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주기도문 성경공부 중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기도문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를 이렇게 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이 주기도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기 힘들 때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문을 바탕으로 기도하면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호흡이라고 했습니다. 육체도 숨을 쉬지 않으면 죽습니다. 우리의 영혼도 하나님과의 대화가 없다면 관계가 끊어진 상태입니다. 오늘 주기도문 중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바탕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과 기도하면서 영적 호흡이 끊어지지 않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한국 사람들은 "나"라는 말을 잘 사용하지 않고 "우리"라는 말을 주로 사용한다. 한국 사람은 개인보다 공동체를 더 중요시하기 때문에 이런 언어 습관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개인주의적인 사회이기 때문에 우리라는 말 대신에 철저하게 나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미국에서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가끔 말하는 것을 보면, 우리 아빠라고 하지 않고 내 아빠라고 한다. 학교도 우리 학교라고 하지 않고 내 학교라고 한다. 그런데 주기도문을 보면 나라는 말은 없고, 다 우리라는 말로 되어 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우리는 주기도문에서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our father라고 부른다.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는 다 한 형제요 자매라요 한 가족이라고 하는 것이다. 비록 성이 다르고 고향이 다르고 피가 다르지만, 그러나 영적으로 우리는 한 가족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extended family(큰 의미에서 대가족)라고 부르지 않는가? 교회는 바로 한 가족이다.
교회 와서는 누구나 다 한 가족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성경은 우리를 한 몸이라고 부르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은 머리가 되시고 우리는 그 몸의 지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하나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의 공동체 한 가족 한 몸인 것이다. 우리 모두가 다 믿음 가운데 한 형제요 한 자매요 한 가족인데, 그런데 과연 얼마나 우리는 교인들끼리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대했는지? 정말로 가족같이 서로 관심을 갖고 사랑하고 도와주고 격려하고 위로해주고 붙들어주고 기도해주고 그렇게 했는지? 혹시 우리 교인들 가운데는 교회와도 이방인처럼 느끼고 썰렁하게 느끼는 사람들은 없을지 한번 생각해보기 바란다.
초대 교회 교인들은 어떠했는가? 정말 그들은 한 가족처럼 지냈다. 그랬기에 그들은 재산들을 다 교회에 갖다 바치고 함께 공동생활을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서로가 서로를 한 가족처럼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전 재산을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내놓을 수가 있었겠는가? 여러분 가운데 혹시 서로를 같은 교회 교인 정도로만 생각을 하지 한 가족이라는 생각을 별로 안 하는 그런 사람은 없는지?
서로 미워하고 질투하고 시기하고 한다면 어떻게 우리가 미워하고 질투하고 시기하는 그런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을 향해서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는 여러분들은 서로가 서로를 뜨겁게 안아주고 받아주고 이해해주고 용납해주고 인정해주고 사랑하기를 바란다. 그런 사람만이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격이 있다.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는 여러분들은 서로가 서로를 다 한 가족처럼 여기기를 바란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는 하나님을 부를 때, 여러 가지로 부를 수 있다. 하나님을 부르는 습관이 사람마다 다 다르다. 어떤 분은 기도할 때 말끝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말을 붙이는데,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하면 어떤가? 좀 거리감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아버지라고 부르면 어떤가? 아버지 하면 왠지 바로 옆에 계신 것 같고, 내 옆에서 내 이야기를 듣고 계신 것처럼 느껴지지 않은가? 어떤 때는 아버지 하고 부르기만 해도, 그래 내가 다 안다 하면서 등을 두들겨주시는 것처럼 느껴진다.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실 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다. 요한복음 17장에는 26절에 걸쳐서 예수님의 기도가 나온다. 그런데 여기 나오는 기도 가운데서 아버지라는 말이 몇 번 나오는가 세어보니까 무려 44번이나 사용되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나에게 아버지, 아빠 그렇게 부를 수 있는가?
우리 아이들 외에는 세상에 그 누구도 나에게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것이다. 여러분, 누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가?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 누가 감히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라고 말씀하고 있기도 하다. 로마가 세상을 정복했을 때 모든 사람들은 로마 황제를 신처럼 받들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 앞에서 고개도 들지 못하고 몸 둘 바를 모르고 황제 폐하 황제 폐하 황공무지로소이다 해야 하는데, 그런데 딱 한 사람은 그렇게 부르지를 않는다. 누구겠는가? 그의 아들이다. 그는 황제 폐하 그렇게 하지 않고 아버지라고 부른다. 왜? 그는 그 황제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그 사람 말고는 그 누구도 그 황제에게 아버지라고 부를 수가 없다. 황제되는 사람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대단한 특권이 아닌가?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황제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특권에 비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복음에 뭐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하지 않았는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지배하시고 섭리하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고 하는 것, 사실은 예수님만이 그렇게 부를 수 있는 것인데, 그런데 그러한 특권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우리는 별생각 없이 하나님 아버지 그러는데, 하나님을 그렇게 부를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러나 여러분, 그게 다가 아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감히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고 성서는 말씀하고 있다(롬 8:14-15, 갈 4:6).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롬 8:l4, 15).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갈4:6)
여기 아바라고 하는 것은 어린아이들이 처음에 말을 배울 때 압바 압바 하지 않은가? 바로 그것을 말한다. 우리말로 옮기면 아빠인데, 아람어로도 아빠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단순히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아빠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아람어를 사용했는데, 아람어로 된 주기도문을 보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빠"라고 되어 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이 실감 나는가? 구약 시대에는 그 누구도 하나님에게 감히 "아빠"라고 부르지를 못했다. 그렇게 부를 수 있었던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모세나 아브라함 같은 사람도 하나님을 감히 아빠 그렇게 부르지를 못했다. 그렇게 부른다고 하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빠!!! 얼마나 친근하고 뭐라고 할까 따뜻하고 친숙하고 그런 느낌을 주는지 모른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도 정말 놀라운 축복인데, 하나님을 아버지가 아니라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고 하는데, 상상이 되는가? 누가 감히 하나님에게 아빠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데, 아니 우리의 아빠가 되시는데, 염려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데,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책임져 주시지 않겠는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데, 우리가 빵을 구할 때 돌을 주며, 생선을 구할 때 전갈을 주시겠는가? 인간의 아버지가 아무리 악해도 자식에게만큼은 좋은 것으로 주거늘,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구하는 자들에게 하나님 아버지께서 더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는가?(마 7:9-11).
그러나 문제는 입으로는 아버지 아버지 하면서도, 기도할 때는 아버지시여 아버지시여 하면서도, 정말로 그분을 우리의 아버지로 믿고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다. 교회 와서 기도할 때는 아버지 아버지 하면서도, 기도하고 나서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는 마치 아버지 없는 고아처럼 살아가지는 않은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기도했다면, 기도한대로 살기 바란다. 정말 세상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여러분의 아버지로 삼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사실 주기도문은 아무나 드릴 수 있는 기도가 아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는 사람은 이 주기도문을 드릴 수가 없다. 어떤가, 정말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아버지가 되시는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삼고 살아가는가? 아니 하나님이 아빠처럼 느껴지는가?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하나님과 가까운가? 오늘도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특권을 누리는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출애굽기 2장 히브리어 강해] 르우엘 딸 십보라와 모세 결혼(출2:16-22)
[종려주일 설교말씀] 호산나! 골고다에서 십자가 승리(마 27:4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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