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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20장 성경 좋은 말씀] 천년왕국과 대심판(계 20:1-15)

복음의 능력 2022. 6. 20.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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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20장에서는 천년 왕국과 백보좌 심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백성은 천년 왕국에 들어가서 주님과 왕 노릇 하게 됩니다. 천년이 지난 후에 사탄이 무저갱에서 잠시 놓이게 되는데 곡과 마곡의 전쟁을 통해서 첫째 부활에 들어간 자들과 싸우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심판하셔서 영원한 불 못에 던져버립니다.

 

천년왕국과 대심판(계 20:1-15)

 

1-6, 천년왕국

천년왕국에 대해서는 세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로, 무(無)천년설은 천년왕국을 신약교회시대로 본다. 둘째로, ()천년설은 천년왕국 후에 예수께서 재림하신다는 견해로서 천년왕국을 교회시대 후기의 복음의 황금시대로 본다. 셋째로, ()천년설은 천년왕국 전에 주께서 재림하신다는 견해, 즉 주께서 재림하셔서 천년왕국을 세우신다는 견해이다. 전천년설 가운데도 구약 예언들의 문자적인 성취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세우고 짐승 제사들을 다시 드린다고 보는 견해가 있고(세대주의적 전천년설), 천년왕국을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막론하고 신약교회의 성도들이 부활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하는 왕국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역사적 전천년설).

이런 서너 가지 견해들 중에 어느 것이 바른 견해인가 하는 것은 단정하기 어려워 보인다. 무천년설과 후천년설은 주로 복음서들과 서신서들에 근거한다. 복음서들과 서신서들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세상에 종말이 오고 모든 죽은 자들이 함께 부활하고 함께 심판을 받을 것 같다. 거기에는 천년왕국에 대한 언급이 없고 또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오랜 기간의 간격을 두고 있다는 암시도 없다. 그러나 전천년설은 주로 요한계시록에 근거한다. 요한계시록은 종말 예언의 책이며 요한계시록 20:1-10은 무천년설이나 후천년설로는 해석이 어렵고, 전천년설로 가장 잘 이해된다고 본다.

[1-3]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 . . .

본문 1-3절을 보자.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무저갱(無底坑)밑바닥이 없는 구덩이라는 뜻으로 사탄과 악령들의 감금 장소로 생각된다.

천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큰 권세를 가지고 용을 잡았다. ‘이라는 원어(드라콘)큰 뱀을 가리킨다. 그는 옛 뱀, 곧 에덴 동산에서 하와를 유혹하여 범죄케 하였던 그 뱀이다. 그는 마귀와 사탄이다. ‘마귀라는 원어(디아볼로스)는 ‘훼방자, 중상자, 참소자등의 뜻이며, ‘사단이라는 원어(사타나스)는 ‘대적자, 원수라는 뜻이다. 마귀는 처음부터 인류를 범죄케 하고 타락시킨 자요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을 훼방하고 중상하는 자요 대적자요 하나님과 인류의 원수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마귀를 잡아 결박하여 천년 동안 무저갱에 가두게 하시고 인봉하여 그 감금을 확실케 하셨다. 마귀는 천년 동안 만국을 미혹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 감금은 일시적이다. 천년이 차면 사탄은 반드시 잠깐 놓일 것이다.

무천년설은 마귀의 결박과 감금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의 효력을 가리킨다고 본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으로 말미암아 마귀가 감금되었기 때문에 그는 복음의 힘있는 전파를 방해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만일 그렇다면 사탄의 잠시 놓임은 무엇을 의미할 것인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의 효력이 잠시라도 무효화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인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탄의 일시적 감금을 신약시대 전체로 보는 것은 바른 해석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것은 그 이상의 뜻, 곧 문자 그대로 사탄이 결박되고 감금되는 것을 뜻할 것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것이다. 주께서 백마 타고 오셔서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를 폐하신 후에 사탄을 천년 동안 감금시키실 것이라고 보는 것이 본문에 가장 적절한 해석일 것이다.

[4-5]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 . . .

요한은 또 말한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사도 요한은 몇 가지를 보았다. 우선, 그는 보좌들을 보았다. 보좌는 재판하는 권세를 상징한다. 사람들이 그 보좌들에 앉아 있었다. 거기 앉은 자들이 누구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원문에는 그리고 그들은 그것들 위에 앉아 있었다라고 되어 있다. 아마 그들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할 모든 성도들을 가리킬 것이다. 그 보좌에 앉은 자들은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다. ‘심판하는 권세라는 원어(크리마)심판으로 보통 번역되지만 여기서는 심판하는 권세라고 번역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또 요한은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해 목 베임을 받은 자들의 영혼들을 보았다. 그것은 순교자들을 가리키는 표현일 것이다. 물론 그들도 심판 권세를 받고 보좌들에 앉은 자들 중에 포함될 것이다. 또 요한은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고 그 이마와 손에 표를 받지 않았던 자들을 보았다. 그들은 순교자들을 포함하여 모든 진실한 성도들을 가리키며 그들이 다 심판 권세를 가지고 보좌에 앉아 있는 자들이라고 본다. 적그리스도들의 활동은 초대교회와 중세교회를 거쳐 교회 역사상 항상 있어 왔고 주의 재림 직전에는 더욱 절정적으로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그리스도들의 세력에 복종하지 않고 신앙의 정절을 지킨 자들도 교회 역사상 항상 있어 왔고 마지막 때에도 그러할 것이다.

그 다음 구절의 원문을 직역하면, “그리고 그들은 살아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동안 왕노릇하니.” 그들은 앞에 언급한 모든 성도들을 가리킨다고 본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은 다 부활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동안 세상을 통치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다음절에 언급된 첫째 부활이다.

그 나머지 죽은 자들, 만일 앞에 언급된 자들이 순교자들만을 묘사한 것이라면,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예수 믿는 나머지 사람들을 가리킬 수 있을 것이나, 앞에 언급된 자들이 모든 성도들을 가리킨다고 보기 때문에,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불신자들과 악인들을 가리킨다고 본다. 즉 이 구절은 의인의 부활과 악인의 부활을 구별한 것이다. 고린도전서 15:23-24,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그러므로 본문의 첫째 부활은 성도들의 영혼의 중생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고 성도들의 육체의 부활을 가리키는 말이다. ‘부활이라는 원어(아나스타시스)는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죽은 자들의 몸의 부활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12, 13, 21, 42). 그 말은 성경에서 중생을 위해서는 한번도 사용된 적이 없다.

[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 . .

요한은 또 말한다.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하리라.” 첫째 부활에 참여한 모든 성도들은 복되다. 그들은 몸의 구속(救贖), 즉 몸의 영광스런 부활을 받은 자들이므로 완전히 거룩함을 얻은 자들이다. 둘째 사망 곧 지옥의 형벌이 그들을 다스릴 수 없다. 그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5:10) 천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을 통치할 것이다. 그 천년은 사탄이 결박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온 세상에서 불법이 상당히 제압되고 풍성한 평화가 있을 것이다. 천년왕국은 복된 시대가 될 것이다.

1절부터 6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사탄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기억하자. 사악한 사탄일지라도 하나님의 허락 안에서만 활동할 수 있다. 그것은 욥기에서도 증거된 바이다(1:12; 2:6). 하나님께서는 그를 감금하기도 하시고 놓아 활동하게도 하신다.

둘째로, 성도는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을 심판할 것이다. 주께서는 성도들에게 심판 권세를 주실 것이라고 본다. 고린도전서 6:2,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성도간의 송사가 있을 때 우리는 가급적 세상 법정에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셋째로, 성도에게는 복된 부활이 있다. 그것이 첫째 부활이다. 그것은 썩지 않고 영광스럽고 강한 몸을 가지는 부활이며(고전 15:42-44), 영생하는 몸이다.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며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몸의 부활을 믿고 확신하고 사모하자.

넷째로, 승리한 자들은 주와 함께 왕노릇할 것이다.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들과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은 살아서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동안 왕노릇할 것이다. 디모데후서 2:11-12,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노릇할 것이요.”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확신하고 성경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며 죽도록 충성하자.

7-15, 마지막 심판

[7-8] 천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 . . . .

요한은 또 말한다. “천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

천년의 감금 기간이 다하면 사탄은 그 무저갱의 감옥에서 놓여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되어질 것이다. 사탄은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천년 동안의 긴 감금 기간 동안 회개하거나 반성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하나님을 대항할 결심을 한다. 그는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즉시 거대한 일을 도모한다. 그것은 역사상 전무한 일이다. 그것은 지구상의 모든 백성을 미혹하는 일이다.

본문은 지구상의 모든 백성을 곡과 마곡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 같다. 곡과 마곡은 구약 에스겔 38장과 39장에서 인용한 표현일 것이다. 거기에서 곡과 마곡은 이스라엘 백성의 대적자로 예언되어 있다. 마지막 시대에 지구상의 사람들도 곡과 마곡으로 표현된다. 그들은 천년왕국 중에도 회개하지 않은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경배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이다.

사탄은 그들을 미혹하여 마지막 전쟁에 참여케 할 것이다. 사탄은 사람들에게 아마 이렇게 선전할 것이다. “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들은 특권 계급처럼 너무 오랫동안 우리를 통치해왔다. 우리는 이제 그들의 통치에 싫증을 느낀다. 우리는 자유를 원하고 우리 스스로의 민주적 통치를 원한다. , 우리가 단합하여 저들을 쳐부수고 영구적인 자유와 기쁨을 되찾아 누리자.”

그러나 사탄의 이 선전은 순전한 속임수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 전쟁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하기는커녕 자신과 인류의 영원한 멸망을 자초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전쟁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수는 바다의 모래같이 많을 것이다.

[9-10]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 . . .

요한은 또 말한다.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곡과 마곡의 군대는 온 땅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둘렀다. ‘성도들의 진은 부활한 성도들이 거주한 곳을 가리키고 사랑하시는 성은 예루살렘을 가리킨 것 같다. 재림하신 주께서는 예루살렘에서 통치하시는 것 같고 또 부활한 성도들도 한 곳에 모여 사는 것 같다. 성도들은 천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온 세계를 통치할 것이다. 그러나 사탄이 놓여난 후 세상을 미혹하자 그 미혹을 받은 사람들은 대반란을 일으킬 것이다. 저들은 성도들의 통치권을 부정하며 그리스도와 성도들을 향해 선전 포고를 할 것이다. 이런 세계적인 반란을 막아낼 방법이 있을까?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이 예정하신 마지막 형벌의 때일 것이다. 이 전쟁에서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불을 내려 그들을 소멸하시고 마귀를 처단하실 것이다.

무천년설이나 후천년설에 의하면, 사탄의 미혹을 받은 모든 사람들의 대반란은 대체로 주의 재림 전에 있을 기독교회를 향한 세상의 대핍박을 가리키고, 하늘에서 내리는 불은 주의 재림으로 말미암은 멸망이라고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문맥상 자연스럽지 않고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곡과 마곡의 연합군을 하늘의 불로 소멸하신 후 그들을 미혹한 마귀를 잡아 불과 유황 못, 즉 영원한 지옥에 던져 넣으실 것이다. 거기에는 이미 짐승 곧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도 있을 것이고 마귀와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는 다 거기서 세세토록 밤낮 고통을 당할 것이다. 우리는 앞에서 짐승이 적그리스도의 나라를 가리키고 거짓 선지자가 배교한 교회를 가리킨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본문에 그들이 지옥불에 던지운다는 표현은 그들이 어떤 인물일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만일 그렇다면, 짐승은 적그리스도 나라의 우두머리이며 거짓 선지자는 배교한 교회의 우두머리일 것이다. 이제 마귀 즉 사탄은 그들과 함께 지옥불에 들어가게 된다. 이것이 인류 역사 6천년간 하나님과 성도들을 대적했던 사탄의 형벌이다.

[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 . . .

요한은 또 말한다.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요한은 마지막 심판 보좌를 보았다. 그것은 크고 흰 보좌이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이후 땅 위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을 심판할 큰 심판대이다. 그 심판 보좌가 흰 보좌인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거룩하고 의로울 것을 나타낸다.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자는 예수 그리스도일 것이다. 그는 성경에 마지막 심판주로 증거되어 있다. 요한복음 5: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사도행전 10:42, “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고.” 땅과 하늘은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고 심판받을 모든 자들이 그 앞에 서게 될 것이다.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 . . .

요한은 또 말한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죽은 자들은 어른이나 아이나 다 심판 보좌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부활하여 서게 됨을 가리킬 것이다. 의인들은 천년왕국 전에 부활했으므로 이때는 악인들이 부활할 것이다. 사람은 육신의 죽음이 끝이 아니고 죽은 후에도 그 영혼이 의식을 가지고 존재하는 것은 물론이고, 장차 다 부활하여 심판 보좌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이것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가장 공평한 처분이다. 그는 사람을 가장 존귀하게 창조하신 대신에 마지막 날에 공의롭게 심판하실 것을 성경에 말씀하셨다. 이것은 바르고 정당한 처분이시다. 사람은 하나님의 이 공평한 처분을 불평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대 앞에 설 자들로서 준비하며 살아야 한다.

사도 요한은 심판대 앞에서 여러 권의 책들을 보았다. 그것들은 다 펴져 있었다. 여기에 언급된 책들은 사람들의 행위들을 기록한 책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행위들을 보시고 그 행위들에 따라 공의롭게 심판을 하실 것이다. 죽은 자들은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이 행위록들과 구별되는 다른 한 책은 생명책이라고 불리었다. 그것은 구원받은 자들의 이름들을 기록한 책이 분명하다.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말씀하셨다(눅 10:20).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은 이 책에 그들의 이름이 기록된 것을 안다.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지옥 형벌을 피할 것이다(20:15).

[13-15]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 . . .

요한은 또 말한다.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자들은 이 세상에 살았던 모든 자들이다. 바다에 빠져 죽은 자들도 부활할 것이다. 모든 무덤들이 죽은 자들을 내어줄 것이다. 온 세상에서 죽은 자들의 원소는 다시 결합되어 부활할 것이다. 사람들에게 육신의 죽음이 끝이 아니고 그 후에 부활이 있고 심판이 있다는 것이 밝히 드러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심판주이심이 밝히 증거될 것이다. 모든 죽은 자들은 다 부활하여 하나님의 심판 보좌 앞에 서서 각각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행위에 대해 받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결코 핑계하거나 불평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지극히 공의롭고 공정할 것이다.

육신의 죽음과 무덤, 또 악인들이 부활 전까지 머물며 고통당하던 음부 곧 지옥도 최종적 지옥인 불못에 던지우는 것으로 표현된다. 불못은 부활 후에 악인들이 들어갈 형벌의 장소이다. 그것이 둘째 사망이다. 이것이 참으로 두려운 사망이다. 사람들은 육신의 죽음 곧 첫째 사망을 두려워한다. 사람들은 사람의 일들 중에 장례식이 가장 슬픔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두렵고 슬픈 일은 둘째 사망의 일이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다가 죽었을지라도 이 둘째 사망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그의 행과 불행이 나뉠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셨다(10:28).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은 불못에 던지울 것이다. 누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생명책에 기록된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7절부터 15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사탄이 아무리 무섭고 강한 원수일지라도 우리는 사탄이 결국 지옥에 던지울 것이라는 것을 바로 알자. 그것이 사탄이 받을 최후의 심판과 형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탄을 두려워하거나 그에게 굴복하지 말고 당당히 대적하자. 베드로전서 5:8-9,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야고보서 4:7,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둘째로, 우리는 우리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기억하자.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와 공정함과 공평함이다. 우리가 이 사실을 바로 깨닫는다면 우리는 바른 행위에 힘쓸 것이다. 그러므로 전도서는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는 말씀으로 마쳤다(12:14).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며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신다고 말했고(2:6, 16),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오직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고후 5:9-10).

셋째로, 우리의 이름은 반드시 생명책에 기록되어져야 한다. 그것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진실한 믿음으로 된다. 하나님의 아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굳게 가지자. 그 믿음은 성령의 역사로 그리고 성경말씀을 통해 생기며 견고해진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물질적으로 어떻게 사는가 하는 문제는, 이 문제와 비교해보면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부요하고 행복하게 살았다 할지라도 장차 영원한 지옥 불못에 들어간다면 그것은 결코 복된 삶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비록 이 세상에서 부자로 살지 못했을지라도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면 우리는 확실히 행복자이다. 우리는 반드시 그런 자가 되어야 하고 그런 자로 살자.

[사도행전 15장 좋은 성경 말씀] 예루살렘 회의(행 15:1-41)

 

[사도행전 15장 좋은 성경 말씀] 예루살렘 회의(행 15: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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