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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 주일설교말씀] 예수님의 산상 수훈 교훈의 말씀(마태 5:38-42)

복음의 능력 2021. 5. 4.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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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어버이 주일설교말씀 중에서 예수님의 산상 수훈 교훈의 말씀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을 통해서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눈에는 눈으로 갚으라는 율법의 말씀이 있지만 그대로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은혜로 대하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이 하기에는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라고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속옷을 달라하면 겉옷까지도 주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대해 주라는 말씀입니다. 이 시간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삶이 있기를 바랍니다.

제목: 예수님의 산상 수훈 교훈의 말씀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마태 5:38-42

 

요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마 5:39)

 

주제: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자

 

오늘은 어버이 주일(Parents Lord’s Day)입니다. 미국에서는 5월 둘째 주일을 어머니 날(Mother’s Day)로 지키고 있고, 6월 셋째 주일은 아버지 날(Father’s Day)로 지킵니다. 어떤 아이에게는 어머니의 인상이 좋지 않을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아이에게는 아버지의 인상이 안 좋은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버이 주일로 지키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의 날은 버지니아주의 자바 부인의 어머니를 추모하는 데에서 기인합니다. 어머니는 평생 주일학교 교사였습니다. 그분은 따님에게 신앙의 유산을 전수했더니, 따님이 효도를 하여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카네이션을 두는 것이 관례가 되어 오늘은 어버이께 카네이션을 달아드립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날은 바로 어머니의 신앙의 유산을 감사하며 자신도 신앙의 유산을 자녀들에게 남겨주는 것을 다짐하는 날입니다.

 

어머니의 날을 맞이하면서 생각하는 성경말씀은 바로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믿음입니다. 사무엘 상 1-2장을 통해 보니 한나는 (1) 믿음의 어머니였습니다. 그는 반드시 아들을 얻게 될 것을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었습니다. 꼭 하나님께서 주실 줄을 100% 믿었습니다 (2) 기도의 어머니였습니다. 주의 성소를 나아갈 때마다 간절히 꾸준히 확실히 기도하였습니다. 엘리의 눈에는 술 취한 자처럼 보일 정도로 기도를 하였습니다. 결코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였더니 기도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3) 진실한 어머니였습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서원한 대로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고 나실인처럼 양육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약속한 것을 신실하게 지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매년제를 드리러 갈 때마다 아들이 입을 겉옷을 지어 그에게 주었습니다. 어린 자신이 부모와 떨어져 있어 얼마나 집에 가고 싶었으며 보고 싶겠습니까? 이런 자신에게 신신당부하면서 엘리 제사장을 잘 수종 하고 하나님의 일에 전념을 다 하라고 가르쳤을 것입니다. 이런 엘가나와 한나의 모습을 보며 엘리 제사장은 축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게 후사를 주사 이가 여호와께 간구하여 얻어드린 아들을 대신하여 하시기를 원하노라” (삼상 2:20) 기도하였더니 그 후 이 가정에 세 아들과 두 딸을 허락하셨습니다(사무엘까지 포함하면 4남 2녀).

 

참으로 훌륭한 어머니였습니다. 여러분들은 자녀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오래 기억되기를 원합니까? 엄마, 아빠 생각하면 언제나 기도하는 모습, 열심히 성경읽고 가르치는 모습, 열심히 예배드리는 모습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디모데는 믿음의 어머니 유니게와 외조모(외할머니) 로이스를 모신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딤후 1:5). 어머니로부터 성경을 배우고 자랐습니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5)

어버이들은 먼저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며 성경을 가르치고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엡 6:4)

 

이런 본이 되는 모습을 보고 자녀들이 자랄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그래서 우리 자녀들을 효자, 효녀로 만듭시다. 진정한 효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가르치고, 양육하시는 부모님을 보고 주안에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엡 6:1-3)

 

찬송가 199장(통 234장)의 가사에 보니 “어머님이 읽으며 눈물 많이 흘린 것 지금까지 내가 기억합니다”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이런 모습을 평생토록 기억하게 해 주어야 합니다. 부모님께서 읽어주시던 성경말씀 잊지 않고 기억하도록 해야 합니다.

 

199장 찬송은 미국 알라바마 주 탈라시 출생으로 미국의 감리교 부흥사요 가수로 활약하였던 데이비스 틸만 (C.D.Tillman,1861-1943) 목사님께서 작곡하고 19 세기말 부흥사로 활약하며 주로 설교를 담당하던 윌리엄즈(M.B.Williams) 목사님께서 작시하였습니다. 작시 동기는 윌리엄즈 목사님께서 ‘성경’에 관하여 설교를 한 후 이 주제에 맞추어 부를 찬송가를 찾던 중 적당한 곡이 없어 고민 속에 동료 틸만 목사에게 성경의 의미를 잘 살릴 수 있는 곡을 하나만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자 오히려 틸만 목사는 그러지 말고 윌리엄즈 목사님이 직접 작시하십시오, 그러면 내가 곡을 붙여드리겠습니다. 하는 도전을 받았답니다. 기도하던 중 「자신이 들고 있는 성경책이 어머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자신이 이렇게 목사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내가 어렸을 당시 어머님이 나에게 성경을 자주 읽어주셨기 때문이었지!…, 어머니께서는 내가 답답해하며 짜증을 부릴 때마다 당신의 무릎 위에 나를 앉히어 놓고서는 그 옛날 용맹스럽던 다니엘의 경험과 다윗 왕의 역사와 불의 선지자 엘리야의 권능과 예수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뜻에 대하여 많은 말씀들을 해 주셨지!… 그때 그 말씀이 나를 이렇게 만들어 주었던 거야!」하는 생각을 통해 어머님의 손 때 묻은 이 성경책을 감사하며 성경의 소중성과 말씀에 대한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을 호소하며 우리 모두 말씀으로 하나 되는 귀한 가정을 만들자는 뜻으로 이 찬송 시를 만들었답니다.

 

1절,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해어졌으나 어머님의 무릎 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말 그때 일을 지금도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후렴) 귀하고 귀하다 우리 어머니가 들려주시던 재미있게 듣던 말

이 책 중에 있으니 이 성경 심히 사랑합니다.

 

2절, 옛날 용맹스럽던 다니엘의 경험과 유대 임금 다윗왕이 역사와

주의 선지 엘리야 바람타고 하늘에 올라가던 일을 기억합니다

 

3절, 예수 세상계실 때 많은 고난 당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임 당한 일,

어머니가 읽으며 눈물 많이 흘린 것 지금까지 내가 기억합니다.

 

4절, 그때 일은 지나고 나의 눈에 환하오 어머니의 말씀 기억하면서

나도 시시때때로 성경말씀 읽으며 주의 뜻을 따라 살려합니다

 

1절, 어머님의 무릎 위에 앉아서 들려주시던 그 말씀을 내가 다시 기억합니다.

 

자녀를 향한 요즈음 신세대의 어머님들의 교육태도를 보면 심히 안타깝고 부끄러운 면이 많습니다. 그 이유는 아이의 교육을 돈으로서 해결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려서부터 비싼 돈을 드려서 좋은 학원이나 과외를 시키면 그 아이가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치맛바람을 세게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학교 교육은 학생들의 인성교육을 포기했습니다. 그 이유는 가정교육이 실패하였기 때문에 이미 잘못 형성된 아이들의 습관과 태도, 그리고 정신을 뒤늦게 학교 교육이 회복시키려 하지만 그때는 늦어버려 아무것도 손쓸 수 없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쉽게 말해 모세가 그 당시 최고의 지혜를 자랑하는 이집트의 교육을 왕자의 위치에서 30여 년을 받았다 해도 모세가 어머니 요게벳으로부터 전수받은 선민 교육을 바꾸어놓지 못했습니다.

 

이외에도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 마리아, 디모데의 어머니 유니게 등은 자녀를 신앙으로 훌륭하게 키운 어머님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부모들은 집에서는 아무것도 지도하지 않고 다만 학교에다만 너무 많은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마치 책임전가와 같은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한 가지 꼭 지적하고 싶은 것은 아이가 학교에 진학하기 전 아동교육이 다시 말해 부모님의 인성교육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자녀를 많이 낳아야 고작 2명이나 3명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니 너무 아이들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아이들이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다 보니까 공부는 뒷전에 가있고 아이들은 자기가 최고의 사람들이 되어서 왕 노릇하고 있는데 학교에 간다고 해서 그 못된 습관과 태도가 하루아침에 바뀔 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바른 인격을 갖출 수 있는 성경교육이 필요합니다.

 

유대인들은 아기가 태어나면서부터 쉐마 즉 성경교육을 시작한다고 합니다(신 6:4-9). 그리고 아이가 5세가 되면 부모를 통해 율법 교육에 입문토록 지도하고, 6세에 이르면 랍비의 지도를 받아 정식으로 ‘율법의 아들’이 되도록 교육시킨다고 합니다. 이렇게 어려서부터 율법을 배워 그 마음 판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긴 유대 아이들은 비록 자기 이름은 잊어버릴지언정 율법은 잊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만큼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율법은 생명처럼 여겨졌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정도 말씀 교육을 자녀들 대대로 전수시킵니다.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창 18:18-19) 우리도 신앙의 유산을 물러주는 존경받는 부모님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지난 주일에 이어 산상수훈을 계속 강해합니다. 그간 묵상한 말씀을 복습한다면,

 

첫째, 마태 5:21-26에서 살인의 동기가 되는 미움, 욕설, 폭력을 넘어서서 형제를 내 몸처럼 사랑하자

 

둘째, 마 5:27-32를 통해 간음의 동기가 되는 음욕을 극복하고 가정을 귀중하게 지키며 배우자를 사랑하자

 

셋째, 마 5:33-37을 통해 맹세, 서원을 함부로 하지 말고 하나님과 이웃에 정직하여 사랑을 실천하자 였습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에서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자는 말씀입니다.

옛사람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출 21:24, 레 24:20, 신 19:21)하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고 시작합니다(마 5:38) 고대 근동 법에서는 이를 동해 보상법(同害報償法 lex talionis)라고 합니다. 내가 부상되고 손해 된 것을 상대방에게 그대로 행하여 보복하며 복수를 갚는다는 정신입니다. 출 21:23-25에 보니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라고 했습니다. 신명기 19:21에서는 “네 눈이 긍휼히 보지 말라.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니라”라고 했습니다. 또 레위기 24:19-20에서는 “사람이 만일 그 이웃을 상하였으면 그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할 것이니 파상은 파상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을지라. 남에게 손상을 입힌 대로 그에게 행할 것이니”라고 한 말씀이 모두 동해 보상법입니다. 오늘날 사우디 아라비아에 가보면 이슬람 종교법에도 동해 보상법이 있습니다. 눈을 다치게 하면 상대방의 눈을 상하게 하고,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 생명은 생명으로 보복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새롭게 해석하십니다.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thou resist not evil)고 하시면서 세 가지 실례를 들어주십니다.

 

(1)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2)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3)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4)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먼저 이 말씀은 악한 자를 대적하면 더욱 해악을 당하게 되니 지혜롭게 상대방에게 무안을 주거나 다시는 나쁜 행동을 못하도록 적극적으로 대처하라는 가르침입니다.

 

(2) 로마시대에 주인이나 상관이 종이나 부하를 무시하거나 경멸할 때에 오른손 등으로 상대방의 오른편 뺨을 쳤습니다. 이런 경우에 얼른 왼편을 돌려서, 오른손으로 때려달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무시하지 말고 제대로 때리라는 것입니다. 나를 치는 사람이 오른손으로 제대로 때린다면 내 왼뺨이 맞게 됩니다.

 

맞는 자가 승리합니다. 남을 때린 자는 발을 뻗고 자지 못해도, 맞은 자는 두 발을 쭉 뻗고 잠을 잘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로마 군병들에게 맞고 희롱을 당하셨으나 주님의 마음은 평안하셨습니다.

 

“지키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희롱하고 때리며 그의 눈을 가리우고 물어 가로되 선지자 노릇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고” (눅 22:64)

 

예수님의 십자가 정신은 대신 맞고 상처남으로 우리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분은 진실로 우리의 고난을 지시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셨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분은 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분의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분의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분께서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 53:4-5)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수욕과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사 50:6)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분께서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분의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분께 돌아왔느니라” (벧전 2:20-25)

 

진실된 대언자(선지자)는 거짓 대언자에게 뺨을 맞습니다. 그러나 거짓 대언자는 그날 죽고 맙니다.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가 가까이 와서 미가야의 뺨을 치며 이르되 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어디로 말미암아 가서 네게 말씀 하더냐?” (왕상 22:24) 의인 욥에게 친구들 뺨을 칩니다. “무리들은 나(욥)를 향하여 입을 벌리며 나를 천대하여 뺨을 치며 함께 모여 나를 대적하는구나” (욥 16:10)

 

지금은 맞으나 하나님께서 원수를 반드시 갚아 주십니다.

 

“때리는 자에게 뺨을 향하여 수욕으로 배불릴지어다”(애 3:30)

 

“딸 군대여 너는 떼를 모을지어다 그들이 우리를 에워쌌으니 막대기로 이스라엘 재판자의 뺨을 치리로다” (미 5:1)

 

(2) 또 재판관이 송사하여 가난한 자, 힘없는 자를 억울하게 하여 속옷을 빼앗기게 될 경우 그 자리에서 겉옷까지 벗음으로 나체를 보이게 됩니다. 로마 법정에서 피고인이 억울하여 나체를 재판관에게 보이면 로마법에 그 판사의 옷을 벗게 되어 있습니다. 잘못된 판사에게 큰 모욕과 수치를 돌려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는 불의의 재판이 로마 법정에서 사라지도록 하라는 뜻이랍니다.

 

(3) 또 당시 로마 군병들이 행군하는 일이 많았는데 힘드니까 지나가는 행인(민간인)에게 억지로 완전군장을 지게 하여 1마일[오리] 정도 가게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군법이 1마일 정도까지는 다른 사람이 군장을 대신 져도 되지만, 그 이상을 넘으면 그 군인은 군법에 의해 처벌받게 되어있습니다. 이런 못된 군인에게 2마일[십리]을 군장을 지고 가게 함으로 그 군인은 군법 회의에 회부되어 영장에서 고통받게 되는데, 이런 권력 횡포를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하라는 뜻이랍니다.

 

(4)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가난한 자, 없는 자, 소외된 자가 생필품이 필요하여 요구를 할 때는 너그럽게 후히 주고, 또 그런 어려운 자들이 꾸고자 할 때는 고리대금 하지 말고 생활할 수 있도록 꾸어 주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눅 6:38)입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이 부분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네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 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금하지 말라 무릇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하지 말며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눅 6:27-31) 고 하십니다.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롬 12:17-19)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선으로 악을 이깁시다. 모든 원수는 하나님께서 친히 갚아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너는 악을 갚겠다 말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다리라 그가 너를 구원하시리라” (잠 20:22)

 

“너는 그가 내게 행함 같이 나도 그에게 행하여 그 행한 대로 갚겠다 말하지 말지니라” (잠 24:29)

“내가 언제 나를 미워하는 자의 멸망을 기뻐하였으며 그의 재앙 만남을 인하여 기운을 뽐내었던가? 실상은 내가 그의 죽기를 구하는 말로 저주하여 내 입으로 범죄케 아니하였느니라. 내 장막 사람의 말이 주인의 고기에 배부르지 않은 자가 어디 있느뇨? 하지 아니하였었는가?” (욥 31:29-31)

 

“너희가 피차 송사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고전 6:7)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살전 5:15)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 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히 12:4)

 

“너희가 옳은 자를 정죄하였도다 또 죽였도다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약 5:6)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하심이라" (벧전 3: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역시 사랑뿐입니다. 우리 교회는 예수님을 본받고 닮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배가 회복되면 모든 것이 회복됩니다. 사랑으로 정의를 세우고 사랑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가정도 크리스천의 윤리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도 하나님께서 직접 통치하시며 다스려지는 하늘의 왕국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정의와 진리, 사랑과 용서가 결국 승리합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믿음 생활을 계속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대로 실천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 산상수훈 애통하는 자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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