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신약성경 성경공부자료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 사건이라는 것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부활이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믿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믿음을 하나님께서 주셔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것을 머리로 어떻게 이해가 되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성경을 머리로 이해하여 믿으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머리로 이해하고 난 후에 내가 믿겠다고 하는 것은 차라리 믿지 않겠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부활은 반드시 일어났으며 역사적 사건입니다. 성경이 정확하게 그것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부활의 사건을 확실히 믿고 널리 전파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 사건
부활에 대한 증거는 논박의 여지가 없이 확실한 것이다. 물론 이 중요한 사건에 대한 여러 복음서의 기록에서 세부적인 차이가 발견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는 그 이야기의 신빙성을 흔들리게 하거나 파괴하기는커녕 실제로 그 신빙성을 높여주고 있다.
그때의 상황을 생각해 보자. 제자들은 아직 예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것을 발견하고 엄청난 놀라움과 당혹에 빠져있었다. 또한 그 사건을 눈으로 본 다른 증인들, 즉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사람들은 극도로 고조된 감정과 흥분 속에서 살고 있었다. 후일 복음서 기자들이 이런 혼잡하고 찬란했던 순간들의 기억들을 모아 복음서 속에 기록하게 되었을 때 세부적인 차이가 생기게 되었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해야만 할까?
이것이 조금이라도 그들 증언의 가치를 손상시키는가? 이와는 반대로 만일 그러한 차이가 없었다면 우리는 훨씬 더 불안해 해야 할 이유를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럴 경우 여러 복음서 기록들이 의도적으로 일치하게끔 만들어졌다는 결론을 물리치기가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기에서 발견하는 것과 같은 피상적인 불일치가 대사건의 보도에서 생기게 될 수밖에 없는 경로에 대한 좋은 예증을 제1차 세계대전의 경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어떤 특별한 사건에 대한 목격자들이 각각 그 나름대로 그 사건을 묘사하곤 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복음서의 증언은 문면상으로도 현실성과 진정성의 특색을 지니고 있다. 또한 그 증언은 그들 스스로 철저하게 확신했던 사람들의 증언이며 처음부터 끝까지 확신으로 일관되어 있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지 불과 50일 후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부활을 전파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의 증언이 수천 명으로 하여금 확신케 했다는 것은 특별히 중요하다. 사도들이 공공연히 선언하여 그러한 놀라운 결과들을 낳게 했던 사실들이 참된 것이 아니었다면 이들이 주장하는 사건이 바로 최근에 일어났던 것인 만큼 그들의 적이 그 사실에 도전하여 논박하려 했을 것이다. 예루살렘에는 그 새로운 움직임이 봉오리채 꺾어지는 것을 무엇보다 더 바랐던 사람들이 있었다. 만일 어떠한 수단으로든지 사도들의 메시지의 중심 주제를 불신하고 거짓임을 증명할 수 있었더라면 그들은 지체하지 아니하고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들의 증언에 대하여 논박할만한 근거가 없었다. 만일 예수님께서 실제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지 않으셨다면 분명히 그때가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에 용이한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증명은 시도되지 않았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대적하던 자들 편에서 침묵을 지켰다는 사실 자체가 사도들이 선포하고 있던 복음의 진실성에 대한 최상의 증거가 된다. 그 사실들은 그것들이 도전될 수 없는 것들이었기 때문에 도전받지 않은 채로 있었다. 부활의 복음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혀 문서상의 증거를 떠나서도 한 뚜렷한 증거가 우리가 이미 언급한 바 있는 제자들 자신의 놀라운 변화 속에 나타나 있다. 부활 사건만이 이 사람들의 절망적이고 무익했던 생이 온전히 빛나고 승리에 찬 생에로 완전히 바뀌게 되었던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 이 사실이야 말로 부활 사건이 어떤 꾸며낸 이야기나 단순한 환상적 공상이라는 주장을 산산이 부서뜨리려는 견고한 반석이다.
선생을 잃은 제자들이 그가 그들에게 다시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꾸며냈다는 주장은 제자들 자신의 생활에 의해 부정되며 또한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드러나게 된다. 만들어 낸 이야기가 사람의 성격을 변화시키지는 못하며 거짓된 것을 위해 순교할 수는 없는 법이다. 제자들의 믿음을 순전히 환상적인 근거에서만 설명하려고 한 시도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것으로 그쳤다. 한 가지, 단 한 가지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다는 사실만이 이 열한 사람에게 일어났던 일을 믿을 수 있게 한다.
그러나 그 증거는 최초의 제자들을 지나서 [교회의 실제성(the fact of the christian Church)에서도 발견된다. 교회를 건립하게 한 힘이 부활신앙이었다는 것은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다. 또한 교회가 예루살렘에서부터 온 땅의 정복을 위해 쏟아져 나왔을 때에도 그 추진력이 된 것은 부활의 메시지였다. 4 복음서가 그 끝에서 취급하고 있는 놀라운 사실들의 진실성은 천구백 년 동안의 교회사가 증거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본질에 있어서 불멸성을 지니며 그 가능성에 있어서 무한하여 인간 영혼에 대한 그 가치에 있어서 필요 불가결한 교회와 같은 영적 운동에 완전히 그리고 순전히 사실이 아닌 어떤 것에서 생겨 났거나 고취되었다고는 아무도 심각하게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그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교회는 오래전에 멸절되고 말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격심한 공격이 사회적, 정치적, 지적 방면에서 수천 년을 계속하여 교회에 가해져 왔기 때문이다. 교회는 여러 차례 절망적이고 죽은 것처럼 보였다. [흄][볼테르] 등은 그 무덤을 파는 일에 분주했다. 그러나 교회는 언제나 그 무덤을 깨뜨리고 그 돌을 굴려 버렸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의 이러한 역사는 다만 예수님의 부활 사실만이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방면의 증거도 유효하며 큰 중요성을 가지나 부활에 대한 절대적 증거, 즉 부활 사실을 신빙성 있는 것으로 만들기만 할 뿐 아니라 불가피한 사실로 만드는 것은 그리스도 자신의 인격이다. 최초의 놀라운 충격이 불변의 확신으로 된 후에 제자들이 보게 된 것은 바로 그리스도 자신의 인격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동일하시기 때문에 그가 바로 이전과 동일하신 분이 아닌 어떤 분으로 부활한다는 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제자 중 하나가 옛일을 회상하면서 이 사실을 표현한 대로 "그는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다(행 2;24).
이것은 위대한 확신이었다. 이미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과의 생활에 대한 연구에서 이 확신에 관여한 몇몇 요인을 드러내 보여 주었다.
제자들이 그들의 선생에 대해 언제나 깊이 느낀 것 중 한 가지는 그의 순전한 생명력이었다. 요한은 [그 안에 생명이 있었다]라고 말하고 있다(요 1:4). 베드로는 그를 [생명의 주](행 3:15)로 부르고 있다. 복음서를 어느 곳이라도 펴 보라. 제일 먼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아침의 해처럼 빛나며 하나님의 생기처럼 생명력 있는 어떤 분이 그곳에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과 접촉하게 된 사람은 누구나 그가 거대한 숨은 힘을 소유하고 계시며 아무리 그에게서 많은 것을 알아내더라도 그 뒤에 더 많은 것이 있다는 느낌을 가졌다. 이 사실을 그들이 예수님께 가지고 왔던 놀랍고도 대담한 요구가 설명해준다.
그 한 예로 문둥병은 널리 알려진 불치의 병이었다. 그러나 한 문둥병자는 단순히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마 8:2). 그들은 예수님께서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란 상상할 수 조차 없었다. 죽음까지도 굴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그 위에 예수님의 사랑이 있었다. 제자들이 그를 알게 된 최초의 그날부터 그 사랑은 그 위에 불멸의 인을 지니고 있었다. 그 사랑은 이전에 바다에나 육지에나 어느 곳에도 결코 없었던 빛으로 온 세계를 가득하게 하였다. 그러한 사랑은 그 사랑을 받는 자에게서 결코 탈취될 수 없었다. 그 사랑은 그 사랑하는 자를 곁에 서서 지키기 위해 무덤을 깨뜨릴 것이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무죄와 도덕적 완성이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의 치유 이적에 대한 연구에서 예수님의 능력 있는 이적이 어떻게 그 자신의 무죄 사실과 연결되어 있으며 또한 그 사실에 의존하고 있었는가를 살펴보았다. 모든 인간 중 예수님 한분에게서만 죄와의 결정적인 단절이 이루어졌다. 또한 죄의 부패와 습관에 의해 언제나 가로막히고 좌절되었던 [물질에 대한 영의 지배력]이 그에게 있어서 온전히 자유롭게 되었다. 이와 같이 이적의 역사가 예수님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게 되었다. 또한 가장 위대한 이적인 부활도 더 이상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 필연적인 것이 되었다.
이 제자들에게 있어서 결정적이었던 것은 예수님에 대한 개인적인 체험이었다. 그와 매일 가졌던 교제가 그들에게 예수님은 인간 이상이신 분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또한 비록 갈보리의 십자가가 일시적으로 그 고귀한 믿음을 흐리게 했으나 그 믿음은 다시 밝고 빛나게 되었다. 하나님께 대하여는 어떤 것과 같은 감정을 예수님에게서 느끼게 된 그들은 이제 부활이 처음부터 확실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만일 예수님께서 죽어서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 버렸다면 하나님 자신이 죽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부활에 대한 최후의 증거는 예수님 자신의 인격과 예수님에 대한 개인적 체험이다. 하나님께서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께서 [사망에 매여 있다]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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