네사렛 사람들이 이웃과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일일이 찾아다니며 주님이 그들의 동리에 오신 사실을 가르쳐 주었음을 뜻하는 말이다. 또한 이는 마침내 예수의 공적인 사역의 범위가 온 유대 전역에까지 미치게 되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그 지방 사람들"은 어떻게 그리스도에게로 왔는가? 그들은 "예수신 줄을 알았다"(35절, 직역:예수에 대하여 알고 있었다). 아마도 배안에 있던 사람들(역주:배 안에는 제자들 이외의 사람들도 타고 있었다) 이 열심히 퍼뜨렸던 이적적인 바다의 항해에 대한 소문이 그 지방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일행을 환대하게 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지 모른다. 아마도 그 이적은 그리스도께서 미리 계획적으로 행하셨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는 하시는 일에 대하여 멀리 내다보시기 때문이다. 그 지방 사람들은 이 이적을 알고 있었으며, 그밖에 그리스도께서 행하셨던 많은 이적들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그에게로 몰려들었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아는 자들은 그를 만나려 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만일 그리스도가 더욱 알려진다면 지금과 같이 무시를 당하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알려지는 만큼 그는 신뢰를 받는 것이다.

그들은 "그에 대하여 알고 있었다." 즉 그가 그들과 함께 있을 것과 또한 잠시 동안만 그들과 함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우리의 기회를 잘 분별하는 것은 그것을 발전시켜나가는 데 좋은 발걸음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계셨으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한 것"(요 1:10)은 "세상의 잘못이었다. 예루살렘은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눅 19:42), 그가 그 가운데 있을 때에 몇몇 사람은 "그에 대해 알았었다." 우리 가운데 과거에 선지자가 "있었다"(겔 2:5)는 것을 아는 것보다는 현재 선지자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오히려 나은 일이다.

그들은 이웃에게 그리스도께서 그곳에 계심을 알림으로써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였는가? "그들은 이 근방에 두루 통지하였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아는 자들은 최선을 다하여 다른 사람들도 역시 그를 알 수 있도록 그에게 데려와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 영적인 떡 조각을 우리 혼자만 먹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에게는 우리 모두가 먹어도 충분할 만큼 다량의 떡이 있으며, 따라서 독점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우리가 우리의 영혼에 좋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그것들을 분배해야만 한다.

만일 그들이 부름을 받거나 초대받지 못하였다면 그 기회를 포착할 수 있도록 그들에 대해 더욱 배려를 해야만 한다. 그들이 "그 지방으로 나가서 두루 통치한 것"은 지방은 그들의 것이었으며 또한 그 지방이 잘 되기를 갈망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식을 장려하고 선전함으로써 우리 마을에 대한 사랑을 입증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이웃은 선행을 베풀기에 유리하다. 우리는 우리 곁에 있는 자들을 위해, 최소한 우리가 본을 보임으로써 그리스도에게 가까이 데려가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스도에게 대한 그들의 용무는 무엇이었는가? 아마도 주목적은 아니었지만 가르침을 받고 또한 병 고침을 받으려고 왔다. "모든 병든 자를 예수께 데리고 왔다." 만일 그들이 그리스도와 그의 교훈을 사랑하므로 그에게 오지 않았다면, 그들의 사랑은 한낱 이기적인 사랑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일, 즉 우리 자신의 평화와 부귀에 대한 일만을 열심히 찾기 이전에 그리스도의 일을 찾아야만 할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은혜와 의로움을 획득함으로써 그를 영화롭게 하고 즐겁게 해야만 한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그리스도는 병자에게 데려가기에 적당한 분이시다. 그들은 마땅히 "그 날개 아래에 치유함을 가지신 의의 태양," 즉 위대하신 의원에게 그들을 데리고 가야만 한다.

36절 카이 파레칼룬 아우톤 히나 모논 합손타이 투 크라스페두 투 히마티우 아우투 카이 호소이 헵산토 디에소데산

마 14:36 다만 예수의 옷자락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얻으니라

=====14:36

옷가에라도 손을 데게 하시기를 - 예수의 신성에 대한 엄청난 소문은 9:20의 혈루증의 여인의 경우와도 같이 그분이 입은 옷을 손으로 대기만 하여도 병을 낫게 한다는 믿음을 갖게 하였다. 따라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므로 예수께서 한 사람씩 차례로 만져주시리라고 기대할 수 없었던 그들은 비록 예수께서 만져주시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병자 자신이 그분에게 손을 대기만 하여도 나을 것이라는 강렬한 믿음을 소유하였던 것 같다.

나음을 얻으니라(디에소데산) - '완전히(디아) 원을 받다(소조)' 의미로 병자들이 육신의 병에서 고침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영혼의 질병, 즉 죄된 세상의 여러 욕망이 주는 고통 속에서도 자유함을 얻게 되었다고 하는 이중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들은 주님에게 어떻게 요청을 하였는가? "다만 예수의 옷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였다"(36절). 그들은 주님에게, 매우 끈덕지게 요청하였다. 즉 그들은 그에게 간구하였다. 우리가 고침 받기를 잘 간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사역자들을 통해 우리가 고침 받게 되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실 때이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최고의 은혜와 축복은 간구함으로써 그리스도에게서 얻어진다는 사실이다.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다."

매우 겸손하게 요청하였다.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그에게 가까이할 수 없는 비천한 자인 것처럼 겸손하게 그의 도우심을 간구하면서 그에게로 나아왔다. 그들이 예수님의 옷깃만이라도 만지기를 원하였다는 사실은 그들이 생각하기를 자신들은 주님의 특별한 배려를 받을 만한 존재도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처지에 대해 그로 하여금 많이 말씀하시게 하는 것보다 옷깃만을 만져도 고쳐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였음을 나타내어 준다. 만일 그가 "그의 옷깃을 만지도록" 내버려 두셨다고 하면 그들은 그것을 호의로 여겼을 것이다. 동양의 나라들은 그들의 왕에게 존경을 나타낼 때 그들의 소매나 옷자락에 입을 맞추는 습관이 있다.

그들은 그의 능력의 완전성을 확신함으로써 요청하였다. 즉, 그들은 그의 옷깃만 만져도 병 고침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의심 없이 확신하였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그에게 조그만 표적과 상징을 제시하기만 해도 그에게서 큰 응답을 받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그들은 나아만 짐군이 했던 것처럼(왕하 5:11) 병든 곳이나 사람에게 그의 손을 얹히기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확신하기를 그에게는 넘치는 치유의 효력이 있으시기 때문에 그에게 가까이 가기만 해도 병 고침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혈루증으로 앓던 여자가 "그의 옷가를 만짐으로써" 고침을 받고(마 9:20-22) 또 그녀의 믿음에 대해 칭찬을 받은 것도 이 지방이었다. 아마도 그들은 이 사실에 연유하여 그에게 병 고침을 요청하였던 것 같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그리스도를 청종함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경험은 우리가 그를 청종하려고 하는 데 있어서 유용한 교훈과 격려가 된다는 사실이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들보다 이전에 잘 사용하였던 그러한 수단들과 방법들을 사용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그리스도에게 대한 그들의 요청이 결심되고 성취됨. 이 야곱의 후손들이 그에게 간구했던 것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그리스도의 치유는 완전하신 치유이다. 그는 그가 치유하는 자들을 완전하게 치유하신다. 그는 그의 사역을 반(半)만 수행하시지 않는다. 영적인 치유가 처음에는 완전하지 못하다 할지라도, 의심할 여지없이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것을 이루실"것이다(빌 1:6).

그리스도는 그에게 요청하는 사람이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모두 치유하실 수 있는 많은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 그의 머리에 부어진 "보배로운 기름은 그 옷깃에까지 흘러내린다"(시 133:2). 옷깃과 같이 그의 물건 중 아무리 적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에서 그의 은혜가 넘쳐흐른다. 그는 "끝까지'(완전히) 구원하실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치유의 효력(능력)은 참되고 생생한 믿음으로써 그를 만지는 자들을 위해 방출이 된다. 그리스도는 하늘에 계시지만 그의 말씀은 우리에게 가까이 있으며, 또한 그 자신이 그 말씀 안에 계신다. 우리가 신앙을 말씀에 혼합시켜, 우리 자신을 그것을 의지할 때 또한 그 영향력과 명령에 순종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옷깃을 만질 수 있다. 단지 이와 같이 만지기만 해도 우리는 온전해질 수 있다. 영적인 치유도 이와 같이 쉽게 이루어지므로 그는 참으로 "값없이" 치유하신다고 말해질 수 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의 영혼이 상처 때문에 죽게 되는 것은 우리의 의원 되신 주님 때문도 아니며 그에게 기술이나 의향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우리 자신 때문이다. 그는 우리를 "치유하실 수"있으시며, 우리를 "치유하려고"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치유받기를 원하지 않는"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피는 우리의 머리 위에 있게 될 것이다.

시험에 빠지지 않고 악에서 구하소서(마 6:9-13)

 

[마태복음 주기도문 설교] 시험에 빠지지 않고 악에서 구하소서(마 6: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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