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5장에서는 이삭의 두 아들 야곱과 에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죽음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서는 자신의 장자권을 야곱에게 팔게 됩니다.
이삭의 두 아들(창 25:1-34)
1-11절, 아브라함의 후년의 삶
[1-4절] 아브라함이 후처를 취하였으니 그 이름은 그두라라. 그가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를 낳았고 욕산은 스바와 드단을 낳았으며 드단의 자손은 앗수르 족속과 르두시 족속과 르움미 족속이며 미디안의 아들은 에바와 에벨과 하녹과 아비다와 엘다아니 다 그두라의 자손이었더라.
아브라함은 사라가 죽고 아마 이삭이 결혼한 후 그두라라는 이름의 후처를 취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기력을 주셨고 그의 아내 그두라는 아브라함에게 여섯 아들을 낳았다. 그의 자손들 중에는 스바, 드단, 앗수르 등 성경에 나오는 지역 혹은 종족의 이름들이 있다. 그러나 성경에는 같은 이름의 사람들이나 종족들이 있으므로(창 10:7, 22, 28) 그것을 확인하는 것은 쉽지 않다.
[5-6절]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 모든 소유를 주었고 자기 서자들(베네 핫필라그쉼)[첩들의 아들들]에게도 재물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국으로 가게 하였더라.
아브라함은, 사랑하던 아내 사라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약속의 아들인 이삭에게 자기 모든 소유를 주었다. 이삭은 그의 주상속자이었다. 또 아브라함은 자기의 다른 아들들, 즉 여종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과 그두라의 여섯 아들들에게도 재물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이삭을 떠나 동쪽 땅, 즉 오늘날 아라비아 반도 여러 곳으로 가게 하였다.
[7-8절] 아브라함의 향년이 175세라. 그가 수(壽)가 높고 나이 많아 기운이 진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아브라함은 175세에 별세하였다. 그는 주전 2166년경에 출생하여 주전 1991년경에 사망하였다. 아브라함은 주전 2000년대의 인물이었다. 그 시대는 우리나라의 고조선 시대이었다.
아브라함은 나이가 많았고 기운이 다하여 숨이 끊어졌다. 본문은 그의 죽음을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갔다”고 표현한다. 그것은 창세기 15:15에 기록된 하나님의 예언대로 된 것이다. 이 표현은 사람이 죽음으로 그 존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 영혼이 육체를 떠나 어떤 곳에 모이는 것을 암시한다.
[9-11절] 그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마므레 앞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것은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서 산 밭이라.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니라.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이삭은 브엘 라해로이 근처에 거하였더라.
이삭과 이스마엘은 아버지를 막벨라 굴에 장사함으로써 그의 장례를 치르었다. 그 굴은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 산 밭이었고 그 아내 사라도 거기 장사된 곳이다. 아브라함이 죽은 후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복을 주셨다. 이제 이삭은 아브라함을 이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자가 될 것이다. 이삭은 남방에 있는 브엘 라해로이 근처에 거하였다.
12-18절, 이스마엘의 자손들
[12-18절] 사라의 여종 애굽인 하갈이 아브라함에게 낳은 아들 이스마엘의 후예는 이러하고 이스마엘의 아들들의 이름은 그 이름과 그 세대대로 이와 같으니라. 이스마엘의 장자는 느바욧이요 그 다음은 게달과 앗브엘과 밉삼과 미스마와 두마와 맛사와 하닷과 데마와 여둘과 나비스와 게드마니 이들은 이스마엘의 아들들이요 그 촌과 부락대로 된 이름이며 그 족속대로는 12방백이었더라. 이스마엘은 향년이 137세에 기운이 진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하였더라.
본문은 이스마엘의 후예에 대해 기록한다. ‘후예’라는 원어(톨레도스)는 창세기에 11번이나 나오는 단어인데, 창세기가 한 사람의 저자 모세에 의해 쓰여진 책임을 잘 나타낸다. 그것은 ‘대략, 계보, 사적, 후예, 약전’ 등 여러 말로 번역되었다(2:4; 5:1; 6:9; 10:1; 11:10, 27; 25:12, 19; 36:1, 9; 37:1).
이스마엘은 12명의 아들들을 낳았고 그들은 다 열두 부족의 방백들이 되었다. 이스마엘은 137세까지 살았고 기운이 다하여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갔다. 그는, 180세까지 산(창 35:28) 이삭보다는 일찍 별세하였다. 그의 자손들은 아라비아 반도에 흩어져 살았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수적으로 번창하였다. 두 번째 아내 그두라를 통해 여섯 아들들이 출산되었고, 첩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을 통해 열두 명의 아들들이 출산되었다.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고쳐주시고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창 17:5-6)고 말씀하신 대로 되었다.
19-26절, 리브가의 출산
[19-21절]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 이삭은 40세에 리브가를 취하여 아내를 삼았으니 리브가는 밧단 아람의 아람 족속 중 브두엘의 딸이요 아람 족속 중 라반의 누이였더라. 이삭이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 아내 리브가가 잉태하였더니
이삭은 40세에 결혼하였으나 60세가 되기까지 20년 동안 자녀가 없었다. 그는 자녀를 가지기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그의 기도는 하루 이틀의 기도가 아니고 수 년 혹은 십여 년 동안 올린 기도이었을 것이다. 마침내 그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다.
이삭이 자녀를 위해 기도한 20년의 기간은 하나님께서 언약 자손 이삭을 훈련시키신 기간이었다. 그의 조상 노아는 500세에 자녀를 가졌었다(창 5:32). 그의 부친 아브라함도 75세 이전에 결혼했으나 100세가 되기까지 자녀가 없었다. 이삭은 하나님께 자녀 주시기를 구하면서 믿음이 자라고 인격이 성숙되었을 것이다. 그는 간절하고 끈질긴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고 의지하였을 것이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체험하였을 것이다. 또 그는 기도 응답의 체험을 통해 더욱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었을 것이다. 시편 65:2,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22-26절] 아이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가로되 이같으면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동이가 있었는데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갖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60세이었더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쌍태를 주셨다. 아이들이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 것을 보고 리브가가 하나님께 물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말씀해주셨다. 때가 되어 쌍둥이가 출산되었는데, 먼저 나온 아이는 붉고 온 몸이 갖옷 즉 가죽털옷 같아서 에서라 이름하였고, 뒤에 나온 아이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야곱이라고 불렀다.
27-34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팖
[27-28절]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군인 고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종용한 사람인 고로 장막에 거하니 이삭은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그 쌍둥이 아이들은 잘 자랐다. 에서는 장성하여 익숙한 사냥꾼인 들사람이 되었고, 야곱은 장막에 거하는 순전한 사람이 되었다. ‘종용한’이라고 번역된 원어(탐)는 성경에 13번 나오는데, 주로 ‘순전한, 순진한’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BDB). 고대 헬라어 번역인 70인역도 ‘순전한, 순진한’이라는 말(아플라스토스)로 번역하였다. 아브라함과 같은 시대의 인물로 생각되는 욥에 대해 증거하는 욥기에는 이 말이 7번이나 나오며, ‘순전한’이라는 뜻으로 쓰였다(1:1, 8; 2:3; 8:20; 9:20, 21, 22). ‘순전한’이라는 말은 ‘경건하고 착한’이라는 뜻을 내포한다. 경건하고 착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순전한 사람이다. 야곱은 순전한 사람이었다. 이삭은 에서가 사냥해온 고기를 좋아하므로 에서를 사랑했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다.
[29-34절]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부터 돌아와서 심히 곤비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곤비하니 그 붉은 것을 나로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야곱이 가로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날 내게 팔라. 에서가 가로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야곱이 가로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서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었더라.
어느 날 야곱이 집에서 죽을 쑤었는데, 에서는 들에서 돌아와 심히 피곤하였고 야곱에게 “그 붉은 것을 나로 먹게 하라”고 요청하였다. 그래서 에서의 별명이 에돔이었다고 본문은 기록한다. ‘에돔’은 ‘붉다’는 말에서 나왔다. 야곱은 그에게 “형의 장자 명분을 오늘날 내게 팔라”고 말했는데, 그가 평소에 장자의 명분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사모하였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에서는 달랐다. 그는 배가 고파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라고 말했고, 야곱이 “오늘 내게 맹세하라”고 말하자 그는 맹세하며 장자의 명분을 팔았다. 야곱은 떡과 팥죽을 그에게 주었다. ‘팥죽’이라는 말에서 ‘팥’이라는 원어(아다솨)는 ‘렌즈콩’(편두 혹은 불콩)이라는 뜻이다. 팥죽이라는 말은 일종의 붉은 색의 콩죽이다. 에서는 그것을 먹었고 일어나서 갔다. 성경은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었더라”고 기록한다.
이삭 가정의 장자 명분은 단순히 땅 위에서 부모의 유산을 배갑절 받는 것 정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장자가 부모의 유산을 배갑절 받는 것(신 21:17)은 아마 옛날부터의 관습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삭 가정의 장자 명분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아브라함과 이삭을 통해 계대(繼代)될 하나님의 언약의 복과 관계된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다(창 22:18). 이 언약의 계승자, 이 언약의 복을 누릴 자가 누구인가? 야곱은 하나님의 언약의 복을 중시하고 사모하며 의지하였다. 그것은 그의 경건성을 나타낼 것이다. 그러나 에서는 달랐다. 그는 하나님의 언약의 복을 무시하고 경홀히 여겼다. 그것은 그의 불경건성을 나타낼 것이다.
창세기 25장에서 우리가 얻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훈련을 달게 받자. 이삭은 결혼한 지 20년이 되도록 자녀가 없었다. 그것은 확실히 그의 신앙 훈련의 과정이었다. 사람은 고난을 통해 인격의 훈련을 받는다. 야고보서 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우리에게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훈련으로 깨닫고 달게 받자.
둘째로, 우리는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하나님께 많이 기도하자. 이삭은 자녀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그의 기도는 거의 20년 동안 계속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환난을 당할 때 근심하거나 낙망하지 말고 하나님께 나아가 우리의 모든 사정을 아뢰고 그 해결책을 간구해야 한다. 야고보서 5:13,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기도는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이며 성도의 특권이다. 마태복음 7:7-8,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시편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고난은 성도에게 걱정거리가 아니고 기도거리일 뿐이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의 복을 붙들자. 오늘날 우리에게 장자의 명분은 무엇인가? 오늘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장자의 명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언약의 복이다. 예수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상속자의 특권이 주어진다. 로마서 8:17-18,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구체적으로 말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생을 약속하셨다. 디도서 1:2,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 요한일서 5: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영생은 영원하고 영광스러운 삶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의로 충만한 새 하늘과 새 땅을 약속하셨다. 베드로후서 3: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또 이런 복된 영생과 천국을 위해 우리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실 것이다. 요한계시록 22:20,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 언약의 복들을 붙들자.
[요한복음 13장 주석 강해 성경말씀] 새 계명을 주심(요 13: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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