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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2장 설교말씀] 생명수를 버린 사람(렘2:13)

복음의 능력 2020. 9. 25.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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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오늘은 예레미야 2장 설교말씀 중에서 생명수를 버린 사람에 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제목: 생명수를 버린 사람(말씀 구원 복음)

성경: 렘 2:13

 

 

현대사회와 현대인의 모습, 그리고 또 하나의 현대인인 나 자신의 지나온 날들을 생각하면서 이 말씀을 읽을 때 얼마나 절실하고 절박한 지 이를 데 없다. 현대인은 두 가지 자살행위를 범한 것이다. 한 가지는, 오늘의 인류는 생명수의 근원을 단절시켜 놓고 독자적으로 생존하려고 바둥거려 왔으나 생명 수혈이 막혀서 반신불수의 운명을 자초하게 된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인간이 누적된 성취감과 확증된 가능성으로 창조의 대행자가 되려는 데까지 이르렀으나 자기가 이루어놓은 거대한 형상 속에 도취해버린 현대인은 그 밑바닥에 뚫려있는 구멍을 보지 못한 채 영양실조로 시들어 말라가고 있는 것이다. 황폐한 웅덩이, 그 속은 텅텅 비어 있는데도 허위의식으로 풍요해진 현대문명은 죽음에 당면해 가고 있는 자기의 실상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생수의 근원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게 된 이유를 조용히 반성해 보게 된다.

 

 

첫째는 ''의 위치 확인에서 잘못이 시작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내 백성'이라고 호칭하신다. 그런데 우리는 '나 자신'으로 인식하고 있. 아이덴티티의 상실이다. 우리는 여호와를 버리고 스스로 생명수의 근원을 단절해 버린 패역자들이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관계성은 내 백성의 관계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보시는 나의 존재 확인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관계가 귀찮게 여겨진 것이다. 독립된 인간 실존 안에서의 자유자는 휴머니즘의 틀 속에 안주하기를 바라지, 하나님과의 관계성 속에서 자기의 위치를 확인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것은 역겨운 반 인간주의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 속에 얼마나 이런 생각을 가져왔는가? 그것이 으뜸가는 악이요, 죄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온 불순종의 자식들이다.

 

 

둘째로 이러한 인간 존재의 확인이 빗나간 데서 우리는 신을 추상화시킨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인간이 만들어 놓은 문화 속에 상징화시키는 큰 악을 범한 것이다. 크리스천인 나도 학문 속에 추상화된 하나님을 조작해낸 죄를 범한 자이다. 우리는 지금도 얼마나 하나님에 '관해서' 믿고 있는가? 현대인은 얼마나 하나님을 떠날 수도 있고 만날 수도 있는 편리한 추상적 신으로 실용화시키고 있는가? 그것이 죄인 줄을 미처 모르

고 살아온 우리들이다.

 

 

현대의 이데올로기 화한 기독교, 적당히 유토피아화 시킨 교리, 교화 제도, 문화인, 생명 없는 크리스천 대중 등 이런 현상들에서 우리는 역사를 운행하시는 인격적인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고, 생명의 감격도 무디어져 가고 있다.

 

 

셋째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의 백성 된 나의 존재를 확인하지 못하고 추상화시킨 신으로 생각하여온 현대인은 ''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현대인은 살아 있으나 실은 산자의 삶이 아니다. 생활만 있지 삶의 호흡은 끊어진 것이다. 현대인의 가치는 전도되어 있다. 현대인의 생활은 삶 자체에서 이미 벗어난 삶의 주위에서 맴돌고 있는 수단적 생활에 머물고 있다. 이것은 자초한 죄의 값이다.

 

 

그리하여 가장 유능하다고 현대의 지성들도 자기가 살아 있는지 죽은 상태인지를 가늠할 수 없게 되었다. 는 영혼의 물음을 물을 수 있는 가장 상식적인 판단력도 못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나의 삶을 하나님 아버지의 백성으로 관계 지을 줄 모르는 현대인은 완전 불구자들이다.

 

 

우리는 크리스천이라고 하면서도 우리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참 생명을 에누리해 가며 살 때가 얼마나 많은지 곤두박질하는 참회를 할 때가 있다. , 생수의 근원 되시는 여호와를 버린 자의 비참! 나는 겸허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이 말씀을 기도로 자백한다. 이미 구원받은 우리는 이 말씀에서 졸업하였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것은 큰 잘못이다. 베드로의 행적에서 우리는 쓰라린 경험을 뉘우치게 된다.

 

 

여호와를 버린 현대인은 스스로 생수를 받아 저장하기 위해 웅덩이를 판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이미 터진 웅덩이인 것을 자각치 못한 우리들이다. 불순종과 인간 자고의 둘째 악이다. 현대인은 열심히 웅덩이를 판다. 그리고 그 안팎을 꾸미고 단장하여 극치의 작품을 이루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은 헛된 장난이다. 헬라인은 신들을 창조하는데 천재적인 백성들이었다. 마지막에는 이름 없는 신전을 꾸며 그 이름 모를 신을 두고 섬겼다.

 

 

그들의 예술의 극치는 중성을 창조하기에까지 이르렀다. 남성도 아니고 여성도 아닌 완전 조화의 인간상을 창조하기 위해 중성의 조각 걸작품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창조의 원리를 물리치고 인간을 그 창조의 대행자로 올려놓으려는 시도이다. 인간은 스스로의 행복을 창출해 내기 위해 문명의 첨단을 창조해 간다. 인간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인간공학을 무한대로 발전시켜 가려고 한다. 오늘의 문명적 성취는 가히 인간을 예찬할만하고, 그 이루어 놓은 업적과 작품들은 실로 놀랍다.

 

 

그런데 현대인은 인간 에너지에 대한 '믿음'에서 빗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우상으로 변모되어 가고, 인간이 만들어 놓은 최대 걸작품은 하나님 없이도 생수의 근원이 될 줄로 믿고 있다. 그래서 제단을 미술 갤러리로 변질시키고 예배당을 팔아넘기는 일들이 속출하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 되기를 기피한 현대인은 허무의 웅덩이 속에서 이글거리는 욕망의 술에 취해 그것을 생수로 거듭 마시고 있다.

 

 

허무주의의 우상화된 인간이 파놓은 웅덩이-()-, 그것은 인간의 근본문제를 해도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22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무서운 경고의 훈계로 나는 받아들이고 있다. "네가 만든 네 신들이 어디 있느뇨 그들이 너의 환난을 당할 때에 구원할 수 있으면 일어날 것이니라 유다여 너의 신들이 너의 성읍수와 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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