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욧 Kerioth
1. 지명
1) 명칭 : 그리욧(히- קריות(케리요트), 영-Kerioth)라고 불리운다.
2) 의미 : '성읍들'이란 의미이다.
3) 지명의 유래와 위치 : 시대마다 그 지역의 위치에 조금 차이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① 유다의 남쪽 끝, 즉 에돔과 국경에 근접한 성읍으로서 유다 지파의 성읍이었다(수 15:25). 성경에서 그리욧 헤스론(Kerioth Hezron; 헤스론의 성읍들)과 동일한 지명으로 불려지는데, 이곳은 유다 지경의 네겝 땅에 있는 성읍으로서 마온(Maon)의 남쪽 7Km에 있다.
② 한편 이 지명은 하솔(Hazor)이라고도 불리는데(수 15:25), 아랏에서 북쪽으로 13Km, 사해에서 서쪽으로 25Km에 위치하는 오늘날의 키르벳 엘 카르야테인(Khir- bct el-Qaryatein)으로 추정된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 가룟 유다는 가룟(Iscariot)이란 이름을 볼 때 이 지역 출신으로 보인다. 이곳은 헤브론에서 남쪽으로 16Km 떨어진 엘 쿠레이테인(el-Kureitein)의 폐허 지역으로 알려졌다.
③ 모압의 성읍 중 하나(렘 48:24)로도 알려졌는데, 이 성읍은 예레미야나 아모스가 하나님의 심판이 내릴 것이라고 계시받은 성읍으로서 요새화되었다(렘 48:41). 이곳에는 궁궐(암 2:2)과 그모스 신전 등이 있었다. 오늘날의 살리야(Saliya)로 추정되는데, 이곳은 사해 동쪽이나 아르논 강 북쪽에서 40Km, 아로엘 동쪽 10Km 지점에 있다.
2. 성경적 배경과 역사적 변천
1) 출애굽시대 : 고대 근동의 역사학자들은 주전 14,15세기경,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당시에 북부 시리아를 넘어 남부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 온 거대한 이주의 한 물결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당시 모압의 북부 영토를 정복하고 다스리던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을 그 이주 계열의 한 왕으로 본다(민 21:26-30).
2) 사사시대 : 모압 왕 에글론이 여리고를 정복하고 이스라엘을 압박하였는데, 에훗이 그를 암살하고 이스라엘이 독립하기까지 18년 동안 이스라엘은 모압에 조공을 바쳤다(삿 3:12-20).
3) 통일왕국시대 : 초대 왕 사울은 암몬과 에돔뿐만 아니라 모압까지 징벌하여 요단 동편 땅을 모두 장악한다(삼상 14:47).
4) 분열 왕국 시대 : 왕국이 분열하면서 요단 동편의 영토에 관하여 자연스럽게 남쪽 유다는 남쪽 에돔을, 북부 이스라엘은 북부의 모압과 암몬을 관장한다.
3. 고고학적 발굴
1) 1187년 살라딘(Saladin)이 시작하고 1932년 매더(AE Mader)와 쾨펠(R Koppel)에서 거의 실제화된 발굴 지역, 게네사렛 평지, 즉 오늘날의 키르벳 엘 미녜(Khirbet el-Minyeh)에서 후기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항아리를 발견하고 이곳이 매우 발전된 도시였음을 알게 되었다.
2) 발굴된 긴네렛(Kinnereth)은 텔 엘 오레이메(Tell el-Oreime) 도시로 해변을 따라 개발되기까지는 고대의 해변 길(the ancient Way of the Sea;사 9:1; 히 8:23)로서 스불론과 납달리, 즉 열방의 갈릴리를 통과하는 길이었지만 알려지지 않았었다.
3) 이 길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하여 다메섹을 거쳐 요단 강을 건너고 하솔(그리욧)을 통하여 가버나움에 이르는 길이다.
4) 1961년 케년(KM Kenyon)이 예루살렘의 남동쪽 언덕에 있는 기혼 샘을 발굴하면서 므깃도와 아골, 그리고 게셀은 주전 10-9세기에 있던 중요한 수로로 알려졌는데, 기혼 샘은 아마 다윗(주전 1000년)이 여부스 족속을 정복한 때에 개발된 것으로 보인다.
4. 과거 및 현재의 모습
1) 지형과 기후
① 유다의 성읍이라면, 북쪽은 브엘세바, 남쪽은 시나이, 동쪽은 아라바, 서쪽은 지중해이다. 이 지역은 신광야, 바란 광야, 가데스 바네아 지역과 함께 면적 12,000Km 로서 전 국토의 60%에 해당하며, 이스라엘 땅에서 요새와 같은 산지를 오르기 전에 남부 완충 지대의 구실을 하는 네게브 지역에 포함된다. 아랏은 575m이며, 이곳은 준사막 지대(Semi-arid)인데, 연평균 강우량은 150mm 정도 되고 토양은 황토흙(Loess)이다. 연평균 기온은 섭씨 27℃ 정도이다.
② 모압의 성읍이라면, 동쪽은 사해, 남쪽은 세렛 강, 서쪽은 사막지대에며, 북쪽은 일반적으로는 아르논 강이다. 그러나 모압의 에글론 왕 시대에는 여리고까지 모압 영토에 합병되었다. 요새를 이루는 산지는 주로 해발 900m이고 사해의 깊이를 고려하면 계곡 아래로부터 실제로는 약 1300m나 된다.
2) 거주민
① 유다의 성읍이라면 이곳에 사람이 살기는 부적합하지만 고대의 아말렉, 주전 4-3세기부터 나바티안 족속의 거주지로 사용되었다.
② 그들은 이 지역에서 대상 무역 활동뿐만 아니라 농사까지 지으면서 정착했다. 이들은 대상의 통행로를 따라 도시를 건축했는데, 로마 시대와 비잔틴 시대에까지 번창하다가 지금은 모슬렘이 정착하고 있다.
③ 모압의 성읍이라면 모압 족속의 조상은 모압 땅의 남쪽 소알 근처의 산에서 소돔 고모라의 멸망을 피하였던 롯과 롯의 큰딸과의 관계에서 태어난 데 그 기원이 있다(창 19장).
④ 마소라 사본에는 그냥 '모압'이나 70인 역과 탈굼에서는 '나의 아버지로부터'로 되어 있다.
⑤ 한편 모압 족속의 기원을 민수기 24:17에 근거하여 '셋의 자손'이라는 명칭에 두기도 하는데 개역 성경에는 '소동하는 자식들'로 번역되어 있다.
⑥ M.Noth는 모압과 암몬이 동일한 조상 롯으로부터 기원했으나 이스라엘의 적대적 관계로서 두 민족 간의 친밀함을 보여준다(신 23:3; 느 13:1)는 데 근거하여 청동기 시대 말엽에서부터 철기시대의 초기에 팔레스타인에 이주한 '아랍 족속 계열의 이민자들'로서 암몬 족속과 동일계임을 주장한다.
⑦ 신명기 2장에는 모압 땅에는 '에밈'이라는 엠 족속(the Emites)이 그리고 암몬 땅에는 '삼숨밈'이라는 르바임 족속(the Rephaites)이 살고 있었다고 기록한다.
5. 산업
1) 유다의 성읍이라면 이곳은 비옥한 경작지가 형성되어 있었겠지만 하나님께서 우로를 적절히 내려주시지 않으면 결코 아무것도 경작할 수 없는 땅이 되고 마는데, 조상들이 종종 이곳에 우거 하다가 블레셋 평야나 애굽으로 내려간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밀과 보리의 소산지이다.
2) 모압의 성읍이라면 고산 지대로서 겨울철에 풍부한 습기로 인해 포도와 농사에도 적절할 뿐만 아니라 좋은 목초지를 형성하여 목축에도 적당한 곳이다.
[요한복음 주일설교말씀] 마리아의 감사 행위(요 12:1-8, 막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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