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창세기 1장 주석 강해 중에서 둘째 날 궁창 셋째 날 바다 식물 창조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첫째 날에 빛이 이 땅에 임하라고 하셨습니다. 빛이 임하니 낮과 밤이 만들어졌습니다. 이제 둘째 날에는 하늘의 궁창을 만들고 있습니다. 궁창을 만드시고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누셨습니다. 셋째 날에는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땅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뭍을 땅이라고 이름 지으셨습니다. 땅이 생기니 그 땅에 각종 식물들이 올라오게 하셨습니다.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들이 자라났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시고 있습니다.
둘째 날 궁창 셋째 날 바다 식물 창조(창 1:6-13)
성 경: [창1:6]
창1:6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주제1: [천지창조]
주제2: [궁창의 창조 - 둘째 날]
물 가운데 - 여기서의 물은 지구 표면을 덮고 있던 물(2절)을 포함한 우주의 모든 수분(水分)을 가리킨다.
궁창(라키아) - 원어상 의미는 '두들겨 넓게 펼친 판(板)'이란 뜻. 따라서 고대 히브리인들의 개념상 '라키아'는 별과 달이 붙어 있고, 하늘 위의 물을 받치고 있으며, 높은 산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 단단한 하늘의 금속판(firmament)을 가리킨다(욥 26장, 히브리인들의 궁창 개념).
이에 관한 하나님의 명령을 볼 수 있다. “궁창이 있으라”. 그것은 종이가 펴지듯이, 또는 휘장이 쳐지듯이 전개(expansion)가 있으라는 명령과 같다. 히브리어는 바로 그런 의미를 나타낸다. 이것은 땅 위에 보이는 모든 것, 즉 땅과 셋째 하늘 사이에 있는 상중하층으로 된 대지와 영역들─천체, 그리고 광명의 세계와 그 궤도─을 포함하는 것이다. 그것은 위로 별들이 붙어 있는 높은 곳에서 아래로 새들이 날아다니는 낮은 곳까지 미치고 있다. 왜냐하면 별들이 있는 곳도 “하늘의 궁창”이라고 하며(14-15절), 새들이 나는 곳도 역시 “하늘의 궁창”이라고 하기 때문이다(20절). 하나님께서는 빛을 창조하셨을 때 공기를 그 광선의 그릇과 운반기구로 지정하셨다. 그리고 또 그것을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의 교통의 매개체로 삼으셨다. 왜냐하면 비록 하늘과 땅 사이에는 헤아릴 수 없이 먼 거리가 있기는 하나, 천국과 지옥 사이와 같은, 전혀 건널 수 없는 심연은 없기 때문이다. 이 궁창은 칸막이 벽이 아니라 교통의 수단이다(욥 26:7; 37:18; 시 104:3; 암 9:6 참조).
성 경: [창1:7]
창1:7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주제1: [천지창조]
주제2: [궁창의 창조 - 둘째 날]
궁창 아래의 물 - 바다를 비롯한 지구 상의 모든 물.
궁창 위의 물 - 구름이 수증기 상태로 대기권 속에 떠 있는 모든 수분, 이것이 응집되어 지구 상에 떨어지는 것이 곧 비나 눈, 우박이다.
그대로 되니라 - '그대로'는 '명하신 대로 확실히' 또는 '틀림없이'의 뜻. 천지가 하나님의 명하신 바대로 창조된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궁창의 창조를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그렇게 되라고 명령만 하시고 다른 어떤 존재가 실제로 그것을 만든 것과 같이 보이지 않도록 그는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셨다”는 말씀을 첨가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바를 당신 스스로 우리 가운데서 이루신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믿음과 성결함과 사랑을 명령하시는 그분은 그것들을 은혜의 능력과 말씀으로 창조하신다. 따라서 모든 찬양을 하나님께 돌릴 만하다. “여호와여, 당신께서 명하시는 바를 주옵시며 당신께서 기뻐하시는 바를 명하소서”(어거스틴─역주). 궁창은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것이라고 한다(시 8:3). 궁창의 범위가 한없이 넓은 것은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의 팔을 펴시사 만드신 것을 보여 주며 동시에 그 구성의 절묘함은 그것이 또한 그의 손가락으로 만든 기묘한 예술품임을 보여 준다.
그 용도와 설계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은 “물과 물로 나뉘게 하셨다.” 다시 말하면 구름에 싸인 물과 바다를 덮는 물, 공중에 있는 물과 땅에 있는 물로 구분하셨다. 이 양자의 차이를 신명기 11장 10-11절에서 주의 깊게 살펴보자. 애굽 땅은 궁창 밑에 있는 물로 축여지고 열매를 맺게 되었지만, 가나안 땅은 궁창 위에 있는 물로 열매를 맺었기 때문에 가나안 땅이 애굽 땅보다도 좋은 땅이었다. 가나안 땅에는 또 “인생을 기다리지 않는” 하늘의 이슬(미 5:7)까지도 궁창으로부터 내려왔다. 하나님은 그의 권능으로 지으신 궁창 속에 많은 창고를 가지고 계시면서 거기로부터 “땅에 물을 대어주신다”(시 104:13; 65:9-10). 또 하나님은 “눈 곳간과 우박 창고”를 가지고 계시는데 이것은 “환난 때와 전쟁과 격투의 날을 위하여 저축한 것”이다(욥 38:22-23). 이처럼 그를 섬기는 모든 사람들을 위로해 주시기 위해, 그리고 그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혼란을 주기 위해 이 모든 것을 준비하신 하나님의 위대함이여! 그를 친구로 삼는 자는 행복하며, 그를 원수로 삼는 자는 불행하리로다.
성 경: [창1:8]
창1:8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주제1: [천지창조]
주제2: [궁창의 창조 - 둘째 날]
하늘이라 칭하시니라 - 이로써 하나님께서 만드신 '궁창'이 무엇인지 분명히 드러났다. 한편 '하늘'에 해당하는 원어 '쇠마임'은 '높다'에서 유래한 말로 아주 높이 그리고 끝없이 펼쳐져 있는 대기권 전체를 가리킨다.
그 이름을 붙이신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니라.” 이것은 보이는 하늘이며 거룩한 성으로 가는 포장도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궁창 위에 그의 보좌를 가지고 계신다고 말씀한다(겔 1:26).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보좌를 하늘에 두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늘이 다스리신다는 말이 있다(단 4:26. 한글성경에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으로 되어 있음―역주). “하나님이 높은 하늘에 계시지 아니하냐?”(욥 22:12) 그렇다. 하나님은 높은 하늘에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눈에 보이는 하늘을 응시하는 가운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기억해야 한다. 하늘의 높음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지존하심, 그리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무한한 거리를 생각나게 한다. 하늘의 광명과 그 순결함은 그의 영광과 위엄, 그리고 완전한 신성을 일깨워 준다. 하늘의 광대함과 또 하늘이 땅을 둘러싸고 있는 것과 또 땅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우주적인 섭리를 깨닫게 해 준다.
성 경: [창1:9]
창1:9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주제1: [천지창조]
주제2: [바다.육지.식물의 창조 - 세째 날]
물이... 뭍이 드러나라 - 이처럼 물과 뭍이 제각기 적절한 위치에 자리를 잡게 됨으로써 지구는 마침내 각종 생물이 서식(棲息)할 수 있는 곳으로 그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11, 12, 20, 21절)
셋째 날의 창조는 바다와 마른땅의 형성, 그리고 땅으로 하여금 열매 맺도록 하는 일과 관련되었다. 지금까지는 창조주의 권능이 눈에 보이는 세계의 윗부분에서만 위력을 발휘하여 사용되었다. 즉 하늘의 광명을 밝혔으며, 하늘의 궁창을 고정시켰다. 그런데 이제는 이 낮은 세상, 즉 땅으로 내려오셨다. 그것은 이 땅을, 인간들의 주거지로, 또 그들의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곳으로 꾸며 주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인간들을 위해 식탁에 오를 수 있는 것들을 풍성하게 해 주시는 기록들을 볼 수 있다.
물을 한 곳으로 모으고 마른땅이 드러나게 함으로써 땅은 인간이 살 만한 곳으로 마련되었다. 그리하여 이제 땅과 물이 한데 섞인 커다란 물질의 덩이였던 때에 있었던 그런 혼란 대신에(2절), 두 가지를 다 유용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분리하시므로 질서가 생기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라고 하시매 그렇게 되었다.” 말씀하자마자 곧 실현되었다.
땅을 덮고 있던 물은 물러가되 어떤 한 곳, 다시 말하면 그 물을 받아들이고 머물러 있게 할 만한 큰 웅덩이에 모이라고 명령하셨다. 그리하여 물은 한 곳에 모아졌고 정해진 장소에 머물러 있게 되었는데, 하나님은 이를 “바다”라 칭하셨다. 비록 바다는 광대한 거리에 미쳐 있고 여러 지역에서 여러 해변가를 적시고 있고, 또 땅 위에도 있고 땅 밑에도 있지만, 그것들은 서로 통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들은 하나의 바다를 이루고 있다. 바다는 물의 저장소이며,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흘러들어 간다(전 1:7). 성경에서는 물과 바다가 때로는 불안과 환난을 뜻하기도 한다(시 42:7; 69:2, 14, 15).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도 이 세상에서는 그런 일에서 면제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다행하게도 그것들은 단지 하늘 아래 있는 물뿐이다(하늘에는 그런 물이 없다). 그리고 그런 물이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장소와 또 정해 주신 한계 안에만 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태초에 물을 한 곳에 모았고 또 태초에 물을 한 곳에 가둔 그 같은 전능하신 손길이 어떻게 물을 여전히 억류하고 있는가에 대해 시편 104편 6-9절에 훌륭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그것들은 찬양받을 만한 일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선척을 띄우는”(시 107:23 인용―역주) 자들은 큰 물로 하여금 사람들이 무역과 장사에 종사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하신 창조주의 지혜와 능력과 선하심을 날마다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바다에 문과 빗장을 채우사 정해 놓은 곳에 가두게 하시고 교만한 물결을 그치게 하신 하나님께 은혜를 입고 있음을 고백해야 한다(욥 38:10, 11).
성 경: [창1:10]
창1:10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주제1: [천지창조]
주제2: [바다. 육지. 식물의 창조 - 세째 날]
칭하시고(카라) - '선언하다'(렘 34:15), '공포하다'(레 23:21)란 뜻. 즉 권위를 가지고 공식적으로 언명함을 뜻한다. 고대 셈족 문화권에서 이름을 부여하는 행위는 주권이나 소유권의 행사를 의미한다. (왕하 23:34;24:17). 따라서 우리는 천지를 창조하신 후 방기(放棄)하신 것이 아니라 창조물의 이름을 지어 주는 하나님의 명명(命名) 행위에서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지배권 주장이 선명하게 표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모든 존재와 생명의 참된 주인은 오로지 하나님 한분뿐임을 암시한다.
마른땅이 물속에서 나오게 하시어 드러나게 하시고, 이를 “땅”이라 칭하시어 그것을 인류에게 주셨다. 땅은 전에도 존재한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물 밑에 있었기 때문에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많은 은사들을 헛되이 받는 경우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모두 드러내자. 그리하여 유용한 것이 되게 하자. 오늘날까지 이 마른땅의 은혜를 즐기고 있는 우리는 (비록 그것이 한때 홍수로 범람케 됐다가 다시 마르기는 했지만)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신”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맡기고 의지해야 한다(시 95:5; 욥 1:9).
성 경: [창1:11]
창1:11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주제1: [천지창조]
주제2: [바다.육지.식물의 창조 - 셋째 날]
풀과...채소와...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 - 70인역은 '채소의 어린싹과 과일의 나무'로 번역, 2종류의 식물로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도 가능은 하지만 개역 성경과 같이 3종류의 식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각기 종류대로 - 1장에서만도 10회나 사용된(11, 12, 21, 24, 25절 등) 이 표현은 창조 시 모든 생물은 이미 독특하게 구별된 종(種, species)의 형태로 창조되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각기 종류대로'를 뜻하는 히브리어 '레미노'는 '종류'(Kind), '종'(species)을 뜻하는 '민'에서 파생된 말인데, 성경에서 이 말은 매 종류와 까마귀 종류, 개 종류와 고양이 종류 등 제각기 독특하게 구별된 종(種)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지 결코 매와 까마귀, 그리고 개와 고양이의 조상으로서 어떤 기본적인 소수의 종류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따라서 생물학적 변천 과정을 거쳐 저급한 종에서 고등한 종으로의 발전이나, 종과 종 사이의 상태 변이(變移)를 주장하는 진화론(進化論, evolution theory)은 비성서적 견해이다.
땅은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것들로 가득 채워졌다(11-12절). 갑자기 이루어진 땅에서 즉석에서 이루어진 산물들에 의해 식물이 공급되었다. 땅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었고 짐승들을 위해서는 풀을, 사람들을 위해서는 채소를 내게 되었다. 또한 미래의 시대를 위해서도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여러 가지 다양하고 신기한 채소들을 늘 있게 하심으로써, 이 땅 위에 사람이 사는 동안 계속해서 사람들이 그것을 먹고 살아갈 수 있도록 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권고하시나이까?”(시 8:4).
성 경: [창1:12,13]
창1:12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1:1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주제1: [천지창조]
주제2: [바다.육지.식물의 창조 - 셋째 날]
셋째 날은 하나님께서 최초로 생명체를 창조하셨다는 의의를 지닌다. 한편 여기서'풀'(데쉐)은 이끼류와 같은 은화식물(慇化植物)을 대표하는 말로 구분 지을 수 있으나 '열매 맺는 나무'와 더불어 지구 상의 모든 식물군을 가리키는 점층법적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무난하다.
땅만이 여호와의 것이 아니다. “거기 충만한 것”도(시 24:1) 여호와의 것이다. 또 하나님은 땅뿐만 아니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의 당당한 주인이시며 또한 절대적인 처분자시다. 땅은 “공허한” 것이었다(2절).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로 하나님의 부요로 충만해졌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은 여전히 “하나님의 곡식이며, 하나님의 포도주이며, 하나님의 양털이며, 하나님의 삼이다”(호 2:9). 비록 그것들은 우리가 사용하도록 허락되기는 했어도 그 소유권은 여전히 하나님께 있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하나님을 섬기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데 사용해야 한다.
일반적인 섭리도 하나님의 계속적인 창조다. 그 안에서 우리의 “아버지는 이제까지 일하신다”(요 5:17). 땅은 여전히 이 명령의 효력을 받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풀과 채소를 내며, 매년 그 열매를 맺는다. 이런 과정은 자연계의 일반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기적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세계의 위대한 창조주와 주인이신 하나님의 지칠 줄 모르는 능력과 다함없는 선을 보여 주는 영구한 실례들이다.
하나님이 보통 때는 자연의 법칙을 따라서 제2원인의 작용을 이용하시기는 하지만, 그것들을 필요로 하거나 거기에 얽매이시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땅의 귀한 열매들은 보통 태양과 달의 영향을 받아 생성되지만(신 33:14), 여기에 이미 태양과 달이 창조되기 이전에 땅이 많은 열매를, 아마 다 익은 열매를 맺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것들을 사용할 기회가 오기 전에 필요한 것들을 미리 마련해 두셨다. 짐승과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에 먼저 풀과 채소를 그들을 위해 마련해 놓으셨다. 하나님은 이처럼 어질게, 그리고 은혜로써 인간을 대하신다. 그러므로 인간은 스스로에 대해 바보가 되거나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먹을 것으로 인해, 그리고 우리의 몸을 위해 주신 땅의 소산물로부터 받는 모든 유익으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하나님은 “하늘에 응하고 하늘은 땅에 응한다”(호 2:21, 22). 비록 시냇물이 마르고,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할”(합 3:17) 때에라도, 우리가 은혜로써 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의지하면 우리는 그의 안에서 기쁨을 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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