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는 하나님께 서원 기도하여 사무엘을 낳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한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한나는 사무엘을 나실인으로 서원했기 때문에 엘리가 있는 성막에서 제사장 교육을 받도록 했습니다. 사무엘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나실인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나실인으로 바쳐지는 사무엘(삼상 1:19-28)
19절 바야쉐키무 바보케르 바이쉐타하부 리페네 아도나이 바야슈부 바야보우 엘 베탐 하라마타 바예다 엘카나 에트 한나 이쉐토 바이제케레하 아도나이
성 경: [삼상1:19]
주제1: [사무엘의 출생]
주제2: [사무엘의 출생]
라마 - 1절의 '라마다임소빔'을 참조하라.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 자식을 낳는 문제와 관련하여 이 같은 표현이 야곱의 아내 라헬의 경우에 있어서도 사용되었다(창 30:22). 한편 성경에서는 한나 외에도 아들을 낳지 못하여 하나님께 간구한 여인들, 즉 이삭을 낳기까지의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창 15:1-21:7). 요셉과 베냐민을 낳기까지의 야곱의 아내 라헬(창 30:1-24), 삼손을 낳기까지의 마노아의 아내)삿 13:2-25), 그리고 침례 요한을 낳기까지의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눅 1:5-58) 등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모두에게 공통적인 것은 (1) 기도의 응답으로 늦게 출생된 자식들은 모두 부모에게 하나님의 선물로 인정되었다는 점, (2) 또한 그 자식들은 모두 하나님께 특별히 헌신된 신앙의 인물들이 되었다는 점이다. 한편, 그런데 여기서 '생각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자카르'는 '표시하다', '기억하다'란 뜻으로서, 항상 마음속 깊이 새기고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창 8:1; 느 5:19; 시 25:7). 이처럼 가난하고 슬픈 마음을 가진 자의 간절한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께 기억된바 되는 것이다.
20절 바예히 리트쿠포트 하야밈 바타하르 한나 바텔레드 벤 바티크라 에트 쉐모 쉐무엘 키 메아도나이 쉐일르티브
성 경: [삼상1:20]
주제1: [사무엘의 출생]
주제2: [사무엘의 출생]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 보통 아이의 탄생 과정에서 겪은 경험이나 특별한 사건, 또는 바라던 소망 등을 근거로 하여 어머니다 자식의 이름을 짓는 고대 중근동의 풍속에 따라<창 4:1; 29:32-35; 35:18; 눅 1:16>, 한나는 지금 태어난 아들의 이름을 '사무엘'로 지었다. 그런데 '사무엘'(Samule)이란 이름의 의미에 대하여는 여러 견해가 있다. 즉 (1) '사무엘'을 '쉠'('이름'이란 뜻)과 '엘'('하나님'이란 뜻)의 합성어로 보고, 곧 '하나님의 이름'이란 의미를 지닌다고 보는 견해(Gesenius), (2) '사무엘'을 '구하다'(ask for)란 뜻의 '솨알'과 '하나님께'란 뜻의 '메엘'의 합성어로 보고, 곧 '하나님께 구했다'란 의미를 지닌다고 보는 견해(B.D.B), (3) '사무엘'을 '듣다'란 뜻의 '솨마'와 '하나님'이란 뜻의 '엘'이 합성되고 여기서 '아인'이 탈락되어, 곧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란 의미를 지닌다고 보는 견해(Ewald)등이다. 이러한 견해 중 그 어원학상 세 번째의 견해가 가장 타당한데, 두 번째의 견해는 단지 '사무엘'이란 이름을 짓게 된 해석과 배경일뿐이다(Keil Delitzsch, Vol. - ii. P. 25). 그러므로 '사무엘'이란 이름은 문자적으로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란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한나는 사무엘의 출생이 하나님의 기도 응답임을 확인하면서 그 같은 이름을 지었음에 틀림없다. 한편 성경에서는 그와 같은 뜻의 이름을 또 발견할 수 있는데, 즉 '이스마엘'(민 34:20; 대상 7:2), '이스마엘'(창 16:11)등이 그러한 뜻의 이름이다.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 - 이 말은 한나가 아들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라는 의미의 '사무엘'이라고 지은 중요한 배경을 시사해 준다. 왜냐하면 만일 한나가 하나님께 구하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는 들으실 일도 없으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21절 바야알 하이쉬 엘카나 베콜 베토 리제보아흐 라아도나이 에트 제바흐 하야밈 베에트 니드로
성 경: [삼상1:21]
주제1: [사무엘의 출생]
주제2: [구별되는 사무엘]
매년제와 그 서원제를 드리러 올라갈 때에 - '매년제'(the yearly sacrifice)는 이스라엘 민족이 해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지킨 희생 제사의 일종으로서, 가족 전부가 참여하는 제사였다(2:19; 20:6). 그러므로 이때는 각종 화목 제물들과 한 해의 소산물 중 가장 좋은 것들, 그리고 여호와의 성소에 바칠 십일조 등을 가지고 중앙 성소로 올라가야 했다(신 12:17,18; Hengstenberg). 그리고 '서원제'(誓願祭)는 하나님 앞에 올린 서원(vow)을 효력이 있도록 확증하기 위하여 드리는 제사이다. 한편 모세 율법에 따르면 비록 한나가 사무엘을 평생 하나님 전에 바치겠다고 서원하였다 할지라도(11절), 그녀의 남편 엘가나는 그 서원을 무효화시킬 수도 있었다<민 30:6-8>. 그러나 엘가나는 그 서원을 기꺼이 인정하였고, 그런 뜻에서 그는 하나님께 서원제를 드리기로 한 것이다.
22절 베한나 로 알라타 키 오므라 레이솨흐 아드 이가멜 하나아르 바하비오티브 베니르아 에트 페네 아도나이 베야샤브 솸 아드 올람
성 경: [삼상1:22]
주제1: [사무엘의 출생]
주제2: [구별되는 사무엘]
한나는 올라가지 아니하고 -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치기로 서원한 한나는 그 서원을 성실히 지킬 양으로,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고 싶은 마음을 일단 자제하였다.
아이를 젖 떼거든...여호와 앞에 뵈게 하고 - 아이가 하나님의 전에 평생 바쳐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양육이 된 후에야 가능했다. 대개 중근동 지역에서는 이유(離乳) 시기를 타 지역보다 훨씬 긴 약 3년 정도로 잡았다(참조, 마카비 짜서 7:27). 그러므로 이 기간이 지나면 사무엘도 어느 정도 자라서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2:22>에게 맡겨져 육체적으로 양육될 수 있었고 또한 제사장에 의하여 영적으로도 훈련될 수 있었다. 한편, 이와 관련하여 슈미트(Schmidt) 같은 학자는 3년 정도 된 아이는 엘리 제사장에게 오히려 부담만 될 뿐이라는 가정하에서 아이가 젖 뗀 후 13살까지는 어머니의 손에서 양육되었을 것이란 추측을 한다. 그러나 이는 벌로 타당성이 없는 견해이다(Keil, Fay). 왜냐하면 그처럼 서원하여 성소에 바쳐진 어린아이는 제사장이 직접 양육하는 것이 아니라, '회막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에 의해 양육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Gerlach).
거기 영영히 있게 하리이다 - 사무엘은 레위인이므로 당연히 성소에서 봉사를 할 수 있었다<1절>. 그렇지만 일반적 원리대로 한다면, 그의 봉사 가능 기간은 30세에서 50세까지인 것이다<민 4:30>. 그러나 어머니 한나의 서원에 따라 사무엘은 '평생'(11절) 하나님 앞에서 봉사할 수 있게 되었다. 11절 주석 참조.
23절 바요메르 라흐 엘카나 이솨흐 아시 하토브 베에나이크 쉐비 아드 가멜레크 오토 아크 야켐 아도나이 에트 데바로 바테쎄브 하이솨 바테네크 에트 베나흐 아드 가멜라흐 오토
성 경: [삼상1:23]
주제1: [사무엘의 출생]
주제2: [구별되는 사무엘]
젖떼기까지 - 일반적으로 히브리 어머니들이 자식의 젖을 떼는 시기는 아이가 3살 되는 때이다(The Second Book of the Maccabess 7:27). 그러나 유대 학자들 중 라시(Rashi)는 22개월로, 그리고 킴치(Kimshi)는 24개월로 보기도 한다(J.P. Lange, Commentary on the Holy Scripture).
여호와께서...이루시기를 원하노라 - 17절에서 엘리 제사장이 한나에게 한 말처럼, 엘가나의 이 말 또한 한나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남편 엘가나의 간절한 마음을 나타낼 뿐이다. 따라서 혹자(Rabbins)의 생각처럼 엘가나의 이 말을, 그가 사무엘의 출생과 봉사에 관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어떤 직접적인 계시를 받고 한나에게 예언한 말로 이해하는 것은 무리이다(Keil Delitzsch).
24절 바타알레후 임마흐 카아쎄르 게말라투 베파림 쉘로솨 베에파 아하트 케마흐 베네벨 야인 바테비에후 베이트 아도나이 쉴로 베하나아르 나아르
25절 바이쉐하투 에트 하파르 바야비우 에트 하 나아르 엘 엘리
성 경: [삼상1:24,25]
주제1: [사무엘의 출생]
주제2: [구별되는 사무엘]
수소 셋 - 25절에는 '수소'(파르)가 단수 형태로 나타나 있다. 따라서 이에 근거하여 70인 역(LXX)과 일부 역본들(Syriac, Arabic Version)은 여기 '수소 셋'을 '삼 년 된 수소'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번역은 옳지 못하다(Thenius). 왜냐하면 25절의 기록은 단순히 아이를 위하여 사용된 제물이 수소 한 마리뿐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세 마리의 수소 중 한 마리는 아이를 주께 바쳐 평생 성전에서 봉사케 하는 의식과 관계된 특별 번제용이며, 또 하나는 엘가나의 가족이 매년 드리던 매년제의 제물이다. 그리고 나머지 한 마리는 서원을 이행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기 위한 감사의 제물임이 분명하다(Pulpit Commentary).
가루 한 에바 - '에바'(Ephah)는 구약 시대에 고체의 부피를 측정하는 단위로서, 에바는 약 23리터가량이다. 그런데 한 마리의 수소를 번제로 바칠 경우 밀가루 한 에바의 십 분의 삼(3/10)이 필요하다는 민수기 15:8-10의 규정에 비추어 볼 때, 여기 '가루 한 에바'는 수소 세 마리를 제물로 바칠 때 사용되는 밀가루의 분량임이 분명하다(Keil, Smith).
26절 바토메르 비 아도니 헤 나페쉐카 아도니 아니 하이솨 하니체베트 임메카 바제 레히트팔렐 엘 아도나이
성 경: [삼상1:26]
주제1: [사무엘의 출생]
주제2: [구별되는 사무엘]
당신의 사심으로 맹세하나이다 - 이 같은 표현은 사무엘서와 열왕기서에서 주로 발견되는 독특한 맹세의 방식이다(14:39; 삼하 14:19; 왕상 1:29; 왕하 2:2). 그런데 이러한 식의 맹세는 자신이 지금 언급하는 말의 진실성을 강력히 호소하고, 또한 그 말이 상대에게 그대로 받아들여지기를 간절히 소원할 때 사용되었다.
서서...기도하던 여자라 - 선 자세로 기도를 드리는 것은 그 당시의 보편적 습관이었다(창 18:22; 19:27). 그러나 헌신을 깊이 다짐할 때나 진실한 기도를 드릴 경우 종종 무릎을 꿇거나 몸을 땅에 엎드려 기도를 하기도 하였다(왕상 8:54; 대하 6:13 ; 스 9:5). 그런데 여기서 한나의 이 말은 반드시 그녀가 선 자세로 기도를 드렸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제사장이 보던 앞에서 열심히 기도를 드렸다는 사실, 그 자체를 언급하는 말일뿐이다.
27절 엘 하나아르 하제 히트팔랄레티 바이텐 아도나이 리 에트 쉐엘라티 아쎄르 솨알르티 메임모
성 경: [삼상1:27]
주제1: [사무엘의 출생]
주제2: [구별되는 사무엘]
여호와께서...허락하신지라 - 여기서 한나는 사무엘의 출생이 전적으로 자신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요, 또한 은총의 선물임을 고백하고 있다. 사실 오랜 기간 동안 무자(無子)로 인해 당한 온갖 고통과 수모를 생각할 때, 어렵게 얻은 자식을 여호와의 전에 바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나는 그 아들이 '하나님의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기에, 자신의 서원을 변치 않고 그 아들을 여호와께 도로 바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이러한 한나의 신앙을 귀하게 보신 하나님께서는 한나의 그 정성과 신앙을 기억하시고, 그녀에게 사무엘 외에 세 아들과 두 딸을 더 허락해 주셨다(2:21).
28절 베감 아노키 히쉐일르티후 라아도나이 콜 하야밈 아쎄르 하야 후 솨울 라아도나이 바이쉐타후 솸 라아도나이
성 경: [삼상1:28]
주제1: [사무엘의 출생]
주제2: [구별되는 사무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 한나의 이 말은 하나님의 사랑에 감복한 자만이 할 수 있는 결단이다. 여기서 한나가 하나님께 사무엘을 드리겠다고 한 것은 일시적인 위탁이 아닌 영원히 양도하겠다는 뜻이다. 실로 그녀는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다는 의식을 갖고 있었고(욥 1:21), 아울러 하나님께 대한 서원의 존엄성을 깨닫고 있었으므로(시 15:4) 모성애를 초월한 헌신적 결단을 살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여기서 '드리나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솨울'은 직역하면 '요구되다', '구하여지다'란 뜻이다. 따라서 이 말의 의미는 '여호와께서 자신의 요구를 듣고 그 아이를 두셨으므로, 자신도 하나님의 요구에 응하여 그 아이를 바친다'는 뜻이다(Fay, Calvin).
그 아이는...경배하니라 - 문자적으로는 '그가 경배했다'(이쉬타후)란 뜻이고, '그 아이'란 말은 없다. 그런데 여기서 '그'(he)라는 3인칭 단수 대명사를 누구로 보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한글 개역 성경처럼 '그'를 '사무엘'로 볼 경우, 당시 3살짜리 사무엘이 경배했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인 듯하다. 그래서 어떤 사본 및 역본들(벌겟역, 수리아역, 아랍역)은 이 말을 복수 형태의 '그들'(이쉬타하우)로 번역하여, 곧 '엘가나와 그의 가족이 경배했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이처럼 히브리 사본을 고치는 것 역시 무리이다. 그러므로 가장 타당한 해석은 '그'를 '엘가나'로 보는 것이다. 즉 한나가 제사장에게 아들을 바쳤을 때 남편 엘가나는 아직 성소에서 여호와께 경배하고 있었음에 틀림이 없기 때문에, '엘가나는 경배하니라'라고 번역함이 타당할 듯하다(Keil Delitzsch, Vol -ii.p. 28). 더욱이 다음 장에서 곧이어 한나의 찬양(2:1-10)이 언급되는 것은 아직 엘가나와 한나가 모두 여호와의 성소를 떠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룻기 1장 히브리어 성경 강해] 룻이 나오미에게 간청함(룻 1: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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