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설교 알쓸잡

[아모스 5장 주일 설교문] 회개를 촉구함(암 5:1-27)

복음의 능력 2022. 6. 25.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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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5장에서는 북이스라엘이 멸망을 받을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슬픈 노래를 지어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 백성이 우상을 숭배하고 포악하게 행동하다가 심판을 받아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북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을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의를 보여주셨는데도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쪽으로 갔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버리면 안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심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려야 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면 성경의 종말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회개하면서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회개의 말씀을 주셔서 우리가 회개하도록 말씀하고 있습니다. 회개하는 방법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구원이 있습니다.

 

회개를 촉구함(암 5:1-27)

 

1-15, 하나님을 찾고 선을 구하라

[1-3]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애가(哀歌)로 지은 이 말을 들으라. 처녀 이스라엘이 엎드러졌음이여,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로다. 자기 땅에 던지움이여, 일으킬 자 없으리로다. [이는]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 중에서 천명이 나가던 성읍에는 백명만 남고 백명이 나가던 성읍에는 열명만 남으리라 하셨느니라[하셨음이니라].

아모스의 슬픔의 노래는 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한 것이다. 앞으로 될 일이 확실하므로 과거 시제로 표현되었다. 이스라엘 나라는 엎드러질 것이며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자기 땅에 내버려질 것이다. 그들을 다시 일으킬 자는 왕족들이나 귀족들 중에서나 백성 가운데 지혜로운 자들 중에서나 아니면 이웃의 동맹국들 중에서도 없을 것이다. ‘주 여호와라는 말은 주권자 하나님을 증거한다. 주권자 하나님께서 심판을 선언하셨기 때문에 그 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천명이 나가던 큰 성읍들에는 백명만 남고, 백명이 나가던 작은 성읍들에는 열명만 남을 것이다. 각 성읍의 장정들은 십분의 일만 남고 십분의 구는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다. 처참한 멸망이다.

[4-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정녕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허무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하나님께서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찾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와 구원을 간구하고 하나님을 바라며 의지하는 것이다. 사람이 멸망치 않고 사는 길은 오직 하나님을 찾는 길이다. 그가 모든 일을 주관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개인과 가정과 사회의 모든 문제의 해결자이시다. 그는 세상의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섭리자이시다. 세상에서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인간의 행복도 불행도 다 그가 주관하신다. 그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일어난다. 구원의 길, 영생의 길은 하나님뿐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화이다. 성경을 사랑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자들에게 복이 있다(1:1-3; 119:165).

벧엘과 길갈과 브엘세바는 우상숭배의 장소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더 이상 우상숭배의 장소로 가지 말아야 한다. 우상은 고난받는 이스라엘에게 참 도움과 구원을 주지 못한다. 우상은 죽은 신, 가짜 신이며, 사람이 만든 신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를 가장 미워하신다. 우상들은 다 허무하게 될 것이다. 현대인은 인간 숭배, 과학 숭배, 돈 숭배, 쾌락 숭배를 버려야 한다.

[6-9]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염려컨대 저가 불같이 요셉의 집에 내리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을까 하노라. 공법(公法)을 인진(茵蔯)으로 변하며 정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 묘성(昴星)과 삼성(參星)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로 아침이 되게 하시며 백주(白晝)로 어두운 밤이 되게 하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자를 찾으라. 그 이름이 여호와시니라. 저가 강한 자에게 홀연히 패망이 임하게 하신즉 그 패망이 산성(山城)에 미치느니라.

아모스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을 찾으라, 그러면 살리라”고 말한다. 인간의 생명은 주권자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 영원한 생명도 그러하다. 모든 문제의 해결도, 재난의 회복도, 또 이생의 행복과 평안도 그러하다. 하나님을 찾는 자는 영생과 평안을 얻을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묘성[일곱 별자리]과 삼성[오리온 별자리]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로 아침이 되게 하시며 백주로 어두운 밤이 되게 하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자이시다. 그는 하늘의 별들과 낮과 밤을 주관하시고 바다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공법[공의]을 인진[]으로 변하며 정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이었다. ‘공의를 쑥으로 변한다는 말은 공의는 기쁨을 주는 법인데, 그것을 불법으로 바꾸므로 마음의 고통을 준다는 뜻일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다르게 살고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불같이 요셉의 집에 내리셔서 멸하실 것이며 벧엘에서 그 불을 끌 자가 없을 것이며, 그가 강한 자에게 홀연히 패망이 임하게 하신즉 그 패망이 산성 곧 요새에도 미칠 것이다. 하나님을 거슬러 죄 가운데 사는 자는 결국 멸망할 것이다.

[10-13] 무리가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며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하는도다. 너희가 가난한 자를 밟고 저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취하였은즉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하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운 포도원을 심었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중함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궁핍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 그러므로 이런 때에 지혜자가 잠잠하나니 이는 악한 때임이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며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하였다. 그들은 가난한 자를 무시하고 학대했고 세금 명목으로 부당하게 곡식을 탈취했다. 그들은 죄악이 많았다. 그들은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궁핍한 자를 억울하게 했다. 그들은 양심도, 공의도, 긍휼도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것은 앗수르의 침공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바른 책망을 싫어하고 악을 행하던 자들은 좋은 것을 잃을 것이다. 사회가 너무 악하여 바른 책망의 말을 싫어할 때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고 잠잠할 때일 것이다. 그것은 악한 때이다. 그런 때는 말을 많이 할 필요가 없고 잠잠해야 할 것이다.

[14-15] 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하시리라.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울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긍휼히 여기시리라.

본문은 선을 구하는 것이 생명의 길이라고 말하며 또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우라고 말한다. 물론 성경은 사람이 선을 행함으로 구원을 얻거나 영생을 얻지 못한다고 분명하게 가르친다(2:8-9). 그러나 사람이 악을 행하면서 영생에 이를 수는 없다. 악을 행하는 자는 멸망할 것이다(1:6). 영생에 이르기를 원하는 자는 모든 악을 버리고 선을 구해야 한다.

참된 선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행하기를 결심하며 또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것을 포함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시며, 또 재판할 때 부자에게나 가난한 자에게나 똑같이 공명정대하게 대함으로 공의를 세우기를 원하신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말로는 원했지만, 행위로는 불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그들이 악을 버리고 선을 구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실 것이다. 우리가 악을 버리고 공의와 선을 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을 기대할 수 있다.

선지자 아모스는 하나님을 찾고 선을 구하라고 말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만나는 준비는 오직 회개와 믿음과 순종뿐이다. 모든 사람은 헛된 우상들을 다 버리고 회개하고 창조자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또 구원받은 모든 성도는 믿음과 순종으로만 살아야 한다. 우리는 여호와를 찾고 의지하자. 그것이 사는 길이며 평안과 형통을 얻는 길이다. 또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법을 지키며 선을 행하자.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바른 말과 책망을 싫어하지 말고, 의인을 존중하고 가난한 자를 외면하거나 무시하거나 학대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을 구하고 의와 선을 행하는 것은 생명의 길이며,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삶이며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과 도우심을 받는 삶이다.

16-27, 정의를 강물같이

[16-17] 그러므로 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모든 광장에서 울겠고 모든 거리에서 오호라, 오호라 하겠으며 농부를 불러다가 애곡하게 하며 울음꾼을 불러다가 울게 할 것이며 모든 포도원에서도 울리니 이는 내가 너희 가운데로 지나갈 것임이니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므로라는 말은 13절과 같이 이스라엘이 고집과 회개치 않음으로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기 때문에라는 뜻이다. 선지자는 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전한다. 그것은 심판의 선언이다. 그 선언은 인간 아모스의 말이 아니고, 살아계신 대주재자, 곧 주권적인 섭리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다.

사람들은 모든 광장에서 울 것이며 모든 거리에서 오호라, 오호라라고 말할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모든 광장에서, 모든 거리들에서 사람들이 재앙의 이야기들, 전쟁 이야기들만 하면서 슬피 울며 탄식할 것이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농부를 불러다가 애곡하게 하며 울음꾼을 불러다가 울게 할 것이다. 모든 포도원에서도 울 것이다. 나라의 각 분야, 각종 직업의 사람들이 그 전쟁의 날, 그 재앙의 날에 울며 통곡하며 탄식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울게 될 까닭은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가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자로서 지나가실 것이다. 그는 징벌의 손을 들고 징벌하시며 지나가실 것이다. 장차 하나님의 심판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울게 될 것이다. 미래의 울음을 막는 길은 지금 우는 것뿐이다. 지금 애통하며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것뿐이다. 지금 우는 자는 후에 위로를 받고 기뻐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기뻐하는 자는 후에 눈물을 흘릴 것이다(눅 6:21, 25; 4:8-9)

[18-20] 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뇨? 그 날은 어두움이요 빛이 아니라. 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 여호와의 날이 어찌 어두워서 빛이 없음이 아니며 캄캄하여 빛남이 없음이 아니냐?

본문의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다. 그 날은 작정되어 있다. 하나님의 복 주시는 날은 기억하고 사모할 만한 것이지만, 그의 작정된 심판의 날은 생각만 해도 슬프고 고통스럽다. 그 날은 어두움이요 빛이 아니다(2:1-2; 1:14-16). 그 날은 슬픔과 절망과 불행의 날이요 기쁨과 소망과 행복의 날이 아니다.

본문은 사람이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것은 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기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다고 말한다. 산길이나 들판을 가다가 사자를 만나서 그것을 피하였으나 곧 곰이 나타난 것과 같을 것이며, 집에 들어가 안심하고 손을 벽에 기대었는데 뱀이 나타나 그를 물어버린 것과 같을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雪上加霜). 죄인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그것은 준엄하고 철저할 것이다.

본문은 여호와의 날이 어찌 어두워서 빛이 없음이 아니며 캄캄하여 빛남이 없음이 아니냐?”고 말한다. 심판의 날은 어두워서 빛이 없고 캄캄할 것이다. 그것은 절망과 고통의 날이다. 마지막 대환난과 심판도 그러할 것이다. 베드로후서 3: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고 말했다.

[21-24] 내가 너희 절기를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시끄러운](KJV, NASB, NIV) 노래 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

절기들과 성회들, 번제와 소제와 화목제는 다 하나님께서 율법에 명하신 바들이 아닌가?(1-7; 23).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절기와 성회들을 미워하시고 멸시하시며 기뻐하지 않으시고 번제와 소제와 화목제를 받지 아니하시고 돌아보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인가? 하나님의 뜻이 바뀌었는가?

하나님을 찬송함은 인생에게 그리고 성도에게 마땅한 일이 아닌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님이 아니신가?(22:3). 시편 150편은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6)라고 말하며 모든 악기들을 동원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말씀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노래 소리를 시끄럽다고 그치라고 하시고 그 악기 소리를 듣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인가? 그 이유가 24절에 암시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이스라엘 사회에 공의가 메말라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과연 이스라엘 사회는 공의가 메말랐고 불의와 불법이 가득하였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단지 절기와 집회들이 아니고 예배나 헌금이나 찬양이 아니고, 경건하고 도덕적인 삶, 즉 모든 죄를 버리고 계명을 지키는 경건하고 거룩하고 선한 삶이다.

[25-27]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40년 동안 광야에서 희생과 소제물을 내게 드렸느냐? 너희가 너희 왕 식굿과 너희 우상 기윤 곧 너희가 너희를 위하여 만들어서 신으로 삼은 별 형상을 지고 가리라[지고 갔도다](KJV, NASB, NIV).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다메섹 밖으로 사로잡혀 가게 하리라. 이는 만군의 하나님이라 일컫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모세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나온 후 40년 동안 광야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고 불평하며 원망했다. 그들은 건성으로, 형식적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때도 많았고 아예 드리지 않은 때도 있었으며 또 하나님께만 드리지 않고 우상들도 섬긴 적이 많았던 것 같다. 이스라엘 백성의 그 후시대의 역사도 하나님과 우상들을 함께 섬긴 역사이었고 우상숭배의 흔적이 늘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식굿이라는 신을 왕으로 섬겼고 또 기윤이라는 우상을 만들어 섬겼다. ‘식굿은 바벨론 신을 가리키며, ‘기윤도 토성(Saturn)이라는 이름의 이방신을 가리킨다. 사도행전 7:43은 본문을 인용하기를, “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을 받들었음이여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고대의 헬라어 70인역을 인용한 것이다. ‘레판’(렘판, 롬판)은 토성(Saturn)의 콥트어 고유명사라고 한다. 히브리어로 멜렉이라는 뜻이고 숙코스는 ‘장막들이라는 뜻이다. 본문은 번역상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를 지적하신 것은 분명하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않고 우상들을 섬긴 결과,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그들을 징벌하시고 그들이 앗수르 군대에게 패배하고 멸망하여 포로로 잡혀가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의 날, 곧 마지막 대심판의 날이 있다. 그 날에 죄인들은 울며 통곡할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았으므로 마지막 대심판의 날이 두려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살 수 있고 그러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범죄했을 때는 지체치 말고 죄를 통회하고 회개해야 한다.

우리는 형식적으로, 습관적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말고 또 부분적으로 우상숭배를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진심으로 섬기며 순종하자. 형식적인 예배 참석, 헌금 등의 종교의식은 아무 의미가 없다. 우리는 하나님을 진실히 믿고 섬기며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 우리는 죄를 멀리하고 참된 경건과 도덕성을 구하며 실천해야 한다.

[히브리서 11장 강해 설교말씀] 믿음의 선조들(히 1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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