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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8장 예수님의 말씀] 죄에서 자유롭게 하심(요 8:1-59)

복음의 능력 2021. 12. 12.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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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8장의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 제일 먼저 등장하는 것이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죄악에서 해방시켜 주신 말씀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음행 하다 잡힌 여인을 돌로 쳐서 죽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했습니다. 한 명도 간음하다 걸린 여인을 돌로 칠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들도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어둠에 거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말씀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죄에서 자유롭게 하심(요 8:1-59)

 

1-11, 간음 중에 잡힌 여자

[1-5]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다.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저희를 가르치시더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감람산은 예루살렘 성밖 동쪽에 있는 산이다. 예수께서는 그 밤에 감람산에서 기도하며 지내셨던 것 같다. 그는 항상 기도에 힘쓰셨다.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자 백성들이 그에게 나아왔고 그는 앉으셔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그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간음 중에 잡힌 한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하며 예수께 말했다.

잡혀온 여자는 간음죄를 범했다. 죄는 부정당한 욕망에서 나온다. 밥을 먹고 싶은 욕구는 정당한 것이지만 음식을 탐하여 도적질 하면 죄가 된다. 성적 욕구는 정당한 것이지만 간음하면 죄가 된다. 성은 하나님께서 주신 부부관계에서만 사용되어야 한다. 부부관계의 성은 죄가 아니고 오히려 사랑의 수단이지만, 그 외의 성행위는 죄가 된다. 간음은 사형에 해당하는 죄이다. 레위기 20:10,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마태복음 5:28-30,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6-8]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까닭 없이 예수를 미워하고 있었다. 그것은 큰 죄악이었다. 간음하다가 잡힌 여자만 죽을 죄인이 아니고 예수님을 정죄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도 죽을 죄인들이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질문에 속히 대답하지 않으신 채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을 쓰고 계셨다. 아마 그는 하나님의 율법도 지키고 그 여인도 구할 길을 생각하고 계셨을 것이다.

그들은 묻기를 마지 아니하였다. 그러자 그는 일어나 말씀하셨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동시에 그 여인을 구할 수 있는 지혜로운 대답이었다. 또 그것은 인간의 죄성을 깨우치신 말씀이었다.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다. 간음죄를 지은 그 여인도, 예수님을 미워했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도 죄인이었고,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을 정죄하거나 비난하는 일을 매우 조심해야 한다.

[9-10]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양심은 하나님께서 주신 도덕적 분별력과 판단력이다. 양심 때문에 사람은 악을 깨닫고 부끄러워하고 그 형벌을 두려워한다. 예수의 말씀을 들은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도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느끼며 하나씩 떠나갔다. 예수께서는 일어나사 그 여자를 정죄하던 자들이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예수께서는 그 여자를 죽음에서 건져주셨고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 예수님은 죄인을 심판하기 위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었다. 요한복음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죄인을 회개시키고 구원하고 살리러 오셨다. 장차 그가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실 때 그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 의인과 악인, 산 자와 죽은 자를 다 심판하실 것이다. 데살로니가후서 1:7-9,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불의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전통본문). 그러나 지금 그는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단지 회개하라고 부르신다.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다(고후 6:2).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말씀은 죄에서 돌이키고 죄를 청산하라는 말씀이다. 그것이 참된 회개이다. 회개한 자는 이제 하나님의 계명대로 의와 선을 행해야 한다. 로마서 6장에서 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고 하였다(6:17-18, 22). 하나님께서 택하신 모든 사람, 부르신 모든 사람은 모든 죄를 다 버리고 하나님의 계명대로 의와 거룩의 길을 걸어야 한다. 그래야 그는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 그래야 그는 지옥의 영원한 불에 던지우지 않고 의와 평화의 세계인 천국에서 영원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1절로 11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모든 사람은 죽을 죄인이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주의 말씀은 모든 사람이 다 죽을 죄인임을 깨닫게 하시는 말씀이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이든지, 그를 붙잡아 와서 예수 앞에 두고 예수를 정죄할 거리를 찾고 있는 유대 지도자들이든지, 방황하는 일반 대중이든지, 모든 사람은 다 영원한 지옥불에 던지울 죄인들이다.

둘째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는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구원하셨다. 그는 죄인들을 심판하기 위해 오지 않으셨고, 죄인들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셨다. 그는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도 정죄하지 않으셨다. 그는 우리 같은 죄인도 정죄치 않으시고 구원하셨다. 복음은 죄인들을 죄와 영원한 멸망으로부터 구원하는 말씀이다. 누구든지 그에게로 나아와 그를 믿으면 죄씻음과 의롭다 하심을 얻을 것이다.

셋째로, 예수께로 나온 자들은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주께서는 그 여인에게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구원과 거룩함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을 멸망시키기 위해 오지 않으셨고 그들을 죄에서 건져내어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 거룩한 백성을 만들기 위해 오셨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거룩한 삶이다. 우리는 이미 법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고 거룩해졌다. 우리는 이미 법적으로 의인이 되었고 성도(聖徒, saints)가 되었다. 우리는 이제 그 의와 거룩 안에서 의롭고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12-20, 나는 세상의 빛이라

[12]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성전뜰에서 앉아서 무리를 가르치시던 주께서는,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을 끌어와 그를 시험하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때문에 잠시 방해를 받으셨으나 다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그 여자를 정죄하던 자들은 다 떠나갔으나 그의 가르침을 듣던 사람들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성경에서 빛은 지식과 의와 기쁨을 상징하고, 어두움은 무지와 죄와 슬픔을 상징한다. 이사야는 이방의 빛이 될 메시아에 대해 예언하였다(42:6; 49:6). “나는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놀라운 선언이다. 세상의 누구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온 세상 모든 사람에게 비취고 있다. 그 빛은 영원한 생명의 빛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자들은 그 빛을 받아 영원한 생명의 복을 얻는다. 구원은 어두움에서 빛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4:6,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에베소서 5: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베드로전서 2:9,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13-14] [그러므로](원문, KJV, NASB) 바리새인들이 가로되 네가 너를 위하여 증거하니 네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도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여도 내 증거가 참되니 [이는]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앎이어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못함이니라].

예수께서는 자신의 말이 참된 것은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온 사람 즉 신적 구주이시며 세상을 구원할 사명을 가지고 세상에 오셨고 장차 승천하여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실 것을 암시한다. 예수님의 증거는 사람들의 어떤 증거와도 같지 않다. 그는 신성(神性)을 가진 하나님으로서 자신에 대해 증거하셨다. 그것은 사람의 그 어떤 최선의 증거보다 더 힘이 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 대해 하신 증거는 세상에서 가장 힘있고 완전한 증거일 것이다.

[15]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치 아니하노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외모로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지 사람이 아니시고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신적 구주이시다. 그는 또 자신은 아무도 판단치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그가 사람들을 정죄하기 위하여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고 구원하기 위하여 오셨기 때문이다(3:17). 예수께서는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까지도 정죄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날에 사람들을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다.

[16-18] [그러나](원문)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아버지]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거가 참되다 기록하였으니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느니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믿는다고 생각되었는데, 율법은 무슨 일을 판단할 때 한 사람의 증언만 가지고 하지 말고 두 사람 이상의 증언을 가지고 하라고 했다(35:20; 19:15). 예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과 함께 있다가 세상에 온 사실에 대해 율법의 요구대로 두 증인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는 자기 자신이요 다른 하나는 아버지이시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는 예수께서 세례 받으실 때 또 그가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함께 높은 산에 올라가셨을 때 친 음성으로 아들 예수에 대해 증거하셨다(마 3:16-17; 17:5).

[19] 이에 저희가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이시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있다(11:27).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하나님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예수님을 알지 못하면 결코 하나님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세상의 지식이 많은 자라 할지라도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자는 결코 하나님을 알 수 없을 것이다.

[20]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연보 궤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연보궤 앞은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곳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예수께서는 이처럼 공적인 장소에서 자신에 대해 증거하셨다. 아무것도 은밀한 것은 없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공개적으로 증거되신 바로 그 분이시다. 그는 세상의 빛으로 오신 신적 구주로 온 세상에 전파되고 있으시다. 그에게 나아오는 자는 누구든지 어두움에서 구원을 받고 영원한 생명의 빛을 받을 것이다.

예수께서 이렇게 자신에 대해 증거하셨으나 잡는 사람은 없었다.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기 때문이었다. 바리새인들은 그를 믿지 않았고 그를 잡아죽이려 하였으나, 아직 그를 해칠 힘은 없었다. 그것은 아직 그가 잡히실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고 하나님의 정하신 시간에 끝난다.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생의 기한이 있다. 그 기한이 끝나기 전에는 아무도 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되면 아무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우리가 복잡한 세상 속에서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도 평안을 누리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이런 확신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일생을 작정하셨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빛이시다. 빛은 지식과 의와 기쁨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과 인생에 대한 또 구원과 영생에 대한 참 지식을 주셨고 죄인인 우리에게 의()를 주셨고 슬픔과 근심이 많은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 기쁨과 평안을 주셨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소식이 온 세상에 전파되고 있다. 그를 믿는 자마다 구원을 받아 어두움에서 빛으로 옮겨진다. 아직도 어두움 속에 사는 자는 없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았는가?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참 지식과 의와 기쁨을 얻으라. 또 우리는 이 빛을 다른 이들에게도 널리 전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발자취를 따르자. 세상의 빛과 생명이신 구주께서 오셨지만, 바리새인들은 그를 무시하고 그와 변론하며 그를 영접하지 않고 대적하였다. 유대 지도자들은 마침내 그를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는 세상에 오셔서 존경과 영광을 받으시기보다 멸시와 고난을 받으셨다. 그는 마침내 정죄되셨고 십자가에 달려 수치와 고통과 저주의 죽음을 죽으셨다. 이것이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이었다. 그러므로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우리는 세상에서 칭찬과 영광을 기대하지 말고 또 자신의 자존심을 크게 여기지 말고,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멸시와 천대와 모욕과 고난을 받기를 각오해야 한다.

21-30,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21] [예수께서는] 다시 이르시되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예수께서는 자신이 가실 것을 말씀하셨다. 그것은 그가 아버지께로 즉 천국으로 돌아가시는 것을 의미하였다(7:33; 8:14). 그러나 유대인들의 다수는 그를 찾다가 그들의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며 주께서 가시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믿고 구원받는 것은 때가 있다. 때가 늦으면 구주를 찾아도 만나지 못하고 믿을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를 저버리면 다시는 회개치 못하고 믿지 못하고 죄사함을 받지 못하고 지옥 형벌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22] 유대인들이 가로되 저가 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하니 저가 자결[자살]하려는가?

그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것인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살은 죄인데 주께서 자살을 의미했을 리가 없다. 우리의 목숨은 우리 것이 아니다. 특히 구원받은 성도의 목숨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사신 바된 것이기 때문에 자기 맘대로 끊어서는 안 된다(고전 6:19-20).

[23]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앞에서 그가 간다고 말한 것이 자살을 의미하지 않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함을 증거한다. 예수님은 유대인이셨으나 유대인들과 본질적으로 다르셨다. 유대인들은 다 아래서 났고 이 세상에서 났고 이 세상에 속하지만,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서가 아니고 위에서 나셨고 이 세상에 속하지 않으셨다. ‘났다,’ ‘속한다는 원어(에크)는 근원을 나타낸다. 유대인들과 예수님은 그 근원이 다르다. 유대인들은 세상적 근원을 가지지만 예수님은 신적인 근원을 가지신다. 그의 신적인 근원은 그가 성령의 능력으로 처녀 마리아를 통해 특별하게 탄생하셨음을 포함한다(1:18; 눅 1:35).

[24] 이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예수님의 신성(神性) 즉 예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셨고 하나님의 본질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는 것은 신앙의 필수적 요소이다. 구원은 이 신앙을 통해 온다. 불신앙은 큰 죄악이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을 믿지 않으면 사람은 자신의 모든 죄의 사함을 받지 못하고 죄 가운데서 죽고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는 죄사함의 구원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을 것이다(3:36).

[25] 저희가 말하되 네가 누구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

예수님은 처음부터 자신에 대해 공개적으로, 분명하게 증거하셨다. 그는 밤에 그를 찾아왔던 니고데모에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셨다(3:16). 그는 그리스도의 오실 것을 믿고 있었던 수가성 여인에게 내가 그로라”고 말씀하셨다(4:26). 그는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된 병자를 고쳐주신 후에 유대인들과 변론하시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셨다(요 5:17-18). 이와 같이, 예수께서는 처음부터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증거하셨다.

[26-27] 내가 너희를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게 말하노라 하시되 저희는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더라.

마귀는 거짓되지만 하나님께서는 진실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은 다 진리이다. 예수께서 자신에 대해 증거하신 내용들도 다 진실하다. 그 내용이 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그 외에도 말씀하실 것이 많으셨고 그가 더 많은 것들을 말씀하셨다면 그것들도 다 진리이겠으나, 적어도 성경에 기록된 그의 모든 말씀은 다 진리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 진리 자체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하나님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다.

[28]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인자(人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유대인들이 지금은 예수님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으나 그들이 그를 십자가에 못박은 후에는 그를 알게 될 것이다. 물론 모든 유대인들이 다 그를 알고 다 그를 믿지는 않을 것이나, 택한 자들은 그를 알고 믿게 되며 그의 말씀이 진리임도 알게 될 것이다. 과연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시고 40일 만에 승천하신 후 오순절이 되었을 때 사도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유대인들은 마음의 찔림을 받았고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고 그 날 3천명이나 세례를 받았다(2:36-37, 41).

[29-30]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아버지께서](전통사본)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매 많은 사람이 믿더라.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고 오히려 미워하고 배척했으나,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항상 그와 함께 계시고 그를 혼자 두지 않으셨다. 예수께서 항상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더욱 그러하였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는 버림을 받으셨고 배척을 받으셨으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와 항상 함께하셨다. 이 말씀을 하시자 많은 사람들이 그를 믿었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구원의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는 것은 때가 있다. 죄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거두어지고 천국문이 닫힐 때가 올 것이다. 죄인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나 더 이상 구원받지 못할 때가 올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확신하자. 우리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신적 구주이시며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심과 인간의 목마름을 해소시켜 주실 유일한 구주이시며 어두운 세상에 빛이심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는 주의 간곡한 말씀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확신하자. 예수께서는 유대교인들에게 이 말씀을 하셨다. 다른 종교인들은 물론이고, 유대교인들도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멸망을 당할 것이다.

셋째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천국에서 영생 복락을 누릴 것이지만, 믿지 않는 자들은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당할 것이다.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 곧 중생한 자들이며 그들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그를 기쁘시게 하는 자들은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의 도우심을 체험할 것이며, 비록 세상에서 배척과 핍박을 받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항상 함께하시며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지 않는 자들은 그들의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며 죄인들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과 영원한 지옥 형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31-36, 죄로부터의 자유

[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씀을 믿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먼저 참 제자가 되는 길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는 사람이 그의 참 제자가 되려면 그의 말에 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의 말씀에 거한다는 말은 그의 말씀을 듣고 믿고 그것을 행하는 것을 가리킨다. 제자는 선생님에게서 배우고 그 배운 바대로 행하는 자이다.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들인다(10:8). 그것이 하나님의 참 백성의 모습이다. 그것은 좋은 밭에 떨어진 씨와 같이(13:21-22), 좋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열매를 맺는 것이다(눅 8:15). 참 제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믿고 붙들고 그대로 행하는 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그가 친히 하신 말씀들과 그에 관한 사도들의 모든 말씀들을 다 포함한다. 그것이 곧 신약성경이다. 성경적 기독교는 바로 성경 교훈 위에 바로 선 기독교이다. 성경을 벗어난 말을 하는 기독교는 참 기독교가 아니다. 오늘날 기독교라는 이름을 가진 자들은 대략 네 부류로 나뉜다. 첫째는 인간의 이성과 경험을 성경보다 중요시하는 자유주의이며, 둘째는 신비적 경험을 추구하는 은사주의이며, 셋째는 성경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유주의와 은사주의를 포용하는 타협적 복음주의이며, 넷째는 성경적 교훈 안에 거해야 한다고 믿고 그대로 행하는 입장이다. 네 번째 부류가 참 기독교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 길은 좁은 길인 것 같다.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예수께서는 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며(14:6) 그의 말씀과 그에 관한 말씀이다. 구원의 복음이 진리의 말씀이다(1:13). 복음의 요지는, 사람이 죄인이며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지만,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대속 제물로 주셨으므로 그를 믿음으로 죄씻음과 의롭다 하심과 영생을 얻는다는 것이다. 여기에 모든 죄인들에게 구원과 천국과 영생 소망을 주는 진리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가장 큰 복은 죄로부터의 자유이다. 죄로부터의 자유란 죄책(罪責) 즉 죄의 법적 책임으로부터의 자유, 죄인이라는 신분으로부터의 자유, 죄의 형벌 즉 영원한 지옥 형벌과 그 공포로부터의 자유이다. 죄로부터의 자유가 바로 복음이다. 그것은 의롭다 하심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바울은 로마서 3:20-24에서 이렇게 말했다: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키셨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10:4에서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고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죽음으로 이루신 의가 완전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율법이라도 신자를 정죄치 못하며 이런 의미에서 성도는 율법에서 벗어났다고 표현된다(7:6; 5:1).

물론, 성도가 죄의 세력 곧 죄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한 것은 아니다. 땅 위에서의 성화는 불완전하다. 완전 성화는 부활 때에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성도는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의()는 무효화되지 않을 것이다. 의와 죄의 싸움은 있으나 최종적 승리가 보장되어 있다. 물론,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 안에서 의를 행하고 거룩 안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면, 다시는 죄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의롭다 하심을 얻었기 때문이다.

[33]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죄악된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이 로마 제국의 지배 속에 있다는 사실은 자신들의 죄성을 증거하고 있었다. 중생치 못한 자들은 영적인 문제를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몸의 질병이나 물질적 손실에 대해서는 잘 알아도 죄 문제나 구원의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도 깨달음도 없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었다. 오늘날도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많은 교인들이 실제로 죄악된 일들을 버리지 않고 살고 있다면 그들은 저 유대인들과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의 구원 확신은 헛된 망상에 불과할 것이다.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죄를 범하는 사람은 다 죄의 종이다. 죄를 범하는 자는 죄성 즉 죄의 경향성과 습관성의 지배를 받으며 죄의 형벌 아래 있다. 죄는 그의 육신의 욕망을 충동질한다. 모든 죄인은 다 죄의 종이다. 그들은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하나님의 공의의 형벌을 면할 수 없고 이 세상에서도 평안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 믿고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한 자는 누구나 죄로부터의 참 자유를 알지 못할 것이다.

[35-36]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종과 아들의 신분의 차이는 크다. 종은 주인의 집에서 언제든지 쫓겨날 수 있다. 죄의 종인 사람은 하나님의 집인 천국에 거하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천국에 영원히 거하실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죄인들을 죄로부터 자유케 하실 수 있다. 그는 진리의 말씀을 통해 죄인들을 죄로부터 자유케 하신다. 그것이 구원이다. 그것이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거함으로 그의 참 제자가 되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은 막연히 그를 믿는다는 생각으로 되지 않고 그의 말씀 안에 거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그에 관한 말씀 곧 신구약성경에 계시된 모든 말씀을 바로 알고 바로 믿고 순종하는 것이다. 이것이 좁은 길, 바른 길이며 성경적 기독교이다. 우리는 성경말씀을 감사함으로, 그러나 두렵고 떨림으로, 읽고 듣고 믿고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고 그 자유를 지키고 누리는 자가 되자.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다. 그는 죄성의 지배를 받고 죄의 형벌의 두려움 속에서 산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의 의를 이루셨고 우리가 그를 믿을 때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함 즉 죄의 법적 책임과 형벌로부터의 자유함을 얻었다. 모든 신자는 죄로부터의 자유를 얻었다. 또 이 자유를 얻은 자마다 이제는 죄 가운데 살지 말고 죄와 상관없이 살아야 한다. 중생한 자는 결코 계속 죄를 짓거나 계속 죄 가운데 낙을 누리지 않는다. 죄성은 죽을 때까지 남아 있으므로 우리가 항상 깨어 있지 않으면 죄의 유혹에 쉽게 넘어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즉시 일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 거룩을 의지하며 의와 거룩의 길로 행해야 한다.

37-47, 너희는 마귀의 자녀

[37-38]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아버지와 함께, 아버지 곁에서](원문)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아비와 함께, 아비 곁에서](전통본문)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인정하신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신 약속된 메시아를 죽이려 한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한 것은 요한복음 5장에서부터 요한복음 전체에 여러 번 증거되어 있다(5:16, 18; 8:37, 40; 11:53).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한 것은 그의 말씀이 그들 속에 있을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생명의 떡이요 세상의 빛이며, 유대인들이 그 사실을 믿지 않으면 그들의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거절하였고 그의 신성(神性), 그의 그리스도 되심도 믿지 않았고 도리어 그를 죽이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사람으로 나시기 전 천국에서 아버지와 함께 계실 때 하나님을 보셨다. 그는 천국에서 보고 들은 하나님의 모든 진리를 다 말씀하셨다. 반면에 유대인들은 그들의 아비 곁에서 본 것을 행하고 있다. 유대인들의 아비란 그들의 육신적 아버지를 가리킬 수도 있으나, 근원적으로는 마귀를 암시한다. 주께서는 모든 죄인이 마귀의 자녀임을 암시하신다. 그러므로 아들이 아버지의 성질을 닮듯이, 모든 죄인은 그 죄성에 있어서 마귀의 성질을 닮았다.

[39-40]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 것이어늘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아브라함처럼 경건하고 의롭고 선한 행위를 보여야 할 것이지만, 그들은 육신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었으나 영적으로는 아브라함을 닮지 않았고 오히려 마귀의 속성을 지니고 마귀의 행동을 하고 있었다. 아담이 범죄한 이후 그의 자손인 인류는 하나님의 형상 대신 마귀의 형상을 닮은 자가 되었다. 사람 속에는 태어날 때부터 죄성이 유전되어 내려오고 있다.

유대인들의 행위는 아브라함의 행위와 매우 달랐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말한 예수님을 죽이려 하고 있었다. 예수님의 말씀은 단지 인간의 말이 아니고 그가 하나님께 들은 진리의 말씀이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죽이려 한 것은 하나님과 대적 상태에 있음을 증거한다.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이었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브라함은 시날 왕, 엘라살 왕, 엘람 왕, 고임 왕 등의 연합군을 파하고 조카 롯을 구하여 돌아올 때 자기를 축복한 멜기세덱에게 노획물의 10분의 1을 주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사람을 존중한 한 예이었다. 그러나 스스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처하는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주신 독생자 예수를 죽이려 하고 있는 것이다.

[41] 너희는 너희 아비의 행사를 하는도다.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조상들처럼 불경건하고 부도덕하고 악하였다. 그들의 조상들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배척하고 죽이기도 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는 매우 달랐다. 실상 그들의 아버지는 마귀이었다. 그들은 마귀적이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부정하며 자신들이 음란한 데서 나지 않았고 그들의 아버지는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비록 그들의 신앙고백은 경건하고 좋아 보였으나 실제로 그들의 심령 상태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의 심령 상태는 하나님과 거리가 멀었고 선함과 진실함과도 거리가 멀었다. 그들 속에는 죄악된 욕심과 미움이 가득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은 아무 죄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미워하고 죽이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42-43] 예수께서 가라사대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 자녀가 아니며 그들 속에 하나님을 사랑함도 없고 하나님의 영도 없음을 증거하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는 깨달음이 없었고 그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없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복음을 깨닫지 못하는 일에 대해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라고 증거하였다(고후 4:3-4).

[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거짓말쟁이]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예수께서는 보다 분명하게 그들이 그들의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고 말씀하신다. 그들이 마귀의 자녀인 증거는 그들이 마귀의 욕심을 행하고자 하기 때문이었다. 마귀의 욕심은 교만과 명예심 등이며 거기에서 미움과 시기와 살인이 나온다.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자이다. 그는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를 범죄케 함으로 죽게 하였고 그로 말미암아 온 인류가 죄인이 되고 죽게 되었다. 또 마귀에게는 진리가 없다. 그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이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한 것은 그들이 마귀 자녀임을 증거하였다.

[45-47]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매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진리를 말함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무슨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이 그를 믿지 않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니고 마귀의 자녀들이라는 증거이었다. 거듭난 자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믿을 것이지만, 그들이 그것을 듣지 않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로서 나지 않았다는 증거이었다. ‘속한다는 원어는 ‘[에게서] 났다는 뜻이다. 하나님께로 난 자녀들, 곧 중생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것이며 예수님을 영접할 것이다. 그들은 그리고 그들만 예수님을 믿고 그를 따를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죽이려 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고 마귀의 자녀이었다. 그들이 마귀의 자녀인 증거는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깨닫지 못하고(43, 47) 받지 않고(37) 믿지 않고(45-46) 예수님을 사랑치 않고(42) 도리어 죽이려 하기 때문이었다(37, 40). 오늘날에도 마귀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성경적 기독교를 깨닫지 못하고 받지 않고 믿지 않으며 또 주께서 보내신 참된 목사들과 복음 사역자들을 사랑하지 않는다. 둘째로,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성경적 기독교를 깨닫고 받고 믿고 따른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모든 사람들은 이 둘 중의 하나이다. 여러분은 어느 쪽인가? 여러분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확신하고 그 앞에 복종하기로 결심하며 실천하고 있는가?

48-59,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48]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

유대인들이 그를 사마리아인이라고 부른 것은 그가 참 유대인이 아니고 이방인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뜻일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말한 것은 예수께서 유대인들을 정죄하고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또 귀신이 들렸다는 말은 건전한 정신이 아니라는 뜻이다. 유대인들이 그렇게 말한 것은 예수께서 자신이 하나님께로서 왔고(42) 자신의 말이 진리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46-47) 말씀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사도 바울도 유대인들에게 이단이라는 말을 들었고(24:5) 베스도 총독에게 미쳤다는 말도 들었다(26:24). 주 예수께서 유대인들에게 사마리아인이라든가 귀신이 들렸다는 모욕적인 말을 들으셨다면, 오늘날 주의 일꾼된 부족한 우리들이 그런 말이나 혹은 그보다 더한 말을 듣는다고 분노하거나 낙심할 것이 없을 것이다.

[49-5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는 귀신 들린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를 공경함이어늘 너희가 나를 무시하는도다. 나는 내 영광을 구치 아니하나 구하고 판단하시는 이가 계시니라.

예수께서는 바른 정신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말씀하셨다. 또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이다. 만일 그가 유대인들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고 아첨하는 말을 하셨다면 그들의 미움과 비난을 받지는 않았을지는 모르나, 그것은 거짓말하는 것이 되며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바른 말씀을 하실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다. 그렇지만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말씀하시는 그를 무시하고 모욕하였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영광 받기를 구하지 않으셨다. 만일 그가 사람들의 영광을 구하셨다면 그는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는 거짓 선지자가 되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으셨으나 그의 영광을 구하고 사람들의 모든 말과 행위를 판단하시는 이가 계신다. 그는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시고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이다. 또 그는 예수님을 비난하는 자들의 말과 행위를 살피시고 판단하시고 공의로 보응하실 것이다.

[51]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표현은 예수께서 중요한 진리를 말씀하실 때 사용하신 표현이다. 그는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 ‘내 말을 지킨다는 말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그의 말을 믿고 그의 교훈대로 행하는 것을 가리킨다. 죽음이라는 말은 영적인 죽음과 육신의 죽음과 영원한 지옥 형벌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성경에서 죽음이라는 말은 이 세 가지를 다 포함한다.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않는다는 말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것은 영생을 가리킨다. 예수님 믿고 구원받는 것은 죽음으로부터 구원받는 것이다.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예수님을 믿는 자는 그의 말씀을 지킬 것이다.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그의 말씀을 지키는 행위는 참 믿음의 증거가 된다. 믿음은 구원의 조건이며 행위는 구원의 증거이다. 사람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순종의 행위 없이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52-53] 유대인들이 가로되 지금 네가 귀신 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

유대인들은 다시 예수님을 귀신 들렸다고 판단하였다. 그들은 그가 말씀하신 죽음과 생명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죽음을 단지 몸의 죽음으로만 이해하였고 또 영생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 분명하다.

[54-5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것도 아니어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 같이 거짓말장이[거짓말쟁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예수께서 자신의 신성(神性)과 구원 사역에 대해 말씀하신 것은 자신을 높이기 위함이 아니었다. 만일 그런 것이라면 그 말은 별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신성과 구원 사역은 그의 아버지 곧 유대인들이 그들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그가 증거하실 것이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무시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증거하실 것이다.

유대인들은 말로만 하나님을 알 뿐 실제로 그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며 하나님의 아들을 핍박하고 배척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신다. 실상 예수님만 하나님을 바르게 아신다. 그래서 그는 마태복음에서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11:27). 예수님과 하나님의 관계는 특별히 친밀하며 신비한 관계이다. 그러므로 만일 예수께서 나는 하나님을 모른다고 말씀하신다면 그는 거짓말쟁이가 되실 것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을 알 뿐만 아니라 그의 말씀을 지킨다고 말씀하셨다. 성육신하신 예수께서는 택자들의 대속을 위해 십자가에 죽기까지 아버지께 순종하셨다(2:8).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의인이 되었다(5:19).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우리는 값없이 죄씻음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아브라함은 언제, 어디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때를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는가? 어떤 이들은 아브라함이 예수님 당시에 천국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기뻐하였다는 뜻으로 이해하였으나, 많은 주석가들은 아브라함이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으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먼 훗날에 오실 메시아를 바라보면서 즐거워하고 기뻐했다는 뜻으로 이해하였다.

[57] 유대인들이 가로되 네가 아직 오십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이때 예수님의 나이가 33세 정도이었을 텐데, 유대인들은 왜 그에게 네가 아직 오십도 못되었는데라고 말했는가? 물론 그의 얼굴이 실제보다 나이가 많이 들어 보였을지도 모르나 네가 인생의 절반도 살지 못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라는 뜻일 것이다.

[58-5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저희가 돌을 들어 치려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나가시어 그들 가운데로 통과하여 지나가시니라](전통본문).

예수께서는 본문에서 자신이 세상에 오시기 전부터 존재하셨고(선재성 先在性)과 영원하심, 즉 그의 신성(神性)을 증거하셨다. 그는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었느니라”고 말하지 않으시고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있느니라는 말씀은 구약에 여호와라는 명칭을 생각나게 하는 표현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직역하면 나는 있는 자니라고 말씀하셨다(3:14). 그것은 여호와라는 말에 대한 하나님 자신의 설명이다. 여호와께서는 스스로 계신 자이시다. 그것은 출애굽기 3:14내가 있느니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그것은 영원한 신성(神性)을 나타낸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있는 자임을 증거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한 신성을 소유한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유대인들이 돌을 들어 예수님을 치려 하였다. 그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믿지 못하였다. 그들의 영적인 눈은 아직 열려지지 않았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예수께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바로 알자. 사람은 어머니의 배에 잉태된 날과 출생한 날이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계신 분, 즉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태초부터 계신 자이시며(1:1)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시다(22:13).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영생이 있다. 예수께서는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51).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말씀 안에 거하며 그의 말씀을 행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3:16; 5:24; 2:8).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참 믿음은 그의 말씀을 행하는 바르고 거룩하고 선한 행위로 증거된다. 사람은 행함으로가 아니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선한 행위 없이 받는 것은 아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행위는 구원의 조건은 아니지만, 구원의 열매요 증거와 표가 된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은 자들은 이 진리를 다른 이들에게 증거해야 한다. 사람이 예수님 믿고 죄사함 받고 영생을 얻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복된 소식이다. 전도는 하나님의 가장 큰 소원이며 세상에서 가장 선한 일이며 모든 성도의 기본적인 의무이다.

[누가복음 8장 예수님의 말씀] 거라사에서 귀신들린 자를 치유(눅 8:1-56)

 

[누가복음 8장 예수님의 말씀] 거라사에서 귀신들린 자를 치유(눅 8:1-56)

누가복음 8장에서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서 말씀합니다. 좋은 씨는 복음을 상징합니다. 마음 밭에 복음의 씨앗이 떨어졌는데 옥토 밭에 떨어진 씨앗은 열매를 맺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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