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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기독교인의 금식은 어떻게 하나요?

복음의 능력 2020. 7. 12.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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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도 알쓸잡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성경공부 중에서 금식이 무엇이며 어떻게 금식을 해야 하는지에 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1. 머리말

 

금식에 대한 논란은 일찍이 구약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선지자 이사야 시대를 비롯해서 그 후 예수님 당시에도 있었던 문제로서 현대 기독교 신앙계에도 적지 않은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오순절 운동 계통이나 신비주의 신앙을 추구하는 지도자들은 금식에 대한 구체적인 신학적 비판이나 성경적 정립도 없이 각자가 나름대로 교리화 내지는 제도화하여 장려하고 실천해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혹자들은 금식한 기간의 길고 짧음이 신령한 능력의 척도가 되는 줄로 생각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금식이 마치 모든 문제 해결의 만능열쇠인 것처럼 생각하는 자들도 있고 그런가 하면 금식을 만병통치의 비법으로 생각하는 자들도 있다 뿐만 아니라 더러의 목회자들 가운데 예수께서 복음 전도 일을 시작하시기 전에 사십일을 금식하셨다 해서 자신도 목회를 시작하기 전에 일단 금식을 해서 능력을 받은 후에 한다고 생각하는 자들도 있다.

 

이러한 금식에 대한 그릇된 관념이 기독교 신앙의 변질은 물론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많은 과오를 초래하고 있다는데 이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금식에 대한 잘못된 오해로 빚어지는 신앙적 혼란은 점점 더해가고 있어서 금식에 대한 올바른 신학적 정립이 시급할 뿐만 아니라 그 중요성 역시 매우 큰 것이다 그러므로 금식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성경에서 찾아 정리해 보기로 하겠다.

 

 

2. 금식의 어의

 

구약 성경에 있어서 언급된 대부분의 금식에 대한 용어는 하나의 동사의 어근과 그 어근에서 파생된 명사를 사용하기도 하고 다른 많은 단어들과 문구들도 금식의 의미를 전달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금식이란 단어가 히브리어로 (צום)이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צום)이라는 말이 있고 이와 같은 어근을 가지고 같은 의미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는 아나 (נפש네페쉬) 라는 용어이다 여기서 (צום)이라는 명사의 의미는 음식에 대한 철저한 절제와 관련이 된 것으로 식음의 중지를 뜻하고 아나 (נפש네페쉬) 라는 동사는 자신의 영혼을 괴롭힌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단어는 비교적 레위기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는 전문적인 어법이다.

 

신약 성경에 있어서는 종교적 행위로서의 금식을 표현하는 단어로서 (νηστεια네스테이아)라는 말이 있는데 그 뜻은 궁핍으로 인한 굶주림을 의미한다 바울이 이 단어를 같은 뜻으로 사용했다 이 어근의 기본적인 의미가 식량이 없다라는 점을 말해주나 이 에는 같은 어근에서 파생된 명사 (νηστις네스티스)를 사용한다 이 말은 주로 굶주림” “먹지 못함”을 뜻한다. 구약에서나 신약에서 사용하고 있는 금식이라는 말의 의미를 종합적으로 정리해 보면 음식을 멀리하고 괴로워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3. 금식의 기원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학자들은 금식에 대한 유래를 뚜렷한 하나님의 계명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다만 인간이 마음이 괴로울 때면 식음을 전폐하게 되는 생활 습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즉 금식은 하나님께로부터 명령된 것이 아니고 족장 시대 또는 그 이전으로부터 생활 관습에 따라 점진적으로 규범화되어서 결국에는 규범적인 명령에 따라 실시되었을 것이라는 견해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언급되고 있는 금식은 어디까지나 생활 관습으로부터 유래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명령에서 유래되었음을 밝혀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기 전에 에덴동산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따먹지 말라”라고 금식을 명하셨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명령을 거스른 후에 저주로 인한 괴로움을 당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타락한 후에 또다시 생명과를 따먹지 못하도록 에덴에서 내어 쫓아 버리셨다. 따라서 성경이 말하고 있는 금식은 근원적으로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생명과를 먹지 못하게 하신 사건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먹지 못하게 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에게 생명과를 먹지 못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불순종한 아담과 하와에게 사망의 고통을 당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즉 먹지 못함으로 당하는 고통을 아담과 하와가 당하게 되었고 그 후손과 모든 인류가 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고통은 죽은 영혼의 영적 고통으로서 반드시 범죄의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시켜 광야로 인도하실 때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율법을 명하시면서 영원히 지킬 규례 중 하나인 칠월 십일 속죄일에 스스로 괴롭게 하라는 명령을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어기고 죄를 짓게 되면 매일 제사장을 통하여 짐승을 잡아 성소에서 속죄제를 드리고 일 년에 한 번씩 칠월 십일에는 대제사장을 통하여 지성소에서 속죄제를 드리면서 백성들은 스스로 괴롭게 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스스로를 괴롭게 하라는 말이 히브리어로는 금식이라는 말과 같은 뜻인데 구약의 율법서에서는 금식에 대한 전문적인 어법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성경이 말하는 금식의 기원은 아담 타락 직후 하나님께서 생명과를 먹지 못하도록 아담을 에덴에서 추방한 사건에서 찾아볼 수 있으나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명하신 율법에서 그 기원을 구체적으로 찾아볼 수가 있다.

 

4. 금식의 목적

 

하나님께서 무슨 목적으로 금식을 명령하셨는가에 대하여는 일반적으로 여러 가지 이론과 견해들을 가지고 있다. 혹자들은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기 위해서라든가 소원 성취를 해 주시려고라든가 목회를 성공하게 해 주시려고한다든가 등의 많은 견해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범죄 한 인간에게 괴로움을 주기 위하여 금식을 명하셨다고 밝혀주고 있다.

 

타락 전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과일을 먹지 못하게 금하신 것은 죄로 인한 괴로움 당하지 않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타락한 아담과 하와에게 생명과를 먹지 못하게 에덴동산에서 내어 쫓으신 것은 죄로 인한 괴로움을 당하게 하시려는데 목적이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율법을 명하실 때에 속죄일인 매년 칠월 십일에 백성의 죄를 속하려면 스스로 괴롭게 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이 말씀 자체가 금식을 목적을 잘 말해 주고 있다.

 

금식은 범죄자가 죄를 회개하는 것과 밀접한 관례를 가지고 있다. 성경을 보면 금식을 하게 되는 경우들이 있는데 전쟁이 났을 때 질병을 앓을 때 사람이 죽었을 때 재앙 또는 기근이 임했을 때 등으로서 이러한 사건들은 모두가 인간의 범죄와 관련이 깊은 사건들이다. 즉 범죄함으로 여러 가지 재난을 당했을 경우에 금식하면서 마음을 괴롭히고 죄를 뉘우치며 회개하는 일들이 언제나 병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사야 선지자는 유다 백성에게 죄에 대한 회개를 촉구하면서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찾아 얻으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다투며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의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 목소리로 상달케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어찌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 머리를 갈대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 될 날이라 하겠느냐 (58:3-5)”고 잘못된 금식을 책망했다. 즉 외모로 슬픈 척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을 괴롭게 하는 것이 바른 금식이라는 것이다.

 

 

 

결국 구약 시대에 율법적인 금식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범죄 한 백성들의 죄를 속죄해 주시기 위하여 범죄 한 성들로 하여금 죗값으로 괴로움을 당하게 하시려는데 있는 것이다.

 

5. 금식의 결과

 

구약 시대에 있어서 성경은 율법적으로 주어진 금식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게 되면 어떠한 결과가 맺어지게 되는지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씀해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금식을 명하실 때 죄의 용서를 위한 범죄자들의 괴로움을 목적하셨기 때문에 금식의 결과는 역시 죄에서의 해방은 물론 그에 따르는 즐거움을 얻게 된다고 성경이 증언해 준다.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유다 백성들에게 바른 금식의 결과에 대하여 말씀해 주신 바 있다.

 

1) 죄에서의 해방이다

 

금식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 중의 하나는 거의 권세로부터의 해방이다.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한 결박을 풀어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사58:6)” 고 하신 말씀을 보면 참된 금식은 죄에서의 자유함을 얻게 한다는 의미의 내용인 것이다. 계속해서 이사야 587절로 8절까지의 말씀을 보아도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금식의 결과는 유다 백성의 죄로 인한 상처의 회복 즉 이방 민족에게 포로가 되어 겪는 고통에서의 회복이 급속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

 

금식에 대한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종합해 보면 유다 백성들이 범한 죄를 뉘우치고 괴로워하는 바른 금식을 통해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이방의 침략과 재난 속에서 구출하여 자유롭고 평화롭게 회복해 주신다는 의미이다.

 

2) 즐거움의 회복이다

 

금식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 중의 또 하나는 죄에서의 자유함과 더불어 따라오는 즐거움의 회복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속죄일에 대한 규례를 명하실 때 속죄일인 칠월 십일이 지나고 칠월 십오일부터 칠일 동안 절기를 지키라고 하시면서 “첫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실과와 종려가지와 무성한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라 (레24:40)” 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속죄일에 죄를 용서받은 후 괴로움을 씻어버리고 즐거움을 누리게 하시겠다는 말씀이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범죄 한 후 용서를 받으려면 제물의 피를 흘려 속죄 제사를 드리기도 해야 하지만 율법적 규범대로 금식도 했어야 했고 칠일 동안 절기를 지키면서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기도 했어야 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의 결과는 죄에서의 해방과 그에 따르는 즐거움의 회복인 것이다.

 

 

 

6. 금식의 복음적 의미

 

지금까지의 구약에 있어서의 율법적 금식이 어떠한 것인가에 대하여 성경적으로 정리해 보았다. 이제부터는 이러한 구약의 율법적 금식이 신약 교회에 시사해 주는 복음적 의미가 무엇인가를 성경으로 규명해 보려는 것이다. 이 작업은 신약 교회 시대를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깊은 진리를 제공해 주는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수님 당시에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바리새인들과 함께 자주 금식을 했다 예수님께서도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셔서 사십일 동안 밤낮으로 금식하신 일이 있다. 그런데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마9:14)”라고 질문을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마9:15)”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비유로 하신 말씀인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함께 있기 때문에 금식 곧 슬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며 신랑 되신 그리스도를 빼앗길 날 곧 십자가에 죽으시게 될 때가 이르면 제자들이 슬퍼하게 된다는 말씀이었다.

 

이러한 의미의 말씀을 하신 후 바로 생베 조각과 낡은 옷 비유와 포도주와 가죽부대 비유를 들어 율법 아래서의 금식과 복음 안에서의 금식이 함께 할 수 없음을 말씀해 주셨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자는 금식 즉 슬퍼할 것이 아니라 기뻐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구약의 율법적 금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형상으로 이루실 그림자이며 예표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율법적 금식의 요구를 이루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도들의 죄를 대신하여 슬퍼하시고 괴로워하시면서 십자가의 최고의 고통을 참고 견디어 주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대속을 통해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 하시고 신령한 기쁨을 얻게 하셔서 즐거움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아가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이다.

 

구약의 있어서의 그림자적인 율법적 금식이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하고 즐거움을 회복케 했다면 하물며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참 형상적인 금식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이 어찌 우리 성도들을 죄에서 해방시키지 못하며 영원한 즐거움을 얻게 할 수 없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그리스도를 영접지 않고 죄 아래서 율법에 매어 살아가는 자들은 괴로워하고 슬퍼하며 식음을 전폐하는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죄를 용서받은 성도는 당연히 항상 기뻐하며 거저 주시는 바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 교회 성도들에게는 구약의 율법적인 낡은 금식이 아닌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성령의 법에 이끌려 자원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위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진정한 복음적 의미의 새로운 금식 즉 고난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복음적 의미의 금식 즉 고난은 도리어 우리에게 많은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그렇게 때문에 신약 교회 성도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결국 구약의 율법적인 금식은 그리스도게서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온전케 성취하신 것에 대한 예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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