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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종교학 성경공부] 老子(노자)-노장사상의 성립과 배경

복음의 능력 2021. 6. 9.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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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비교종교학 성경공부 중에서 노장사상의 성립과 배경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老 子(노자)

 

노장사상의 성립과 배경

노장사상은 노자와 장자라 하는 2대 사상가를 중심으로 한 사상을 가르키는데, 또한 도가(道家)라 일컬어지기도 한다. 중국에서는 춘추시대 말부터 전국시대에 걸쳐서 (기원전 5세기~기원전 3세기), 일민이라 불리는 사람 등이 다수 출연하였다. 난리 속에서 조국을 잃고 방황하던 지식인이었다. 일민(逸民) 가운데서 자연히 몇 개인가의 핵이 되는 사람과 사상이 나왔다. 그 한 사람이 노자이다. 한 나라 이후 이들을 통틀어서 도가라 일컫게 되었다.

 

노자와 그 저서

문체의 특징

현재 전해져오고 있는 <노자>는 글자 수 오천 수백 자, 상하 2, 81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문장은 고유명사가 눈에 띄지 않으며 운문의 부분이 많다

 

<노자> 책의 성립

이 책의 명칭은 한나라 초기에는 <노자>서 라고 일컬어지고 있었다. 후에 <노자 도덕경>이 일반적으로 되었지만 <도덕>이란 그 책의 사상을 이 두자로 대표시킨 것이고, <>이란 주석을 한 것에 대해 본문을 뜻한다. 그래서 <노자 도덕경>이란 노자가 도덕에 관하여 논한 본문이란 듯이 된다.

 

<사기>의 노자 전

가장 오랜 노자의 전기는 사마천이 지은 <사기> 중 <노자 전>이다.

노자는 초나라의 고현 후난성 여향 곡인리의 사람이며, 이름은 이(), 자는 담(), 성은 이(), 주의 수장실의 사관이다. 노자는 도덕을 닦고 그 학문은 자은무명(自隱無名 일부러 자기의 재능을 속이고 세상에 이름을 나타내지 않는 것)으로서 힘써 일하다. 주나라에 오래 있었으며, 주가 쇠퇴함을 보자 마침내 떠나 관문에 이르다. 관령 윤희가 말하되, ‘공께서는 바야흐로 운둔하려 하는데 무리해서라도 나를 위해서 책을 저술하여 주시오라고. 이에 노자는 곧 책 상하 편을 저술하여 도덕의 뜻이 담긴 오천여 말을 남기고 떠나니 그 생을 끝낸 곳을 아는 자 없도다.”

 

노자의 도

()란 무엇인가?

<노자>, 책의 서두의 말은 도의 도라 해야 할 것은 보통의 도가 아니노라고 말한다. 공자나 기타 여러 사상가들이 자기의 사상에 의거하여 각각의 도를 세상에 널리 퍼지게 하려고 하였다. 노자가 부정한 것은 의와 같은 뜻에서의 도-인간의 실천 윤리로서의 도-이다. 이것은 기성의 사상, 특히 공자에서 비롯되는 유가를 비판하고 부정함과 아울러 단순한 부정에 그치지 않고, 그것들을 극복한 새로운 사상을 쌓아 올리려고 하는 의도를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의 모습

노자는 도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이것이 도()라고는 명확하게 기술하지는 않았다. 다만 도가 지닌 분위기를 시적인 표현으로 묘사하여 독자 자신에게 감촉되어 깨닫게 하려고 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도()는 형상을 초월해 있어서 인간의 감각으로써 잡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실은 이름 지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름 지을 수 없는 것에 왜 도()라는 이름이 있는 것인가? 그것은 부를 이름이 없으면 불편하므로 참으로 그것 자체를 나타내는 이름으로서가 아니라, 임시의 명칭, 글자로서 도라고 하는 것뿐이다.

 

()로서의 도()

노자가 말하는 도()란 시간, 공간을 초월한 실재이다. 감각을 초월한 것이기는 하지만 비실재는 아니다. 그러나 물질로서 유냐 무냐 하면 그것은 무이다. 그러므로 도는 또 자주 무라는 말로 표현된다. 그러나 이 무는 유의 근원에 있는 것이다. 이러하므로 도를 ‘만물의 근원’이라 하는 것과 같이 또한 만물을 만들어 내는 근원이 된다.

 

하나로서의 도()

도는 하나를 생기게 하고, 하나는 둘을 생기게 하고, 둘은 셋을 생기게 하고, 셋은 만물을 생기게 한다. 만물은 음을 지니고 양을 안으며 충기(沖氣)로써 화하도다.”(42) 우선 도에서 생긴 하나는 물질을 초월한 존재인 도가 물질적 존재로 되었던 시점, 이것을 말할 것이다. 이때에는 아직 명확한 형상은 갖춰지지 않고, 우주에 존재하는 유일한 것으로서 이것을 기()라고 부른다. 이것이 물질로서 확실해짐에 따라서 음과 양의 상반되는 성질이 나타나는데, 여기서 말하는 둘이란 바로 이 음양의 두 기(氣) 일 것이다. 음양이 충돌하면서 충기가 나타나는데----, 이 충기로부터 만물이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노자에서는 도 와 하나를 완전히 같은 뜻으로 하고 있는 예가 얼마든지 있다.

 

무위(無爲)로써 하지 않음이 없다.

()는 어떠한 작용을 하는가? 본래 인 도의 작용은 무위이다. ‘무위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작위(作爲) 즉 부자연스러움을 행하지 않는 것이다. 도는 만물에 대하여 무위인 것이다.

이러한 노자의 도는 단순한 형이상학적인 철학으로 끝나지 않는다.

 

노자의 정치철학

도를 정치에 응용

도는 만물을 만물이게 하고 있는 원리이다. 따라서 도에 의거한 실천이야 말로 가장 인간다운, 또한 있어야 할 생활 방법이 되는 이치이다. 그래서 노자는 도에 관하여 이야기할 때는 늘 그것을 현실 위에서 살릴 것도 아울러 말하고 있다.

도는 항상 무위로서, 그러하고 하지 않음이 없다. 왕후가 만약 이것을 잘 지키면 백성은 저절로 생성 발전할 것이다.”(37) 즉 도의 작용인 무위에 따른 정치를 하여야만 천하를 통치할 수 있다는 것으로 도를 정치적 실천과 결부시키는 말이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삶는 것과 같다.

작은 생선을 익힌다는 것이란 작은 생선을 익힐 때에 젓갈로 쿡쿡 찌르면 형상이 무너지므로 약한 불로 시간을 걸리게 하여 천천히 익힌다. 생선을 익히는 것도 이러할진대, 큰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도 쓸데없이 민생에 간섭하는 일 없이 백성을 자연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60)

 

천하를 취한다.

한나라를 다스리는 정도이면 유가(儒家)에서 말하는 정도(正道)로서도 좋다. 한번 싸워 승리를 거두는 것뿐이라면 병법가에서 말하는 기도(氣度)도 좋다. 그러나 천하를 취하는 데에는 그런 책략을 사용해서는 불가능하다.

천하를 다스림에는 항상 일 없음(無事)으로써 한다. 일 있음(有事)으로써 다스리게 되면 천하를 다스릴 수 없다.(48)

 

이상적인 국가 형태

노자는 중국 각지에 산재하는 촌락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여, 그 위에 서서 전국을 엄하지 않게 통치하는 것 같은 국가 형태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즉 중국의 천하란 그들 공동체가 한데 모여서 구성되어 있으며, 국가란 그 위에 일시적으로 놓여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는 때로 멸망하는 일이 있다. 그러나 그 근본에 있는 공동체는 하등 변화하는 일 없이 존속한다. 법가는 국가주의의 입장에서 중앙 정권을 강화하려고 생각하고, 유가는 민생을 안정시킨 뒤에 백성에게 교육을 베풀려고 하였다. 노자로서 보면, 전자는 위로부터 우격다짐으로 촌락 공동체를 파괴하려고 하는 것이며, 후자는 내부로부터 그것을 붕괴시키는 것이다. 노자의 정치론은 이들 당시의 학설에 대항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노자의 처세술

물의 비유

상선(上善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용하면서도 다투지 않으며, 중인(衆人)이 미워하는 곳에 있다. 그런 까닭으로 도에 가깝도다.(8) 천하에 물보다 더 부드럽고 연약한 것은 없다. 그러나, 굳고 강한 것을 공격하는 데 있어서는 능히 물보다 나은 것이 없다. 달리 그것을 대신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78) 이와 같이 정치에 있어서나 개인의 처세술에 있어서도, 자아를 주장하는 일 없이 스스로를 비하하면서, 실은 자아를 관찰하고 목적을 이룬다고 하는 것이 노자의 철학이며, 처세술이다.

 

영아(嬰兒)로의 복귀

어린아이는 그 무심함과 무욕의 무욕의 행위, 그리고 유약한 육체를 갖는 것에 있어서 도를 상징하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화로부터 멀어져서 온화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도에 따라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의 원리

여성은 육체에 있어서 남성보다도 유약하지만, 그와 더불어 모성으로서의 생식력을 가진다. 그 점에서도 만물의 근원인 도에 가깝다. 대저 노자는 만물의 어미라고 말하지만 만물의 아비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부쟁의 덕

성인은 도무지 다투지 않는 까닭에 천하가 그와 맞서 다툴 수 없는 것이다.(22)

莊 子

장자와 그의 저서

<장자>의 구성

<莊子>란 책은 내편, 외편, 잡편 3부로 크게 나누어져 있으며 그중에서 또 내편이 7, 외편이 15, 잡편이 11편이 있으며 도합 33평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기(史記)><莊子>

장자는 허난성 상츄현의 사람이다. 이름은 주()라 하고, 허난성의 칠원(漆園 관영의 옻나무 밭)을 관리하는 관리를 했던 일이 있다. 그의 학문은 모든 분야에 걸쳐 박식했는데, 그 근본은 노자의 말과 일치한다. 문장을 만드는 솜씨가 좋았으며, 사물의 진상을 꿰뚫어 보고 유가(儒家)나 묵가(墨家)를 공격했다.

장자가 바야흐로 죽으려 하자, 제자 두터히 이를 장사 지내려 했다. 장자 말하기를, “ 나 천지로써 관곽(棺槨 속널과 겉널)을 삼고, 일월로서 연벽(連壁 한쌍의 커다란 구술)을 삼고, 성좌로서 주기(珠璣 아름다운 구술)로 삼고, 만물을 내게 주는 선물이라 생각하고 있다. 내 장례식은 갖추어지지 않은게 없는데 무엇을 덧붙인단 말이냐

 

장자가 본

만물 제동(萬物 齊同)의 세계에 노닐다.

하늘의 새 파란 빛은 과연 제 빛깔일까 아니면 멀리 떨어져서 끝이 없기 때문일까? 붕() 또한 하계를 내려다볼 때 역시 그와 같이 새파랗게 보일것이다.(소요유편) 이와 같이 붕은 모든 것의 존재를 동일시하고, 모든 구별, 차별을 버리고 만물을 제동시(齊同視 동일하게 간주함) 하는 세계에 노니는 초인의 모습인 것이다. 그러나 상대의 세계에 사는 일반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이것은 이해를 초월한 사람이다.

 

절대적인 대,

<장자> 천하 편에 인용되고 있는 혜 시(장자와 교분이 있었던 사람)의 논중중 첫째는 아주 큰 것은 밖이 없다. 이를 큰 하나라 일컫는다. 아주 작은 것은 안이 없다. 이를 작은 하나라고 일컫는다.” 이와 같이 절대적인 대, 소는 각각 단 하나밖에 없으며 그 이외의 일반적인 대, 소라는 것은 모두 다른 것과의 비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처세술

무용(無用)의 용()

유용 무용성에 관해서 장자는 시점을 전환하면 유용 무용은 변화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세상 사람들에게 있어서 무용의 나무라면 오히려 잘릴 일도 없고 큰 나무로 까지 성장할 수가 있다. 그러고 보면 이 나무는 세속적인 무용함이 생명을 오래 살게 하는 더 없는 유용성을 가진 것이 된다.(인간세. 산목편山木篇)

이것은 장자에 있어서 처세의 원리를 말하고 있다.

 

제물론(齊物論)의 입장

장자의 사상 가운데 가장 근원적인 만물제동(萬物齊同)의 설을 문학적으로 말한 것이 소요유편(逍遙遊篇 조용히 세월을 보내는 것?)이라면 그것을 논리적으로 전개한 것이 제2편의 제물론 편이다.

즉 모든 존재 현상, 그 밖의 가치의 대립에 있어서 어느 것에도 절대적인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축축한 데서 자면 곧 허리 아픔과 중풍을 앓지만 미꾸라지는 그렇지 않다.

 

천균(天均 하늘의 균형)과 도추(道樞이치의 근본)

모든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려면 상대의 차별의 세계를 넘어서 만물을 제동시 하는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까닭으로 성인은 시비로써 이를 조화시키고, 자연의 천균(시도, 비도 통해서 같은 것으로 본다는 뜻)에서 쉰다. 이를 양행(兩行 대립된 두 쪽이 다 순조롭게 뻗어 나가는 입장)이라 일컫는다.

천균 존재의 상태를 도추라고 한다. 그것과 이것이 그 대립을 잃는 곳이 도추이다.

 

종말론 및 우주론(?)

무의 시초

노자는 만물의 근원에 무를 두고, 그 무로부터 유가 생긴다고 하였다. 그러나 장자는 유에 대한 무를 가져와도 이것 또한 상대적인 관념의 대립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천지도 나와 나란히 생기고, 만물도 나와 하나이니라

 

운명에 수순(隨順 거스르지 않고 따르다)하다.

인간이 지력(知力)을 쓰지 않고, 만물을 제동시 하는 것을 구체적인 생활자세로서 표현한다면 주어지 운명을 긍정하고 태연하게 따라가는 것이 된다.

진재(眞宰 우주의 주재자 조물주 하늘 조물자) 있는 것 같으면서도 특히 그 조짐을 얻지 못한다. 행하여 마땅히 있어야 할 것 심히 진실하지만, 그 형상을 보지 못한다. 진심은 있지만 형상이 없다.’(제물론편)

운명을 저항하는 것은 다른 것을 좋다고 보는 것으로, 이는 만물을 제동시 하는 것에 위배되는 것이다. 따라서 조물주가 준 운명을 능동적으로 수용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현실의 삶을 받아들여 기쁨으로 누리는 것으로 발전한다.

삶과 죽음

사물은 아울러 생기고 아울러 죽는다.’고 되어 있다. 그것은 죽음과 삶과의 사이에 가치의 차이는 없다고 하는 것이다.

삶은 죽음의 무리, 죽음은 삶의 시작, 누가 그 실마리를 모르랴. 사람의 삶은 기의 모임이기 때문이다. 모이면 즉 삶이 되고, 흩어지면 즉 죽음이 된다. 만약 사생(死生) 무리를 이루면 내 또한 무엇을 근심하랴. 그런 고로 만물은 하나이니라. (지북유편知北遊篇)

만물 생성 변화를 기일원론으로 보는 주목되는 언급이다.

 

열자(列子)와 양주(楊朱)

()를 존중하는 열자(列子)

노자, 장자 이외에도 몇 사람인가의 도가의 사람들의 이름을 들 수 있다, 그 가운데에서 현재에 전하는 책이 있는 것은 열자이다. 총 8편으로 되어 있다. <사기>에 그 전기는 없다. 다만 <장자> 내편과 이름의 언급이 보이는 것으로 장자보다 앞선 인물로 본다.

열자는 허를 존중한다. 허를 존중한다는 말은 허심(虛心)으로 되는 것, 즉 시비이해(是非利害)의 생각을 버리고 무심하게 만물에 응하는 일일 것이다.

노자도 허심평정(虛心平靜)을 강조했다.

 

향락주의자(享樂主義者) 양주(楊朱)

맹자는 양주는 자기를 위해서 하다 이는 군주를 무시함이라고 기록한다. 이를 볼 때 양주는 맹자와 동시대의 인물임을 뜻한다.

<열자> 양주 편에 다음의 말이 보인다. 양주 가로되, 생민(生民)이 휴식함을 얻지 못함은 네 가지 일 때문이다. 첫째는 수(오래 사는 것) 때문에, 둘째는 이름 때문에, 셋째는 지위 때문에 , 넷째는 화(貨 재물)때문이다......목숨에 거스르지 않으면 어찌 수를 부러워 하리. 귀함을 자랑으로 여기지 않으면 어찌 이름을 부러워하리. 세도를 구하지 않으면 어찌 지위를 부러워하리. 부를 탐하지 않으면 어찌 재물을 부러워하리오.

또한 즉 사람이 삶에 무엇 하리오, 무엇을 즐기리오. 미후(美厚아름다움이 무르익다.)를 하지 않을 뿐, 성색(聲色 목소리와 안색)을 하지 않을 뿐... 태고의 사람, 삶의 잠래(暫來 잠시의 사이) 임을 알고, 죽음의 잠왕(暫往 멀지 않아 닥쳐 올 일)을 알라. 고로 마음에 따라 움직이고 자연에 거슬리지 않고, ()에 따라 노닐고, 만물에 거스리지 않고...(<열자> 양주편)

삶을 덧없는 것으로 잡고, 인생을 마음이 내키는 대로 즐기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 자연이고 만물이 참다운 모습이라고 하는 것이다.

 

 

[야고보서 5장 성경말씀] 주님의 재림 때까지 인내하라(약 5:1-20)

안녕하세요. 오늘은 야고보서 5장 성경말씀 중에서 주님의 재림 때까지 인내하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야고보는 부자들아 들으라고 말합니다.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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