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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7장 강해설교] 하나님 나라의 승리(단 7:1-28)

복음의 능력 2021. 1. 16.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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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다니엘 7장 강해설교 중에서 하나님 나라의 승리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는 다니엘서 7-12장들을 계속 살피기 전에 잠시 뒤로 물러서서 이 나머지 부분들을 하나로 묶어서 전체적으로 조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후에야 장(章)별로 하나씩 다룰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승리(단 7:1-28)

 

우리가 먼저 전체적으로 조감해야 하는 까닭은 다니엘서 7-12장들이 처음의 글들과 성격에 있어서 매우 다르기 때문입니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은 문장의 스타일입니다. 1-6장들은 이야기요 역사의 서술이었으므로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여섯 장들은 거의가 계시 문학적입니다. 그럼 계시 문학적이란 무엇을 말할까요? 이것은 유대 문학의 한 독특한 형태로서 다니엘서의 마지막 여섯 장들이 가장 오래된 계시 문학의 실례입니다. 이 계시 문학서들은 주전 200년과 주후 100년 사이에 다량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런 계시서들은 신령한 영감에 의해 쓰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의 성경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선지서들에는 계시 문학적인 구절들이 나타나는데 예를 들자면 이사야 24-27, 요엘서, 스가랴 9-14장들입니다. 신약의 예로는 마태복음 24장의 주님의 감람산 강론과, 특히 요한계시록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계시 문학은 핍박 시기에 신실한 백성들을 격려키 위해서 쓰였습니다. 계시 문학의 중심 주제는 항상 동일합니다. 악의 번창과 자기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돌보심, 그리고 악이 끝내 이기지 못한다는 보장입니다. 영원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나라뿐입니다. 계시 문학서들은 보통 하나님의 환상이나 꿈 등 비상한 방법을 통해 알려주신 계시들로 간주됩니다. 최초의 계시서들은 그런 방식으로 쓰였습니다. 따라서 영감 받지 않은 계시 문학서들도 동일한 여건에서 집필되었다고 내세우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이 계시서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다니엘서에 나오는 묵시적인 장들에 기인된 것들입니다.

 

계시 문학의 대표적인 특징은 상징법의 사용에 있습니다. 다니엘 7-12장은 미래의 역사 과정을 숫자와 짐승과 뿔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언어는 신비적이며 대로는 기괴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불필요하게 과도한 표현들이 원용되었다는 느낌을 가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후기에 쓰인 모조 계시서들에 비하면 다니엘서의 묘사는 온건한 편입니다. 후기의 계시 문학서들은 기괴망측하여 요란스럽습니다. 동물원의 모든 동물들을 다 끌어넣어 환상화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극단적인 환상들과는 전혀 다릅니다.

 

계시 문학은 언제나 예언의 옷을 입은 역사입니다. 물론 성경의 계시서들에 나오는 역사는 예고적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즉 미래의 사건들이 실제로 발생되기 전에 기록된 것입니다. 그런데 일반 계시 문학서는 전혀 다릅니다. 그 역사는 이미 발생된 과거의 사건들입니다. 계시 문학서의 저자들은 이미 일어난 일들을 기록해 놓고서 이름만 옛날에 살다가 죽은 자들의 것으로 붙입니다. 그래서 마치 자기들의 계시 서가 정말로 과거에 예언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조작품들은 사람들을 오랫동안 속일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가짜로 판명되지 않은 계시 문학서는 오직 성경에 나오는 것들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 근원을 하늘에 두고 있으며 이 성경의 계시서들이 인간의 조작품들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또 하나의 증거가 됩니다.

 

이제 우리는 경건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당하게 될 고난들을 예고한 여러 장()들을 훑어볼 차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적대적인 세상에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낙담 가운데서 죽어가지 않습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손에 잡혀 있습니다. 모든 사건들은 하나님의 목적들이 서서히 이루어지는 데 필요한 것입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이 악의 통치를 종식시키고 영원한 나라를 건설하실 것입니다.

 

위와 같은 사항들을 염두에 두면 다니엘 7-12장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기가 훨씬 쉬울 것입니다. 홀로 하나님 편에 서 있으려는 자들에게는 격려가 필요합니다. 그들이 어떻게 홀로 설 수 있는지도 알아야 하지만 그럴 필요가 있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이 점은 세상 역사의 미래와 각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들을 다소라도 알게 되면 좀 더 분명해집니다.

 

우리가 살펴보려는 장()들은 우선 니엘 자신에게 매우 좋은 영향을 끼친 내용들입니다.

예로써, 다니엘은 5장에서 벨사살의 가증스러운 왕궁으로 홀로 들어가 왕의 임박한 죽음과 메대와 바사에 의한 바벨론 제국의 멸망을 예고하였습니다. 그가 이런 말들을 무슨 용기로 할 수 있었겠습니까? 다니엘은 어디서 그런 대담한 힘을 받았을까요? 그가 자신의 생명을 걸고서 진리를 발설했던 까닭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우리는 7장과 8장을 읽어봄으로써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7장에는 하나의 꿈이 실려 있고 8장에는 하나의 환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7장의 꿈은 2장의 느부갓네살 왕의 꿈에 나타났던 제국들의 흥망을 예보해줍니다. 다니엘은 인간 역사가 하늘 왕궁의 결의에 따라 통제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천상의 왕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만이 영원하다고 선포합니다. 이 꿈에 이어서 소개되는 환상은 보다 가까운 장래의 일들을 다룬 것입니다. 이 환상은 곧 권력을 잡게 될 메대와 바사 제국이 헬라 제국에게 넘어갈 것을 예고합니다. 또한 이 세 제국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무섭게 핍박할 자가 나타날 것과 그 핍박자의 세력이 절정에 이를 때에 하나님이 그를 멸망시킬 것을 강조합니다.

 

다니엘은 이 모든 것들을 그 운명의 밤 이전에, 즉 벨사살 왕의 궁전에 첫 발을 들여놓기 전에 다 보았습니다. 그는 두 번씩이나 인간 역사의 모든 사건들은 하나님의 목적들을 성취시킨다는 사실을 상기케 하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바벨론 제국이 메대와 바사 제국에 의해 넘어가는 것은 하나님이 작정하신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다니엘이 벨사살 왕에게 그 사실을 선포하기를 두려워할 까닭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는 악이 결코 이기지 못한다는 계시를 두 번씩이나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세상 왕에게 맞서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7장과 8장의 꿈과 환상은 다니엘에게 하나님 편에 홀로 서는 일이 왜 가치 있는 일인지를 가르쳐 주었던 것입니다.

9장에서 주어진 계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니엘은 다리오 왕의 통치 원년에 기도하는 가운데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9장의 기도는 6장에 기록된 어려움들 가운데서 올려진 것이 아닌가 합니다. 어쨌든 다니엘의 기도는, 그의 기도 내용이 무엇이며 왜 그가 예루살렘 쪽으로 창문을 열어놓고 기도했는지를 잘 설명해 줍니다.

 

다니엘은 가브리엘의 계시를 통해서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되돌아가서 예루살렘을 재건하고 종국에 가서는 메시아가 오시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소망스런 미래가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하나님의 백성에 속하는 일이 어찌 부끄러울 수 있겠습니까? 비록 목숨을 잃게 될지라도 그는 하나님 편에 서 있음을 떳떳이 밝히지 않겠습니까? 악은 장래가 없습니다. 그러할진대 악에게 항복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다니엘은 9장의 체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해 주신다는 것을 절감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천사의 방문을 이용해서라도 성도의 기도를 들어주실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침대에서 올리는 기도가 하나님의 귀에 들린다면 사자굴에서 올리는 기도야 하늘 보좌에 닿지 못할 까닭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천사 또한 사자굴이라고 해서 나타나지 못하겠습니까? 실제로 다니엘이 던져졌던 사자굴에 천사들은 나타났었습니다.

 

그럼 10장에서 12장까지의 환상들은 어떤 것일까요? 이것들은 다니엘이 적어도 86세였을 때에 받은 하나의 단일 환상이었습니다. 우리들은 7-9장의 계시들이 다니엘로 하여금 홀로 서게 하는 데에 큰 힘이 된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럼 그의 마지막 환상은 어떤 형태의 실제적인 효과가 있었을까요? 이 환상은 연로한 선지자가 자신의 삶을 종결지을 즈음에 받게 된 것이었습니다.

 

나이가 들고 성숙한 신자들은 때때로 회의에 빠집니다. 마귀는 우리가 나이를 많이 먹었다고 해서 유혹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성자 같은 다니엘도 그런 유혹을 체험하였을까요? 그도 홀로 서서, 악의 세력과 투쟁과 왔던 자신의 삶이 과연 가치 있는 인생이었는지, 또 혼자 싸워온 인생이 시간 낭비가 아니었는지 의심해 본 적이 있었을까요? 만일 그가 세속과 타협을 했더라면 훨씬 나은 삶이 되지 않았을까요?

 

만일 다니엘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들이 떠올랐더라면 10-12장에 기록된 마지막 환상이 이를 곧 내몰아 주었을 것입니다. 다니엘은 이번 환상에서 단순히 거룩한 천사들만 본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과 대면케 되었고 이를 통해 인간 역사가 하나님에 의해서 끝까지 통제된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이 환상은 헬라 제국의 역사를 상세히 예고한 것인데 특히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의 악한 경력을 상술한 것입니다. 다니엘은 자신이 죽은 후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안티오쿠스로부터 말할 수 없는 핍박을 받게 될 것과 또한 세상 마지막 때에는 적그리스도로부터 대박해를 당할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또 악이 절정에 이를 때에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악을 박멸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원칙이라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악은 많은 전투에서 이길 것입니다. 그러나 악은 전쟁 자체에서 승리를 거두지는 못할 것입니다. 악은 결코 궁극적으로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패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신실했던 자들만이 영광스러운 부활을 하고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니엘이 그처럼 오랫동안 홀로 걸어온 길을 후회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다니엘에게 끼쳤던 이 마지막 환상들의 영향은 수많은 후세대의 독자들에게도 동일하게 미쳐왔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다니엘서의 처음 여섯 장들을 읽고 하나님을 위해 어떻게 홀로 설 수 있는지를 배우고, 나머지 여섯 장들을 통해서는 왜 그런 삶이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깨닫는다고 고백합니다. 이에 대한 초기의 실례로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주전 175-164년)의 통치기간 동안 핍박을 받았던 유대인들을 들 수 있습니다. 이 암흑시대에 그들에게 최대의 위로를 준 것은 다니엘서였습니다. 당시에 다니엘서는 수백 부씩 비밀로 베껴져서 널리 유포되었습니다. 고난의 풀무 속을 지나던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다니엘서가 큰 힘을 주고 그들이 악의 세력에 압도되지 않도록 주된 원동력을 제공하였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사악한 압제자에게 항복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들은 모든 악이 그러하듯이 안티오쿠스가 멸망의 운명에 놓인 것을 다니엘서의 예언적 환상들을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여러 세대들이 오고 갔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하나님을 위해 홀로 서 있어야 하는 신자들은 지금도 존재합니다. 아마 당신이 가정이나 학교나 직장에서 홀로 서야 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일지 모릅니다. 만일 그렇다면 당신의 마음속에는 다음과 같은 의문이 자주 떠오를 것입니다.

언제 이 고통의 길이 끝나게 될까? 내 주변 사람들은 마치 하나님도 없고, 그리스도도, 성경도, 죽음도, 심판도 없는 듯이 살고 있다. 도대체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우리는 때때로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이대로 계속할 필요가 정말 있는 것일까? 나는 하나님께 진실 되게 살려고 노력하지만 내가 받는 처우는 거칠기만 하지 않은가? 나의 인생살이는 곳곳이 용광로요. 사자굴인 듯하다. 나는 무슨 일을 하여도, 아무리 잘 살려고 힘써 보아도 항상 어려움만 당한다. 그래도 내가 고난 받는 소수의 한 신자로서 계속 이렇게 살아야 되는 것일까?”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런 성도의 삶은 계속할 가치가 있습니다! 다음 여섯 장들이 이 사실을 확인시켜 줄 것입니다. 그리고 왜 우리가 계속 고난을 받으면서도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 줄 것입니다. 그것이 다음 여섯 장들의 목격입니다.

 

이제까지 살펴본 내용들에서 우리는 다니엘서의 나머지 여섯 장들이 우리가 넘어서야 할 산들을 한 장에 하나씩 가진 것이 아니라 모두 합쳐서 세 개만 지녔음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7장과 8장은 첫 번째 산의 양 측면에 해당됩니다. 7장의 꿈은 바다에서 나오는 거대한 네 짐승들에 대한 것입니다. 처음의 세 짐승들은 사자, , 표범으로 쉽게 식별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네 번째 짐승은 형상을 쉽게 식별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네 번째 짐승은 형상을 설명하기가 불가능한데 10개의 뿔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뿔들은 곧 잊혀지고 열한 번째 뿔에 본 장의 시선이 쏠립니다. 이 세 뿔은 다른 10개의 뿔들을 대신한 것으로서 그중에서 몇 개의 뿔들을 뽑아버리고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합니다. 한편 본 장의 초점은 하늘 법정으로 옮겨집니다. 인간의 역사는 이 하늘 법정에서 통제되며 인자와 같은 이만이 영원한 통치를 하게 됩니다.

 

그럼 이 환상들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다행스럽게도 다니엘서 자체가, 비록 상세한 부분가지는 아니지만 핵심이 되는 대의(大意)를 해석해 주고 있습니다. 이 환상의 네 짐승들은 2장의 느부갓네살 왕의 꿈에 나왔던 네 부분으로 된 신상과 대응시킬 수 있습니다. 둘 다 바벨론 제국에서부터 그리스도의 왕국이 건설되는 기간까지의 시기에 존재하게 될 제국들의 흥망을 다루고 있습니다. 다니엘서 2장의 경우처럼 7장도 이해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습니다. 다만 7장에는 열 개의 뿔과 열한 번째 뿔이 새로운 양상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산의 다른 한 측면은 8장입니다. 8장의 환상은 두 뿔을 가진 수양(메대와 바사라고 명기되었음)이 서쪽에서 나온 숫염소(헬라라고 밝혔음)에 의해 패망된다는 내용입니다. 본 환상은 헬라(그리스) 제국에서 그치는데 헬라에서 나오는 작은 뿔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8장의 이 작은 뿔7장의 작은 뿔과 일치시켜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8장의 작은 뿔은 네 번째 제국이 아닌, 세 번째 제국의 한 분파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본 장에서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거론되고 있다는 것과, 왜 동일한 용어가 안티오쿠스와 7장에서 예언된 인물에게 함께 사용되었는지를 나중에 공부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넘어야 할 두 번째 산은 9장입니다. 다니엘은 성경을 연구하던 중에 예레미야의 예언을 보고 70년 간 계속될 바벨론 포로 생활이 이제 거의 만기가 되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귀향하기를 바라면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합니다. 그의 기도가 끝나기도 전에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서 유대인들과 정말 귀향할 것이라고 다짐해 줍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을 재건하고 마침내 메시아의 오심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이러한 예고적인 사건들을 놓고 ‘칠십 이레’라는 시간을 정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가브리엘이 지적한 이 기한이 과연 언제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해 동안 이견(異見)들이 분분해 왔습니다. 따라서 9장의 마지막 네 구절이 다니엘서에서 가장 난해한 본문이라고 봅니다. 이 때문에 많은 교인들은 본 장을 아예 공부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본 장의 마지막 구절들을 대할 때에 우리만이 모든 문제들을 다 해결했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넘어야 할 세 번째 산은 10-12장입니다. 이 부분은 다니엘이 노년에 받은 긴 환상을 다루고 있습니다. 10장은 본 환상을 소개하고 다니엘이 어떤 상황에서 환상을 받게 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이 환상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주신 것이었습니다! 연로한 다니엘은 이 환상을 받으면서 초자연적인 힘의 부축을 받아야 했습니다.

 

본 환상은 8장의 환상과 내용이 중복됩니다. , 바사 제국이 헤라 제국으로 넘어간다는 예고인데 그 과정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 주된 내용은 알렉산더 대왕아 흥했다가 망하며 그가 사망함에 따라 동부 지역이 둘로 분할된다는 것이지만 여기서도 본문의 초점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경력과 그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끼치는 잔혹성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초점의 대상을 통해 우리는 그와 같은 어떤 다른 인물을 보게 됩니다. 그는 역사의 종말에 즈음해서 세계 무대의 중심을 차지하고 경건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힐 핍박의 원흉입니다. 우리는 드디어 왜 안티오쿠스와 이 미구의 인물이 대등한 입장에서 언급되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전자는 후자의 전신입니다. 그래서 7장과 8장에서 이 양자를 작은 뿔들’이라고 불렀습니다.

한편 다니엘서는 우리들에게 악의 세력이 얼마나 무섭고 막강한지를 지적하는 것으로 끝맺지 않습니다. 본 서는 악의 거대한 세력이 마지막에 가서는 분명히 꺾일 것이며 하나님께 신실한 자들은 부활과 영원한 영광의 축복을 누릴 것이라고 확언해 줍니다. 본 서는 다니엘에게 영적 생활을 지속하라는 권면하는 말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우리도 다니엘서의 예언적인 장들을 이해한다면 이와 동일한 결론에 이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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