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문이 불타고 성벽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나님께 너무나 죄송하고 유다 백성의 죄 때문에 이렇게 된 것 같아서 마음에서 기도해야 한다는 생각이 불타올랐습니다. 느헤미야는 민족의 죄를 위해서 회개 기도합니다. 자신이 대신 회개해서라도 하나님이 용서해주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과 문을 고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영적으로 죄짓고 있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기도의 사람 느헤미야(느 1:1-11)
느헤미야는 바사에 포로로 잡혀간 하가랴의 아들로서 이방 나라인 바사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는 바사 궁전에서 아닥사스다 왕의 술관원으로 벼슬길에 올랐으며 소위 출세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가슴은 안일하고 태평한 삶보다는 조국 이스라엘과 고향 예루살렘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했습니다. 어느 날 형제 하나니가 고향에 다녀와서 느헤미야에게 조국의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지금 고향엔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은 동포들이 큰 환란과 능욕을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루살렘 성은 부서지고 무너졌으며, 성문은 불에 타버렸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느 1:4). 기도는 사랑의 가장 구체적인 표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아픔과 희생 없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군번 없는 군인으로 나라사랑의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면서 꽃잎처럼 떨어져 간 학도병들의 노랫말처럼 말입니다....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아 아 이슬처럼 죽겠노라!
이렇듯이 사랑의 꽃은 피와 땀과 눈물의 토양에서 피어나는 것입니다. 사랑은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는 기도의 대가를 통해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를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섬기는 아닥사스다 왕에게 나아가서 사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사랑하는 조국과 고향을 위하여 기도의 대가를 지불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먼저 생각나고 짚히는 사람을 통해 봅니다. 그리고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 써보다가 절망적인 순간에 이르러서야 기도나 해볼까 하고 마음을 먹을 때가 많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느헤미야는 먼저 기도로 하나님께 호소하고 나서야 사람들에게 나아갔고, 일을 치렀다는 것을 말입니다. 더 나아가 느헤미야의 기도는 역사적인 현실에 눈을 뜨고, 주변의 소리에 귀를 열고, 나라와 민족을 위한 타는 가슴으로 올려진 것이었습니다. 그 사랑의 불을 안고 금식하면서 기도로 매달리는 느헤미야는 참으로 눈이 열린 자였습니다. 귀가 뚫린 자였습니다.
느헤미야는 기도의 힘과 권세를 잘 알았던 사람입니다. 기도의 능력과 영광을 잘 알았던 사람입니다. 생활의 현장에서 실패를 경험하고 크게 낙심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여쭈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영광을 눈으로 볼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기도와 금식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 9:29).
1. 느헤미야의 신앙고백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운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느 1:5). 느헤미야의 신앙으로 볼 때에 주님을 사랑한다면 당연히 그의 계명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러나 조국 이스라엘은 그의 계명을 버림으로 주님의 사랑을 스스로 파기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주님을 버린 그들은 설 땅을 잃어버린 채 포로와 능욕의 세월을 살아야 했습니다. 민족적인 체념과 절망 앞에서 느헤미야 만은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그는 주님의 사랑은 조건을 넘어선 절대적인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상대적으로 상대하는 자에게는 상대적으로 다가오시지만 절대적으로 매달려 나아오는 자에게는 절대적으로 다가오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느헤미야는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할 수밖에 없는 사랑의 본질에 호소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느헤미야에게 있어서 주님은 간구하여 매달리는 자에게는 긍휼을 베푸시지 않을 수 없는 분이셨습니다.
2. 내 탓이야!
이제 종이 주의 종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이스라엘 자손의 주 앞에 범죄함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 하여 주를 향하여 심히 악을 행하여 주의 종 모세에게 주께서 명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느 1:6-7).
오늘날 조국과 민족의 비참한 현실은 바로 느헤미야의 죄 때문이라고 나서고 있습니다. 나라와 고향이 이 꼴이 된 것은 그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그 무엇 때문이 아니라 내 탓이란 것입니다. 민족적인 죄를 자신의 죄로 받아들여서 회개하는 이 사람 느헤미야는 참으로 큰 사람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 선거 열풍을 타고 갑자기 애국자들이 얼마나 많이 등장하는지 정신이 없습니다. 모두가 다 조국과 민족을 위하는 충정 때문에 일어섰노라고 하지만 왜 이렇게 서글픈 마음이 앞서는지요! 어지러운 신문 기사를 보다 말고 어떤 장로님을 추모해 봅니다. 당신이 조국과 민족을 위해 엎드리신 기도처에 걸어 두셨던 글 겨레여! 조국이여! 안심하라! 내 탓 이요를 외치시면서 겨레와 조국을 가슴에 안았던 큰 사람은 이제 가고 없는데 누가 또 그 바턴을 이어받아 줄까요? 어지러운 정치현실과 경제적인 난관들이 겹쳐지는 조국 대한민국을 끌어안고, 내 탓 이요를 외치는 믿음의 사람이 보고 싶습니다. 이 시대의 느헤미야를 만나고 싶습니다.
3. 자기 기도에 책임을 질 줄 알았던 사람!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여 이 사람 (역자 주: 아닥사스다 왕)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었느니라(느 1:11).
느헤미야의 이 기도는 에스더를 생각나게 합니다.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位)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에스더가 명하여 모르드개에게 회답하되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에 4:14-16).
에스더나 느헤미야는 자신의 세상적인 출세를 한 가문과 한 사람의 영광으로 삼지 않고 민족적인 사명의 장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이미 나라 잃은 백성으로서 귀를 막고, 눈을 가리면 얼마든지 자신은 세상적으로 편하고 즐기면서 살 수 있지만, 자신의 성공은 조국과 민족의 고난을 함께 져야 할 십자가의 자리라고 확신했던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기도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기도하고 간구한 내용은 응답을 받아내고야 말겠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 아뢰었으니 그분께서 긍휼을 베푸실 것을 믿고 죽으면 죽으리라고 왕의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담대히 자신의 조국과 민족을 돌려줄 것을 청구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외쳤던 기도 내용에 책임을 져본 일이 있습니까? 습관적으로 기도하고서 언제 그런 기도를 드렸느냐는 듯이 살아가기 일쑤입니다. 오히려 기억하시고 응답하시는 쪽은 언제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러기에 응답에 대한 감격도 적습니다. 그만큼 생명을 걸고 책임 있는 기도를 드린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나 에스더가 오늘 이 강단에 섰다면 우리 성도들에게 이렇게 외치실 것만 같습니다.
성도들이여! 기도는 말장난이 아닙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생명이 얹혀야 합니다. 기도를 했으면 응답을 받아야 할 것이 아닙니까! 그 기도에 생명을 걸고 책임을 지십시오! 얄팍한 세상적인 출세와 성공을 위한 기도는 이제 그치십시오! 그리고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하고 하나밖에 없는 대한민국과 한민족을 기도하는 저에게 붙여 달라고 청구하십시오!
[창세기 14장 히브리어 강해] 아브람을 영접하는 멜기세덱(창 14: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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