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1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버린다고 말씀합니다. 고멜은 로암미를 낳았습니다. 더 이상 이스라엘은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백성이 아니라는 이름입니다.
로암미를 낳은 고멜(호 1:7-11)
7절 베에트 베이트 예후다 에라헴 비호샤이팀 바아도나이 엘로헤헴 베로 오쉬엠 비케셰트 우비헤레브 우비밀하마 비수심 우비파라쉼
성 경: [호1:7]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 이는 이스라엘을 책망하기 위해 대조적으로 언급된 구절이다. 사실상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는 똑같이 언약의 백성이다. 그런데 유다 족속은 긍휼을 얻지만 이스라엘 족속은 사랑에서 제외된다. 이러한 차별은 이스라엘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하나님께는 정당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유다와 같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무기와 힘을 구원의 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저희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 하나님께서 '내 자신'이라는 표현 대신에 '저희 하나님 여호와'라는 강조적인 구문을 사용하신 것은, 이제 더 이상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선언하는 것과 다름없다. 즉, 하나님은 자신을 의지하고 경배하는 자들에게만 구원을 베푸신다는 사실을 재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활과 칼이나...아니하리라 - 이스라엘이 의지했던 군사력이나 전쟁 무기로 써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 자신의 방법으로 구원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이 일은 실제로 유다 왕 히스기야 때 앗수르의 산헤립에게서 기적적으로 구원을 받음으로 성취되었다. 그때에 앗수르 군대 185,000명이 여호와의 사자에 의해 모두 죽임을 당하였고, 유다는 자기들의 군사력이 아닌 하나님으로 인하여 구원을 얻게 되었다(왕하 19장;사 37장).
8절 바티기몰 에트 로 라하마 바타하르 바텔레드 벤
9절 바요메르 케라 쉬모 로 암미 키 아템 로 암미 비아노키 로 에흐예 라켐
성 경: [호1:8,9]
로암미 - 이는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언약 관계가 완전히 파괴되었음을 선언하는 것이며, 동시에 이스라엘의 종국적인 운명이 절망적인 것임을 나타내 주고 있다. 이제 하나님은 그 백성을 흩으시고(이스르엘) 더 이상 긍휼을 베풀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로루하마) 아예 포기하시고 버리신다는 것이다. 결국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라'(출 6:7;레 26:12)는 특별한 언약 관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음을 알리는 것이다.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 직역하면 '나는 너를 위하지 않을 것이다'이다. 즉, '나는 너에게 아무것도 아니며, 너에게 속하지도 않을 것이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완전히 포기하시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결단은 이스라엘이 언약 백성의 삶에서 떠나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아 불법과 가증한 일들을 행한 데서 기인한다. 결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비극적인 종말을 맞게 된다(왕하 17:18).
10절 베하야 미시파르 비네 이스라엘 케홀 하얌 아셰르 로 이마드 비로 이사페르 베하야 비미콤 아셰르 예아메르 라헴 로 암미 아템 예아메르 라헴 베네 엘 하이
성 경: [호1:10]
그러나...셀 수도 없을 것이며 - 북왕국 이스라엘 열 지파에 대한 징벌이 선언된 후에, 곧바로 이스라엘 자손의 회복과 구원에 대한 약속이 대조적으로 선포되고 있다. 여기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어졌던 자손의 번성에 대한 약속(창 22:17;26:4;32:12)이 새삼 언급된 이유는, 비록 이스라엘 열 지파가 그들의 죄악으로 심판을 받을 것이지만 족장들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은 결코 폐기되지 않음을 시사하기 위함이다. 이는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함이 인간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징벌과 심판, 회개와 용서의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질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곳에서 - 이스라엘이 포로로 끌려간 장소가 '메소포타미아'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팔레스틴을 가리킨다고 보는 편이 적당하다(Lange). 그들이 언약 백성이 아니라고 선언된 장소는 바로 이스라엘 땅이다.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 할 것이라 - 이는 언약 관계의 완전한 회복을 의미한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열 지파 가운데 소수의 백성들이 유다 민족과 한 무리가 되어 포로 생활로부터 귀환함으로써 부분적으로 성취되었으며, 궁극적으로 이스라엘 백성과(롬 11:25,26)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 완성된다(벧전 2:10, P.Butler).
11절 베니케비추 비네 예후다 우베네 이스라엘 야흐다브 비사무 라헴 로쉬 에하드 비알루 민 하아레츠 키 가돌 욤 이즈르엘
성 경: [호1:11]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 르호보암 때 분열된 두 왕국이 한 나라로 다시 통일될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이것은 이미 예레미야(렘 50:4)와 에스겔(겔 37:16-23)에 의해서 예언된 것이기도 하다. 유다와 이스라엘의 통일은 먼저 스룹바벨의 지휘 아래 바벨론에서 돌아오면서부터 시작되었다(스 1:5;3:1,2). 그러나 이 예언은 온 이스라엘이 메시야의 구원으로 인해 시온에 모이게 될 때에 성취된다(롬 9:26;11:26). 이것은 나아가 이방인과 이스라엘이 영적 아브라함의 후손들로서 교회 안에서 하나가 될 것임을 암시한다(롬 9:25;갈 3:28;엡 1:10;벧전 2:10).
한 두목을 세우고 - '로쉬 에하드'는 '한 머리', 곧 단 하나의 방백이나 왕을 의미한다. 이것은 유다와 이스라엘이 더 이상 두 나라가 아닌 한 나라로서 연합할 것임을 시사한다. 이는 성경에서 종종 '다윗'이라는 이름으로 지칭되는데(3:5;겔 34:23;37:24;암 9:11), 곧 메시야를 가리킨다. 즉 메시야로 인하여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로 연합됨을 상징한다(엡 2:11-22).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 일반적으로 '그 땅'은 이스라엘과 유다가 포로로 잡혀 있는 장소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그 땅'은 고대 이스라엘이 노예 생활을 했던 애굽으로 상징되고 있는 듯하다(2:15;8:13;9:3;11:5). 여기서 애굽은 이스라엘이 흩어져 살아야 하는 이방 세계의 모형이다. 그렇다면 본 구절의 '올라옴'은 포로 생활로부터의 귀환이거나, 유랑 생활에서 다시 모여들게 된 이스라엘의 독립을 뜻한다(Keil).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 땅'이 팔레스틴을 가리킨다면, '올라옴'은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으로 개선 행진을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미 2:13). 그런데 혹자는 이것을 교회 또는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로 경배하러 올라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J.Given). 여하튼 본 구절은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해방과 승리를 묘사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 - '이스르엘'은 4절에서 '하나님께서 흩으신다'는 뜻으로 사용되어 심판과 저주를 묘사하였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스르엘'의 또 다른 의미인 '하나님께서 심으신다', 또는 '뿌리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저주로부터 축복으로, 심판으로부터 언약의 성취에로 회복시킬 것을 의미한다(2:23;사 9:4-7;암 9:11). 따라서 '이스르엘의 날'은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당했던 패배와 수모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사랑을 통한 구원과 승리를 맛보는 날을 의미한다. 한편, 이것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에 의해 완성될 천년 왕국의 모습을 상기시키기도 한다(사 11:1-12;계 20:1-6).
[시편 31편 강해설교말씀] 고통 중에 담대히 기도하여 응답받음(시 3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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