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시편 5편 히브리어 강해 중에서 다윗이 응답을 기다리는 기도문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본 시는 다윗이 고난 받을 때에 성전을 향하여 기도드리는 비탄의 시입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기를 간절히 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인생에서 비탄할 때가 있습니다. 억울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하소연할 때가 없을 때도 있습니다. 악인들 때문에 분노가 일어나 어찌할 바를 모를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악인들을 처단해 달라고 기도할 뿐입니다. 우리는 나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게 됩니다. 삶의 어려움이 왔을 때 다윗처럼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기도의 응답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이 응답을 기다리는 기도문(시 5:1-7)
1절 라메나체아흐 엘 하네힐로트 미즈모르 레다비드 아마라이 하아지나 아도나이 비나 하기기
시 5:1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5:1
영장으로 관악에 맞춘 - 한글 개역 성경에는 본문의 내용이 본시의 표제로 제시되어 있으나 BHS 원문에는 1절로 되어 있다. 그리고 한글 개역 성경의 1절은 2절로 되어 있어 원문에는 본시 전체가 한글 개역 성경보다 한절 더 많은 13절로 되어 있다.
한편 이 표제에서는 앞선 제4편의 표제와 마찬가지로 저자와 더불어 연주 방식을 규정하는 내용만 수록되어 있다. 따라서 본시에는 저술 시기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대개는 앞선 제3, 4편과 마찬가지로 압살롬의 반역 사건이 일어난 시점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제3, 4편보다는 시간적으로 다소 앞선 것으로 여겨진다. 즉 제3, 4편이 압살롬의 반역 이후 긴박한 상황 중에 드린 기도라면 본시는 압살롬 반역 직전에 위기 상황이 닥친 것을 인지하고 드린 기도인 것이다.
여호와여 - 시 맨 앞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전형적인 기도 시의 문체이다.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사(心思)를 통촉하소서 - '기울이사', '통촉하소서'는 모두 명령형이다. 다윗은 명령형을 거듭 사용함으로써 하나님께 자기의 요청을 들어주실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Craigie). 이와 같은 간절한 기도는 응답받는 비결의 한 요소가 될 것이다. 한편, '심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기그'는 '속으로 중얼거림', '속삭임'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이렇게 볼 때 다윗은 때로는 큰 소리로, 때로는 조용히 기도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그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한 이래 항상 그렇게 하셨고, 지금도 여전히 기도를 들으실 준비가 되어 있다. 여기에서 다윗이 그를 어떻게 칭하고 있는가를 주시하라. “여호와여”(1, 3절), 우리가 경배해야 할 스스로 있는 자 그리고 자족하시는 자여, 또한 “내가 나의 하나님으로 주장했고, 그에게 충성을 맹세했으며, 나의 왕으로서 나를 보호하시는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2절).
우리는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왕 중의 왕이시고 신 중의 신이심을 믿는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치는 않다. 기도를 가장 힘 있게 격려하는 원리가 되며, 기도의 가장 강력한 또는 효과적인 계기가 되는 것은 우리가 특별한 은혜를 입고 있으며, 특별한 기대를 하고 있는 그를 “우리의” 왕, “우리의” 하나님으로 간주함이다.
2절 하케쉬바 레콜 샤베이 말키 베로하이 키 엘레이카 에트팔랄
시 5:2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5:2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었으나, 실제로는 하나님의 왕권의 대리자였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실제적인 왕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이처럼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언약궤 위에 강림하셨고, 또한 이 언약궤는 지성소에 모셔졌던 것이다(출 15:18; 사 6장).
앞선 1절에서 ‘귀를 기울이사’와 ‘통촉하소서’란 2개의 명령형 동사의 연장형을 사용하여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반드시 들어주실 것을 간곡하게 호소하였다. 본절에서도 ‘들으소서’란 명령형 동사의 연장형
을 다시 한번 사용하여 자신의 다급한 심정을 전하며 기도의 응답을 요청하고 있다.
이에 해당하는 ‘하크쉬바’의 원형 ‘카샤브’는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여 경청하는 것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다윗의 다급함은 이러한 동사에서 뿐만 아니라 이 동사의 목적어인 ‘나의 부르짖는 소리를’이란 표현에서도 잘 드러난다. 여기서 ‘나의 부르짖는’으로 번역된 ‘샤베이’의 원형 ‘쉐바’는 ‘도움을 요청하는 외침’이란 강력한 의미를 지니며 성경에서 본절에만 나오는 단어이다.
앞선 1절에서는 ‘중얼거림’이라는 의미를 지닌 ‘하기그’란 단어를 사용하여 자신의 절박한 심정을 나타낸 다윗이 본문에서는 이와 반대되는 의미를 지닌 희귀한 표현을 사용하여 자신의 다급함을 다른 측면으로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편, 다윗은 기도 중에 어떠한 확신이 생겨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라고 부르짖은 듯하다(Craigie). 즉, 그는 왕이신 하나님께서 바로 다윗 자신을 위해 존재하신다는 확신 속에서 이같이 부르짖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Kraus).
3절 아도나이 보케르 티쉐마 콜리 보케르 에에라크 레카 바아차페
시 5:3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5:3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 여기서 '기도하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이라크'인데 이 용어는 '희생 제사를 준비하다', '제물을 배열해 놓다'(레 1:8)라는 의미를 가진다. 간혹 이 용어는 '할 말을 준비하다'라는 뜻으로도 사용되었다(욥 32:14). 즉, 다윗이 매일 아침 정기적으로 드리는 희생 제사 때에 적어도 그는 준비한 말씀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였을 것이다(Craigie).
이러한 점에서 그의 기도는 준비된 희생 제사와도 같은 정성된 것이었다(Rawlinson). 한편, '바라리이다'라는 말은 그가 기도 후에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렸다는 말이다. 즉, 하나님께서 어떤 식으로 응답해 주시는지 그는 조심스럽게 지켜보았다는 뜻이다(미 7:7; 합 2:1, Barnes).
다윗이 여기에서 기대하고 있는 것. 다윗의 기대는 그가 그의 역할을 실천하고 지켜나감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로운 용납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아뢰는 데 우리가 그것을 올바로 바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지도해 주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잘못 구하면, 구하더라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윗은 여기에서 다음 네 가지를 약속하고 있는데,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4절 키 로 엘 하페츠 레샤 아타 로 예구르카 라
시 5:4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
=====5:4
본절 이하 6절까지는 주의 집에 들어갈 수 없는 자들의 영적 특성을 묘사하고 있다.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 하나님은 이방의 신들과는 대조적으로 죄악과 함께 공존하시는 분이 아니시며, 오히려 죄악을 물리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라는 뜻이다.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 - 앞선 1-3절은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왕권을 빼앗을 뿐 아니라 자신의 목숨까지 위협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다윗이 하나님께 간곡하게 기도의 응답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이에 이어지는 본절 이하 6절까지는 다윗이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성품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다윗은 이러한 고백을 통해 자신을 불의하게 대적하는 자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공의로 심판해 주실 것을 호소하는 것이다.
본 단락 4-6절의 내용을 감안하면 다윗은 자신의 왕 자신의 하나님이신 여호와가 어떤 분인지를 잘 알고 있
었다. 이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본절 상반 절에 나오는 바와 같이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이 같은 의로운 속성을 잘 알고 있었던 까닭에 그를 대적하는 원수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복을 절대로 받지 못하고 산산이 깨어질 것을 확신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확신 곧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원천이 되었던 것이다.
다윗은 이것으로 그 자신과 다른 모든 기도하는 백성들에게 우리와 관계를 맺고 있는 하나님은 은혜롭고 자비로우신 것과 같이 또한 결백하고 거룩하시다는 사실을 명심하도록 경고하고 있다. 즉 비록 그가 기도를 들어주실 준비가 되셨더라도 우리가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실 것이다(66:18).
5절 로 이트야체부 홀렐림 레네게드 에네이카 사네타 콜 포알레 아벤
시 5:5 오만한 자들이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5:5
오만한 자 -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악인들 중 한 부류이다(73:3;75:4).
본절도 4절과 동일한 맥락의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 구절로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죄악을 용납하실 수 없는 분임을 강조하고 있다. 본문에서 ‘오만한 자’로 번역된 ‘홀렐림’의 원형 ‘할랄’은 본래 밝게 빛나는 모습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본문에서는 능동태 분사 복수형으로 사용되어 자기 자신을 찬양하며 자랑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이들은 당시 상황과 관련하여서는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욕심에서 이스라엘의 왕권을 탈취하려는 다윗의 대적자들을 가리킨다.
아울러 일반적 의미에서 자신을 높이고 자고 하는 불특정 한 오만한 모든 자들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전자의 의미를 염두에 둔다면 이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신정 왕국의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를 인간의 의지로 바꾸려는 자이며 하나님의 섭리를 깨뜨리는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오만한 자로 여겨지는 것이다.
모든 행악자 - '행악자'라는 말은 시편에서 악인을 가리키는 가장 보편적인 표현이다. 여기서는 구체적으로 다윗을 대적한 자들을 가리킨다(Rawlinson).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 그가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라고 말한 것은 이런 의미를 갖고 있다. “주는 죄악이 주의 무한한 결백과 올바름, 그리고 거룩한 뜻에 직접적으로 위배되는 것으로 여겨 그것을 미워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불의를 행하는 자들이 형통할지라도, 그것으로 하나님께서 사악함을 기뻐하신다고 추론해서는 안 된다. 형제들을 미워해 그들을 버리고서도 “주님께 영광 돌릴지어다”하고 말하는 자들처럼, 그를 영화롭게 하는 척하는 자들을 그는 결코 기뻐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악함이 비록 신앙이라는 가면을 쓸지라도 그것을 기뻐하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죄악을 기뻐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시험당할 때는 “내가 하나님께 시험당한다”라고 말하지 않도록 하자. 왜냐하면 하나님은 죄의 장본인이 아니실 뿐만 아니라, “악이 주와 함께 유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즉, 악은 결코 장려되지 않을 것이며, 또한 번성하지도 못할 것이다.
6절 테아베드 도베레 카자브 이쉬 다밈 우미르마 예타에브 아도나이
시 5:6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5:6
거짓말하는 자를 멸하시리이다 - 본문을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당신은 거짓을 말하는 자들을 파괴하실 것입니다’가 된다. 본문에서 ‘멸하시리이다’에 해당하는 단어 ‘테압베드’는 ‘파멸하다’, ‘멸망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아바드’의 강의 피엘 미완료형으로서 반드시 파멸시킬 것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러한 본문은 단지 거짓말하는 그 자체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거짓말하는 자를 멸하신다’라는 본문의 표현 가운데는 거짓으로 타인을 곤경에 빠뜨리고 무죄한 자들을 죽음에 던지는 파렴치한 자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공의로 심판하사 그들이 행한 그대로 갚아 멸절시킨다는 의미를 함축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Craigie).
피 흘리기를 즐기고 - 무고히 의인을 핍박하며 의인을 죽음의 위기 가운데로 몰아넣었으니, 저들은 살인자나 마찬가지였다(Kraus).
싫어하시나이다 - 이 말은 악인들이 주의 집에 들어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주께 혐오의 대상이 됨을 지적해 주고 있다. 히브리 시의 대표적인 표현법인 병행 대구법(parallelism)에 따르면 이 단어는 '멸하시리이다'와 같은 표현이다. 따라서 다윗은 저들의 마지막이 파멸뿐임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한편, 우리는 이와 같은 여러 종류의 악인들이 열거된 문장을 통하여 의인을 핍박하는 자들 가운데 어떤 종류의 악인들이 있을 수 있는가를 엿볼 수 있다(Kraus).
7절 바아니 베로브 하세드카 아보 베이테카 에쉐타하베 엘 헤칼 코드쉐카 베이르아테카
시 5:7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5:7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인지를 힘입어 - 여기서 '인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헤세드'는 하나님의 언약적인 사랑을 의미하는 말이다. 즉,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당신의 신실한 언약 가운데 끝까지 사랑하시는 불변적인 사랑을 의미하는 말이다. 다윗은 여기서 자신이 앞으로 주의 집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자신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이 언약적 사랑의 효력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Craigie, Rawlinson).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리이다 - 여기서 성전은 하나님의 언약궤가 모셔져 있는 지성소를 가리키는 말이다(Briggs, Craigie, Lange, Kraus). 그러나 지성소가 다윗의 실제적인 경배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곳은 하나님께서 강림하여 계신 곳으로 그 안에 계신 하나님께 다윗은 경배드리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경외함으로'라는 말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존재 앞에 인생(人生)이 마땅히 가져야 할 바른 자세를 표현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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