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설교 알쓸잡

[고린도전서 원어성경강해] 십자가 복음의 능력을 선포함(고전 2:1-9)

복음의 능력 2022. 10. 15.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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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복음의 능력을 선포함(고전 2:1-9)

 

바울은 오직 십자가 예수님만을 선포하기로 작정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것 외에는 전하지 않기로 했다. 바울은 세상의 썩어질 것에 전념하지 않고 오직 복음에만 전념했다. 우리도 복음만을 선포해야 한다.

고전2: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성 경: [고전2:1]

주제1: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지혜]

주제2: [성령의 능력으로 행한 전도]

󰃨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 이 문구는 문자적으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갔을 때'(WhenI came, NIV)라는 의미로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당시 약 1년 반 동안 고린도에 머무르면서 전도하였을 때를 가리킨다(18:1-17).

󰃨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 '증거'에 해당하는 헬라어 '마르튀리온'은 공인 본문(Textus Receptus)에 근거한 것이다. 오래된 사본들(P,A,C)에는 '뮈스테리온'('비밀')으로 되어 있어서 '비밀'로 해석하기도 하지만(Aland), 내용에 있어서는 어떻게 해석하든지 별 차이가 없다. 즉 하나님께서 주시고 하나님을 내용으로 삼는 증거 곧 복음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계시하셨고 그 계시의 중심은 그리스도의 역사였다. 그러므로 바울이 하나님을 말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며 곧 '십자가의 도'(1:8 주석 참조)를 전한다는 것이다.

고전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성 경: [고전2:2]

주제1: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지혜]

주제2: [성령의 능력으로 행한 전도]

󰃨 내가...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 헬라어 본문에는 '왜냐하면'이라는 의미의 헬라어 '가르'가 있어서 본절이 앞절의 이유가 됨을 보여준다. 본절에서 바울은 죄인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해서 언급한다(10:37-43). 이것은 바울이 고린도에 가고자 했던 유일한 목적이었다.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곧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가르친다. 이러한 그의 가르침이야말로 복음의 핵심이다(Hodge).

󰃨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 '알지'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데나이'는 경험을 통해 아는 일반적인 용어인 '기노스코'와는 달리 직관적이며 전문적인 지식을 가리킬 때 쓰는 용어인 '오이다'의 부정사이다. 바울은 모든 것을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으나 그리스도에 대해서만은 깊은 지식을 가졌고 또 가지기를 원했다. 바울이 이렇게 다짐한 것은 바울이 회심 때에 겪은 체험과 철학적인 지혜를 동원하여 전도하려다가 실패한 아덴에서의 경험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17:22-34). 바울은 이러한 경험을 통해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만이 참이며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가장 합당(合當)한 것임을 깨달았다.

고전2: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성 경: [고전2:3]

주제1: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지혜]

주제2: [성령의 능력으로 행한 전도]

󰃨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 '거할'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게노멘'은 '갔다'라는 의미로 본문은 문자적으로 '내가 너희에게 갔을 때'의 뜻이다. 바울은 본절 초두에서 '카고'('내가 또한')라는 말로 시작하여 주제를 전환하고 있다.

󰃨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약함'은 육체적인 허약이 아니다. 그가 비록 이따금 자신의 육체적인 허약을 언급하지만(고후 10:10) 본절에서는 전체 문맥상 육체가 아닌 마음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Hodge). 바울의 마음이 약하고 두려웠던 것은 그가 고린도에 이르기 직전 아덴에서의 전도에 실패한 것이 그 중요한 원인이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고린도 지방에서 성행하던 이교도들의 강한 세력들, 철학자들의 사변과 교만한 태도, 그리고 음탕한 도덕적인 타락상 등이 난무한 곳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을 때 느꼈던 인간적인 중압감으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비록 강하고 담대한 대사도(고후 4:7-11;6:19,20)이기도 했지만 자아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두려워할 줄 아는 겸비한 인격자였음을 보여준다.

고전2: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성 경: [고전2:4]

주제1: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지혜]

주제2: [성령의 능력으로 행한 전도]

󰃨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 '권하는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이도이 로고이스'는 '유혹하는 말'(enticingwords, KJV), '그럴듯한'(plausible words, RSV)등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 인간의 이성을 교묘하게 사용하여 유혹하는 말, 곧 인간의 지혜가 상상해 낸 설득 조의 말을 의미한다. 바울은 사람들을 믿음에 복종하도록 함에 있어서 인간적인 논쟁이나 설득으로 하지 않았다. 일반적인 학문에는 그와 같은 논리와 설득력, 그리고 인간의 지혜에서 나온 웅변술과 화려한 말들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그러한 지혜가 부각되면 십자가의 도는 헛되게 된다(1:17).

󰃨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 바울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강한 영적인 능력을 나타내는 데 중점을 두었다(1:18). 여기에서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의 헬라어 '아포데익세이 프뉴마토스 카이 뒤나메오스'는 (1) '능력 있는 성령의 나타남' 또는 (2) '성령과 능력의 나타남'이라는 두 가지 번역이 가능하다. '능력'의 헬라어 '뒤나미스'가 종종 이적적인 능력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이 구절에서는 전체적인 문맥에 비추어 (1)의 번역이 더욱 타당하다. 즉 성령께서 능력 있게 나타나심에 근거하여 바울이 복음을 전했음을 보여준다. 바울이 성령의 나타나심에 의존하여 설교했으므로 복음을 듣는 자들에게 확신을 주었다. 이 편지에서 바울이 성령의 사역에 대해서 언급한 것은 이곳이 처음이다.

고전2: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성 경: [고전2:5]

주제1: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지혜]

주제2: [성령의 능력으로 행한 전도]

󰃨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 본절에서는 바울이 왜 인간의 지혜로 된 말을 사용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한다. 바울이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전도하고 가르친 이유는 고린도 교인들의 믿음이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믿음'의 헬라어 '피스티스'는 정관사 ''와 함께 사용되어 믿는 행위 그 자체보다는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에 기초한 믿음의 본질로 해석되어야 한다. 따라서 '너희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Mare).

󰃨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 '다만'의 헬라어 '알라'는 본절을 앞절과 완전한 대조를 이루게 하는 접속사로 믿음의 원천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바울은 구원을 얻게 하는 믿음의 근거가 이성에 호소하는 논증(論證)이 아니라 진리와 함께 그리고 진리로 말미암아 심령에 역사(役事)하는 하나님의 권능임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그는 고린도 교인들로 하여금 그 믿음의 근거가 하나님의 능력에 있음을 명확하게 인식시켜서 그들이 자신의 지혜를 의지하지 않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능력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도록 가르친다.

고전2: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성 경: [고전2:6]

주제1: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지혜]

주제2: [하나님의 구원 계획]

󰃨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 바울은 이미 지혜의 부당성을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지혜를 언급한다. 헬라어 본문에서는 '지혜를'(소피안)이 문두에 나와 강조되고 있다. 바울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지혜''온전한 자'들이 깨닫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온전한 자'(텔레이오이스)에 대해 혹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어린아이(3:1)와 비교되어 영적인 이해에 있어서 성숙한 자를 가리킨다고 한다(Morris). 그러나 본문의 문맥상, 구원받지 못한 자와 대조되는 구원받은 자들 즉 성령에 의해 깨우침을 받는 자들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바울이 전하는 십자가의 도를 미련한 것으로 단정한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갓난아이 된 자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아예 중생하지 못한 자, 즉이 세상의 지혜 있는 자(1:20-23)이다. 따라서 십자가의 도를 지혜로 간주하는 자들은 성령에 의해 깨우침을 받은 모든 믿는 자를 가리킨다(Hodge, Mare). 바울은 본문을 통해 진정한 의미에서의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옴을 시사해준다.

󰃨 이 세상의 지혜...없어질 관원의 지혜 - '이 세상의'에 해당하는 헬라어 '투아이오노스 투투'는 보다 정확히는 1:20과 같이 '이 세대'를 뜻한다. 그리고 '관원'(아르콘톤)은 본절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킨다. 혹자는 이 '관원'이 사단이나 악귀 등을 가리킨다고 한다(Origen, Marcion). 그러나 이 견해는 타당성이 희박하다. 비록 바울이 이 단어를 사단의 개념으로 자주 사용하지만(8:38;2:15), 모두 단수형을 사용하였다. 더욱이 행 3:17에서는 '관원들'이 무지(無知) 중에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음을 언급했고 본장 8절에서도 '이 세대의 관원'(톤 아르콘톤투 아이오노스)이 무지로 인해 주를 십자가에 못 박았음을 언급한다. 또한 앞절에서부터 계속하여 하나님의 지혜와 대조하여 사람의 지혜를 언급하므로 본절에서 갑자기 사단을 언급하는 것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그러므로 '관원'이란 '이방 세계나 유대 세계의 지도자 일반'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바울은 본문에서도 자신이 전파하는 지혜는 세상의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고전2:7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성 경: [고전2:7]

주제1: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지혜]

주제2: [하나님의 구원 계획]

󰃨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 '오직'에 해당하는 헬라어 '알라'는 강한 반의어 접속사로 바울이 언급하는 지혜가 바로 하나님의 지혜임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지혜'에 해당하는 헬라어 '데우소피안'에서 하나님(데우)은 강조되어 앞에 위치되었다.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그 복음을 이해하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로 말미암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바울에게 있어서 '비밀'(뮈스테리오)이란 오랫동안 감취어져 있다가 드러난 것으로(3:3;1:26),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신다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이다(5:32). '비밀'은 인간이 전혀 포착할 수 없는 것으로 하나님의 계시로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아무리 연구해도 그 비밀을 알 수 없고 하나님의 사랑도 깨달을 수 없다(Morris).

󰃨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 본 구절은 헬라어 ''('')을 사용하여 앞 구절을 설명한다. '영광'(독사)은 백성들과 함께하신 구약의 영광스러운 하나님을 회상해 보는 것(24:17;40:34;14:10)과 백성들이 하나님과 함께 나눌 미래의 영광을 미리 맛보는 것(21:10, 11, 22,23)을 의미한다(Mare). 결국 이 말은 구원으로 말미암는 모든 유익들을 가리키는 말로써 그리스도께서 마련하신 뛰어난 모든 것과 복스러운 모든 것까지도 포함한다(5:2). 바울은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라고 표현함으로써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결국 본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라 할 수 있는 구속 계획(球贖計劃)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생각으로 만세전에 이미 구상되었고 복음을 통해 인간의 구원을 위해 알려진 것임을 증거하고 있다(Hodge).

󰃨 만세전에(프로 톤 아이오논) - 이 말은 문자적으로 '영원 전에'라는 의미로 시간이 발생되기도 전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복음이 후대의 고안물(考案物)이 아니었음을 명백히 한다.

고전2: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성 경: [고전2:8]

주제1: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지혜]

주제2: [하나님의 구원 계획]

󰃨 이 지혜는...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기에 못박지 아니하였으리라 - '영광의'(독세스)라는 형용사는 대개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사용되었고(행 7:2;엡 1:6) 외경 에녹서에서도 '영광의 주'가 하나님을 지시하였다(Morris) 그리스도의 신성을 보여주는 호칭인 '영광의 주'(퀴리온 테스독세스)는 바울 서신에서는 본절에만 나타난다. 바울은 본절에서 그리스도에게 적용할 수 있는 최고의 호칭을 사용하여 십자가의 수치와 극명(克明)하게 대조를 보이고 있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강조하는 이유는 7절에서 언급한 대로 그분의 영광이 '우리의 영광'을 위한 것이며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께서만 이루실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다(Grosheide).

고전2: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성 경: [고전2:9]

주제1: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지혜]

주제2: [하나님의 구원 계획]

󰃨 하나님이...함과 같으니라 - 본 구절의 인용 출처를 알아내기가 어렵다. 오리겐(Origen)과 그 후 몇몇 주석가들은 지금은 분실된 '엘리야의 외경'이나 또는 '이사야의 승천'이라는 외경에서 인용했다고 했다. 그러나 바울이 구약성경을 인용할 때에만 '기록된 바'라고 함으로 이 견해는 타당하지 않다(Lightfoot, Hodge). 혹자는 복음서에는 기록되지 않은 주님의 말씀을 인용했다고 하며 사 52:15;65:17 등에서 인용했다고 하기도 한다(Chrysostom, Hodge). 그러나 전체적으로 봐서 사 64:4를 대략적으로 언급한 듯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는 말은 구약의 전체적인 사상을 일반적인 의미로 함축시킨 것 같다. 한편 '예비하신'이라는 동사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계획을 이루어가고 계신다는 7절의 사상을 강조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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